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회: 6권-26화 -->
궁녀로 지칭되는 여관(女官)들 또한 인원이 대폭 축소되어 600여 명 가까이 되었던 여관들은 200명 정도로 축소시켰으며 결혼을 금지했던 악습도 폐지시켰다. 그리고 남은 인원을 모두 출궁시켜야 했으나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본래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하는 신분의 여관들이었으나 혼인금지악습이 폐지되자 결혼을 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황제의 여인이란 꼬리표 때문에 함부로 아무하고나 결혼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이는 남게 된 여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황제도 여관들의 결혼금지조항이 악법이란 것은 알고 있었기에 폐지하는 데는 동의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여관들을 아무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황제가 생각해낸 절묘한 방안이 바로 여관들과 신군과의 혼인이었다. 황제에게 신군은 본래 자신이 다스리던 신민이 아니었기에 궁을 나가면 어차피 결혼을 할 여관들을 신군과 맺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황제의 이러한 방안은 여관들도 대대적으로 호응을 했다. 그녀들도 황궁을 나가는 것은 좋아했으나 황궁의 울타리에 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 고심하고 있을 때 신군과의 중매는 그야말로 환호성을 지를 구명줄이었다.
신군들 또한 여관들과의 중매소식에 대환영했고 그녀들과 선을 보기 위해 예심을 벌일 정도였다.
이것을 안 황제는 아예 특명을 내려 황실에 신군의 혼사를 위한 특별 부서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중매를 진행시켰다. 이러한 황제의 전폭적인 관심은 차준혁과 박충식 등 본인이 결혼을 원하지 않은 사람을 제외한 신군 수천 여명이 여관들은 물론 양가집 규수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로 인해 지금 경운궁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여관들 대부분이 결혼을 한 유부녀였다.
황제일행이 대한문을 나서자 황제전용어차를 비롯한 이십여 대의 승용차가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었다.
광화문 앞 주작대로는 전날부터 승전기념식을 보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와!~~~~”·····
“황제폐하시다!!!”
“만세!!~~~”
황제일행이 탄 이십여 대의 차가 시종무관부의 경호를 받으며 경운궁 대한문 앞을 출발하자 모여있던 환영인파는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주작대로에는 황제가 지나갈 수 있도록 군경을 동원해 이미 통행로가 만들어져 있었고 황제일행이 그 길을 지나가자 하늘에 떠 있던 웅비비행선에서 종이로 만든 꽃가루가 뿌려지면서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이십여 대의 승용차가 지나가면서 통행로는 저절로 인파로 메워졌고 황제어차일행이 광화문 앞 다리를 건너자 통행로는 이내 사람들로 뒤덮였다.
황제가 환영식장에 도착해 어차에서 내리자 장악원(掌樂院)의 황제찬가가 우렁차게 연주되었다.
황제는 국정홍보처장 장주현의 안내를 받아 미리 설치되어 있던 대형가설무대로 올라갔다.
무대 위에는 이미 황실인사들과 20명의 도지사, 그리고 전국각지에서 초청된 지역인사들과 각국 공사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은 이때 전국의 행정구역이 기존의 8도와 제주도 등의 9개도와 만주지역의 9개도와 연해도 등 총 19개도와 한성특별시 그리고 아직 인구가 많지 않아 1군단이 군정중인 내몽골지역 등 총 21개 지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황제는 먼저 전면에 있던 외국공사들과 악수를 나누었고 이어서 황실인사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뒷줄에 도열해 있는 충청도도지사 유인석(柳麟錫 1842)과 황해도도지사 김구(金九 1876), 그리고 연해도도지사 최재형 등 20명이 도지사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다음으로 친위군단의 이준성 군단장을 비롯한 군의 주요지휘관들과 전국에서 특별히 초청된 인사들과도 황제는 빠짐없이 악수를 나누었다.
황제와 가설무대에 대기하고 있던 인사들과 악수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에 서자 이번에는 황제에게 바치는 예포가 터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예포가 끝날 때까지 서있던 황제가 예포가 끝나면서 자리에 앉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착석했다.
이어서 사회자로 나선 장주현의 진행으로 국민의례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대한제국의 승전기념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입니다.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에 있는 태극기를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작대로 중앙에 게양되어 있는 초대형태극기를 바라봤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황해도지사 김구는 국기예절로 오른 손을 들어 가슴에 대면서 목이 메어왔다.
‘아! 정말로 고대하던 일이 이뤄졌구나. 우리 제국이 드디어 간악한 일본을 무조건 항복시켰어.’
김구는 지나온 일들이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되었다. 김구는 을미사변직후 명성황후시해범을 죽이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직전 황제의 특명으로 살아났었다. 그 후 탈옥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학교 등을 세워 주민들을 개화시키려고 동분서주하다 우국지사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몇 달간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한반도 수복 후 반민특위 조사관으로 친일파들 처단에 앞장서고는 고향인 해주시장으로 근무하였었다. 그 후 만주가 수복되면서 전국의 도지사를 비롯해 시장군수들이 대거 만주로 옮겨가면서 31살에 최연소 황해도도지사가 된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고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이제 나라가 힘이 없어 억울하게 죽어가고 고생하는 국민들은 두 번 다시없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 대한제국신민들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 기죽지 않고 떳떳하게 활보할 수 있도록 대한제국을 최고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내 평생을 바칠 것이다.’
김구가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하는 사이 국민의례가 끝이 나자 박충식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 대한제국은 드디어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와!~~~”
“만세!~~~~”
박충식의 말이 끝나자 군중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내며 만세를 불렀다. 장주현은 잠시 군중들이 환호를 하도록 그대로 두었다 환호가 잦아들자 다시 진행했다.
“이어서 황제폐하께서 친히 승전에 대한 치사를 해주시겠습니다. 식장에 계신 모든 국민여러분들께서는 잠시 자세를 가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장주현의 말이 떨어지자 말자 군중들이 서둘러 옷매무새를 살폈다. 수십만이 넘은 군중들이 황제에게 예의를 표하기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잠시 시간을 준 장주현이 다시 진행을 했다.
“폐하께서 단상으로 거둥하십니다. 모두 예를 표시해 주십시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고 무대에 있던 사람들은 앉은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황제가 단상에 서자 장주현이 소리쳤다.
“모두 몸을 바로하십시오.”
이무렵 공식석상에서 황제에 대한 예법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시하는 것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예법이 바뀌었다고 신민들이 황제를 존경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이전의 경외의 대상에서 이제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황제와 황실이 되고 있었다.
“짐은 그동안 나라가 힘이 없어 신민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도다.·····”
이렇게 시작된 황제의 치사는 용감한 국군이 고생하고 노력하여 드디어 간악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받게 되었으니 장하다고 군을 칭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어서 만세삼창이 있겠습니다. 만세삼창은 전국에서 선발되신 지역인사 분들께서 선창을 하겠으니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주현의 지시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된 지역인사들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모두 동시에 합창했다.
“대한제국 만세!”
그러자 수십만 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
“대한제국 만세!!!!!”
“황제폐하 만세!” “황제폐하 만세!!!!!”
“대한국민 만만세!” “대한국민 만만세!!!!!”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