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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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협상에 전권을 부여받고 있는 차준혁은 그 자리에서 독일의 요청을 승낙했다.

“귀국의 산동지역에 대한 기득권은 보장해 드릴 수 있지만 본국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을 말씀해 보십시오.”

“본국은 그동안 청국과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귀국을 도와 본국병력을 청국에 파병을 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귀국의 요청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차준혁의 말은 오히려 독일이 원하는 바였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귀국의 요구조건대로 들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잘데른은 혹시 대한제국이 산동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차에 차준혁이 너무도 흔쾌히 조건을 승낙하자 대단히 만족했다.

“하하하! 공사께서는 참으로 시원해서 좋습니다.”

“우리 제국은 귀국을 서양제국 중에서 최고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정도 요구조건에 주저한다면 이는 양국의 신뢰에 관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잘데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정말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카이저께서 대한제국이 산동지역에 대한 본국의 기득권만 인정해주신다고 하면 본국이 스페인에게서 매입한 해양영토를 매입가격 그대로 넘겨드리라는 특명이 계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아울러 빠른 시간 내에 귀국의 황제폐하를 직접 만나 뵙고 쉽다는 말씀도 함께 전해오셨습니다.”

“귀국의 카이저께 대한제국을 대표하여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독일의 빌헬름2세는 영토 확장에 대해 아주 욕심이 많았다. 그런 황제가 마리아나제도와 캐롤라인제도를 흔쾌히 넘긴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영토매각협상이 몇 마디 말로 너무도 쉽게 끝내자 아주 기분이 좋던 잘데른 공사가 조금 신중해졌다.

“그런데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러시아군의 병력증강이 포착되고 있습니까?”

“아직 구체적으로 들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귀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가 그동안 극심한 정정불안을 겪다 다행히 총리인 스톨리핀의 개혁으로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만 이는 폭풍전야와 같은 불안전한 안정이란 것이 우리 제국의 판단입니다.”

차준혁은 잘데른이 말을 하는 요지를 바로 파악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국민들의 불만을 외부와의 전쟁으로 해소하려고 시도한다는 말씀입니까?”

“본국정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정불안으로 잠잠하던 러시아가 얼마 전부터 국경인근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고 또 상당한 병력이동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잘데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였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병력을 이동할 곳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뿐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국방성에 연락해서 국방경계를 한 층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동맹국으로서 당연히 전해줄 정보입니다.”

오스만제국이 대한제국에서 구매한 무기구입금액은 상당한 규모라서 송림제철소의 공사잔금은 물론이고 마리아나와 캐롤라인제도 매입금액을 상계하고도 상당한 금액이 남을 정도였다. 

대한제국은 이 금액을 전량 독일산공작기계를 도입하는 것으로 독일정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독일의 기계공업산업은 이로 인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이래저래 양국은 여러 일이 맞물리면서 점점 더 가까워졌다.

대한제국과 독일과의 영토협정은 대한제국외무성대회의실에서 내외신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국 황제의 전권을 위임받은 외무대신 이범진과 독일공사 잘데른에 의해 공개적으로 채결되었다. 

태평양의 두 제도는 1909년 1월1일자로 독일로부터 정식인수받기로 했고 대한제국은 이 지역 통치를 위해 남양군(南洋郡)으로 행정구역을 지정하고 해양영토방어를 위해 별도의 군부대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약의 채결로 유명세를 탄 사람은 다름 아닌 차준혁이었다. 그로 그럴 것이 만주와 상해·심천에 이어 태평양의 두 해양영토까지 대한제국이 대국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3번의 중요한 영토협상을 모두 성공시키면서 ‘협상의 귀재’이라는 별칭까지 들은 것은 물론 어린나이에 남작의 작위도 수여받았기 때문이다. 

