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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양성환이 바로 짐작했다.
“아! 그럼 봉쇄작전도 이미 계획되어 있었습니까?”
박충식이 웃음을 머금은 채 설명했다.
“당연한 일 아니겠소? 방금 전 양 사령관이 직접 일본열도를 비워두는 것이 유인작전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유인작전에 이어 봉쇄작전이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이미 그에 대한 계획도 전부 수립해 두고 있소.”
양성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우리가 열도를 일부러 비워놓는 이유는 두 가지 목적 때문이오. 그 중 하나는 미군의 상륙으로 일본의 국론을 극렬하게 분열시켜 일본을 혼란에 빠트리려는 것과 또 하나는 종전협상을 할 때 미국의 양보를 대폭 받아내기 위해서요.”
양성환이 의아해 했다.
“개전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종전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우리 제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전쟁이 벌어지면 분명 장기전이 될 것이오. 전쟁을 적당히 끌면 미국의 해군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 좋지만 너무 오래 끌게 되면 오히려 우리 제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이라서 적당한 시기에 종전이 되는 것이 좋소.”
“아! 그렇다면 일본에 상륙한 미군을 적절히 활용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소. 봉쇄작전을 벌이면 군수물자가 부족해진 미군은 결국 항복하지 않을 수 없소. 이 미군을 담보로 종전협상을 벌이게 되면 미국에 보다 많은 양보를 받아 낼 수 있을 것이오.”
박충식이 이렇게 상세하게 양성환에게 설명해 주는 이유는 각 군 지휘관들과 참모들도 미국과의 해전에 대한 설명을 함께 들으라는 뜻에서였고 그의 의도대로 다른 지휘관들에게 다시 설명할 필요 없이 모두들 알아들은 눈치였다.
박충식이 회의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도 지적했지만 이번 전쟁은 우리 대한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명심하고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잠시 말을 멈추고 지휘관들을 한 번 더 둘러본 후 강하게 말을 끝맺었다.
“앞으로 대한제국이 두 번 다시 외침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번 전쟁에서 우리 제국의 군사력을 보다 확실하게 유감없이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힘없고 약한 대한제국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세계에 당당히 보여줄 수 있도록 모든 지휘관들은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 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박충식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강한 결의가 그대로 비춰졌다.
대한제국이 분석한 대로 미국의 국력은 완전히 무르익지가 않아서 20척의 대형전함을 동시에 건조하는 것이 쉽지 않아 예정보다 조금 늦은 속도로 함정을 건조해 무장하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미국은 러시아와 보조를 맞춰서 전쟁을 벌이겠다는 생각을 바꿔 북방전쟁이 한 창 무르익을 시기인 연말경에 참전하는 것으로 전쟁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육전과 해전이 별도로 벌어져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수정계획을 불만 없이 받아들였고 오히려 시차를 두고 참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까지 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으로 만주를 탈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병력을 파병하여 한반도까지 완전히 집어삼킬 계획을 하고 있었기에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세 나라는 하나의 전쟁을 각자 다른 계산서를 들고 서로 다른 샘 법으로 열심히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4월 말이 되자 대한제국국방성은 내외신기자들을 불러 모아 중대발표를 하고 있었다.
펑! 펑! 펑!······
국방대신 김종석은 마그네슘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터지는 플래시불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대한제국은 이번전쟁을 앞두고 취재요청을 한 각국언론의 기자들을 국내여행을 불허하는 조건으로 모두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이날 발표장에는 백 명이 훨씬 넘는 외신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김종석이 기자들이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준 뒤 가져온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지금 러시아군이 우리 대한제국국경방면으로 수십만 명의 병력을 이동 시키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전쟁의도로 볼 수밖에 없으니 우리 대한제국은 러시아제국에게 당장 군사행동을 중지시킬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결의를 다지듯 심호흡을 한번 했다.
“만일 우리 대한제국의 요청에 대해 오늘 날짜를 기준으로 오일이내 러시아제국이 병력철수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는 본국을 침략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결과는 전적으로 러시아제국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을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밝히는 바입니다.”
김종석이 여기까지 말한 뒤 자리를 뜨려하자 기자한 명이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바로 질문했다.
“그럼 만일 러시아가 답변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발표하신 것이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대신하는 것입니까?”
김종석이 냉정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보셔도 무방합니다.”
펑! 펑! 펑!······
선전포고로 봐도 무방하다는 말에 엄청난 플래시가 다시 터졌고 김종석은 쏟아지는 내외신기자들의 질문과 플래시불빛을 뒤로 한 채 발표장을 빠져나갔다.
그 시각 북경의 차준혁은 이상설을 대동하고 러시아공사 폰 슈파이어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공사관을 방문했다. 처음 북경에 주재할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폰 슈파이어는 차준혁을 냉랭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차 공사께서 우리 공사관은 어쩐 일이시오?”
차준혁도 폰 슈파이어 공사와는 만주문제 등으로 그동안 별다른 왕래가 없었고 거기다 농담이나 안부를 주고받을 자리가 아니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귀국이 30여만 명의 병력을 치타에서 본국국경과 인접한 보르자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와 정말 전쟁을 하자는 말이오?”
폰 슈파이어가 거만하게 대답했다.
“전쟁을 먼저 시작한 것은 귀국 아니오?”
“전쟁은 무슨 전쟁을 했다는 말입니까?”
“만주와 연해주를 강점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우리는 고토를 수복한 것뿐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소. 그리고 우리가 수복한 지역은 이미 청국과 본국과의 영토협정으로 획정된 곳이란 것은 귀국도 확인한 사실이지 않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양국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오. 더구나 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쏟은 엄청난 예산에 대한 배상과 포로로 잡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왜 송환하지 않고 있는 것이오?”
“우리가 투자를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무슨 배상을 하라는 것이오? 배상은 오히려 한반도를 집어삼키려고 갖은 공작을 벌였었던 귀국이 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리고 연해도 주민들은 귀국이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착을 것을 정녕 모르시오? 본인은 연해주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 중 귀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은 이미 전부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소.”
폰 슈파이어는 말로 하면 이기지 못할 것 같았는지 바로 말을 돌렸다.
“그 말을 하려고 본 공사를 만나자고 한 것이오?”
“아니오.”
차준혁은 이상설이 가져온 서류를 폰 슈파이어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슨 서류요?”
“읽어보시오.”
서류의 내용은 한성에서 발표한 내용과 같았지만 러시아공사 폰 슈파이어는 차준혁이 건네준 서류를 읽다가 소리쳤다.
“뭐요! 지금 한국이 우리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오?”
차준혁은 병력을 철수하라는 요청은 쏙 빼고 반응하는 폰 슈파이어를 보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