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회: 7권-22화 -->
“후!~ 육국과 달리 해군은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병종이 태반이라 사람만 있다고 일조일석에 해군이 양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종전 후 조선이 우리 제국에 있는 우수기술 인력을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반도로 끌고 간 바람에 함정을 수리할 인력조차도 태부족한 형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깊은 탄식을 했다.
“하~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다니 정말 참담한 일이로구나.”
“송구합니다.”
“조선의 악랄함을 탓할 일이지 해군대신이 사과할 일은 아니네. 그렇다고 전문 인력을 마구 찍어 낼 수도 없는 형편 아닌가. 후!~ 제국이 총력을 기울여 양성했던 연합함대가 실종된 후부터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고 봐야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야마가타의 안색도 아주 좋지 않았다.
“해군대신의 말대로라면 지금 당장 미국이 함정을 무상 제공해 준다고 하더라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말인가?”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더구나 조선의 7함대가 지금 요코스카에 주둔하고 있어 당장은 함정을 인도받을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동경에는 황궁 바로 옆에 대대병력이 주둔하고 있어서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동경에 주둔한 조선군병력이야 천황폐하를 잠시 다른 곳으로 이어시킨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던 야마가타도 말을 더 하지 못하고 입에서 결국은 깊은 한숨을 흘러나왔다.
“하!~ 우리 제국이 어쩌다 이렇게 하찮게만 여기던 조선의 눈치를 볼 정도가 되었다니 참으로 굴욕스럽고 참담하구나.”
야마가타는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의 길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 좋은 기회를 그대로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 제국의 당면문제는 그 문제보다 지금 조선으로 엄청나게 빠져나가는 고급인력이 더 큰일입니다.”
이렇게 말을 한 사람은 하라타 내무대신이었고 모처럼 동경에 올라온 탓에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는 야마가타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조선으로 빠져나가는 인력들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나라에서 걱정을 할 정도란 말인가?”
“조선이 그동안 우리가 공들여 양성한 기초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산업 전 분야에 걸쳐 고급인력들에게 각종 특혜를 베풀면서 엄청난 회유공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고급인력들도 생활고를 이유로 지금 엄청난 숫자가 조선반도와 만주로 넘어 가고 있는 형편이라 상황이 심각합니다.”
하라타 내무대신의 대답 야마가타 원수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부에서는 그들이 조선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동안 보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정부에서 개인적으로 설득을 하고 있지만 조선의 연구단체와 대학에서 제시한 조건들이 워낙 좋아 마땅히 그들을 제어할 수단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선은 개인의 이민에 대해 국가권력이 간섭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어서 우리 정부에서도 대놓고 직접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조선에 대학교도 설립되어 있단 말인가?”
“몇 년 전부터 조선과 만주의 주요도시에는 전부 국·공립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
야마가타의 한숨에도 하라타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거기다 종전을 하고 난 후 조선이 배상금명목으로 워낙 철저하게 산업기반을 거덜 내버린 바람에 산업기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어서 그들을 붙잡을 여력조차도 없는 형편입니다.”
야마가타 원수가 이를 부득 갈았다.
“아무리 당장 먹고살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렇지 조선의 꼬임에 넘어가 조국을 등지는 매국노 같은 짓을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들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시국이 힘들 때 흑룡회(黑龍會)나 현양사(玄洋社)·천우협(天佑俠) 중 하나만 남아있었더라도 참으로 좋았을 텐데 안타깝구나.”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이 종전 후 철저하게 색출해 뿌리까지 완전히 없애버렸던 우익단체들을 거론하며 안타까워하자 야마가타가 무언가를 생각한 듯 눈빛을 빛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다.
갑자기 대화가 끊기자 그동안 대화를 듣고만 있던 가쓰라 다로 총리가 나섰다.
“원로들께서는 참전을 주장하지만 부끄럽게도 제국의 형편이 너무 열악합니다.”
“하!~” “후!~”·····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일본의 두 원로인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가 참전을 하자고 주장을 하면서 차츰 전체의 의견이 어떻게 해서라도 참전을 하는 쪽으로 조금씩 의견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그동안 아무 말이 없었던 채신대신인 고토 신페이(後藤新平)가 의외의 발언을 하고 나왔다. 각료 중 유일한 의사출신인 고토 신페이는 본래는 일본의 대표적 식민지경영자로 대국적인 시각으로 정세를 판단하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우리 대일본제국의 현재 형편으로 조금 상황을 달리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토의 능력을 크게 평가하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관심을 표명했다.
“고토 채신상이 무슨 좋은 의견이 있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정말 중요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선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의아해 했다.
“우리가 조선을 간과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하고 있는 회의에서 조선의 군사력에 대한 말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조선의 군사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
고토 신페이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총리관저에 모인사람들의 입이 딱 붙어버렸다. 누군가 입을 열도록 잠시 시간을 주었음에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고토 신페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우리는 조선의 군사력이 얼마 정도인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수십만의 육군과 몇 개 함대가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전부일까요?”
“······”
고토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고 정한론자의 대부인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의 안색은 차츰 창백해져갔다.
그러기나 말기나 고토의 말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케다 해군대신이 질문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연합함대가 실종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사실은 조선함대에 전멸되었던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북해도 병력이 수장된 것을 비롯해 육전에서 조선군에게 전멸한 것을 말입니다.”
이케다 해군대신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육군이 거론되자 야마가타 원수가 발끈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다른 때보다 힘이 없었다.
“만주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을 조선군이 교묘하게 악용했을 뿐이지 황군은 절대 무력하지 않네.”
하지만 고토 신페이의 지적은 신랄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병력이 5만여 명에 가까웠고 야마다 원수 각하를 비롯한 고무라 총 참모장 그리고 노기 대장각하와 전군 사령관 등 우리 대일본제국의 최고의 용장들이 모두 건재한 상태였었습니다. 그런 병력을 전멸시킨 조선군이 정말 우리 육군의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약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조선군에게 전멸한 아군의 전력은 과연 그보다 더 약했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던 사실을 거침없이 말하자 총리관저는 일순 침묵에 빠져버렸다.
그들로서는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육군을 전멸한 대한제국군을 아직까지도 이상스럽게 얕잡아 보고만 있는 모순(矛盾)을 고토 신페이가 통렬하게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자신의 지적에 대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자 고토 신페이는 더욱 강하게 모두를 질책했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종전직전 몇 개월 동안 제국 곳곳이 맹폭을 당한 참혹한 일을 정녕 잊으신 것입니까? 그리고 지난 전쟁에서 발생한 사상자가 무려 백만이나 됩니다. 그런 엄청난 희생을 당했는데도 아직도 조선군을 무조건 얕잡아만 볼 것입니까? 그렇다면 조국을 위해 고혼이 되었을 우리 제국의 백만 호국영령들은 정말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고토 신페이의 말을 들은 모두는 몇 개월 동안 열도를 맹폭하던 불길과 참혹한 현장이 떠올랐는지 더욱 더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