양국 간 영토협정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미국은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그것은 위로는 마리아나제도와 아래는 캐롤라인제도에 그리고 오키나와에 대한제국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필리핀과 마리아나제도 중 괌 섬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획득해 강제점령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위협감이었다.

하지만 이때 미국은 대통령선거기간의 막바지였던 시기라 이에 대한 대책수립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1909년 3월 이후로 미뤄졌다.

이러한 미국의 내부 상황으로 대한제국은 다른 나라의 어떠한 견제도 한 번 받지 않고 오키나와에 이어 앞으로 남양군으로 불릴 캐롤라인제도와 마리아나제도에 해양영토로서는 두 번째로 깃발을 꽃게 되었다.

이해 겨울 대한제국은 많은 경사가 있었다. 

가장 먼저 11월 11일 한일전쟁 1주년 승전기념일을 맞이하여 경복궁신궁의 대대적인 낙성식(落成式)이 있었다. 경복궁을 중건할 때는 대원군이 백성들의 허리를 쥐어짜서 낙성을 했기 때문에 온 나라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었으나 신궁낙성식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환호소리로 한성이 뒤덮이면서 온 나라의 축제가 되었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을 생산하는 송림제철소도 이해 겨울 3년 만에 준공되었다. 대한제국공군의 폭격으로 그동안 가동이 중단되었던 북해도무로란제철소도 정상 가동되면서 각종 철강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서한만 안주의 대규모석유화학단지도 완공되면서 대한제국은 중공업은 물론이고 각종산업이 본격적으로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마련되었다. 

대한제국군도 몇 개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육군은 그동안의 걱정거리였던 제식소총이 광무보총으로 전부 교체되었고 천마장갑차의 신형인 캐터필러를 부착하고 장갑능력도 향상된 천마2장갑차도 양산을 위한 본격적인생산준비에 들어갔다.

해군은 황해도 송림의 해군공창은 이미 건설을 마치고 여순의 함정수리소와 함께 대한제국이 보유한 전함들을 순차적인 개장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거재도의 조선소와 함경도 원산의 조선소에서는 일본과 영국의 건함기술자들의 주도에 의해서 최신형전함의 건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병대는 해양영토가 늘어남에 따라 방어할 지역이 많아지면서 병력을 군단규모로 대폭 확충 중에 있었다. 

공군도 오스만제국에서 주문한 복엽기와 비행선 제작은 물론이고 장거리비행을 할 수 있는 대형비행선제작과 본국공군에서 사용할 단엽기생산을 위한 준비로 정신없는 겨울을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이 미국과 러시아와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교전의 첨병역할을 하는 북경주재 대한제국공사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차준혁은 그동안의 활약으로 1909년 봄이 되자 직급이 대리공사에서 특명전권공사로 승진했다.

차준혁은 대한제국특명전권공사로 청국황제에게 신임장을 제출하기 위해 자금성을 찾았다.

천안문을 지나고 중문인 단문(端門)을 지나야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나온다. 그 오문을 지나고 다시 태화문(太和門)을 지나야 비로소 자금성(紫禁城) 정전인 태화전(太和殿)이 나온다. 태화전의 규모는 엄청나서 면적만 해도 2,368(약716평)m²에 이를 정도로 단일전각으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정말 무지막지하게 크구나.’

기단에서부터의 높이가 35.05m나 되는 태화전은 사람들 기를 죽이기 충분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태화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관이 차준혁이 기단을 올라가자 전각 안에 대고 소리쳤다, 

“대한제국 특명전권공사 입시입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문이 열렸다.

내관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습니다.”

내관에게 정중히 답례를 하고 통역인 오장경을 대동하고 태화전의 안으로 들어가자 태화전 내부는 그 화려함이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로 압도했다.

그리고 대전 안에는 십여 명의 청국지도자들이 황제의 옥좌 밑에 좌우로 도열해 있었다.

차준혁은 아홉 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다고 해서 구룡보좌(九龍寶座)로 불리는 황제의 옥좌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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