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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혁이 설명했다.
“의화단 사건당시 살해당한 독일공사의 일로 청국에 군대를 진주한 독일이 계속해서 산동의 지배권을 확대해 나가고 있자 그것을 경계한 청국이 대항마로 우리 제국을 산동에 끌어넣으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제국과 독일제국과는 군사동맹을 맺을 정도로 상당한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우리가 들어가면 독일도 쉽게 내치지 못하는 점을 노리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산동은 엄연히 청국의 땅인데 구태여 독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겠어?”
“아시다시피 지금 청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그런 청국이 작정을 하고 산동을 먹어치우려고 덤벼드는 독일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파견기간이 끝났다고 군사고문단을 철수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 원세개가 우리 제국을 이용해 독일제국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술수입니다.”
“그래도 이번에 45만정의 소총과 1,000여문의 대포로 무장한 병력이라면 독일을 상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이 우리로 인해 몰락했지만 서양각국은 의화단사건이후 청국을 상대하는 것을 국가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군 형태로 대응하기 때문에 청국의 군대가 아무리 많아도 독일을 힘으로 누를 수는 없습니다.”
의친왕은 그제야 청국이 서양각국에 대해 전전긍긍해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구나.”
“이 모든 것은 청국이 전적으로 지난 의화단사건 때 자초한 것이니 누굴 탓할 입장도 아닙니다. 아랍을 비롯해 다른 곳에서는 항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영국과 독일조차도 청국에서 만큼은 서로 전폭적으로 협력을 하며 청국에 대해 공동대응을 하고 있는 마당이라 당분간 청국은 꼼짝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원세개도 분명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 제국에게 은근히 산동지역의 토지매입을 부축인 것이구나.”
“이번 협상을 하면서 조금 양보해주니 저를 쉽게 본 탓이겠지요.”
의친왕이 은근히 차준혁을 놀렸다.
“왜? 다시 과인으로 분장해 그를 상대하려고?”
“형님전하.”
“하하하하!”
박충식이 두 사람의 말끝에 파안대소하자 의친왕도 크게 웃었다. 차준혁은 의친왕이 자신을 놀린 것이라 따라 웃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크게 웃은 박충식이 의친왕에게 말을 걸었다.
“북해도의 아이누는 아직도 우리를 경계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보다 크게 좋아졌지만 아직 신뢰가 쌓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직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보다 동경의 이준 공사가 보내온 전문을 보셨습니까?”
“예, 받아보았습니다.”
“북해도총독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꺼번에 많은 이주민을 받은 것은 곤란하겠지만 적당한 숫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차준혁이 의친왕에게 질문했다.
“북해도에 남아 있는 일본인들은 큰 문제없습니까?”
“일본이 몇 년간의 전쟁으로 국민들을 얼마나 수탈했는지 금년 초에 우리가 발효한 세법을 보고는 이제 살았다고 만세까지 부르고 총독공관으로 찾아와 절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만세를 부를 정도로 심하게 수탈을 당했었습니까?”
“그렇다네. 특히 일본이 북해도에서 병력파병을 할 때와 그 이후에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몇 달 동안 북해도주민들은 거의 노예같이 살았었다고 하더군.”
차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 국민들을 노예로 만들다니 정말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본토이주와 북해도거주를 결정하라고 하던 때도 군인들과 그동안의 기득권세력을 재외하고는 일반국민들은 거의 본토이주를 하지 않고 거주를 택했었던 것이야.”
“그렇다면 한국화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겠습니다.”
의친왕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그동안 일본정부의 세금정책이 수탈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극심했다고 하더군. 그래서 북해도주민들은 지금 우리의 지배를 받는 것이 훨씬 살기가 편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야. 지금 북해도에서 가장 큰 욕이 뭔 줄 알아?”
“그게 뭡니까?”
“본토로 가라는 거야.”
차준혁은 기가 찼다.
“예? 본토로 가라는 것이 욕이라고요?”
“그래, 그동안에도 본토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소문이 북해도에까지도 간간히 올라왔었는데 얼마 전에 본토로 이주했던 사람들 중에 한 가족이 쪽배를 타고 밤새 노를 저어 북해도로 탈출한 사건이 있었어. 그때 그들의 입에서 본토에서 아사자가 속출한 것은 고사하고 이주할 당시 가져갔던 재물도 모조리 정부에 빼앗겼다고 하는 말이 소문이 난 뒤부터는 본토 가라는 게 제일 큰 욕이 되어 버렸어.”
