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회: 7권-28화 -->
하지만 두 사람이 감탄하는 것과 달리 기장인 조문호 대위는 느긋하기만 했다.
“보병이 아무리 훈련이 잘 되어 있어도 공군력이 지원되지 않는다면 큰 위험이 되지 않아. 더구나 우리 제국군은 공군은 물론이고 모든 지상군병력이 광무보총으로 개인무장을 마쳤잖아. 거기다 지상전의 제왕인 전차와 장갑차까지 보유한 기계화사단이 있는데 무얼 걱정해.”
조문호 대위의 느긋한 말투에 홍윤석 중위의 흥분한목소리가 이내 잦아들며 차분해졌다.
“하긴 기장님 말씀대로 북방군은 천마장갑차를 보유한 기계화사단까지 있는데 비해 러시아군은 아직도 기병병력이 최고 무력이니 병력 수만 놓고 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더구나 지금 예상되는 격전지점이 평원지대인데 무얼 더 걱정해. 난 오히려 북방군이 러시아군을 너무 학살하지나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이야.”
홍윤석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전쟁에서 적을 많이 죽이는 것이 왜? 걱정되십니까?”
“생각해봐. 내가 알기로 러시아육군은 독일과 맞싸울 정도로 유럽최강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박살이 나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거 아니야.”
“무슨 여파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설명을 해줘도 홍윤석 중위가 확실히 이해를 못하자 조문호 대위가 그를 질책했다.
“이봐 홍 중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것을 아직도 이해를 못해?” “그게········”
홍윤석이 머리를 긁적이자 조문호가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생각해봐. 유럽최강이라는 러시아육군이 천마장갑차와 공중폭격 등의 양면작전으로 일방적으로 박살났다면 내 생각에는 아마도 이번전투가 각종무기개발의 기폭제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홍 중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홍윤석 중위가 그제야 이해했다.
“아~ 맞습니다. 이번에는 만주에서와 같이 종군기자들을 완전히 정라하지 못해 전쟁의 결과가 외부로 속속 알려지겠으니 분명 그렇게 될 공산이 크겠습니다.”
“그래, 이번 전투는 지난번과 달리 전황이 바로 세계에 노출되게 되어 있어.”
“그렇다고 전력을 감추며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무려 삼십만 명의 대규모 정규 병력과 정면 격돌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전력을 숨겨. 괜히 잘못하다가 러시아군이 그대로 만주로 밀고 들어오면 정말 큰일 나는 사태가 발생해.”
두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할 때 양상수 중사가 소리쳤다.
“기장님, 지상에서 대공포사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기장인 조문호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지상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는 화염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 모습을 본 조문호가 피식 웃었다. 웅비비행선은 지상에서 쏘아대는 맥심기관총의 총탄이 닿을 수없는 고도에서 지상관측을 하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대공포를 쏠 생각을 하는 것은 가상하다만 여기까지 총탄이 날아오려면 아직 멀었다.”
조문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러시아군의 주둔지상공을 유유히 비행하면서 지상곳곳을 촬영했다.
1906년 5월부터 건조되기 시작한 웅비비행선은 처음에는 매년 12척씩이 건조되었다. 그러다 만주가 수복되고 북해도와 오키나와 그리고 남양군까지 재국의 강역이 대폭 넓어진 것은 물론 오스만제국 등으로의 수출 등으로 수요가 폭증하자 이때에 이르러서는 매월 3척의 비행선이 건조되고 있어서 전국의 주요지역 상공은 항상 비행선이 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러시아와의 최고접경지역인 만저우리일대는 대한제국북방군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탓에 겨울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군이 훈련하면서 내지르는 고함소리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북방군사령관은 연해도(沿海道)의 발해군사령관으로 재임하다 승진하면서 영전해온 양성환 상장이었다. 양성환은 북방군총참모장인 노영기 소장과 함께 수시로 말을 타고 훈련을 받고 있는 각급 부대를 돌아보았으며 오늘도 다른 날 같이 예하부대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만주에서 징병한 병력이 훈련받고 있는 북방군의 신병훈련소였다.
