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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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농담을 차준혁이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나저나 남작으로 봉작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축하연이라도 열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게 무슨 축하할 일이라고 연회를 합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평민이 귀족이 되었다는 것이 가문이나 개인적으로나 얼마나 큰 영광인데 그냥 넘긴다는 말이오.”

“하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시오. 그런데 오늘은 어쩐 발걸음이시오?”

차준혁의 목소리가 낮고 신중해졌다.

“러시아총리와 미국의 국무장관이 파리에서 접촉을 한 일이 있어서 그 문제를 상의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그러자 맥도날드가 바로 받아넘겼다.

“아~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양국의 최고위급이 파리에서 만났다는 정보는 입수했소이다.”

차준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본국에서는 양국의 만남이 우리 대한제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아시다시피 미국과 러시아는 본국과 풀어야할 일이 아직 남아있지 않습니까?”

“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던 맥도날드 공사가 차준혁이 방문한 의도를 바로 짚어냈다.

“만일 귀국이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도와드릴 수는 없고 단지 지난번 같이 중립을 지켜드릴 수밖에 없소이다.”

“귀국에서는 지난번과 같이 절대 중립만 지켜주면 됩니다.”

맥도날드 공사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대영제국은 귀국에게서 오키 제도의 군항도 제공받고 있어서 당연히 도와드려야 하나 아쉽게도 러시아와 미국 양국은 귀국과 같이 우리 대영제국과 별도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 주시오.”

“아닙니다. 지난번에 일본과의 전쟁 때 해 주신바 대로 귀국은 절대 중립만을 지켜 주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 제국이 풀어갈 수 있습니다.”

“알겠소.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만들겠소.”

맥도날드의 확답을 받은 차준혁은 이어서 러시아공사와 미국공사를 연이어 만나서 양국의 자제를 촉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이렇게 차준혁이 북경외교가를 돌고 있을 때 한성에서는 외무대신 이범진은 독일공사 잘데른과 면담을 했고 이 자리에서 이범진은 러시아와 미국과의 접촉에 대해 설명하면서 협조를 부탁했다.

설명을 들은 잘데른 공사가 오히려 역으로 제안을 했다.

“우리 독일제국과 귀국은 군사동맹을 채결하고 있으니 귀국에 어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영국은 북경의 차 공사가 접촉을 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수교를 한 오스만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나 문제는 프랑스입니다.”

대한제국과 프랑스와의 불편한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잘데른 공사여서 이범진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역시 프랑스가 문제가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제국과 프랑스는 아직도 양국 간에 가로놓인 난제를 풀지 못하고 있어서 관계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와는 드리겠지만 프랑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그냥 중립을 지켜 달라고 해서는 쉽게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제국과 프랑스와의 적극교류의 걸림돌이 지난 1866년에 일어난 전쟁 처리문제 때문인데 본국은 그에 대해 일정부분 양보할 용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확실한 선을 그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범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 생각을 말했다.

“희생당한 분들에 대해 프랑스가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당시 가져간 문화재는 반환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이범진의 말을 듣자 잘데른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 정도라면 제가 중재를 나서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본관이 본국과 상의하여 귀국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로코 문제로 양국이 불편한 관계에 있은 것을 알면서도 이런 부탁을 드립니다.”

잘데른이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귀국이 원하는 것은 프랑스의 중립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사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는 중립을 지켜 주기만 하면 됩니다.”

“프랑스도 코친차이나문제로 인해 이곳 극동아시아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더구나 프랑스는 귀국과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귀국의 제안 정도면 중립을 지키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이 승낙할 것입니다.”

“부탁합니다.”

이날의 만남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 잘데른 공사에게서 프랑스가 절대 중립을 지키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알려왔지만 병인양요에 대한 공식사과나 문화재 반환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프랑스의 중립표방으로 대한제국은 그나마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암중모색(暗中摸索)

대한제국이 이렇게 한성과 북경에서 각국을 상대로 발 빠르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을 때 일본 동경의 총리관저에는 몇 명의 인물들이 모여 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사이온지 긴모치의 뒤를 이어 다시 총리가 된 가쓰라 다로와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으로 이렇게 모인 것은 미국이 일본에 극비로 제안한 내용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일본에게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대한제국의 발목을 잡아 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미국은 그 대가로 일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막대한 원조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육군병력을 재무장 할 수 있는 무기는 물론 함정까지도 무상제공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대한제국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한 후 국토방위를 위한 약간의 자위대만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에게는 그야말로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일본 편이 아니었다. 고무라 외상에게서 미국이 제안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반문했다.

“미국이 정말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공식적으로 해 왔다는 말인가?”

“미국공사가 직접 외무성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러시아와 연합하여 조선을 공격한다는 말도 함께 전해 왔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고개가 돌려졌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마가타 원수 각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전쟁에서 패한 후 일왕의 명령으로 할복도 하지 못하고 그동안 고향으로 내려가 거의 칩거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이토 히로부미의 긴급전보를 받고는 급거 상경했던 것이다.

그의 입에서 긍정적인 발언이 흘러나왔다.

“미국과 러시아가 동맹을 해서 조선을 공략한다면 아무리 조선이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 것이오. 더구나 우리 일본이 호응을 한다면 조선은 그야말로 사면초가가 될 것이라 생각하오.”

이토 히로부미도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본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선이 몇 년 사이 아무리 군사력을 증강시켰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분명히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어떻게 조선의 눈을 피해 우리가 군을 다시 징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소.”

두 사람과 달리 하라타 내무대신은 부정적인 답변을 내 놓았다.

“미국이 군사무기를 지원해 준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제국의 재정으로는 10만 병력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이 드는 상황입니다.”

대본영 군령1부장에서 승진하며 해군대신이 된 이케다 해군대신도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우리 해군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미국이 전함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고 하더라도 함정을 운용할 요원이 절대 부족합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케다 해군대신에게 심각한 어조로 질문했다.

“함정운용요원이 그렇게 부족한 상태인가?”

“송구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함정을 기동시키는 것은 민간선박선원들을 강제 징발해서라도 어떻게 대처할 수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기 등을 운용할 필수요원의 부족입니다. 전함에 탑재된 함포나 각종 장비들은 긴 시간 숙달되어야 제대로 운용을 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제국에는 그런 자원이 절대 부족입니다. 더구나 조선이 지난 2년간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어서 그동안 운용요원을 양성할 수조차도 없었던 형편입니다.”

“허! 참,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단 말인가?”

자신의 설명을 들으며 얼굴이 일그러지는 이토 히로부미를 보며 이케다 해군대신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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