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회: 7권-33화 동상이몽(同床異夢) -->
유럽전선에서 차출한 병력을 집결시켜 훈련하면서 이르쿠츠크에서 겨울을 보낸 러시아군은 3월이 되자 기차를 이용하여 치타(Чита)로 병력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치타는 시베리아철도가 놓이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도시로 시베리아철도는 물론이고 연해도 해삼위까지 연결되는 동청철도의 시작점으로 대한제국 북방군의 주둔지인 만저우리(滿洲里)와는 철도로 연결된 시베리아교통의 요충지다.
러시아군이 치타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하자 대한제국도 10대의 비행선을 투입해 정찰활동을 대폭 증가시켰다.
북방군사령관 양성환 상장은 이러한 러시아군의 이동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참모들을 대동하고 웅비6호에 승선해 치타일대로 집결하고 있는 러시아군을 둘러보고 있었다.
금년 들어 소좌로 승진한 웅비6호 기장 조문호가 지상의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화면에 비춰지고 있는 곳이 러시아군총사령부입니다.”
조문호의 설명대로 모니터에는 한 곳이 비춰지고 있었고 일반건물과 다른 특이한 형태로 생긴 구조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양성환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들이 폭격에 대비한 모양이군.”
총참모장 노영기 소장이 바로 동의했다.
“사령관님 말씀대로입니다. 건물위로 방공호 같이 흙을 저 정도로 덮어 놓으면 폭격에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러시아군총사령부는 단층 콘크리트구조물에 둥그렇게 흙을 두텁게 덮어서 마치 구릉같이 보일 정도였다.
“정면에 러시아국기가 게양된 출입구만 없으면 구릉과 다름없겠어. 그런데 형태가 둥근 것은 흙을 쌓기 편해서 저렇게 한 것인가?”
“저렇게 둥근 형태로 방공호를 겸해서 흙을 쌓아 올리면 폭격의 충격을 더욱 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설명을 듣던 양성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보니 러시아도 이번에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주요시설마다 비록 허술하지만 위장망을 덮어 씌워 놓은 것을 보면 일본열도폭격이 러시아군에게 새로운 방어개념을 도입시킨 것이 분명합니다.”
“흠!~”
한동안 러시아군총사령부를 비추던 화면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노영기의 말대로 곳곳에는 비록 초기형태지만 위장망이 덮여 있는 것이 화면 곳곳에 보였다.
노영기가 그 장면을 보며 설명했다.
“러시아군이 폭격에 대비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총사령부건물과 달리 저렇게 위장망을 설치한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노영기의 말대로 러시아군의 위장망은 지상에서 보면 상당한 은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폭격에 대비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저렇게 이상하게 위장망을 씌워놓으니 오히려 더 확연히 구분이 되고 있어.”
“아직 러시아군이 제대로 공중폭격을 당해보지 않아서 저렇게 허술하게 위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어.”
“그리고 결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 평원지대라서 저런 위장은 오히려 단점이 됩니다.”
“적이 우리의 예상지역으로 밀고 내려올까?”
“저희 참모부 예상으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만일 러시아가 우리의 예상지역을 우회한다면 몽골북방을 가로지르는 케룰렌 강을 건너든지 아니면 깊숙이 아래로 돌아야합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우회한다면 험준한 산악지형을 넘어야 하는데 소수병력도 아니고 30만 명의 대병력이 이동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입니다.”
“하긴 저 병력이 우회하려면 몇 개월의 시간을 더 낭비해야 하는데 그러면 만저우리에 도착하자마자 겨울이 닥칠 테니 그럴 수는 없겠지.”
“맞습니다. 더구나 러시아가 항상 곤란을 겪는 것이 보급입니다. 우회를 하게 되면 당장보급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이번에 기병 전력을 많이 강화시켰다고 하니 일부 기병을 우회시킬 수도 있네. 그러니 그 점은 작전계획을 수립할 때 항상 유념해 둬야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러시아주둔지를 천천히 둘러보던 비행선이 이윽고 치타 역에 도착했다.
