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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 이총의 개장을 직접 지휘한 의친왕은 국립묘지에 무사히 안장을 마치고는 곧바로 북해도로 떠났다. 일본이 항복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성과 동경 그리고 북해도의 하코다테와 오키나와의 나하 등 4개 도시 간에는 비행선정기항로가 이미 개설되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비행선에서 내리는 의친왕을 특전사1여단장 김영문 대좌가 반갑게 맞이했다. 북해도는 일본이 항복을 한 후 해병여단은 여순으로 귀국을 하고 특전사1여단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김영문의 인사에 의친왕도 반갑게 답례했다.
“추운데 고생이 많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이곳은 12월인데도 날이 크게 춥지 않습니다.”
김영문의 말에 의친왕도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한성보다 날이 덜 춥습니다.”
“아마도 해양성기후라서 그런 가 봅니다.”
“예, 그렇군요.”
날씨를 주재로 인사를 나눈 김영문은 의친왕을 바로 안내했다.
“여단사령부로 모시겠습니다.”
김영문의 안내를 받은 의친왕은 마차를 타고 1여단의 주둔지로 가기위해 하코다테 시내를 통과했다. 의친왕이 마차 밖의 도심지가 깨끗한 곳을 보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관(函館 하코다테)은 본주에 있는 도시에 비해 폭격이 별로 심하게 받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북해도를 독립시키자는 방안이 나오고부터 무로란의 제철소만 제대로 폭격을 했고 북해도의 다른 도시들은 군사시설물이외에는 폭격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하코다테는 미일수호조약과 함께 개항장이 된 도시답게 미국의 조계지가 있던 지역은 서양건물들도 많이 들어서 있었다.
특전사1여단사령부가 있는 곳은 고료카쿠라고 불리는 오릉곽(五稜郭,)이다. 이 오릉곽은 미일수호조약이후 외적의 침입, 특히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기 위해 쇼군의 특별지시에 의해 지어진 요새로 정확히 오각형의 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오릉곽에 안에는 본래 다수의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나 이때는 대부분 해체되어 버렸고 부지는 군대연병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런 오릉곽을 대한제국군이 북해도를 점령하자마자 일본인인부들을 대거 동원하여 비록 목조이기는 하지만 몇 개월 사이에 번듯한 주둔군사령부 건물까지 지어 놓았다.
의친왕이 마차에 내리자마자 오릉곽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야! 오릉곽이 멋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요새가 아름답게 잘 만들어 졌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도 이곳에 와서 이 요새를 처음 봤을 때는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지어진 모습을 보고 놀랐었습니다.”
의친왕이 손으로 요새의 모서리를 가리켰다.
“오각형의 각 끝에는 대포를 설치하겠군요.”
“본래의 목적인 요새라면 그렇겠지만 지금의 오릉곽의 모습은 처음과는 달리 많이 축소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포를 설치하기는 무리가 있어 저렇게 토치카를 지어 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있습니다.”
여단장 김영문의 설명대로 오릉곽의 각 모서리에는 새롭게 토치가가 만들어졌고 그 속에 기관총이 각각 좌우로 2문씩이 거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방에 물이 있는 해자도 있고 해서 저 정도면 웬만한 외적이 침입해 와도 쉽게 공략당하지 않겠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저대로도 충분히 요새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친왕은 이렇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본 후 사령부본관으로 들어갔다. 의친왕이 사령관의 집무실에 앉자마자 곧이어 일본인여비서가 차를 갖고 안으로 들어왔다.
“북해도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주민들은 지금 얼마나 됩니까?”
“일본정부에서 넘겨받은 자료로는 백만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제국군이 진주한 것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그동안 일본정부가 수탈에 가까울 정도로 학정을 펼친 탓인지 아군이 진군하고부터 그런 것이 일체 없어지고 거기다 사람을 고용할 때마다 정확한 임금을 지급해 주니 의외로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주민들이 북해도가 독립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까?”
“그게 좀 아주 의외입니다.”
