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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본인들이 점령군인 대한제국군을 보자 허리가 자동으로 접혀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으면 그대로 열도를 접수해 버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박승환의 말에 오유선이 손사래를 쳤다.
“이제 겨우 우리 제국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마당입니다. 일본의 식량사정은 지금 최악이라 우리가 구태여 오천 만에 가까운 이들의 식량문제를 떠안을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한반도에서 공출해가던 막대한 식량도 끊겼고 북해도도 독립한 마당이라 일본은 앞으로 구조적인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는 하지만 아까워서 말이네.”
“앞으로 이들은 쉽게 우리 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구태여 식민지로 만들어 골머리 썩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이렇게 대답을 하며 박승환은 방금 전 참모장 오유선 상좌가 가져온 일본군소총을 아주 큰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다.
“이 소총이 미국산이라는 것인가?”
오유선 상좌는 신군 출신이었기에 이번에 압수한 소총의 제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지난 1903년 개발되어 지금 미군이 제식소총으로 사용하고 있는 M1903스프링필드소총입니다.”
“이 소총의 품질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나 되는가?”
“유효사거리가 600m나 되고 장거리 명중률이 아주 높아 저격용 소총으로도 애용될 정도입니다. 더구나 일본의 소총처럼 수작업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생산체재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소총이 동일한 규격을 갖고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박승환은 오유선의 말을 듣자 다시 세심하게 소총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지금 아군이 쓰는 일본소총을 이 소총으로 교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개발에 성공한 소총은 이런 볼트액션의 단발소총이 아니라 자동소총이라서 이런 소총과는 위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소총은 미국이 개발한 것이라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우리 군이 사용하기에는 무게 등에서 무리가 있습니다.”
“참 아깝네. 그렇다고 이런 신형의 소총을 러시아 소총처럼 잉여물자로 만들 수는 없잖아.”
“제 생각에는 활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군이 아니라 경찰 쪽에서 사용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승환이 소총을 내려놓으며 답답해했다.
“그나저나 우리 제국의 제식소총은 언제부터 양산된다고 하던가? 지금 생산하는 속도로는 전군에 보급되기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언제인지 시기를 알지 못함)일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 공작기계는 물론이고 도금처리장비와 열처리장비 등은 생산시설은 매월 수만 정이라도 생산할 수 있는 양산체재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철소가 준공되지 않아서 양질의 강제가 원활히 공급되지 못해서 그렇지 강제만 원활히 공급되면 아마도 1년 정도면 충분히 전군에 보급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서 이 팔번(八幡 야하타)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철강제품을 우리가 활용하려고 폭격에서 제외시켰었지.”
“맞습니다. 해군은 물론이고 육군에서도 여기서 생산되는 철강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채택한 제식소총은 북한출신특전부대가 사용하던 AK소총의 북한산 88식 아카보총으로 대한제국명은 광무보총(光武步銃)이다.
1947년 구소련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라고 하는 스물두 살의 전차하사관이 설계한 AK소총의 원형인 K-47의 장점은 간편함과 견고함과 실용성이다.
가장 큰 장점은 처음 총을 쥔 병사라도 한 시간이면 작동방법을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총기사용이 아주 간편했다. 그리고 기계정밀성을 역으로 적용해 부품에 여유 공간을 둬서 모래먼지나 진흙이 껴도 쏠 수 있고 외부환경에도 강해 사막이나 극지방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장점이 있는 그야말로 전천후 소총이다.
거기에 총신을 프레스로 찍어내고 부품도 80여개에 불과해 생산도 용이해서 기술력이 아직 부족한 대한제국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적의 소총인 것이다.
탄창에 쓰이는 플라스틱은 이미 생산을 하고 있었기에 소총의 무게를 3.3kg까지 낮출 수 있어서 체격이 작은 대한제국군의 체형에도 최적이었다.
박승환 여단장은 항구에 입항해 있는 이전시대 대형수송선에 벌써부터 제철소에서 생산된 철강제품들이 선적되고 있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야! 참 빠르기도 하다. 우리 군이 일본에 입성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조선공사 수송선들이 철강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거야.”
