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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사가 접견신청을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마 우리 제국이 독일, 영국과 각각 동맹을 채결한 것을 터 잡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는 과인이 지난번에 말씀드린 사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떠한 교류도 없다는 것을 꼭 짚고 넘어 가야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때 이상재가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 일본이 식량수입을 할 국가는 미국과 안남을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뿐인데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는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박충식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작년부터 독일과 영국은 물론 각국과 각종교류를 활발히 벌이고 있는 것은 모두 국익을 위해서 입니다만 프랑스는 아닙니다. 프랑스와는 지난 병인양요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국가적 위신은 물론이고 나라의 정기를 바로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박충식의 말에 이상재가 바로 수긍했다.
“하긴 다른 무엇보다 나라의 정기를 바로세우는 것이 우선이기는 합니다.”
내무대신 민영환도 적극 동조했다.
“맞습니다. 제국이 고토를 수복한지 2년이 째인 금년부터 만주지역으로의 대대적인 이주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마당입니다. 이러한 때 국민들에게 확실한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굴욕의 역사인 병인양요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민영환의 말대로 1908년이 되면서 대한제국은 한반도주민들의 만주이주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 중에 있었다. 이전 토지개혁당시 1가구당 배정되었던 토지의 10배의 면적을 거의 무상으로 나눠주는 조건과 각종 세재혜택을 내걸고 실시하는 만주이주정책은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박충식이 민영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무상이 좋은 말씀을 했고 정말 맞는 말입니다. 우리 제국의 신민들에게 확실한 국가관을 세워줄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크게 보고 상황을 대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가 숙여졌다.
“알겠습니다.”
다음날 오전 외무성에서는 이범진 외무대신과 프랑스 공사 블랑시의 회동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공사 각하.”
“반갑습니다. 외상 각하.”
이범진은 속내는 내비치지 않고 반갑게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이범진의 환대에 기분 좋아진 블랑시는 비서가 내온 차를 마시면서 잠시 한담을 나누었다. 그러던 블랑시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으로 방문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본 공사가 외상 각하께 오늘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본국과 귀국과의 우호증진 때문입니다.”
“양국 간의 우호증진이야 본국도 당연히 바라는 바입니다.”
“그런데 본국은 요즘은 귀국에 섭섭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블랑시가 말을 한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이범진이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귀국이 독일과 영국 등과는 각종 우호 협력관계를 돈독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섭섭하게도 유독 우리 프랑스만은 제외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시정을 부탁드리러 오늘 찾아뵈었습니다.”
“아~ 그일 때문에 오셨군요.”
이범진은 이렇게 말하며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설명을 시작했다.
“공사 각하께서는 귀국과 본국과 지난 1866년에 벌어진 전쟁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블랑시 공사는 순간 움찔 했다. 그는 병인양요 때 개항을 핑계로 프랑스가 함대를 파견해 수백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블랑시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이범진 외무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본국은 귀국과의 전폭적인 우호증진에 앞서 그 때 귀국이 우리 대한제국을 무단 침입을 한 일에 대한 적절한 사과와 배상을 해 주실 것을 정식으로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귀국이 강탈해간 본국의 귀중한 문화재를 반환해주실 것도 함께 요청합니다.”
이범진의 말을 들으며 블랑시의 안색이 크게 어두워지면서 말이 신중해졌다.
“그 문제는 본 공사가 이 자리에서 대답해 드릴 사안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실 것이란 것은 본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 간의 우호증진을 위해서는 이 문제가 반드시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국의 확고한 입장임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 드리는 바입니다.”
이전의 대한제국 같았으면 블랑시는 이범진의 주장에 강력하게 항의했을 것이지만 지금의 대한제국은 이전의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블랑시는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겠습니다. 그 문제를 본국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본국에서 귀국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귀국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된 지난 일을 바로 잡자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양국 간의 우호증진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범진의 말에 불랑시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본 공사의 힘으로 그 문제를 바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공사각하께서 정식으로 요청한 사안이니 본관도 최선을 다해 잘 풀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블랑시 공사는 이범진을 만나 항의를 하러 왔다 이렇게 오히려 짐만 잔뜩 받아든 형편이라 어깨가 축 쳐져서 돌아갔다.
블랑시가 자국 공관으로 돌아가 본국에 대한제국의 공식적인 의사를 전달했지만 프랑스정부의 답변은 그의 예상대로 불가였다. 이후 몇 차례 두 사람의 만남이 있었지만 양국관계는 가까워지는 것은 고사하고 냉랭해지는 결과만 초래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는 대한제국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또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대한제국이 병인양요의 분명한 처리를 이유로 프랑스를 배재한 채 독일과 영국 등 서양각국과 긴밀한 관계를 다져가고 있을 때 북경의 차준혁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원세개가 차준혁을 공관으로 불렀고 차준혁은 오장경과 함께 그의 공관을 방문했다.
“어서 오시오. 차 공사.”
“반갑습니다. 총독각하.”
원세개가 공관을 방문한 차준혁을 반갑게 맞이했으며 차준혁도 자리에 앉으며 웃으며 답례했다.
“총독각하의 신색이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그렇소? 이게 다 귀국이 약속을 잘 지켜주신 덕분 아니겠소.”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원세개의 기분은 요사이 최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제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청국은 힘 한 번 쓰지 않고 일본에 강제 할양했던 대만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대한제국과의 협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원세개의 정치적위상이 한껏 올라가 있었다.
차준혁이 분위기를 띄웠다.
“이거 날 잡아서 각하와 술 한 잔 해야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술은 본관이 톡톡하게 내리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본관을 보자고 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원세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자리를 옮겨서 대화를 나눕시다.”
“자리를 어디로 옮기려고 하십니까?”
원세개가 웃으며 말했다.
“차 공사는 아무 소리 말고 본관을 따라오시오.”
이렇게 웃으며 원세개가 차준혁을 안내한 곳은 그의 공관 옆에 있는 별채였다. 별채 안으로 들어서자 차준혁은 그곳이 원세개가 외부인사와 식사 등을 하는 곳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거 큰일이다. 그냥 인사치레로 술 한 잔하다고 했더니 바로 술자리라니 어떡하지? 술도 제대로 못 마시는데.’
차준혁이 이런 걱정을 하며 원세개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각종 요리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요리가 탁자에 어느 정도 차려지자 원세개가 술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차 공사, 우선 한 잔 합시다.”
차준혁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중국풍습이 잔을 들어 건배를 하면 술잔을 비워야 한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크으~”
도자기로 된 작은 잔이지만 술이 무척 독한 탓에 목으로 넘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원세개가 권한 술은 독하기는 했으나 술이 좋은 탓인지 목 넘김이 화끈하며 짜릿해서 마실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