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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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귀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이범진의 말의 뜻을 몰라 잘데른 공사가 오히려 이범진에게 되물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어떻다니요?”

“본관이 알기로 독일국민들이 그동안 미국으로 이주를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미국과 귀국이 군사동맹이나 그와 비슷한 협약을 맺은 것이 있느냐 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사동맹을 맺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범진은 영국공사 조던에게 한 것처럼 한·미·일 삼국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 설명이 끝나자마자 잘데른 공사가 딱 잘랐다.

“우리 독일제국은 미합중국의 편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독일제국이 동방정책을 펴는데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이 영국이고 그 영국과 가장 가까운 맹방이 미국입니다. 그러니 절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사께서 귀국의 사정을 정확한 말씀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군사동맹을 맺는 당사국에게 본국이 분명한 의사를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상해주재 독일영사 바이페르트와 차준혁부터 이어진 독일과 대한제국 양국 간의 인연은 이상하게도 무슨 일이든 큰 걸림돌 없이 쉽게 풀려나갔다.

잘데른 공사가 독일인답게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하자 이날의 만남도 이범진의 의도대로 아주 화기애애하게 끝을 맺을 수가 있었다. 대한제국은 이렇게 주변국과 미국관계를 하나하나씩 확인하면서 은밀히 정리해 들어가고 있었다.

11월과 12월은 항복을 받은 대한제국이나 항복을 한 일본 모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가장먼저 한 것은 당연히 일본군의 무장해제였다.

일본군의 최후병력인 10만여 명은 총 6개 사단으로 편성되어 대본영이 있는 히로시마에 2개 사단 그리고 동경에 1개 사단이 주둔해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야하타(八幡) 제철소에 주둔해 있었다. 

31여단장 박승환(1869) 대좌는 야하타 제철소에 전라·충청 향토여단과 함께 상륙을 한 후 일본군 3개 사단 중 자신의 여단이 맡은 1개 사단의 무장해제를 진두지휘했다.

“차렷.”

31여단이 담당하고 있는 일본사단사령부는 야하타 제철소 항구 바로 옆에 있었다.

31여단이 하선을 마치고 병력을 추스른 후 사단사령부로 가자 이들은 이미 전 병력을 연병장에 도열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야하타 후비(後備 대개 예비군으로 편성된 부대)1사단 사단장 스즈키(鈴木)소장은 박승환을 보고 먼저 거수경례를 했다.

“반갑습니다.”

인사를 마치자 스즈키 소장의 옆에 있던 참모장이 나서서 대본영에서 보내온 전문을 직접 두 손으로 들고 읽었다.

“대육령(大陸令 대본영육군명령) 제1011호에 따라 대일본제국육군 야하타 후비1사단은 천황폐하의 봉칙명령을 받들어 오늘 날짜로 사단을 해산하며 사단기를 대한제국군에게 바치도록 하라. 대일본제국 대본영참모총장 원수 야마가타 아리토모.”

전문읽기를 마친 참모장이 뒤로 한 발 물러서자 이번에는 다른 참모가 미리 접어둔 사단기를 두 손으로 들고 왔다. 그것을 받아든 스즈키 소장이 박승환에게 걸어 왔다.

“천황폐하의 봉칙명령에 따라 오늘 자로 대일본제국 야하타 후비1사단의 지휘권을 대한제국군에게 넘깁니다.”

그러면서 허리를 숙이고는 두 손을 높게 들었다.

“잘 보관해 놓고 있겠습니다.”

사단기를 넘긴 스즈키 소장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해 울분이 차 있었으나 일왕의 칙령을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관.”

스즈키 소장의 부르자 그의 부관이 재빨리 다가왔다.

“본관의 견장을 떼어라.”

그러자 부관은 떨리는 손으로 스즈키 소장의 어께에 있던 견장을 잡아 뜯었다.

뿌드득

부관이 자신의 견장을 뜯자 그것을 받아든 스즈키는 허리에 찬 권총집과 일본도를 풀어서 다시 박승환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지금 이 시간부로 대일본제국 야하타 후비1사단은 완전히 무장해제를 합니다. 본관의 소지품을 받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박승환이 스즈키의 소지품을 받자 그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대열로 돌아갔다. 스즈키 사단장에 이어서 여단장과 사단참모들 그리고 각 급 지휘관들이 똑같이 계급장과 함께 개인화기를 반납하자 이후부터 나머지 일본군 장병들의 무기와 계급장 반납이 이어졌다.

일본군1사단의 정규편제는 18,000~20,000수준이었으나 급조한 병력인 탓에 야하타 후비1사단은 수천 명이 부족한 15,000여 명 정도였다.

야하타 후비1사단은 이미 대본영으로부터 대육령과 함께 일왕의 봉칙명령을 받은 상태라 무기와 계급장 반납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무기반납을 마친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자신들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 그들에게 들려진 것은 단지 며칠간 먹을 양식과 약간의 여비가 전부였고 이는 사단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개인소지품도 없이 일본군을 집으로 돌려보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정부였다. 일본은 군대해산 때 혹여 개인소지품에 각종무기를 숨겨나가서 소요사태를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품에 지닐 간단한 휴대품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개인소지품의 반출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 바람에 뒤에 대한제국군은 일본군이 남기고간 개인유류품을 뒤처리를 하느라 곤욕을 치렀지만 그들의 소지품속에 많은 무기들이 숨겨 있는 것이 드러나 일본정부의 방침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승환은 견장이 떨어져 나간 스즈키 소장이 일본정부의 배려하나 없이 힘없이 자신의 고향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자 마음이 착잡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참모장 오유선이 대신 입을 열었다.

“저렇게 어깨를 늘어트리고 말도 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조금 전 사단장으로서 당당했던 사람이 단지 어깨에 견장하나 떨어졌다고 저렇게 초라한 늙은이로 변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박승환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게 지금 일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이전에 힘이 있을 때는 두 눈을 부라리며 천하를 호령하다 항복을 하고나니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도 변해버린 일본 말이야.”

박승환의 말에 오유선도 적극 동감했다.

“저도 일본이 항복을 하고나자마자 온 나라가 이렇게 무력하게 돌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지? 나도 정말 뜻밖이었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가 있지. 우리나라 국민 같으면 벌써 돌이라도 던지거나 이곳저곳에서 봉기라도 하려고 난리가 났을 텐데 어떻게 된 것이 항복을 하고나자 그 꼿꼿했던 허리가 어떻게 갑자기 절반으로 너무도 쉽게 접혀지는지 참.”

“그게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일본인들에게는 깃발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그럴 것입니다.”

“깃발문화가 뭔가?”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도자에게 무조건 충성을 하라고 강요받고 살았기 때문에 지도자가 깃발을 들고 따르라고 하면 죽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가다가 만일 지도자가 갑자기 깃발을 내리면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마는 것이 바로 일본인의 깃발문화라고 합니다.”

“허 참,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본이군.” 이들이 이렇게 말을 할 정도로 11월 5일 항복발표와 더불어 11월 11일 정식으로 항복조인식이 끝나자 일본열도는 주저앉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모든 것이 돌변해버렸다.

당장 전쟁이란 구심점이 없어진 일본은 그야말로 우왕좌왕했다. 그동안 일본을 이끌어온 군부는 물론이고 내각조차도 대한제국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기본적인 정책조차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판국이니 일본국민들은 더 우왕좌왕했다.

그동안 강하게 압박하던 정부의 제재가 갑자기 풀어지자 이를 좋아하기는커녕 그동안의 압박에 길들여진 탓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일종의 공황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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