차준혁은 그 정도로 일본경제가 어려울 줄은 몰랐다.
“어렵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로 일본이 그토록 극심하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배상금을 납부하기 위해 국민들을 쥐어짜는 바람에 해를 넘기는 것이 아주 힘이 드는 거로 알고 있어. 더구나 우리 북해도에는 금년부터 본토에서 보내준 신품종볍씨를 파종해서 지금 수확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북해도는 먹고 사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상당한 물량을 비축할 수 있을 거란 예상을 하고 있어.”
“만주에서의 신품종파종도 성공이라고 하던데 역시 북해도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군요.”
“그렇지, 이건 성공도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야. 북해도는 지평선이 보일정도로 드넓은 평야지대가 있고 태풍도 전혀 없는 곳이라 추위를 제외하고는 농작물생육조건이 아주 좋은 지역이야. 농민들의 말로는 이번에 파종한 신품종 벼가 이전 품종보다 몇 배는 더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건 과인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봐도 낱알이 이전과는 비교가 아예 안 될 정도야.”
차준혁은 이전시대 북해도가 일본에서도 대규모 목장은 물론이고 엄청난 양의 농산물을 생산해서 곡창지대로 이름이 높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일본본토의 이주민을 받아드리시려는 것입니까?”
“지금 북해도의 일본인주민에게 과인이 총독으로서 명령을 내려놓은 것이 있네.”
“그게 뭡니까?”
“금년 말까지 대한제국어로 최소한의 대화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령이야. 만일 이 명령을 어기면 남녀노소 누구도 예외 없이 북해도에서 본토로 추방한다고 해 놓았어.”
“아이고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추방당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열심히 해야겠지. 그리고 우리 총독부에서도 군의 지원을 받아 한국어 교사들을 각지로 파견해 놓고 있어서 교육성과가 아주 좋아.”
“그렇다면 성과가 당연히 잘 나오겠습니다.”
“솔직히 과인의 명령도 큰 작용을 한 것도 있겠지만 북해도주민들 스스로도 동화되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어서 아마 연말 쯤 되면 아주 좋은 성과가 나타날 수 있을 거야.”
차준혁이 웃으며 질문했다.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의친왕도 마주 웃으며 대답을 했다.
“당연히 기대해도 좋아.”
박충식은 젊은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크게 기뻤다.
‘참으로 보기 좋구나. 우리들이 제국을 이끌어가는 것은 앞으로 길어야 20년 인데 차 백작이 저렇게 잘 성장해 준다면 그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박충식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다 내심 감탄했다.
‘이런, 오늘 여러 가지 기분이 좋은 일이 많아서 그런지 술맛도 아주 그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잔에 든 술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해주에서 시험비행을 관람한 차준혁이 황궁에 들어가 황제를 배알하고는 외무성에 들러 이범진에게 업무를 보고하고는 북촌에 마련되어있는 미혼자숙소로 갔다.
이 무렵 신군출신들 중 대부분이 결혼했고 결혼한 사람들은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사택이 지급되었다. 지급된 사택은 연립주택행태이었으며 모두 동일하게 80평의 대지에 30평면적의 2층 주택이었으며 한성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부대주둔지 인근에 별도의 구역을 지정해 건설되었다.
기혼자와 달리 미혼자들이 한성에 오면 이전에 압류했던 북촌저택을 개조한 미혼자숙소에 머물렀다. 이러한 미혼자숙소는 여러 채의 북촌저택을 그대로 활용하여 집단적으로 조성되었으며 당연히 식당도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이 식당은 황궁에서 근무했던 숙수들이 음식을 만들었기에 맛이 아주 뛰어났다. 더구나 매일 같이 방청소는 물론이고 개인빨래까지 해주는 등 호텔급서비스를 해주고 있어서 미혼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신군지도부 일각에서는 너무나도 편한 미혼자숙소 때문에 신군 중 일부가 아예 결혼을 안 하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와 미혼자들을 빨리 결혼시키려면 숙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우스개도 나올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