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회: 7권-5화 뜻밖의 방문 -->
원세개는 흔쾌히 이에 응했고 가격도 그의 말대로 상당히 후하게 결정해주었다. 이렇게 가격이 결정되자 차준혁이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귀국이 회수한 일본조계지를 서양각국이 그들 조계지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차준혁의 말에 원세개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이지 늑대나 다름없는 자들이오. 차 공사의 말씀이 맞소이다. 서양각국은 지금 일본군이 완전 철수한 북경의 일본군병영부지는 물론이고 천진·상해·광주 등 전국의 개항장에 소재해 있던 일본조계지를 각국조계지로 흡수하려고 우리 외무부 문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드나들면서 본관을 괴롭히고 있소이다.”
이렇게 푸념을 하던 원세개가 문득 차준혁에게 되물었다.
“혹시 일본조계지를 귀국에게 달라는 말이오?”
차준혁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 대한제국은 귀국과의 선린우호관계를 헤칠 수 있는 북경의 병영은 물론이고 천진 등 다른 곳의 조계지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 말고 다른 곳을 달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상해는 지금 우리 대한무역공사가 진출해 있는 곳이고 앞으로 청국과의 무역은 물론 서양과의 무역창구역할을 톡톡히 할 지역입니다. 그리고 홍콩의 배후에 있는 심천은 앞으로 홍콩의 배후공단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이라 본국은 상해에 있는 일본조계지와 그 인근 토지를 그리고 심천일대의 토지를 본국이 매입했으면 합니다.”
“상해조계지정도는 전쟁에서 승리한 귀국이 일본국과의 협상으로 무상 양도받으면 되었던 것 아니오?”
차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본 공사는 앞으로 귀국의 조계지는 앞으로 없어져야 하고 반드시 없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이 귀국에게서 강탈한 상해일본조계를 무상 양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양국의 발전된 미래를 위해 이번에 총기를 구입한 자금을 활용하여 귀국에 적절한 토지대금을 정산해 주고서 정식으로 매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원세개는 크게 감격해 하며 두 손을 모아 흔들며 고마워했다.
“아! 귀국이 그렇게까지 본국을 생각하고 있다니 정말 고맙소이다. 차 공사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 청·한 양국은 정말로 순망치한의 관계가 틀림없소이다.”
자신이 의친왕으로 분장해서 했던 말을 원세개가 다시금 되새기며 고마워하자 차준혁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총독각하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본국이 무상 양도가 아니라 정식으로 대금을 지급하고 토지를 매입했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나라도 명분 때문에라도 일본조계지를 강탈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맞소이다. 공사의 말씀이 맞소이다. 저들도 명분이 있는데 계속해서 남의 영토를 무작정강탈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오.”
원세개의 본래입장은 어차피 일본에게 넘겨져 있었던 조계지라서 외국이 계속 강권하면 못이기는 척하며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이 토지를 정식으로 구입하면서 명분을 실어주면 다른 나라도 함부로 강탈을 하려고 덤비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공이 되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토지대금을 제한 나머지를 매각대금을 현금으로 달라고 할까봐 은근한 어조로 질문했다.
“그런데 무역을 위한 부지는 많이 필요 없는 것 아니오?”
“지금은 제반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당장은 어렵겠지만 상해와 심천에 넓은 토지가 있다면 우리 대한제국은 앞으로 대한제국전용공업단지도 조성할 수도 있고 다른 용도로도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심이 달리 있었던 원세개가 당연히 반색했다.
“그래요!”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고 적어도 십여 년은 지나야 할 것이지만 토지만 충분하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우리 백성들을 고용할 것이오?”
“가급적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고 투자유치는 오히려 원세개가 원하는 일이었다. 차준혁이 맘에 드는 소리만 계속하자 원세개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하하, 이거 오늘 차 공사께 본관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소이다.”
“총독각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본관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토지매매협상을 시작했다.
대한제국은 이 협상에서 원세개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상해의 일본조계지는 물론이고 그 인근의 토지를 제주도보다 넓은 3,000㎢면적을 매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홍콩배후의 심천지역은 홍콩을 둘러싼 대부분의 토지를 매입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많은 면적을 매입할 수 있게 된다.
대한제국은 매입한 토지에 대해 청국에게 조계지와 같은 특권을 요구했다. 청국정부는 일거에 육군전부를 현대화시킬 엄청난 숫자의 무기를 유상제공 받은 탓에 두말하지 않고 흔쾌히 치외법권을 인정해 주는 정식 조약을 채결했다.
이렇게 되자 대륙의 넓이로 보면 작은 면적이지만 대륙안의 2개 도시가 정식으로 대한제국영토가 되었다. 더구나 심천에는 아직은 작지만 엄연한 항구가 있었다. 그리고 상해에는 서울 면적보다 조금 작은 면적의 양자강 하구섬인 숭명도(崇明島)가 대한제국영토로 편입되면서 별도의 대한제국전용항구를 세울 수 있게 되어 앞으로 대륙으로의 경제 진출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은 심천을 대한제국이 매입한 것에 대해 주청공사 맥도날드까지 보내 축하를 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심천이 대한제국의 정식 영토가 되면서 홍콩이 중국과 영토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효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제국은 이번 협상에서 원세개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또 한 번의 커다란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거기에 영국의 계속적인 후원도 얻게 되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되었다.
이렇게 차준혁이 북경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던 8월 필리핀의 마닐라인근 모처에서 중정요원 박상원은 은밀히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뜻밖의 방문
필리핀공작을 전담하고 있던 중정요원 박상원은 미르부대 기무부대출신으로 그동안 잠수함을 이용해서 미국의 눈을 피해 몇 차례 필리핀을 왕래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필리핀에 잠입에 성공한 박상원은 능통한 스페인어를 적극 활용하여 천신만고 끝에 포섭대상으로 삼았던 에밀리오 아기날도와 접촉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기날도는 1901년 미국에 항복하면서 다시는 항전하지 않겠다고 신의 이름 앞에 맹세한 것은 물론 미국정부로부터 연금까지 받고 있었던 터라 또 다시 항전을 하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필리핀무장독립단체 카티푸난(Katipunan)의 지도자 미구엘 말바르(Miguel Malvar 1865)를 소개해 주었다.
이 후 박상원은 미구엘 말바르와 접촉을 가졌다.
하지만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그 자리에서 거절하고는 오히려 미국의 음모인 줄 알고 잔뜩 경계만 했다. 그러다 몇 차례 만남이 이어지면서 마음은 열었지만 이번에는 대한제국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박상원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수차례 협의 끝에 대한제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원을 받아들인다는 조건부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그 후 대한제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자 그제야 대한제국의 힘을 알게 된 미구엘 말바르는 카푸티난의 지도자들을 적극 설득해 대한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8월 루손 섬 모처에서 박상원과 미구엘이 이끄는 카푸티난의 지도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게릴라 활동을 하며 정글을 누벼야하는 미구엘 말바르는 지친 모습이었지만 필리핀독립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답게 눈빛이 살아있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몇 번의 만남으로 가까워진 미구엘 말바르와 반갑게 악수를 나눈 박상원은 그의 소개로 카푸티난 지도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고 박상원도 동행한 요원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박상원 일행이 그들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고 앉자 미구엘 말바르가 박상원에게 먼저 사과부터 했다.
“그동안 귀국을 믿지 못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귀국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그 때 카푸티난 지도자 중 한 명이 그래도 아직은 의심스럽다는 듯 질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