<-- 194 회: 6권-19화 종전과 항복 -->
“지금 이 히로시마조차도 낮에는 조선군의 폭격 때문에 제대로 나돌아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지 않소. 그런데도 야하타를 그대로 두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지 진정모르겠소?”
메이지일왕이 여기까지 말하자 세 사람 중 누구 한 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메이지일왕이 참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쟁을 너무 오래 끌었소. 이제 그만 끝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소.”
“폐하!!!”
세 사람이 자신만 부르며 아무런 말도 못하자 메이지일왕이 이토 히로부미를 지목했다.
“이토 후작.”
“예, 폐하.”
“이번에도 경이 수고를 해주어야겠소. 짐이 조선과의 협상에 대한 전권을 경에게 주겠으니 조선과의 종전협상을 추진해보고 부디 협상도 잘 마무리 해보시오.”
이토의 안색이 참혹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기위해 평생을 바쳐왔던 그가 이제 머리를 숙여 종전을 청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던 이토 히로부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조선의 요구를 우리 제국이 받아들이기에는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패전을 한 마당에 조선의 요구가 당연히 엄청나겠지요. 그리고 조선이 짐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면 짐은 그렇게 할 생각도 갖고 있소.”
이토 히로부미가 깜짝 놀라며 반대했다.
“절대 그 것만은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제국에서 폐하가 없으시다면 우리 제국은 그대로 무너지고 맙니다.”
사이온지 총리도 황급히 거들었다.
“다른 어떤 것을 전부 양보하더라도 황실과 폐하의 안위만은 반드시 지켜 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제국이 후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총리의 말이 맞습니다. 신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런 황망한 일은 만들지 않을 것이니 신을 믿어 주시고 마음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메이지일왕은 고개를 숙이는 이토 히로부미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허허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겠소.”
“폐하의 안위는 바로 우리 대일본제국의 안위입니다. 신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알겠소. 그리고 총장.”
메이지일왕이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야마가타를 불렀다.
“예, 폐하.”
“경은 지금 자결을 하고 싶을 거요. 하지만 짐은 자결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야마가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폐하, 신이 자결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전쟁에서 패한 사무라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늘을 보고 살 수 있겠습니까?”
“이보시오. 총장. 죽고 싶은 사람은 바로 짐이오. 앞으로 조선이 짐에게 얼마나 많은 치욕을 안겨주겠소.”
“폐하!······”
메이지일왕의 말에 야마가타는 황송해서 허리를 깊게 숙였다.
“하지만 짐은 참고 또 참을 것이오. 그래야 조선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지 않겠소. 앞으로 닥쳐올 치욕은 분명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겠지만 후일을 위해서 짐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오. 그러니 경도 짐과 함께 치욕을 참고 후일을 기약합시다.”
“폐하!~~”
“짐은 후일 있을 조선에 대한 복수를 반드시 경과 함께 하고 싶소이다.”
이렇게 결연하게 말을 하는 메이지일왕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세 사람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종전과 항복
일왕의 처소를 나온 세 사람은 별도의 회동을 가졌다.
“후!~ 두 분들께 정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소. 특히 이토 후작께는 힘든 일을 맡겨 너무도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야마가타가 이렇게 말을 하고 허리를 숙이자 이토 히로부미가 황급히 그를 바로 세웠다.
“각하께서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노심초사 하신 것을 본인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이러시면 어떡하십니까? 기운을 내십시오.”
옆에 있던 사이온지 총리도 간곡하게 말을 했다.
“맞습니다. 폐하의 말씀처럼 심지를 굳건히 가지십시오.”
“후!~ 두 분의 말씀은 고맙소이다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걱정이오.”
이렇게 말을 하는 야마가타의 얼굴이 갑자기 십년은 더 늙어 보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야마가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사이온지 총리에게 제안했다.
“본관이 폐하께 조선과의 협상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지만 먼저 내각총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소.”
“알겠습니다. 오늘 당장 전체각료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그래주시오. 원수 각하께서도 대본영전체회의를 소집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소.”
“일단 본관이 폐하의 제가를 받기는 했으나 종전협상은 전적으로 내각과 대본영이 주도하는 모양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사이온지 총리가 바로 수긍했다.
“맞습니다. 그래야 폐하와 황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왕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자 야마가타가 조금 전의 나약한 모습을 벗고 나섰다.
“어떻게 하더라도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의 왕실이 만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허황된 황국사관에서 나온 말로 일본제국 헌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었다)의 황실과 폐하는 반드시 지켜야 하오. 그래야 신민들이 합심하여 후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화족(大和族 일본민족을 자칭하는 말)은 절대 이번 일에 굴하지 않고 반드시 다시 일어서서 조선을 발아래 두고 말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렇게 말을 하자 죽었던 야마가타의 눈빛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조선과의 종전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황실의 보전이니 이토후작께서는 설사 조선에 영토를 잘라주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반드시 관철시켜 주셨으면 하오.”
“알겠습니다. 각하.”
이날 오후부터 히로시마에 있는 내각관저에서는 대한제국과의 종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격론이 오갔지만 이미 일왕의 제가가 떨어졌고 수십 년간 일본군과 일본정계를 좌지우지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이토 히로부미가 종전을 거론하자 격론은 말잔치에 불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쟁의 마무리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일본내각은 야마가타와 이토 히로부미의 생각과 같이 종전협상을 통해 전쟁을 마무리 하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의는 아직까지도 자신들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착각에 불과한 일본만의 결의일 뿐이었다.
차준혁은 이때 북경에 상주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일본열도에 상륙작전을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차준혁은 영국공사 맥도날드의 면담요청으로 오랜만에 영국공사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북경의 영국공사관은 아편전쟁이후 청국에 대한 영국의 우월적 지위를 나타내듯 북경에 있는 외교공관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차준혁의 방문에 맥도날드 공사는 공관정문까지 나와서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차 공사.”
“잘 지내셨습니까? 공사님.”
“하하. 본관이야 늘 그렇지요.”
두 사람은 그동안의 잦은 만남이 말해주듯 나이를 떠나 아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공관정문에서 서로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맥도날드의 직접 안내로 접견실로 들어갔고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청국하인이 바로 차를 내왔다.
차준혁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맥도날드가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귀국의 일본본토 상륙작전이 성공적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들리는 말로는 일본군이 제대로 방어도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다행히 일본군이 방어계획을 잘 못 잡고 있어서 쉽게 공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준혁의 말이 겸손한 대답으로 안 맥도날드 공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여튼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본 공사를 보자고 하신 것입니까?”
“다른 게 아니고 미국공사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미국 공사가요?”
“그렇습니다. 일본이 미국에게 이번 전쟁의 종전을 중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종전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차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종전협상을 하려고 했으면 지난 3월에 했어야 합니다. 지금 일본과 우리 대한제국은 너무 멀리와 있습니다.”
맥도날드 공사도 예상했던 대답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귀국은 끝까지 갈 계획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종전을 운운 하며 중재를 부탁하는 것을 보니 일본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차준혁은 굳은 표정으로 정확히 말을 끊어가며 했다.
“우리 대한제국은 종전이 아니라 일본이 항복을 할 때까지 결전을 벌일 것입니다. 그것도 무조건 항복을 말입니다.”
“무조건 항복은 너무 과한요구가 아닙니까?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