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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있다고 남의 것을 빼앗아 놓는다고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돌려줄 것은 돌려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범진이 이렇게 나오자 이토는 강하게 반대를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쓰난 제도만은 보존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사쓰난 제도도 일본이 멸망시킨 유구국의 영토 아닙니까?”
이범진이 이렇게 나오자 이토 히로부미의 안색이 더 할 수없이 창백해졌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할양을 요구한 지역은 바로 일본의 규슈남단에서부터 시작되어 대만사이에 길게 배열되어 있는 남서제도(南西諸島)였다. 이 남서제도는 오스미(大隅)·도카라(吐喝喇)·아마미제도(奄美諸島)를 합친 사쓰난 제도(薩南諸島)와 오키나와(沖繩)·사키시마(先島)·센카쿠(尖閣)를 합친 류큐 제도(琉球諸島)로 나뉜다.
태평양을 가로지르고 길게 배열된 이 제도는 대한제국이 해양영토를 얻기 위한 첫 걸음이라 절대 양보할 사안이 아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몇 차례 더 사정을 했으나 이범진의 태도가 워낙 확고 하자 어쩔 수없이 말을 돌렸다.
“사쓰난 이 어렵다면 이 오키 제도와 대마도만이라도 할양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
이범진의 안색은 더욱 냉정해졌다.
“대마도는 본래 우리 제국과 일본 사이에서 양속(兩屬)관계를 유지하다 임진왜란이후부터 일본에 귀속된 섬입니다. 더구나 이 대마도는 그동안 우리 제국에 막대한 은혜를 입고도 배신을 한 땅이니 절대 불가합니다.”
“그렇다면 오키 제도이라도 양보해 주십시오.”
“이토 후작께서는 지난 1905년 1월 시마네 현이 엄연히 대한제국고유영토인 독도를 슬며시 일본영토로 편입한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이토 히로부미는 너무도 놀라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그런 이토를 보고 이범진이 준엄하게 꾸짖었다.
“비록 시네마 현이라는 지방정부를 앞세웠다고는 하나 이는 일본중앙정부가 작당을 하여 우리 대한제국고유영토를 강점하려고 획책한 사실이란 것을 우리 대한제국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닙니까?”
“아!~”
이토 히로부미는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독도를 강제로 편입시킨 것은 일본정부에서도 자신을 비롯한 몇 명만이 아는 기밀사항이었는데 누구의 밀고인지는 모르지만 대한제국에게 그것이 들통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고무라 외상은 이토 히로부미가 신음소리를 내자 걱정이 되었다.
“각하, 피곤하시면 잠시 휴회를 하고 잠시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네. 잠시 어지러웠을 뿐이네.”
이범진은 이토 히로부미가 곤혹스러워하면 할수록 통쾌해서 대소라도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어지러울 것이다. 네 놈이 우리 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갖은 작당을 벌인 것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 두고 보자. 이놈.’
속으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웃으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었지만 이범진의 얼굴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현기증에 잠시 말을 하지 못하던 이토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귀국의 의향대로 하겠습니다.”
영토 협상에는 대만의 청국반환이 당연히 들어있었고 한국과 청국관계를 알고 있던 일본은 반환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재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영토문제도 결국 대한제국의 의향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영토문제까지 마무리를 짓고는 잠시 정회를 한 뒤 회의가 다시 속개되었다.
“다음으로 전쟁배상금입니다.”
잠시 휴식을 한 덕분인지 정신이 맑아진 이토 히로부미가 물어왔다.
“귀국은 전쟁배상금을 얼마나 원합니까?”
“비밀협상에서 거론한 대로 본국은 배상금으로 200억 원을 원합니다.”
“뭐요? 200억 원이라고요??”
이 때 일본의 1년 예산이 대략 2억 원 정도였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200억 원이란 말을 직접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이범진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렇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일본도 전쟁배상금을 줄 의향은 있으나 200억 원이면 너무나 많은 금액입니다.”
“귀국이 1894년 청국과의 전쟁에서 무려 4억이 넘는 배상을 받았고 이번에 러시아로부터도 5십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받은 것을 알고 있는데 이정도 금액이 뭐가 많다는 말입니까? 이 배상금은 귀국이 수십 년간 우리 대한제국에게서 착취한 금액은 물론이고 수백 만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대가입니다.”
“우리 일본이 귀국의 인명을 수백만 명이나 살상했다니요. 천부당만부당입니다.”
“지난 동학혁명 때 우금치에서 이십만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고 그동안 수많은 의병을 학살 한 일과 이전에 있었던 임진년의 왜란 때는 수백만의 양민을 학살 한 것을 지금 발뺌하는 겁니까? 더구나 낭인들을 고용해 본국의 국모까지 시해한 것을 정녕 잊었단 말입니까?”
“아~ 아~”
탄식을 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이범진이 비수를 꽂았다.
“귀국은 자국민의 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대한제국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절대 잊지 않습니다.”
“······”
이범진은 한반도에 있는 일본인과 포로들 그리고 북해도와 오키나와에 있는 자국민들의 안위에 대해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는 이토 히로부미를 은근히 질책을 했지만 그는 그들이 전혀 안중에 없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본래 패전한 일본을 그대로 점령하면 이런 협상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아직 대한제국의 완전하지 않은 국력으로는 일본의 지배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대한제국은 일본을 독립국가로 그대로 두는 대신에 명치유신이후 수십 년간 일궈놓은 자산들을 최대한 빼앗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천황제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한제국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일본에서 일왕이 없다면 분명 나라가 사분오열 될 것이란 것을 일본의 지도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범진의 강한 질책성 발언에 잠시 답변할 말을 찾지 하지 못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00억 원은 정말 본국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거금입니다. 조정을 해주십시오.”
이범진이 선심을 쓰듯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아!~ 본국도 이 금액을 전부 현금으로 배상받을 생각은 없고 현물로도 받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귀국의 기업들 중 미쓰비시와 같이 군수물자를 생산했던 전범기업들의 공작기계와 야하타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철강제품의 7할을 전쟁배상금으로 상계처리 하려고 합니다.”
“예! 본국이 생산하는 철강의 7할을 가져간다는 말입니까?”
“무상으로 가져간다는 것이 아니라 배상금으로 상계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더라고 하더라도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본국도 철강이 필수요건입니다.”
“야하타제철소의 제강생산능력으로 봐서는 군함과 군사무기 등을 제작하지 않는다면 힘들겠지만 나머지 3할의 물량으로도 일본은 충분히 경제재건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마치 자신들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협상을 하는 이범진을 생각 같아서는 당장 요절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약자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이토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미쓰비시 같은 회사는 사기업이라 우리 일본정부에서도 그들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범진이 은근히 협박했다.
“이보시오. 이토 후작.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이 이 협상이 잘 끝난다면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나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벌어온 기업을 전범(戰犯)이나 전범기업(戰犯企業)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비협조로 나온다면 가장 먼저 전쟁범죄자들을 모조리 채포해서 법정최고형으로 처리할 것입니다. 이는 누구 한 명도 예외 없이 처리될 것이니 후작께서는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범진의 협박성 발언에 순간적으로 등줄기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만일 이범진의 말대로 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메이지일왕까지도 전범이 될 수 있었고 또한 법정최고형인 사형까지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