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6 회: 6권-21화 --> (196/268)

<-- 196 회: 6권-21화 -->

그때 민영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본의 반발도 유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육군대신 강명철이 바로 말을 받았다.

“내무상께서는 그런 걱정을 절대 하지 마십시오.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받은 것입니다. 무조건 항복을 한 나라가 무슨 반발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해도 북해도와 오키나와가 일본의 영토가 된지 수십 년입니다. 더구나 북해도는 섬의 크기가 대단하게 넓어서 아무리 일본이 항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쉽게 내줄 영토가 아닙니다.”

강명철이 민영환을 설득했다.

“우리 제국이 만주를 고토로 여기다 이번에 수복한 것 같이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북해도는 결국 남에게서 빼앗은 땅입니다.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면 일본도 결국은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송의식도 강명철의 주장에 동조했다.

“북해도독립은 우리 제국이 만주를 수복한 것 같이 육군상의 말씀대로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무엇보다도 명분이 있는 일입니다. 일본이 얼마 전 만주로 이주할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한 것으로 아는데 이 사람들 중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 북해도로 이주하는 것도 일본의 반발을 누를 수 있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토론이 길어지자 박충식이 정리했다.

“이 문제는 북해도를 독립시켜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합시다. 그리고 일본이 요청한 천황제 존속은 어떤 방향으로 처리하면 좋은지 의견들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무대신 이상재가 먼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본이 유신 이후 국력을 결집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자칭 천황이라고 하는 일왕입니다. 이 일왕이 없는 것이 일본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무대신 민영환이 이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재무상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을 주장하며 우리 제국은 물론이고 만주를 침략하는 등의 야욕을 부리던 정점에는 항상 일왕이 있었습니다. 패전 후에도 일왕이 그대로 있다면 일본은 또 다시 일왕을 구심점으로 헛된 야욕을 부릴 수도 있으니 이 기회에 일왕을 퇴위시키는 것이 우리 제국의 국익에도 가장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방대신 김종석이 다른 의견을 냈다.

“지금 바로 일왕을 퇴위시키는 것보다 일왕의 지위를 유지시키는 것을 구실로 일본에게 다른 것들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종석의 주장에 송의식도 찬성했다.

“저도 국방대신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일왕의 퇴위가 반드시 우리 국익에 좋게 작용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본국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우호국들인 영국과 독일 등이 전부 제국들이라 군주제를 폐지하는 것은 국제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본국의 국제(國制)에도 자칫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송의식이 이런 말을 하자 회의실분위기가 일순 경직되었고 천황제폐지를 주장하던 두 대신들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송의식이 차분하게 다시 발언을 이어나갔다. 

“일단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실익을 챙기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제 판단에는 일본은 분명 일왕을 퇴위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 제국에 엄청난 양보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처음 일왕의 퇴위를 주장했던 이상재가 송의식에게 질문을 했다.

“일왕의 퇴위와 맞바꿀만한 실익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선 군대해산을 들 수 있습니다.”

질문을 했던 이상재가 생각지도 않은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예?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자신들이 신으로 섬기는 일왕을 퇴위시키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면 그들은 어쩔 수없이 양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에 군대를 아예 없애자는 것입니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해군은 아예 해산을 시켜 연안경비를 담당하는 수준의 해양경비대만 존속시키고 육군은 무장을 철저히 제한하면서 국토방위 성격의 부대를 존속시키는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재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섬나라인 일본이 해군의 해산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일본이 우리 제국에게 한 것처럼 일본열도의 해상방위를 우리 대한제국에서 전담해준다고 하면 됩니다. 일본은 소형함정으로 연안경비를 담당하도록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국방비를 절감시켜 경제재건에 쏟으라고 하면 일본도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긴 일본이 바로 우리 제국에게 똑 같은 짓을 했으니 저들도 큰 반발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송의식은 일본에게 받아낼 많은 이익에 대해 말을 하자 대한제국출신 대신들도 일왕을 존속시켜 실익을 챙기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박충식이 이번에는 재무대신 이상재를 불렀다.

“재무상.”

“예, 전하.”

“화폐개혁 후 풀렸다 다시 대한제국은행권으로 교환된 일본제일은행권의 총량이 전부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이상재가 자신이 가져온 서류를 황급히 찾았다.

“교환된 화폐의 총량은 7천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만 수복 후 그들의 은행에서 압수한 화폐까지 전부 포함하면 일억 원정도 됩니다.”

“일본의 일 년 예산이 이억 원(원≒1엔) 정도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규모로군.”

“맞습니다. 이번 항복협상 때 일본정부로부터 반드시 이에 대한 배상도 받아내야 합니다. 잘못했다간 우리 경제가 완전히 거덜 날 뻔 했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반드시 일본에 배상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때 민영환의 무거운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일본이 항복을 하면 반드시 잡아올 자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그러자 민영환의 눈에 불길이 일며 또박또박 한마디씩 말을 했다.

“지난 을미년(1895년)에 일어났던 국모께서 시해되신 참변을 주도했던 당시 일본공사인 미우라 고로(三浦梧楼 1847년)와 공사관 직원들 그리고 그에게서 자금을 받아 낭인을 동원했던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죠(安達謙藏)와 신문사직원들 그리고 낭인 56명입니다. 거기다 참변에 참여한 일본군들과 한국 측 주동자였던 당시 도성훈련대 1대대장이었던 이두황(李斗璜, 1858년)참령과 명성황후마마의 시신을 불태웠던 송병준 사위 구연수(具然壽, 1867년)입니다.”

육군대신 강명철이 강한 어조로 찬성했다.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일입니다. 당연히 모조리 잡아와서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 주범인 미우라 고로 뿐 아니라 그에게 사주한 자가 있다면 그 자들도 당연히 잡아와서 법정에 세워야 합니다.”

강명철의 말에 모든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하지만 강명철의 말을 듣는 유길준의 얼굴은 해쓱해졌고 박충식은 그런 그의 표정을 눈여겨봤다.

이날의 회의에는 많은 안건이 오갔고 일본에 대한 격렬한 말도 오가면서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피곤한 기색보다 모두 당당하고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회의가 끝이 나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갈 때 박충식은 유길준을 별도로 불렀다.

“아까 보니 안색이 좋지 않던데 무슨 일이 있소?”

질문을 받자 유길준의 안색이 아주 안 좋아졌다.

잠시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던 유길준이 긴 한숨과 함께 무겁게 입을 열었다.

“후!~ 신이 전하 앞에서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사실 신은 이전에 조선을 개혁하려면 그 당시 세도정치를 하면서 온갖 부패를 다 저지르며 조선의 개화와 개혁에 최대로 걸림돌이 되고 있던 민씨 세력이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거야 민족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소.”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는 탐욕의 온상이었던 민씨 세력을 뒤에서 조종하며 정치권력을 행사하던 명성황후를 역사상 가장 나쁜 여자로 지칭하면서 저주를 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미워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보건대신께서도 국모시해사건에 직접 가담했다는 말이오?”

유길준이 펄쩍 뛰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민씨 집안의 세도정치를 뒤에서 조종하는 명성황후를 극렬하게 미워하며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기를 바란 것은 사실이지만 시해사건에 가담할 정도로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소?”

“국모시해사건에 직접가담은 하지 않았지만 신의 저주를 퍼부은 탓인지 명성황후께서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신은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마음이 아주 착잡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유길준의 얼굴이 처연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