야하타 제철소는 그 동안의 전쟁으로 수송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제품창고는 물론이고 제철소인근에 임시로 야적해 놓은 철강제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쌓여 있었다.
“정부에서는 한시가 급해서 그럴 것입니다. 지금 군사무기제작은 물론이고 대형유류저장고와 석유정제시설에 들어갈 철강제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지 않습니까?”
오유선의 말에 박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 산업의 쌀이니 과연 급할 만도 하겠지.”
“지금부터 시작해 북해도 무로란제철소의 보수를 끝내고 송림에서 건설 중인 제철소가 완공이 되는 내년 하반기가 되면 제국의 산업발전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빨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그래야 외국보다 뒤처져 있는 산업경쟁력의 격차를 최대한 줄일 수가 있을 거야.”
국제관계는 물론이고 경제관념도 부족했던 박승환 여단장이 이렇게 말을 하자 오유선이 감탄했다.
감탄하는 오유선의 시선에 박승환이 웃으며 농담을 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해서 감탄했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이게 다 그동안 받은 고급간부교육 덕분이야.”
“아, 그렇습니까?”
“이제 대한제국에서 경제관념과 국제관계에 대해 부족한 지식을 가진 최고지휘관은 단연코 한 명도 없어야해. 만일 있다고 하면 빨리 전역해야지. 그게 본인이나 국가를 위해서도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네.”
이렇게 말을 하고 철강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대형수송선을 바로 보는 그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해 보였다.
31여단이 이렇게 야하타에서 일본군을 해산시키는 등 맡은 임무를 수행 하고 있을 무렵 같은 규슈 남단에 있는 사세보 항에도 대한제국 제1함대가 명림답부 함의 함장 박주천의 지휘로 2척의 함정과 함께 대형수송선을 인솔하고 도착해 있었다.
폭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사세보 항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폭격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천혜의 양항인 사세보는 막부시절 일본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나가사키와는 불과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보통 나가사키의 사세보라고도 불린다.
박주천이 부두에 내려서자 부두광장에는 이미 사세보(佐世保) 해군진수부(鎮守府)의 병력 천여 명과 해군공창은 물론 미쓰비시조선소에 근무하는 민간기술자들 수천 명도 전부 광장에 도열해 있었다.
박주천은 오키나와에서 올라와 합류한 1특전여단 1개 대대병력과 사세보를 접수하기 위해 동행한 수백 명의 병력들과 하선했다. 하선한 박주천이 도열해 있는 일본해군 앞으로 다가갔다.
아군 병력이 전부 정렬한 것을 확인한 박주천이 먼저 거수경례를 한 후 입을 열었다.
“본관은 대한제국 제1함대 1전대사령관 박주천 대좌입니다.”
그러자 답례를 한 사람은 사세보(佐世保)해군진수부(鎮守府)사령관 가미카와 겐로쿠(川上 健六) 해군중장으로 그도 거수경례를 하고는 대답했다.
“어서 오십시오. 본관은 사세보해군진수부 사령관 가마카와 겐로쿠 해군중장입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자 야하타에서와 같이 진수부참모장이 나와 명령문을 읽었다.
“대해령(大陸令 대본영해군명령) 제 1011호에 때라 대일본제국해군 사세보진수부는 천황폐하의 봉칙명령을 받들어 오늘 날짜로 사령부를 해산하며 진수부기를 대한제국군에게 바치도록 하라. 대일본제국 대본영군령부총장대행 중장 아베 신타로.”
대해령을 낭독한 진수부총참모장은 한발 뒤로 물러섰고 가미카와 겐로쿠 해군중장을 비롯한 천여 명의 일본해군 장병들은 육군과 같이 진수부사령부깃발을 바치고는 개인적으로 계급장과 개인화기도 모두 바쳤다.
여기까지는 육군과 똑 같았지만 이후부터는 육군과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