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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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의 보고에 박충식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까지 끄덕이며 흡족해했다.

 “하긴 대부분의 친일황족들과 권문세족들이 지난 번 친일파 색출 때 거의 퇴출 되어서 파당을 지으려고 해도 아직은 세를 규합할 수가 없겠지. 그나저나 큰일이로군. 황태제 책봉은 황실문제라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데 말이야.”

“본래는 금년이 헤이그밀사사건으로 황제가 강제퇴위를 하고 황태자가 즉위하면서 영친왕이 황태자로 등극하게 되게 되어있었습니다만 우리들이 오면서 황태자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황제께서도 아직은 건강을 염려할 때가 아니라서 퇴위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 귀비께서 더욱 노골적으로 의친왕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친왕의 존재가 더욱 부각될 테니 영친왕이 걱정이 되시겠지.”

“그렇게 때문에 호탕한성격의 의친왕 전하께서 후계문제로 쓸데없는 풍파를 겪기 싫어서 북해도로 나가셨으면 하는 것 같습니다.”

박충식은 의친왕의 속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대한제국은 입헌군주국으로 가야하는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친왕께서 황실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분란을 스스로 조장 하고 싶은 생각은 단연코 하지 않으려는 생각인가 보군.”

“그런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총독으로 나가서 직접적으로 나라를 다스려 보고 싶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런 생각도 충분히 할 수가 있겠지. 어쨌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라도 북해도문제를 잘 해결해야하겠구나.”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실장은 방금 전 의친왕 전하의 의중을 외상과 육군상에게 반드시 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의친왕은 박충식과 헤어지고 난 후 자신의 궁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면서 조금 전의 일로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내 개인문제로 대공께 괜한 소리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의친왕은 박충식에게 북해도 총독에 대한 부탁을 한 것에 대해 내심 착잡했으나 기회가 있으면 후계문제로 껄끄러운 한성을 떠나고 싶었다.

‘후~ 그렇더라도 후계문제로 귀비마마의 견제를 받으며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것 보다는 외국으로 나가있는 것이 좋지 않겠나. 더구나 연방의 총독이면 직접 정사를 살필 수도 있으니 정말 나가 보고 싶구나.’

의친왕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영국국왕이 임명하는 영연방 총독은 명예직으로 알고 있으나 1975년 호주에서 선출된 총리를 직권으로 해임할 정도로 실제로는 총리임명권과 의회 해산권을 가진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자리였다.

이러한 총독의 자리였기에 이현호 비서실장의 추측대로 의친왕은 북해도가 독립되면 독립국의 수상과 함께 북해도를 직접 경영하고 싶어 총독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속내를 가진 의친왕의 처지와는 달리 의친왕의 전용차는 몇 년 전과는 몰라볼 정도로 변한 한성의 중심가를 유유히 가로질러 사동궁(寺洞宮)으로 향했다.

광무(光武)10년(1907년) 11월5일 드디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 일본의 항복은 히로시마의 대본영회의실에서 메이지일왕의 항복칙서(降伏勅書)를 일본정부를 대표한 이토 히로부미가 정확히 12시 정각 내외신기자들에게 낭독했다.

“········이에 대일본제국은 대한제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다. 메이지 40년 11월 5일 대일본제국 천황 무쓰히토(睦仁).”

펑! 펑! 펑! 펑!·······

백여 명이 훨씬 넘는 내외신 기자들이 이토 히로부미의 항서낭독을 마치자 마그네슘이 주성분인 섬광플래시를 터트리면서 내외신기자실을 온통 마그네슘 가루천지로 만들었다.

1분여의 짤막한 항서를 읽는 동안 이토 히로부미는 몇 변인가 목이 메어 말을 못했으며 낭독을 무사히 끝낸 후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단 한 건도 받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발표장을 빠져나갔다.

발표장을 빠져 나온 이토 히로부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피를 토하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한숨을 크게 내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발표장에 동행했던 고무라 주타로 외상이 옆에서 위로했다.

고무라 외상은 대한제국과의 항복협상에서 전권대표인 이토 히로부미를 보좌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각하. 잠시 가셔서 휴식을 취하시지요.”

