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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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좋은 탓인지 몰라도 차준혁은 세 번이나 거푸 건배를 하면서 술잔을 비웠으나 다행히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렇게 잠시 화기애애하게 술과 음식을 먹던 원세개가 어느 정도 속을 채웠는지 기름진음식을 먹은 입을 헹구려고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차준혁을 부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귀국이 지난 일본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많은 무기들을 노획한 것으로 알고 있소.”

순간 차준혁은 원세개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보자고 했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렇습니다. 상당한 양의 무기를 노획했습니다.”

“혹시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공사는 알고 있소?”

“확실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략 양국에서 노획한 무기가 수십 만 정씩의 소총과 천여 문 이상의 대포 등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상 보다 많은 숫자에 원세개의 안색이 변했다.

“노획한 무기가 그렇게나 많소이까?”

“하하!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차준혁의 대답을 들은 원세개의 안색이 은근해졌고 목소리도 한층 낮아졌다.

“혹시 귀국에 노획한 무기 중 여유분이 있소?”

원새개의 은근한 목소리에 차준혁도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대답해 주었다.

“숫자가 얼마인지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여유분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원세개가 이번에는 몸까지 앞으로 당겼다.

“그 남은 무기를 우리 청국에 양도할 수 있겠소? 값은 후히 쳐드리리다.”

“청국은 외국과의 협약에 의해 무기 수입이 금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11개국과의 협약이고 귀국은 그 협약에 제외되어 있지 않소. 더구나 본국과 귀국은 이미 군사무기를 거래한 적이 있으니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오.”

“그건 해군함정이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지상무기입니다. 더구나 귀국은 천진을 비롯한 각지에 무기제작공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태여 소총을 도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후~ 공사께서 이렇게 나오니 내 솔직히 말해 주겠소이다.”

그러면서 원세개는 답답한지 술을 따라 단번에 비우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청국은 지난 의화단사건 이후 서양무기가 수입이 금지되면서 대륙각지에 무기제작소를 만들어 무기를 자체생산하고 있는 중이오.”

여기까지 말을 한 원세개가 답답한지 다시 술을 따라 단 번에 들이켰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본국이 생산하는 무기는 불량이 너무 많이 나와 수입소총에 비해 원가가 턱없이 높게 들어가고 있소. 거기다가 생산된 소총의 위력 또한 타국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오.”

“그러시다면 각하께서는 서양과 문제가 생기더라도 본국이 러시아와 일본에게서 노획한 무기를 구매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본관의 솔직한 심정은 구매를 하고 싶소이다. 총포탄은 우리도 충분히 제작이 가능하니 소총과 대포 등을 본국에 넘겨줬으면 좋겠소. 부탁하오. 차 공사.”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원세개가 부탁한다는 말까지 할 정도면 상황이 답답한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무기를 넘기는 문제는 차준혁이 바로 대답해줄 성질은 아니었다.

“각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본관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 본국에 각하의 의중을 전달해 보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하하! 차 공사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 줘서 고맙소이다.”

원세개는 마치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 같이 말을 하며 술잔을 다시 들었다.

“자 일에 관한 문제는 여기까지 말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술이나 마십시다.”

이후부터 원세개의 술 폭탄 공세가 시작되었고 술을 잘 못 마시는 차준혁은 이날 오장경에게 업히다시피 부축 받으며 공사관으로 돌아와야 했다.

며칠 후 차준혁은 원세개의 공관에서 그를 다시 만났고 그는 차준혁이 앉는 것도 기다리지도 못하고 질문부터 했다.

“어서 오시오. 공사. 그래 좋은 소식은 있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래 귀국에서는 노획한 무기를 양도를 해줄 의향이 있다고 하오?”

“본국의 대공 전하께서 총독각하께서 지난번 영토협상에서 도움을 주신 것을 거론하시면서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드리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원세개의 얼굴이 확 펴졌다.

“아! 그거 정말다행이오.”

“그런데 수량은 어느 정도로 구매를 하실 것이고 가격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수량은 많을수록 좋고 가격은 최고 가격으로 치루겠소.”

