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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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황제가 생각이 난 듯 송의식에게 질문을 했다.

“해군대신.”

“예, 폐하.” 

“짐이 듣기로 함정을 건조하는데 있어서 일본인기술자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는데 이유가 있는 것이오?”

“전함건조는 적어도 십년이상의 기술력이 축적되어야만 가능합니다.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 대한제국은 일본의 간계에 휘말려 해군은 물론이고 선박건조기술도 전혀 축적되지 않은 상태라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해군에서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순수 우리 기술자들만으로 함정을 건조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송의식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심각하게 질문을 했다.

“그때가 되면 일본기술자들의 기술숙련도가 더 높아질 것인데 만일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전함을 건조하게 된다면 이는 엄청난 위협이 되지 않겠소?”

송의식은 역시 일국의 황제다운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당연하신 지적입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 지금 국내 각 조선소에 있는 일본기술자들은 벌써 절반이상이 귀화를 했고 나머지도 머지않아 귀화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너무 속단하는 것 아니오?”

“물론 마지막까지 귀화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나올 것입니다만 그들은 따로 조치를 할 계획입니다.”

“따른 조치라니 그럼 그들을 잡아가두겠다는 것이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려고 합니다.”

좋지 않은 말을 하기가 부담이 된 송의식이 일부러 그들의 처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자 황제는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란 것을 눈치 채고는 말을 돌렸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많은 산업기반시설을 가져 왔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본래부터 해양강국이라서 분명 어느 시기가 지나면 다시 해군력을 보유하려고 시도할 텐데 그에 대한 방비는 있는 것이오?”

“좋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선소 등의 기반시설을 철저하게 해체해 왔다고 하더라고 일본은 섬나라의 특성상 언젠가는 함대를 보유하려고 시도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경의 턱밑인 요코스카에 7함대가 주둔해 있고 오키 섬에도 영국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군항이 있어서 일본의 항만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속이고 함정을 건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저희들도 그렇게는 생각하고 있지만 일본이 전함을 건조하려면 적어도 배상금 상환을 모두 끝나는 1920년은 되어야 여력이 생길 것이니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가 그제야 수긍을 했다.

“그렇군. 중요한 것은 국가예산이지.”

“맞습니다. 일본이 이전에는 우리 제국과 대만에서 엄청난 수탈을 자행했기 때문에 많은 전함을 건조할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가 산업기반시설을 대부분을 가져 온 것은 물론이고 대만식민지도 없어지고 북해도와 오키나와까지 잘려나간 바람에 일본경제는 이전보다 10년 이상 후퇴했기 때문에 함정건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송의식의 설명을 들으며 황제가 걱정을 덜었다는 표정을 지을 때 마라도함의 부함장 출신인 경기도 함의 초대함장인 윤병철 대좌가 긴급전문을 가져와 송의식에게 건넸다.

“폐하,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과로로 인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다는 말에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 이등박문이 죽어?”

“그렇습니다. 방금 동경에서 이준 공사께서 긴급전문을 보내왔습니다.”

“우리 대한제국을 병탄하려고 그토록 간악하게 설치더니 결국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구나.”

한일전쟁 당시 황제가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던 이토 히로부미가 병으로 죽었다는 보고를 듣자 만면의 미소까지 지으며 아주 잘 되었다는 표정을 했다.

“이등박문이 이전에 짐은 물론이고 여기 황태자에게 했던 간악한 짓을 생각하면 요즘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는 했었는데 그가 죽다니 정말 앓던 이가 빠진 듯 속이 아주 시원하구나.”

황제가 이렇게 시원해 하는 것과 달리 박충식을 비롯한 대신들은 좋아 하지 않고 오히려 표정들이 어두웠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의아해했다.

“아니 경들은 그 자가 죽은 것이 통쾌하지 않소?”

황제의 물음에 해군대신 송의식이 설명했다.

“물론 개인적으로야 국가의 원흉 같은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것은 너무도 잘 된 일이나 우리 제국으로 봐서는 그의 죽음이 호재가 아니라 악재가 될 것 같아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악재가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전쟁에서 패하고 일본이 지금까지 바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일본정치의 원로 중 그나마 온건론자인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정국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죽고 나면 그동안 칩거를 하다 얼마 전부터 서서히 정치를 재개하고 있는 강경파의 거두인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정국을 주도하게 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야마가타가 강경파라는 것을 알고 있는 황제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자가 정권을 이끈다면 큰일 아니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이토 히로부미가 적당히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견제하고 있어서 강경파가 득세를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야마가타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가쓰라 다로가 총리로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송의식의 설명을 듣던 황제가 박충식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일본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 같소이다.”

황제의 걱정에 박충식이 바로 대답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으니 강경파가 득세할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일본 각지에는 역사학자로 위장한 중정요원은 물론이고 군에서도 정보요원들이 대거 파견 나가 있어서 저들의 동향을 세심히 살피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대공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전쟁을 앞두고 있어서 인지 짐은 이래저래 걱정이 되오.”

“알겠습니다. 한성에 돌아가는 데로 일본정국에 대해 확실히 챙겨보겠습니다.”

이전시대 안중근의사의 총탄에 죽은 이토 히로부미는 이 시대에서는 패전한 나라를 수습하기 위해 과로하다 병사했다. 그의 죽음은 본래보다 조금 늦은 시기였으나 이미 승전한 대한제국에게는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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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고 1910년이 되었다.

휘~~~잉~~~~·

1월의 북방은 눈보라와 함께 차가운 삭풍(朔風)뿐인 그야말로 사방이 얼어붙은 동토(凍土)로 변한다.

영하 수십 도로 내려가는 벌판의 추위는 거칠 것이 없는 바람 탓에 가히 살인적이다.

장작림(張作霖 1873) 대좌는 살을 에는 것처럼 무섭게 몰아치는 삭풍 속에서도 다행히 폭설이 내리지 않아서 참모와 함께 자신의 부대가 담당하는 최전방초소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최전방초소는 본대와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이 초소는 평원인 사방에 비해 그나마 구릉이 높은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랬기에 장작림이 참모와 전방초소로 다가가자 초소장이 병사4명과 함께 황급히 초소를 뛰어나와 인사했다.

“충성! 근무 중 이상무!”

“추운데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초소 안은 많이 따듯합니다.”

“그런가?”

장작림이 말에서 내려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후끈~

초소 안은 초소장의 말대로 삭풍이 부는 밖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한쪽 벽면에 있는 페치카(Pechka 러시아식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조개탄 때문에 웃옷을 벗어야할 정도였다. 

“대장님 웃옷을 벗으시지요.”

참모의 말에 장작림이 눅눅해진 웃옷을 벗어주었다. 그러고는 페치카 옆에 걸린 잔을 들어 주둥이가 넓적한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물을 떠서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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