이토 히로부미는 고무라 외상의 인사와 안내를 받으며 발표장 뒤에 있는 건물의 사물실로 들어가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허탈한 심정을 추스른 이토 히로부미가 고무라 외상에게 질문했다. 

“천황폐하께서는 도쿄로 이어를 하셨는가?”

“예, 아침 일찍 모후를 모시고 내외분께서 황태자전하 내외분과 함께 기차를 이용해 출발하셨습니다.”

“도쿄에 있는 왕궁이 전소되었는데 임시어소(御所)는 어디로 정하셨는가?”

“다행히 아리스가와노미야 친왕(有栖川宮 親王)전하의 사저가 폭격피해를 입지 않아 조선과 상의하여 임시어소를 그리로 정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외상의 대답에 메이지일왕의 거처까지 대한제국의 승인을 받아야한다는 말을 듣고는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겉으로 그러한 일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대한제국과 일본은 11월에 접어들자 양국은 이미 비선을 통해 항복에 대한 협의에 들어가 있었다.

조금 전에 이토 히로부미가 한 항복발표도 대한제국에게 막대한 국익을 넘겨주면서 일왕이 직접 발표장에 나서지 않도록 협상한 결과물이었다. 

“도쿄에 제대로 남아있는 건물이 없던데  그나마 다행이로군. 조선과의 항복조인식은 언제라고 했지?”

“6일 후인 11월 11일 동경 만에 정박해 있는 조선의 함대함상입니다.”

“함대해상에서 조인식을 한다고?”

“그렇습니다.”

“참담한 일이로군.”

적의 함대에 올라가 항서에 날인을 한다는 생각에 울컥한 이토 히로부미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이토가 다시 질문을 했다.

“야마가타 원수는 어디에 계시는가?”

“육군참모부 제3부장인 아베 소장에게 군령에 대한 전권을 넘기시고는 지금 사저에서 두문불출한 채 칩거 중에 계십니다.”

“후!~ 앞으로 군의 무장해제 등 할 일이 태산인데 큰일이로군.” 

답답해하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고무라 외상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정말 이제부터 우리 대일본제국은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것입니까?”

“자네도 나와 같이 이번 협상의 대표로 있으면서 그것을 나에게 묻는가. 조선이 자위대라고 하는 영토방어를 위한 부대는 유지시킨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이토의 반응이 조금 격양되자 고무라 외상이 바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답답해서 그만 소관이 결례를 범했습니다.” 

“자네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본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야.”

“어쨌든 육군은 그나마 어떤 형태로든 병력을 보유하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렇기는 하지. 문제는 육군이 아니라 해군이야. 해양국가인 우리 일본에게 소규모 연안함정 밖에는 보유하지 못하게 하다니 이건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어.”

“그래도 상선의 경우는 톤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토 히로부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후!~ 이제부터 시작인데 조선이 앞으로 또 무엇을 요구할지 앞이 캄캄하기만 해.”

“배상금 요구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것도 걱정입니다.”

“배상금도 그렇지만 지금 조선군이 강점한 북해도와 오키나와가 문제일 것 같아.”

“저도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토 히로부미는 가슴이 다시 답답해왔다.

“후!~~ 우리 대일본제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폐하의 칙명만 아니라면 당장 할복이라도 하고 싶군.”

“하!~~······”

고무라 외상도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심정이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일본의 항복보고는 발표장에 있던 기자들과 중정요원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본국으로 전달되었다.

한성을 비롯한 부산, 대구, 평양, 봉천, 요동 등 전국의 주요도시에는 일본의 항복을 알리는 신문호외가 무료로 뿌려졌다. 이 무렵 대한제국은 전국에 유선망이 깔려 있어서 관공서의 확성기를 통해 정부주요발표와 새로운 소식 등이 바로바로 전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소식은 확성기를 통해 대한제국에 곧바로 알려졌고 전 국토는 당연히 발칵 뒤집혀졌다.

그동안 시시각각으로 확성기를 통해 계속된 승전소색을 듣고 있었던 국민들은 드디어 11월 5일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만세! 만세! 대한제국 만세.”

“황제폐하 만세!!!”

“국군만세.”

“신군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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