“그런데 귀국의 예산사정이 크게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금지급에 문제가 없겠습니까?”

원세개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 문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소. 그것보다 귀국이 얼마의 무기를 우리에게 넘겨줄 수 있소?” 

원세개의 말에 차준혁이 가져온 서류를 펼쳤다.

“본국에서 귀국에 양도할 수 있는 무기는 일본산 소총 45만 정과 대포 1,000여 문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산 소총 25만 정과 대포 800문입니다.”

너무도 많은 숫자에 원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휘우~ 노획물자가 대단하오.”

그러면서 원세개가 욕심을 부렸다.

“우리 대청국은 냄새나는 아라사무기는 필요 없고 일본산 무기는 전량구매를 할 의향이 있소.”

“일본산 무기 전량을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귀국의 병력이 아직 이십만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병력이야 당장이라도 백만 명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 청국인데 병력숫자는 별 의미가 없고 문제는 병사들을 무장시킬 무기가 필요한 것이오.”

차준혁은 원세개가 말하는 병력숫자놀음에 내심 질렸다. 대한제국은 지금 삼십만의 육군도 삼 년여에 걸쳐 겨우 만들어 놓았는데 원세개의 입에서 백만은 숫자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예, 역시 인구대국입니다.”

사람만 많은 나라라고 비꼬는 말 인줄도 모르고 그저 대국이란 말에 입이 귀에 걸린 원세개가 갑자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기관총은 보유물량이 없는 것이오?”

“죄송합니다만 기관총은 본국도 물량이 부족해서 귀국에 넘겨드릴 물량이 없습니다.”

기관총을 넘겨줄 수 없다는 말에 원세개가 입맛을 다시며 크게 아쉬워했다.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한제국으로서는 앞으로 적이 될지도 모를 청국에게 모든 것을 넘겨 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기관총은 제외시킨 것이다.

이 당시 총기류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서 지금 시세로 한 정에 수백만 원은 호가 할 정도였고 거기다 구하기도 아주 어려웠다. 특히 기관총은 그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삼십만 명의 대병력이던 러시아극동군이 보유한 기관총이 겨우 60여 정에 불과했으며 60여만 명을 동원한 만주일본군에게도 겨우 260여 정의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자 그럼 가격협상을 시작해 봅시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원세개가 먼저 운을 뗐다.   

“양도받을 총기류가 비록 중고라고 하더라도 본국은 전량을 양도한다는 조건으로 신품보다 값을 충분히 더 쳐 줄 수 있소. 그런데 본관이 공사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무기대금을 현물로 받아 주시오.”

“예? 현물이라고요?”

“그렇소. 귀국이 일본에 받을 배상금 중 절반은 현물로 받은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러는 본국도 그런 예를 똑 같이 적용시켜 주시오”

차준혁은 일본과의 배상금협상을 비밀리에 진행했음에도 원세개가 협상내용을 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청국의 정보력도 상당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떻게 적용시켜 달라는 말입니까?”

“무기대금을 일본과 같이 광산 같은 지하자원개발권으로 상계합시다.”

차준혁이 딱 잘라 거절했다.

“그건 안 됩니다.”

차준혁이 노골적으로 거부하자 원세개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안 된다는 말이오?”

“만일 본국이 서양과 같이 귀국에게 자원개발권과 같은 이권을 받고 무기를 양도하게 된다면 우리 대한제국은 본격적으로 서양의 견제를 받게 됩니다. 우리 대한제국은 그동안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서양과 척을 지는 것은 국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금하신 제안은 죄송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쩝.”

차준혁이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거절이유를 말하자 원세개는 다른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대한제국이 지금 서양의 각축장이 되어 있는 중국대륙으로 뛰어 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럼 무기대금으로 꼭 현금을 받아야겠소?”

“대물로 주실 것 같으면 요서(療西)를 주십시오.”

이 말에는 원세개가 격하게 반응했다. 

“그 문제는 이전에도 말했지만 절대 불가하다고 말하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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