양성환 사령관은 기차화물칸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노영기 소장에게 질문했다.
“노 장군. 저게 도대체 뭔가?”
노영기는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러시아군이 열기구를 이용하려는 것 같습니다.”
노영기의 말대로 화물칸에서 내려지고 있는 것은 몇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들어진 소쿠리모양의 바구니와 공기를 데울 수 있는 버너와 연료통 등이 기차의 화물칸에서 내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던 노영기가 한소리 했다.
“러시아군이 쓸데없는 짓을 다 하는군.”
“그게 무슨 소린가, 쓸데없는 짓이라니.”
“러시아가 우리 비행선에 대응해 열기구를 이용할 계획인가 본데 저 열기구는 만드는 것은 간단할지 모르지만 크게 실용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는 한도에서 열기구의 원리와 운용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양성환 사령관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도 낮에는 모르겠지만 밤이라면 상당한 위협이 되지 않겠나?”
“완전한 감시를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이 보유한 야간감시 장비는 불을 때는 열기구를 관측하는 데는 아주 탁월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비행선이 주야간 감시를 하고 있어서 열기구는 전혀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영기 참모장이 단정적으로 말했으나 양성환 사령관은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모든 상황이 예외란 것이 있으니 예하부대에 열기구를 주의하도록 지침을 내려주게.”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내려다보니 보급물자가 정말 엄청나게 많구나.”
“전투병력 삼십만 명이면 지원 병력까지 사십만 명이 움직입니다. 더구나 전시에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은 군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상상이상의 물자가 소요됩니다. 우리 제국이야 그동안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쟁에 대비한 군량미 등의 군수물자를 미리 비축해 놓고 있어서 숫자로만 보셨지 어느 정도 물량인지는 잘 모르셨을 것입니다.”
치타 역에는 산더미 같은 군수물자가 야적되어 있었으며 양성환 사령관이 그 중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건초더미를 보며 감탄했다.
“이야~ 러시아군 중에서 기병 전력이 전체 전력의 4할이나 된다고 하더니 군마에게 먹일 건초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쌓여 있구나.”
노영기 소장도 처음 보는 장면에 감탄했다.
“야~ 저도 저렇게 많은 건초는 처음 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대한제국에서야 군마를 이동수단으로 밖에 쓰지 않고 있어서 몰랐는데 저렇게 건초를 쌓아 놓으니 정말 산더미 같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양성환이 갑자기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총참모장.”
“예, 사령관님.”
“우리 군의 무력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기병이 너무 많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나?”
총참모장 노영기가 딱 잘라 말했다.
“지난 번 만주에서 일본군이 보유한 기관총으로 수만 명의 러시아기병을 단 번에 전멸시킨 것을 기억하시면 기병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철저한 대비는 반드시 선행되어야겠지만 기병은 이제 도태되어야할 병과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노영기도 십만 명이나 되는 기병은 본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군의 화력을 믿었고 더구나 양성환 사령관이 위축되는 것을 막아야할 총참모장이라서 확실하고 강단 있게 말을 자른 것이다.
노영기가 여기에다 하나 더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최강의 기계화사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러시아기병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양성환 사령관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군에는 세계최강의 기계화사단이 있지. 그 기계화사단이면 러시아기병이 아무리 많아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거야.”
양성환 사령관은 이렇게 말을 하며 처음같이 자신만만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 봤다.
그때 기장인 조문호 소좌가 노영기를 불렀다.
“총참모장님, 사령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인가?”
“요동군과 부여군에서 보충되는 병력이 출발했다고 하고 발해군과 친위군도 내일부터는 병력수송을 시작한다는 보고입니다.”
대한제국은 작년부터 군수물자를 미리 갖춰놓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거기에 맞춰 병력수송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