“예?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의친왕이 놀라하자 김영문이 웃으며 대답했다.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항복 협상을 끝난 뒤 북해도가 독립한다는 말을 하며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모집했는데 사람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겨우 일만 명 정도의 주민들만이 본토로 귀향으로 했을 뿐입니다.”
너무 적은 숫자에 의친왕이 어안이 벙벙했다.
“겨우 일만 명밖에 돌아가지 않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쟁기간동안 일본정부의 학정이 심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이곳에 있는 기반을 버리고 가기가 아까워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명치유신으로 봉건체재가 무너진 지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국가개념이 희박해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저희도 아주 의외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의친왕은 기가 찼다.
“북해도가 독립을 하니 자국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이대로 주저 않겠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민족의식이 너무 강한 것 보다 오히려 좋은 현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때 의친왕의 시선이 김영문의 부관인 김좌진에게 향했다.
“저 부관이 유능하다고 소문난 김좌진 소위입니까?”
“그렇습니다. 김 소위 전하께 인사드리게.”
김좌진이 자세를 바로 하고 거수경례를 했다.
“충! 성! 육군소위 김좌진인사 드립니다.”
“반갑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의 말을 많이 들었어.”
그러면서 의친왕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친 의친왕이 김좌진에게 질문했다.
“자네가 보기에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보게.”
그러자 김좌진은 먼저 김영문을 바라봤다.
“괜찮으니 전하께 자네의 생각을 말씀드려보게.”
“소관이 보기에 이곳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대부분 명치유신 이후 강제 이주된 개척농민과 그 후예들이라 일본정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는 것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나라를 버릴 정도는 아니지 않겠나?”
의친왕이 다시 의문을 표시하자 김좌진이 다시 의견을 말했다.
“제가 읽은 책에 일본인들은 이곳의 원주민인 아이누 족을 민족적으로 아주 낮게 보고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아이누 족은 본래 농사를 짓지 않고 수렵과 어로로 생활해 왔었는데 그런 생활방식이 아이누들을 일본인이 보고 미개한 민족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점들 때문에 이곳의 일본인주민들이 귀환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흠!~ 아이누가 독립을 해도 자신들이 그들을 다시 지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는가?”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토로 돌아가 고생을 하는 것보다 이곳에 남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 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방안은 생각해 본 것이 있는가?”
“소관의 생각으로는 철저한 동화정책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철저한 동화정책을? 어떻게 말인가?”
“우선 북해도 원주민과 일본인들에게 한글과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혼용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어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주민인 아이누에게도 그들의 고유 언어는 보존시켜 주어야겠지만 역시 일본인들과 같이 한국어 교육을 같이 시켜 북해도의 언어를 한국어로 통일하여 문화적으로 일체와 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
의친왕이 동의하는 말에 김좌진이 고무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제국국민도 이곳으로 이주를 시켜 시간을 두고 3민족의 동화정책을 펼친다면 아마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흠!~”
의친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영문은 김좌진이 말을 하고 있는 방식이 이전시대 일제가 만주에서 추진했던 오족협화(五族協和 일본·중국·만주·조선·몽골 등 5개 민족이 일본인을 정점으로 협력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정책)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사실에 내심 크게 놀랐다.
‘허! 이거 참 김 소위의 제안이 좋기는 하지만 이거 우리가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네.’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김영문도 김좌진 소위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의친왕이 김영문의 의견을 물어왔다.
“김 소위의 제안을 여단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김 소위의 생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문제는 아이누민족이 아직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들이 아직도 우리들에게 폐쇄적입니까?”
“그동안 일본에 당한 게 하도 심해서 그런지 아직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쩔 수없는 일이지요. 그들에게 우리는 일본인과 같이 침략자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의친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해도를 한 번 둘러보고 싶군요.”
“그렇게 하시지요. 김 소위.”
“예, 여단장님.”
“귀관이 책임지고 전하를 안내를 해 드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의친왕은 이때부터 김좌진과 함께 하코다테는 물론이고 북해도일대를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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