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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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광무11년의 대한제국은 역동적인 새해를 맞이했다. 각종 개발 사업으로 국토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지속적인 위생교육과 의무교육의 시행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더구나 승전을 한 나라답게 국민들의 삶은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풍족해져 있었으며 국민의식도 지속적인 계몽으로 크게 변화하면서 사회전체가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시행을 준비했던 작위제도가 1월 1일을 기해 전면 시행되었다. 황실직할부서인 표훈원(表勳院 훈위, 훈등, 연금, 훈장, 기장, 포상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선정하여 황제가 직접 수여되는 작위는 황족들은 당연히 서열에 따라 차등 수여되었다. 

이어서 수복전쟁과 일본정복전쟁에서 공을 세운 각 군 사령관과 현직 정부각료들에게는 백작의 작위가 수여되었다. 여기에 여단장을 비롯한 각 군 주요 지휘관들과 특별한 전공이 있는 장병들, 그리고 문관으로는 도지사들과 시장군수 중에서 특별히 공이 있는 관리들 그리고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도 철저한 선정심의를 거쳐 자작과 남작을 비롯한 경(卿)의 작위가 각각 수여되었다. 

새해 첫 날 수백 명이 일시에 작위가 수여되며 온 나라는 축제의 장이 되었고 이때 차준혁도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남작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군의 군제도 크게 달라졌다. 

육군은 그동안 여단으로 유지되던 체제를 병력이 확충되면서 특전사를 제외하고는 전 여단을 정식으로 사단으로 재편했다.

각 군단도 야전군으로 승격되면서 1군단은 북방군, 2군단은 부여군, 3군단은 요동군, 연해주의 5군단은 발해군으로 각 군마다 별도의 명칭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친위군단은 친위군이 되었으며 평양의 특전사는 그대로 특전사로 유지되었다.

해군은 지금의 5개함대체재에서 일본에게 나포한 미국전함 6척을 중심으로 해삼위를 모항으로 하는 8함대가 새로 탄생했다. 이는 7함대가 일본방어를 위해 동경만의 요코스카에 새로 둥지를 틀면서 대한제국의 북쪽바다 방어를 위한 일환이었다.

1907년의 겨울과 봄은 일본에게 아주 혹독했다. 

특히 한반도에서 강제로 공출되던 쌀이 수입되지 않자 열도는 양곡의 절대부족에 시달려야만했다.

수많은 아사자가 나온 것은 물론 시대에 걸맞지 않게 엄청난 유민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일본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야 했다.

1908년 봄이 되면서 식량난이 더욱 극심해지자 동경의 총리관저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와 사이온지 긴모치 총리, 하라 다카시(原 敬) 내무대신 그리고 새로 외무대신이 된 하야시 다다스(林董)가 이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침통한 표정으로 총리인 사이온지 긴모치 총리에게 확인을 했다.

“정말 미국이 식량원조에 난색을 표한다는 말이오?”

“작년의 밀 작황이 흉작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만 무상원조를 해주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후!~ 조선과 전쟁을 하는 동안 우리 제국을 그렇게 열심히 후원하던 미국이 막상 패전을 하자마자 이렇게 안면몰수 할 줄은 미처 몰랐구나.”

이토 히로부미의 한숨소리에 사이온지 총리가 걱정이 한 가득한 얼굴을 했다.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지난겨울에도 아사자도 많이 나왔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식량난을 해결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보낸다면 대규모 소요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라 내무대신에게 질문했다.

“일본은행에 보유하고 있는 금이 얼마나 되는가?”

질문을 받은 하라 내무상이 깜짝 놀랐다.

“각하. 중앙은행의 금은 태환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입장에서 절대란 것이 존재하지 않네. 지금 온 나라가 기아에 허덕이는 판에 태환이 문제인가? 더구나 중앙은행의 금은 작년 말 조선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때 이미 사용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하라 내무상이 뭐라고 반대의견을 더 말하려고 하자 이토 히로부미가 손을 저었다.

“지금은 다른 것 보다 당장 먹고 살 방도부터 챙기고 보세.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면 총리말대로 작금의 어려운 상황에서는 걷잡을 수없이 소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게.”

이토 히로부미가 이렇게 나오자 하라 내무대신도 쉽게 반대를 하지 못했다. 국민들을 소모품 취급하던 일본의 지도자들도 식량난이 극심해지자 소요를 걱정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야시 외상이 이토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후작각하의 지적이 정확합니다. 아무리 힘이 없는 국민들이라고 해도 다른 것도 아니고 배고파서 소요를 일으킨다고 하면 사안의 성격상 자칫 엄청난 사태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사이온지 총리가 하라 내무대신에게 질문했다.

“하라 내무상, 후작 각하의 말씀대로 중앙은행에 보관된 금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이를 헤쳐 나갈 방안은 있는가?”

하라 다카시 내무대신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칫 화폐가치폭락으로 이어져 가뜩이나 취약해진 경제사정으로 인해 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라 내무대신의 걱정에 이토 히로부미가 반대의견을 냈다.

“아무리 우리 제국의 경제가 허약해 졌다고 해도 유신이후 수십 년간 쌓아온 저력이 있어 이 정도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더욱이 지금은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나머지는 그 후에 걱정을 해도 늦지가 않을 것이네.”

이토 히로부미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하라 내무대신도 더 이상은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이온지 총리가 하야시 외무대신에게 지시했다.

“미곡 수입을 위해 하야시외상이 불란서 공사를 한 번 만나보는 것이 좋겠소.”

“알겠습니다. 나가는 즉시 불란서 공사와 바로 접촉을 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 처지가 급박하니 서둘러 주시게.”

“예, 각하.”

총리의 지시를 받은 하야시외상이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바쁘게 나갔다.

이러한 일본내각의 움직임은 곧바로 대한제국에 포착되었고 이범진 외상이 국무회의 때 박충식에게 상황보고를 했다.

“일본의 식량사정이 크게 어려운 가보군. 아사자가 많이 발생할 정도라고 하니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준 공사의 보고로는 아사자의 숫자도 상당하다고 하니 일본이 많이 다급한 것 같습니다만 그 덕분에 우리 제국만 좋은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지난번에 우리 제국으로 넘어온 일본인선박기술자들 중 상당수가 일본에 있는 가족들을 아예 본국으로 데리고 오기위해 우리정부에 이주신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충식이 반색했다.

“아!~ 그런 일이라면 아주 좋은 현상이오.”

이범진의 말대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는 일본에 비해 대한제국으로 넘어온 일본인선박기술자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할 정도의 월급을 지급받고 있었다. 거기다 월급의 일부를 일본에서는 귀한 쌀로 현물지급하자 대한제국에서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느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 되자 처음 기술전수에 수동적이었던 기술자들이 점차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받아줄 곳이 없는 현실과 일본경제가 최악으로 추락해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러자 이들은 일본으로의 귀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오히려 정착을 위해 가족들을 전부 한국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일본에서는 처음 여러 이유로 한국행에서 빠졌던 선박기술자들도 한국으로 오기 위해 지원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무대신 이상재가 코웃음을 쳤다.

“일본이 중앙은행의 금을 동원할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제국에게는 단 한마디의 지원요청도 하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남아 있는 것일 보니 아직은 고생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재의 말에 민영환도 동조했다.

“맞습니다. 저들은 우리 제국이 작년부터 신품종 볍씨가 보급되어 엄청난 수확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이미 등을 동린 미국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습니다. 재무상의 말씀대로 좀 더 고생해 봐야 합니다.”

박충식이 두 사람의 의견을 듣다가 이범진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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