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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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하는 유길준에게 박충식이 위로했다.

“너무 마음에 담지 마시오. 유 대신이 그런 마음이 계속 든다면 홍릉(洪陵 명성황후의 능 청량리에 있었음)이라도 한 번 다녀오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후!~ 그래야겠습니다. 그동안 국모를 저주했던 일이 못내 가슴에 걸려있던 참이었는데 이번에 마음의 빚도 덜 겸 한 번 찾아뵈어야겠습니다.”

“이제 지난 일이오. 유 대신이 앞으로 국사에 더욱 충실하면 하늘에 계신 명성황후께서도 좋아하시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황후께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본관의 맡은 바 일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며 유길준이 고개를 숙였다. 

삼족오군이 이 시대로 왔을 때 처음 친일인사들을 선발하면서 논쟁이 오갔던 대표적인 사안이 유길준과 윤치호로 대변되는 두 부류였다.

유길준은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빌리려고 했고 그게 무산되고 을사늑약이 채결되자 그때부터 모든 공직을 버리고 일본에 대해 철저한 반일감정으로 많은 구국활동을 했었다. 

그에 반해 윤치호는 인생의 반은 철저한 애국자로 살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투옥된 뒤 3년 만에 출감하면서 변절하여 대표적 친일파가 되었다.

1905년을 기준으로 보면 유길준의 부류는 친일파이고 윤치호의 부류는 애국자였다. 

100인위원회는 이 문제로 격론을 벌이다 결정을 한 것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후일 시류에 영합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면서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들을 전부 친일파로 잠정결정했다. 

물론 이들에게 당장 징계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우도 해주지 않고 공직진출 만큼은 철저하게 배재시켜 앞날에 있을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100인위원회 결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렇게 구분된 대부분의 인사들은 한성이 수복된 후 시행된 숙정작업 때 그 자신이 탐관이거나 각종 비리사실 등에 연루된 것이 적발되면서 대부분 가산이 적몰되고 죄수로 전락해 버렸다.

유길준이 돌아가고 난 후 박충식은 모처럼 한가한 마음이 들어 총리부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경복궁을 찾았다.

“충성!”

경복궁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경위원(警衛院)의 경위대원들이 박충식을 보자 황급히 자세를 바로하고는 절도 있게 경례를 했다. 경위원은 본래 일본에 의해 형식적인 소수의 인원만 배정되어 황궁을 수비하고 있던 명목상의 조직에 불과 했다.

하지만 한반도가 수복이 된 후 대폭 보강되면서 대대병력이 한성곳곳에 있는 황궁의 외곽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와 황태자 대공과 의친왕 등 황실주요인사의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경호실 격인 시위무관부도 대폭 보강되었다.

경복궁은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정문인 광화문을 황궁을 상징하는 5개의 문이 달린 황궁의 정문답게 대폭확장해서 신축 중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쓸모가 없어진 궐내각사를 전부 철거하고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3층으로 된 사각형의 현대식 대형궁전이 신축 중에 있었다. 

서쪽은 황제가 사용하게 될 궁전으로 동쪽의 황태자궁전에 비해 2배 정도 넓게 건축 중에 있었다.

박충식은 황궁신축공사장에서 뜻밖에도 의친왕을 만났다. 의친왕이 반갑게 먼저 인사했다.

“아니! 대공 전하, 아니십니까?”

“의친왕께서도 신궁의 진척상황이 궁금해서 들르셨나봅니다.”

“그렇습니다. 과인도 진척상황이 궁금하고 부황께서도 궁금해 하셔서 직접보고 소식을 전해드릴 겸해서 겸사겸사 방금 전에 들렀습니다.”

“아 그렇군요.”

의친왕이 반갑게 인사를 하자 그의 옆에서 설명을 해주던 현장소장 박기영도 박충식에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박 소장이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제 손으로 역사에 남을 황궁을 짓고 있다는 보람에 힘든 줄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는 현장소장은 공병대 출신의 박기영 상좌였다. 박기영 상좌는 그동안 정부청사건설공사의 현장소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준공시킨 후 이번에 다시 경복궁황궁의 현장소장을 맡고 있었다.

