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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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

장작림은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한동안 있었고 그런 그의 몸은 이미 땀으로 뒤범벅되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권총을 탁자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나는 도저히 자살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총살시켜 주십시오.”

‘그렇지. 너같이 야망이 큰 자가 자살할 수가 없지.’

이렇게 생각한 정화영은 그가 던진 권총을 들어 장작림을 겨누었다.

“우리는 당신의 야망을 키워줄 수도 있고 이 자리에서 총살형에 처할 수도 있는데 그대는 어느 것을 선택하겠소.”

생각지도 않은 제안에 장작림이 깜짝 놀랐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한 그대로요. 살든지 죽든지 선택은 당신 몫이요.”

장작림의 반발이 바로 튀어나왔다.

“나보고 조국을 배신하고 귀국에 충성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정화영은 그 말에 즉답을 하지 않았다.

“다시 또 말하지만 앞으로 모든 것은 당신이 결정하기 나름이란 것을 분명히 알아주시오. 아! 그전에 당신의 결정을 돕기 위해 미리 말해 줄 것이 있소.”

“그게 뭡니까?”

“지금 우리 대한제국군이 여순과 안동방면의 일본군을 전멸시키고 동시에 이용해 이곳 봉천까지 진군해 왔다는 것이오. 그만큼 우리 대한제국의 군사력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고 신중하게 결정하기 바라오. 혹여 이전에 나약한 대한제국으로 생각하다간 당신은 죽어서도 후회하게 될 것이오.”

“·······”

장작림은 난감했다. 죽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는 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에 충성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이전까지 그가 알고 있는 대한제국은 일본에 짓밟히고 휘둘리는 그저 나약한나라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그가 본 대한제국군은 오히려 일본군보다 더 정예 병력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정화영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고심을 했다.

“시간을 주실 수는 없습니까?”

“없소. 지금 여기서 결정하시오.”

“그런데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저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 대한제국은 솔직히 당신의 능력을 높게 사고 있소. 그래서 그대를 키워주고 싶기 때문에 당신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실익을 따지면서 이것저것 저울질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어렵소.”

정화영이 딱 말을 자르자 장작림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와 같이 야심이 큰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죽는 것 보다는 사는 게 났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었다.

“알겠습니다. 귀국을 따르겠습니다.”

정화영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결정했소.”

대화를 듣고만 있던 송의식이 손을 내밀었다.

“귀관의 귀순을 환영한다. 본관은 대한제국 총참모장 송의식이다.”

장작림은대한제국장성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에 놀랐다. 더구나 총참모장이면 대한제국군의 작전을 총괄하는 직책이 아니던가. 장작림은 비로소 대한제국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장작림은 이날로 송의식과 함께 한성으로 내려와 황제를 알현하고 충성맹세를 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대한제국은 장작림을 특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대에게 각종 군사훈련을 받도록 배려해 준 것은 물론이고 귀화를 하겠다는 그에게 귀화도 하지 못하도록 만류했다. 그리고는 귀화하지 않겠다는 한족들 중 젊은 사람들을 모아서 그의 부대에 배속시키고는 정식훈련까지 시켜 주었다.

더구나 이번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나면 요서지역으로 넘어가 본격적인 군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뒤를 봐주기로 약속까지 했던 것이다.

“대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십니까?”

한동안 과거를 회상하던 장작림은 참모의 물음 때문에 현실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었구나.’

“이 소좌.”

“예, 대장님.”

“지금 우리 부대 병력이 모두 얼마나 되나?”

“작년 말 기준으로 4,000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장작림부대의 병력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만주에 있는 한족들이 지원한 것도 있었지만 요서지역에서 지원한 병력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한제국은 지금도 요하를 도강해 오는 경우는 철저히 제한하고 있었으나 장작림부대에 입대하겠다는 경우에는 예외로 도강을 허가해 주고 있었다.

요서지역은 만주에서 많은 인구가 넘어가 있어서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장작림부대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고 그들을 받아들인 장작림부대는 빠르게 군세를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동절기라 병력충원은 몇 달 더 있어야겠어.”

“본부에서 보내온 전문에 의하면 삼월부터 다시 훈련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와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5월 이전에는 목표한 5,000명을 채울 수가 있겠구나.”

“그때가 되시면 드디어 장군의 반열에 오르시게 됩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각하.”

칭찬해서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참모의 축하를 받자 장작림의 얼굴이 밝아졌지만 아닌 척 손을 내 저었다.

“아직 축하받을 때가 아니야.”

“아닙니다. 요서지역의 관리들 수탈이 갈수록 심해져서 이 한겨울에도 요하를 넘겠다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 넘게 대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5,000명의 군세는 분명 바로 채워질 것이고 각하께서는 대한제국 최초의 30대에 장성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대한제국이 나를 특별 대우해 줘서 그런 것이니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어.”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아무리 특혜라고 해도 대한제국이 정식으로 인정하는 육군 장성입니다. 각하께서 자신감을 가지셔도 됩니다.”

“그렇기는 하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제국의 장성인데.”

이렇게 말을 하는 장작림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어렸다. 장작림을 뒤에서 보좌해주는 참모는 중정요원으로 이형택이었다. 

대한제국은 군벌로 성장시킬 장작림에게 그동안 계속해서 군사교육을 시켰고 30대의 나이와 상관없이 병력 숫자에 맞춰 진급을 시켜주기로 방침을 정해서 지금 대좌로 연대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장작림은 처음 대한제국군사력을 의심하던 생각을 몇 년간 훈련을 받으면서 완전히 떨쳐버렸다. 더구나 자신을 군벌로 성장시켜 주려는 계획을 듣고부터는 자발적으로 충성심을 보이고 있었고 그런 그를 보좌하고 감시하기 위해서 대한제국에서는 기무부대원 출신 이형택을 그의 참모로 배치해놓았던 것이다.

대한제국은 장작림을 이렇게 지원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서지역을 얻기 위해서였다. 

대한제국은 지난 연말 만주에서 끝까지 귀화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요서로 보낼 예정이었고 그들을 이끌 사람으로 장작림을 지목했다. 본래 군벌이 될 정도로 야심이 많은 그를 요서로 넘어갈 한족의 지도자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군벌로 성장시킬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다. 

그가 요서를 장악하게 되면 요서는 대한제국의 영향력아래 놓이게 되고 그렇게 성장한 그가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에 입성하게 되면 대한제국은 자연스럽게 요서지역을 장악한다는 장기 전략까지 세워 놓고 있었다.

이 방침은 장작림도 찬성했으며 그는 후일 요서지역의 한족을 강제로 북경방면으로 이주시키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내 걸었다. 대한제국도 청국과 만주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할 요서지역의 한족을 무조건 이주시킬 생각이 없었기에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한동안 쉬고 있던 장작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수고들 하고 우리는 다음 초소를 둘러보러 가자.”

“알겠습니다.”

장작림은 벗었던 겉옷을 다시 걸쳐 입고는 초소 문을 나섰다. 

휘잉~~

순간 북방의 삭풍에 잠시 몸이 오싹 했으나 가슴에 품은 뜻이 큰 장작림은 그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에 올랐다.

“충성! 조심해 가십시오.”

“날이 추워 러시아군이 침략해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간첩들이 넘어올 수 있으니 경계는 철저히 해야 한다.”

“예, 연대장님.”

초소장에게 주의를 주며 말에 올라탄 장작림은 발로 말의 배를 부드럽게 쳤다.

“가자!”

눈이 쌓여 있어 말발굽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장작림의 애마는 적당한 속도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렇게 장작림과 이형택은 천천히 최전방초소에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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