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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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에게 삼만 정의 소총과 이십 정의 기관총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만일 귀국이 총기만 제공해주고 나 몰라라 하면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은 것 만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믿지 못하면 처음부터 이번일은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박상원이 강하게 나오자 그 사람의 입이 바로 다물어졌고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해 사과했다.

“방금 우리 동지가 귀국을 의심하는 질문을 드렸던 것은 우리들의 처지가 만만치 않아서 그런 것이니 양해해주십시오.”

“아닙니다. 우리 대한제국도 일본에게 많은 시련을 당한 적이 있어서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자 미구엘 말바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미국이 우리의 독립운동을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종 공작을 벌인 것은 물론이고 무고한 인명을 너무도 많이 학살하는 바람에 우리 동지들의 불신이 너무도 팽배해져 있어서 그런 것이니 박 요원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미국이 잔인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까?”

미구엘의 얼굴에 분노한 표정이 솟구쳤다.

“말도 마십시오. 몇 년 전에 일어났던 독립전쟁 때 우리를 배신한 것은 물론 백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자들입니다.”

박상원은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너무도 많은 숫자가 희생되었다는 말에 놀랐다.

“희생자들이 백만 명이나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마을을 아예 몰살시킨 것도 모자라 가족 중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족까지도 전부 사살할 정도로 잔악한 짓을 공공연하게 벌였습니다. 여기 있는 동지들도 미군에 의해 가족들이 희생된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미구엘 발마르가 이렇게 소개를 하자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 눈에서는 모두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박상원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을 다시 봐야겠구나. 저들의 눈빛을 보니 이전에 내가 알고 있는 나약하게만 보이던 필리핀 사람들이 아니구나.’

“그런데 무기는 언제 넘겨주시는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들과 정식으로 조약을 채결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넘겨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지적하신 데로 우리 제국은 여러분을 끝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고 그 증거로 본인이 여기 남아 끝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미구엘이 놀라서 되물었다.

“아!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앞으로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적정량의 실탄을 계속 보급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자 처음에 의심을 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제국은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의심했던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 사람의 거듭된 사과로 이후의 회동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898년 6월 30일, 3만여 명의 미군이 필리핀에 상륙한 이래 한때 십오 만까지 주둔했던 미군은 이때  십만 명 정도가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 당시 필리핀독립군들은 스페인군이 사용했던 구식 소총으로 미군과 싸워왔기 때문에 삼만 정의 러시아소총과 20정의 기관총은 이들에게 백만 대군이나 다름없었다.  

미구엘은 물론이고 필리핀독립투사들은 무상지원이 아닌 지원대가로 팔라완을 요구한 것을 더 믿는 눈치였고 어떤 사람은 대가가 그것만으로 충분하냐고 오히려 반문 할 정도였다.

양국 간의 원조협약은 대한제국을 대표한 박상원과 필리핀독립운동단체인 카푸티난 지도자들 이십 여명이 모두 서명하는 것으로 끝났다. 조약문서명을 마치자 박상원은 조약문을 잘 접어서 동행한 요원에게 넘겨주었고 문서를 받은 요원은 가죽으로 된 가방에 조약문을 넣고는 단단히 밀봉했다. 

그것을 본 박상원이 바로 일어났다.

“자 이제 협정까지 무사히 채결했으니 우리 해군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하시지요.”

미구엘이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바다에는 대한제국해군이 무기를 선적해 와서 조약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박상원의 말을 듣자 미구엘을 비롯한 필리핀 사람들의 얼굴에는 스페인과 미국과 달리 정말 약속을 지킨다는 생각에 감동의 물결이 잔잔하게 퍼졌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박상원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 바로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박상원은 이들과 함께 한나절 걸리는 바닷가접선지로 이동했고 수백여 명의 필리핀독립군들이 호위를 하듯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나절을 이동한 끝에 드디어 목적지인 바닷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가 맞는가?”

바닷가에 도착한 박상원은 동행한 요원에게 질문을 했고 그는 지도로 다시 한 번 더 위치를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접선지가 맞습니다.”

“그럼 연락을 보내도록 하게.”

지시를 받은 요원이 품에 있던 깃발 두 개를 들어 바다를 향해 일정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필리핀독립투사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계속해서 수기신호를 보내는 요원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바다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로 신호를 보냅니까?”

“기다려 보시면 압니다.”

미구엘이 의아해 하며 묻는 말에 박상원이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중정요원이 보내는 수기신호는 바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잠수함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전날부터 접선지에서 선채를 수면 가까이 올려놓고 잠망경으로 해안을 정찰하고 있던 로미오 1번함의 함장인 조성문 중좌는 마침내 기다리던 신호를 확인되자 바로 명령을 내렸다. 

“해안에서 기다리던 수기신호가 확인되었다. 지금 즉시 잠함을 수면으로 부상하라.”

함장의 지시를 받은 로미오 1번함은 곧바로 메인 밸러스트탱크에 공기를 주입했고 부력을 받은 잠함이 수면으로 선채를 쑥 들어냈다. 

미구엘은 아무 것도 없던 수면에서 갑자기 무언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바다 속에서 떠오르는 저것은 뭐지?”

놀라는 미구엘에게 박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것은 바로 본국이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입니다.”

미구엘이 그제야 잠수함을 알아봤다.  

“아! 수중을 운항할 수 있다고 하는 잠수함이 바로 저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미구엘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있는 그의 동료들에게 타갈로그어로 잠수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의 동료들은 처음 본 잠수함을 보면서 시끄러울 정도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러는 동안 수면으로 부상한 잠수함에서 고무보트가 내려졌으며 그 보트에 몇 명의 인원이 타고는 유유히 해안으로 다가왔다. 해안에 도착한 보트가 속도를 줄이자 선착장이 없던 탓에 보트에 타고 있던 장교 두 명이 발목까지 빠져가면서 바닷물을 헤치고 다가와서는 박상원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고생이 많으십니다. 로미오 1번함의 부함장 홍영표 소좌입니다.”

박상원도 반갑게 경례를 한 후 손을 내밀었다.

“어제부터 기다리시느라 많이 지루하셨겠습니다.”

악수를 나누던 홍영표가 펄쩍 뛰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박 요원께서 고생하시는 것에 비해서 저희가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사를 주고받은 홍영표는 박상원의 소개로 미구엘 등 필리핀독립투사들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인사를 마치자 박상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잘 되었습니까?”

“다행히 이들과 협정을 성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홍영표의 축하를 받으며 박상원이 동료요원에게 지시했다.

“자네는 계획대로 로미오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알겠습니다.”

동료요원이 인사를 마치고 고무보트로 걸어가는 것을 본 박상원이 홍영표에게 확인 차 질문했다.

“물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먼저 저희 잠함에 천정의 소총과 총탄을 싣고 왔습니다. 나머지는 필리핀 측이 원하는 곳에 하역을 할 수 있도록 1차로 넘겨질 1만 정의 소총을 싣고 원양에서 수송선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박상원이 미구엘에게 홍영표의 설명을 전해주자 그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졌다. 홍영표가 요원과 함께 잠함으로 돌아간 후 한 척의 고무보트가 더 내려졌고 두 척의 고무보트는 몇 번에 걸쳐 소총과 총탄을 해안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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