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회: 6권-27화 -->
하늘이 들썩일 정도로 우렁찬 만세삼창이 끝이 나자 모여든 군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고 하늘에서는 또 다시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징!!~~~챙!~ 챙챙~ 챙! 챙! 챙!! 삘릴리~~
환호소리가 끝나자 전국에서 초청된 농악패들이 징소리를 시작으로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농악한마당은 주작대로의 곳곳에서 벌어졌으며 이때부터 한성곳곳에서도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가설무대에서 흥겹게 노는 국민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잠시 바라보던 황제는 장주현의 안내로 무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경복궁으로 이동했다.
황제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처음으로 찾는 경복궁을 들어서며 만감이 교차되었다.
“광화문의 준공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현장소장 박기영 상좌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금년 말이면 개축을 모두 끝낼 수 있습니다.”
“고생들이 많다.”
이렇게 치하한 황제는 광화문을 들어가 좌측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감탄사가 바로 터졌다.
“허!~ 대단하구나.”
신축하고 있는 궁전은 본래 사방을 천으로 덮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었으나 이날 황제를 위해 특별히 동쪽 면의 일부를 열어 놓았다.
감탄을 하는 황제에게 박기영이 설명을 했다.
“신궁(新宮)의 외부 공사는 이미 마쳤고 지금은 내부공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의친왕으로부터 종종 소식을 듣고 있었네. 내년 말이면 완공을 볼 수 있다고?”
황제가 빨리 준공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의중을 은근히 내비치자 박기영이 죄인이 된 듯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외부공사보다 내부공사에 시간이 훨씬 더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내년 말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박기영이 미안해하자 황제가 펄쩍 뛰었다.
“공기가 아무리 많이 걸려도 짐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황궁을 보고 싶으니 염려하지 말라.”
“예, 폐하.”
옆에 있던 박충식이 거들었다.
“그래도 자네가 힘쓴 덕분에 오늘 신궁의 연회장에서 승전축하연회를 개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박 소장 고생 많이 했어.”
“감사합니다. 전하.”
황제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박기영이 서둘러 안내를 했다.
“이야!~~~”
연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선 황제는 가장 먼저 감탄사를 터트렸다. 박충식도 처음본 연회장의 넓이와 화려함에 저절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대단하구나.”
이러한 감탄사는 두 사람뿐이 아니라 외국공사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한 번은 터져 나왔다.
영국공사 조던은 크게 감탄하면서 옆에 있는 잘데른 독일 공사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본관은 대한제국에서 이렇게 넓은 연회장을 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럽의 궁전에도 이정도 규모의 연회장은 별로 없는데 대단합니다. 동양에서 이렇게 큰 실내연회장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내부인테리어가 아주 기품이 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저 정면에 꼬리를 길게 내린 것은 봉황인 것은 알겠는데 반대편 벽면에 황금으로 새겨진 발이 세 개 달린 새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바라보는 벽면에는 원형인 해 뚫음 무늬에 삼족오가 형상화 되어 있는 벽화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저 새는 처음 봅니다. 발이 세 개인 것을 보니 아마 봉황같이 동양의 신화(神話)속에 등장하는 새인가 본데 참으로 멋있어 보입니다.”
잘데른 공사의 추측에 조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 있던 차준혁이 웃으면서 유창하게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다.
“하하! 잘 보셨습니다. 저 새는 우리 대한제국의 신화에 나오는 삼족오라는 새입니다. 저 삼족오는 태양 속에 살고 있으면서 세상에 해가되는 악룡(惡龍)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악룡을 잡아먹는다고요?”
“그렇습니다.”
조던은 문득 동양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용이란 것을 기억해냈다.
‘저 새가 악룡을 잡아먹는다니, 그럼 저 삼족오가 일본의 천왕을 잡아먹었다는 말이 되나?’
그렇게 생각하며 새삼 벽화를 유심히 바라봤다.
황제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온 벽면은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 화려했고 천장에는 크고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걸려있었으며 벽면 곳곳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밝은 등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 정면에는 봉황 두 마리가 좌우로 길게 꼬리를 내린 벽화가 있었고 그 중앙에 황실문양인 이화문양이 금으로 화려하게 입혀져 있었다.
맞은편 벽면에는 외국공사들이 감탄하던 삼족오가 금박으로 벽화가 된 것을 보고는 황제가 연신 감탄했다.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을 하던 황제가 문득 박충식에게 물어왔다.
“대공.”
“예, 폐하.”
“이 궁전의 이름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맞소?”
“예,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짐이 이름을 지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이 궁의 이름을 금오궁(金烏宮)으로 정합시다.”
의친왕이 바로 찬성을 했다.
“아바마마 참으로 좋은 이름이옵니다. 금오(金烏)는 곧 삼족오의 별칭이니 우리 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신군의 위업도 알릴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찬성의 말이 나왔다.
황제가 어떠냐는 표정으로 박충식을 바라보자 그도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신도 폐하께서 정한 이름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이제 이 궁의 이름은 이제부터 금오궁이오.”
“예, 폐하.”
“자 다들 앉읍시다.”
황제가 헤드테이블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앉자 좌우로 박충식과 황태자가 앉고 다시 그 옆에 황실을 대표하는 의친왕과 주한외교사절을 대표하는 프랑스공사 블랑시가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제가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자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황궁여관들의 안내를 받아 자신들의 지정석을 찾아 앉느라 잠시 실내가 소란스러웠다.
이윽고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기다리고 있던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간수송선에서 주방을 담당하던 서정현은 새로 지어지는 금오궁의 연회를 담당하기 위해 황궁에 특채되었다.
수라간의 여관들은 궁에서 항상 많은 연회를 접하고 있어서 이정도의 인원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산더미 같이 음식을 쌓아 놓고 그것을 덜어 먹는 것이 아니라 양식같이 순서대로 음식을 갖춰서 내는 방식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수라간여관들은 물론 대령숙수(待令熟手궁중의 남자 요리사)들도 손에 익지 않은 방식이었지만 궁중에서 수많은 연회를 해 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서정현의 지휘로 몇 번의 예행연습을 거치면서 능숙하게 숙달되었다.
영국공사 조던은 작은 그릇에 개인별로 음식이 나오고 중간에는 신선로와 찌개 종류가 숯불에 올려 있고 또 덜어서 먹을 수 있게 따로 별도의 국자까지 마련된 상차림을 보고 감탄했다.
“이거 대단합니다. 본관이 대한제국에 와서 이런 방식의 상차림은 처음 봅니다. 이건 마치 서양의 코스요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독일공사 잘데른도 감탄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한국음식을 서양음식 같이 개별적으로 음식을 내오다니 발상이 아주 독특합니다.”
이탈리아공사 모나코도 정갈하게 나오는 음식과 자신들이 젓가락의 사용을 잘 못하는 것을 알고 미리 포크까지 미리 준비한 세심한 배려를 보고서 칭찬을 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누가 생각했는지 한식과 양식을 조화시킨 발상의 전환이 아주 좋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우리를 위해 포크까지 준비해 놓은 세심한 배려와 술까지도 미리 세팅이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연회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입니다.”
이들의 테이블 위에는 와인은 물론 전통주와 독주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와인 잔은 물론이고 독주를 마실 수 있는 술잔도 별도로 놓여있었다.
음식이 모드 차려지자 여관들이 먼저 테이블위에 놓인 전통주를 들고는 잔에 조금씩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