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회: 6권-30화 #열도분할(列島分割) -->
이범진의 협박성 발언에 곤혹스러워하는 이토를 대신해 고무라 외상이 나섰다.
“이범진 외상각하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우리는 협상을 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협상을 깨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범진이 바로 사과했다.
“아!~ 본관의 말이 지나쳤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말은 본관이 개인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대한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지금 본국에는 일본이 우리에게 한 것과 같이 이 기회에 아예 일본은 식민지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본국의 황제폐하와 대공 전하께서 일본에 대해 크나큰 배려를 하셔서 이렇게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고무라 외상은 항복을 받은 대한제국이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는 까닭이 궁금했었다. 그런 그가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열도를 아예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이범진의 말을 듣자 몸을 바짝 당기며 다시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귀국의 황상폐하와 대공께서 본국을 배려해 주셔서 우리 일본제국을 강제점령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 대한제국군부에서는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강성이라 이 협상이 깨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우리 대한제국의 제안을 귀국이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 말을 듣자 고무라 외상은 이범진의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공성기 제독을 바라봤다.
공성기 제독은 내심 협상이 잘 되고 있는 것에 만족해했으나 겉으로는 마치 뭔가 불만이 있는 사람처럼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협상이 깨지기만 하면 바로 몸을 일으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고무라는 그 모습을 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지만 배상금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배상금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 조정을 해 주십시오. 그 많은 배상금을 갚으려면 우리 일본제국은 나라를 재건하기는커녕 빚더미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습니다.”
고무라가 이렇게까지 사정을 하자 이범진이 잠시 고심하는 척 했다. 그러자 고무라 외상은 물론 이토 히로부미까지 가세해서 거의 통사정을 했다.
이범진이 슬며시 그들의 말에 동조하는 척 했다.
“알겠습니다. 귀국의 사정이 그러하다면 본관이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전쟁배상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귀국의 군사무기제작에 관여했던 기술자들과 그 시설물들을 모두 우리에게 넘겨주십시오. 본래는 이것도 강제로 압수를 해도 되지만 귀국의 사정이 그러하다니 배상금의 대안으로 제시를 하는 것입니다.”
배상금이 절반으로 줄여주겠다는 말에 이토 히로부미가 급격한 관심을 보였다.
“기술자들은 어떻게 선정합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범진은 가져온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먼저 육군무기개발부 책임자인 난부 키지로(南部 麒次郎, 1889~1924)와 해군군함 설계자인 후지모토 키쿠오와 히라가 유즈루, 그리고······”
이범진은 준비한 서류에서 일본기술자들의 이름이 속속 거명되기 시작했고 이어서 일본이 그동안 온 국력을 기울여 건설한 각종 군수시설과 군함제조시설 등이 줄줄이 열거하기 시작했다. 이범진이 열거한 것들은 육군의 군사무기 제작설비와 일본해군의 전함건조경력자들과 그 장비들이었다.
“·······이상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열거된 기술자들과 시설물들을 들으며 대한제국의 철저한 준비에 너무도 놀랐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이제 막 꽃을 피우기시작한 전함건조기술과 각종 군사기술 등이 모두 대한제국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배상금을 상계하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넘겨주기로 결심을 굳혔다. 100억이라면 그 전부를 상쇄하고도 남을 엄청난 금액이었고 군사기술은 다시 습득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좋습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현명한 결정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일본열도의 해안방어를 위해 일본의 요청으로 요코스카에 대한제국 제7함대를 상주시키기로 했다.
다음으로 임진왜란당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도공들과 장인들의 후예를 확인해 그들이 원할 경우 전부 본국으로 송환시키기로 했다. 거기다 왜란의 아픈 역사인 교토에 있는 이총(耳塚)도 정중한 절차를 거쳐 개장한 후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했으며 일본전역에 있는 대한제국문화재의 환수를 위해 양국이 별도기구를 구성하기로도 합의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세한 조항까지 조율을 하느라 항복협상은 이후 사흘이나 더 열렸다.
그사이 정창원의 대한제국관련보물들은 모조리 본국으로 보내졌고 일본전역에서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고 압수한 무기들도 모조리 본국으로 보내졌다.
#열도분할(列島分割)
“차렷.”
“어깨위에 총.”
“발사.”
탕! 탕! 탕! 탕!······
동작동에 있는 국립묘지에서는 웅비1호의 산화한 3명의 영웅들 유골봉안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동경의 일본왕궁에서 있었던 영웅들의 유해수색은 일주일동안에 걸쳐 철저하게 진행되었고 그 덕분에 다행히 얼마간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수습된 유해는 웅비비행선에 의해 한성으로 이송되었고 이날 유해봉안식이 거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유해를 수습하지 못하고 산화한 경우는 없었기에 세 사람의 유해송환은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정부에서는 산화한 세 사람에게 최고무공훈장 수여는 물론 1계급 특진과 함께 전쟁영웅칭호까지 부여했다.
유골봉안식에는 국방대신 김종석과 공군대신 최경석까지 참석해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봉안식을 마치고 공군대신 최경석이 상주를 자처한 홍선영 대위를 위로했다.
“강 소좌는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갔을 테니 너무 상심해 말게.”
홍선영이 쓸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좋은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래, 몸은 어떤가?”
최경석의 질문을 받은 홍선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아랫배로 갔고 그녀의 배는 이제 제법 불러있었다.
“염려해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6개월입니다.”
상복을 입고 있는 홍선영을 최경석은 마치 큰 오라버니처럼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조심해야해. 강 소좌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준 최고의 선물이잖은가.”
“예, 고맙습니다.”
그녀의 임신사실은 일본이 항복을 하고 난 뒤에 그녀가 지상근무를 자청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당연히 발칵 뒤집혀졌고 부모가 신군출신인 최초의 임신이라 이 사실은 황제에게까지 보고되었다.
이후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받았다. 최경석은 임신한 그녀에게 출산 때까지 특별휴가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마다하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대우와 정식근무를 자청했고 최경석도 어쩔 수없이 그녀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했다.
이렇게 고집이 센 그녀도 단 하나는 거절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황제가 보내 준 상궁이었다. 나이 지긋한 이 상궁은 궁에서 임산부를 보살피는 일을 전담하던 상궁으로 고집 센 홍선영도 이일만큼을 고집을 꺾고 받아들였다.
유복자를 임신하고 있는 홍선영은 의지할 곳 없던 혈혈단신이라서 어쩌면 그녀가 더 필요로 했는지도 몰랐다.
“아이의 이름은 생각해 둔 것이 있어?”
최경석의 질문에 홍선영의 얼굴이 발개졌다.
“예, 강 소령과 일전에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그래? 뭐라고 지었는데?”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대한이라고 이름 짓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선형이라고 짓자고 했었습니다.”
“대한이 선형이.”
최경석은 두 개의 이름을 번갈아 불러보다 홍선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왕이면 사내를 낳아. 강대한 이름 참 좋은데?”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하하! 하긴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냐. 모두가 강운형과 홍선영의 아이인 것을.”
최경석은 그렇게 웃으며 하늘을 보면서 강운형의 영혼을 하늘로 편안히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