양성환 상장은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우렁차게 복명복창을 하고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까지 흘리면서 훈련받느라 여념이 없는 훈련병의 모습을 보고 노영기 소장을 불렀다.
“총참모장.”
“예, 사령관님.”
“만주에서 징병한 병력들이 신병훈련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가?”
“아닙니다. 예상보다 훨씬 잘 따라오고 있어서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고 자대에 배치된 뒤에도 선임들과도 무리 없이 잘 융화하고 있습니다.”
“다행이로군. 적지 않은 병력이 입대를 하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말이야.”
“10만 명 이상의 만주병력이 입대를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6개 군에 분산 배치되면 1개 군이 감당할 병력이래야 사단병력 정도라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병훈련기간 중 국어교육과 정신교육은 확실하게 시키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국어교육 때문에 신병훈련기간을 3개월로 늘려 잡고 있어서 퇴소를 할 때쯤엔 언어소통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병사들끼리 언어소통문제로 위화감이 조성되거나 분란의 소지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총참모장이 각별하게 신경을 쓰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내각의 결정에 따라 만주에서 징병을 실시하는 일은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주민들에 비해 워낙 면적이 넓은 탓에 주민들에게 징병에 대한 계몽과 검사통지서를 배부하는 것도 몇 개월이나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5월부터 만주연해지역의 지방행정조직이 총동원되었었고 몇 개월 동안 징병준비를 마친 끝에 9월에 들어서서야 정식으로 징병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상보다 늦게 징병을 시작했지만 그마나 다행이었던 것은 한반도보다 대체복무자 비율이 훨씬 낮게 나왔고 주민들의 참여도도 한반도와 비슷할 정도로 입대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양성환 사령관은 한 동안 서서 훈련병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다 다른 부대를 둘러보기 위해 말머리를 돌렸다.
만주결전에서 백병전의 영웅이란 칭호와 황제에게 직접 태극무공훈장까지 수여받은 김혁(金赫)은 상좌로 승진하면서 북방군의 112연대 연대장으로 영전되어있었다. 만저우리 북방최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112연대는 12월 중순부터 실시하는 혹한기훈련 중 하나인 천리행군을 실시를 위해 군장을 꾸리고 있었다.
연대장 김혁 상좌는 자신도 일반병사들과 같이 행군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직접군장을 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연대참모장 이수영 중좌가 옆에서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연대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 말게.”
“밖이 의외로 춥습니다.”
걱정하는 이수영을 보며 이갑이 웃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혹한기훈련을 실시하는 것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구태여 연대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훈련에 참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참모장이 옆에서 자꾸 말리자 김혁이 웃었다.
“참모장.”
“예, 연대장님.”
“자네가 걷기 싫어서 나를 자꾸 말리는 것 아닌가?”
“아, 그, 그게·······”
참모장 이수영이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으며 당황해하자 이갑이 크게 웃었다.
“하하, 걱정 말게. 자네보고 같이 걷자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일세. 더구나 자네는 참모장으로 연대전체훈련 상황을 통제해야하니 같이 걷고 싶어도 걸을 수가 없어.”
연대장 김혁이 같이 걷자고 할까봐 조마조마 하던 이수영이 이 말을 듣자 내심 크게 안도했다.
“저도 그렇지만 연대장님께서도 전체 부대를 지휘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 전투에서도 그렇지만 훈련도 나는 우리 병사들과 함께 할 것이네.”
이수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하 대대장들도 함께 행군해야 합니까?”
“내가 참가하는데 어느 대대장이 훈련에서 빠진다고 하던가?”
이수영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제가 그냥 여쭤본 것입니다.”
“우리 부대는 최전방에 위치해있고 또 곧 있으면 러시아와 결전을 치러야 해. 이런 전방부대지휘관의 체력은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단련해야 하는 것이야.”
그러면서 김혁은 묵묵히 군장을 꾸렸다.
다음날 아침식사가 끝났으나 북방이었던 탓에 아직 제대로 날이 밝아오지 않았지만 김혁은 자신의 부대의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