의친왕이 황제가 사용할 서쪽궁전의 넓이를 보고 감탄했다.

“부황께서 사용하실 황궁이 완성되면 그 위용이 정말 대단할 것 같습니다.”

의친왕의 감탄하자 옆에서 박기영이 보완설명을 해주었다.

“1,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연회장을 궁전에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궁전이 전부 석재로 지어진다고 들었네만.”

“맞습니다. 궁전의 외부마감석재는 포천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화강석이 사용되고 있고 내부는 이탈리아와 청국의 대리에서 수입하는 최고급 대리석으로 마감될 것입니다. 그리고 궁전은 제국의 황궁에 걸맞게 3층이지만 5층의 높이로 층고가 높고 웅장하게 지어질 것입니다.”

“준공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는가?”

“외부마감을 마친 지금까지의 공사속도로 보면 아마도 내년 말이면 준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잘 부탁하네. 우리 이 궁전이 앞으로 대한제국의 정궁이 될 건물 아닌가.”

“걱정 마십시오. 정부청사도 그렇지만 이 궁전도 지진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도록 내진설계까지 적용한 건물이라 화강석재가 마모될 때까지는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의친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궁전건물이 견딘다면 아마도 천 년은 족히 가겠소이다.”

“황궁건물이라 저희도 최하 그 정도는 견딜 것을 염두에 두고 건설하고 있으니 아마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박기영의 장담에 의친왕과 박충식의 입에는 동시에 만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흐뭇해하던 의친왕이 박충식에게 질문을 했다.

“일본이 메이지일왕의 계속재위를 이어줄 것과 왕조체재를 고수시켜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내각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까?”

“박충식이 방금 전 내각에서 결정한 것을 말해주자 의친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북해도의 총독은 누가 갑니까?”

“총독이요?”

“예, 과인이 알기로 북미에 있는 캐나다자치령도 그렇고 몇 년 전에 독립한 호주와 같은 영연방국가는 영국에서 임명한 총독이 부임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쭤보는 것입니다.”

“아! 북해도 독립문제가 오늘 나왔기 때문에 총독문제까지는 아직 과인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친왕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부탁했다.

“일본과의 협상이 무난히 끝나 북해도가 독립되어 우리 제국의 연방이 된다면 과인을 북해도 총독으로 보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부탁에 박충식은 내심 곤혹스러웠으나 의친왕이 그간 신군에게 보인 절대적인 믿음과 이토록 빨리 대한제국을 안정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그를 생각하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일본과 협상이 남아 있고 북해도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독립의사도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확답은 하지 못하겠지만 만일 북해도가 독립이 되어 우리 제국의 연방이 된다면 전하를 총독으로 부임할 수 있도록 적극 추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아닙니다. 아직은 인사를 받을 단계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인을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사를 받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의친왕의 안색에서 약간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왔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박충식의 물음에 의친왕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의친왕의 행동에 무언가 있었지만 박충식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예,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이후 한동안 신축중인 궁전을 둘러보다 헤어졌다. 박충식이 의친왕과 헤어지고 나서 총리부로 돌아오는 길에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이 실장. 의친왕께서 요즘 무슨 문제가 있는가?”

“아마도 황태제 책봉문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황태제 책봉?”

“지금까지는 실질적인 국모역할을 하고 계시는 엄 황귀비(皇貴妃)께서 자신의 친자인 영친왕을 황태제로 적극 밀고 있었고 황제께서도 이에 적극 동조했었습니다. 더구나 노골적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의친왕 전하를 껄끄럽게 생각하던 일본이 영친왕 전하를 적극 밀고 있어서 후계구도가 거의 굳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도래하고 의친왕 전하의 대활약이 이어지면서 황제의 의중에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흠!~ 그래서 귀비께서 의친왕을 강하게 경계하는 모양이로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문제를 갖고 파당을 짓는 무리는 없는가?”

“파당을 짓는 자들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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