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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폭격에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었어.”
“그래서 죽은 말은 소각 처리하라고 했고 부상에서 회복되기 어려운 군마는 전부 도살장으로 보내 육포를 만들도록 지시해 놓았습니다.”
“군마를 구태여 육포로 만들 필요까지 있겠나.”
“이번 같은 폭격이 한번만 있다고는 볼 수 없어서 군량은 되도록 많이 비축해 놓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잘했네.”
군량을 비축하겠다는데 구태여 질책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기에 그의 행동을 치하한 폴리바노프 대장은 각 군 사령관을 보고 질문했다.
“적군이 전투기까지 있는 마당에 우리가 열기구를 아무리 많이 띄워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데 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소?”
하지만 질문을 하는 폴리바노프 대장이나 각 군 사령관들의 군사적지식이 거기서 거기였기에 처음 당하는 폭격에 대한 대응책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주둔하고 있는 치타가 스타노보이산맥의 지류인 야블로노비산맥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라서 대공 포대를 설치할 언덕조차도 변변하게 없는 형편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자 폴리바노프 대장의 안면이 더욱 일그러졌다.
“큰일이로군. 대책이 없다면 이대로 적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때 침묵하던 2군 사령관 에베르트 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의 피해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큰 걱정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만일 한국이 우리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철도를 폭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간 폴리바노프 대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철, 철도를 폭격해?”
하지만 에베르트 대장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렇습니다. 각하께서는 몇 년 전 우리 러시아제국과 일본의 전쟁이 막 끝날 때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곳곳이 단선되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물론이오. 그 바람에 우리 제국이 철도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아주 고생을 하지 않았소.”
그렇게 대답하던 폴리바노프 대장의 안색이 갑자기 확 변했다.
“그럼 그 폭발사고가 한국군의 폭격에 의한 것이란 말이오?”
“한국은 그때 막 만주를 집어삼키고 만저우리에 병력을 주둔시키던 시기였습니다. 본관이 알기로 그 당시 폭발사고로 단선되었던 지역이 전부 이 일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 당시에 한국군이 이미 비행선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3군 사령관 브루실로프 대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동의하고 나왔다.
“에베르트 대장의 말씀대로 이전의 단선사고는 한국의 폭격에 의한 것일 공산이 큽니다. 본관이 알기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비행선은 적당한 준비만 갖추면 시베리아도 무착륙으로 횡단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브루실로프 대장까지 거들고 나서자 폴리바노프의 안색이 더욱 해쓱해졌지만 지금 상태로는 대응방법이 전혀 없었다.
“하!~ 이거 정말 큰일이로군.”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방법을 제시 못하자 브루실로프 대장이 대안을 들고 나왔다.
“일단 적의 공습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면 병력을 분산하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병력을 분산하자고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적군이 일부러 탄약고와 군마만을 중점적으로 폭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적이 2차 공습을 할 때 지금같이 우리 군이 밀집대형으로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으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을 수가 있습니다.”
쿠로파트킨 대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적의 공습도 문제지만 병력을 분산하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도망병이 속출할 수 있으니 병력분산 만큼은 반드시 제고해야 합니다.”
“그래도 앉아서 죽임을 당하는 것 보다 낳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이참에 아예 계획을 바꿔 남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생각지도 않은 쿠로파트킨의 제안에 3군 사령관 부르실로프 대장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바로 남진을 하자고요?”
“그렇습니다. 어차피 피해를 입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새로 보급을 받으려고 기다리다 적의 공습을 다시 받게 되면 사기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바에야 병력을 먼저 이동시키면서 재보급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부르실로프 대장이 반대했다.
“만일 적이 철도를 폭격한다면 보급도 없이 적과 맞서는 경우도 예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 치타에서 재보급을 기다리다 적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모두 끝장이라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두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은 것을 듣고 있던 폴리바노프 대장은 바로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잠시 고심하던 폴리바노프 대장은 결단력이 없는 지휘관의 전형처럼 일단 며칠 상황을 지켜보자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다.
“오늘 일로 인해 앞으로의 병력전개를 당장 결정하기가 쉽지 않으니 일단 며칠 상황을 두고 보면서 기차로 병력을 남진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좋겠소. 참모장은 차르께 먼저 상황을 보고하고 이르쿠츠크의 지원부대에게 연락해 총탄과 건초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재보급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시오.”
“알겠습니다.”
폴리바노프의 지시를 받은 참모장 알렉세이에프가 바쁘게 방을 나섰다.
땡! 땡! 땡! 땡!······
참모장이 나가자마자 갑자기 비상종이 타종되자 폴리바노프 대장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무슨 일인가?”
벌컥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참모한 명이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문도 두드리지 않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각하, 적기의 공습입니다.”
“뭐라고!!”
폴리바노프 대장이 황급히 놀라 밖으로 나가자 남쪽 하늘에서 또 다시 십여 척의 비행선이 창공호의 호위를 받으며 유유히 날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한국군에게 얼마나 많은 비행선이 있기에 또 다시 저렇게 많은 비행선이 날아오는 것인가?”
하지만 그의 질문을 대답하는 러시아군지휘관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이때부터 며칠 동안 오전 오후는 물론 한밤중에도 대한제국의 공습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고 이 폭격으로 러시아군은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며칠 동안 대한제국공군의 공습에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으며 시달리던 러시아군은 이르쿠츠크에서 치타까지의 시베리아횡단철도가 폭격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남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보름간에 걸친 이 남진은 후일 ‘피의 행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그야말로 무모한 짓이었다.
대한제국은 이번 전쟁에 실시할 폭격공격을 위해 많은 양의 신형폭탄을 이미 만들어 놓고 있었다.
거기다 지난 번 일본의 항복으로 일본열도에서도 엄청난 양의 시모세포탄도 압수해서 가져왔던 터라 폭격에 사용되는 폭탄은 차고도 넘쳤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융단폭격에 러시아군은 제대로 된 대비조차도 하지 못했을 뿐더러 해빙기에 들어서며 사방이 진창으로 변한 땅은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군의 발목을 한없이 붙잡았다. 이렇게 불리한 환경과 엄청난 폭격을 당한 치타에서 보르자까지의 350여km에는 러시아군의 시체가 끝이 보이지 않게 줄줄이 깔려있었다.
수많은 우역고절 끝에 전체 병력의 거의 절반정도를 잃어버린 러시아군이었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남하한 끝에 땅이 굳어질 무렵 최종목적지인 보르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군은 이때 요동에 있던 합동지휘본부를 흥안도 도청소재지인 하이랄(해위이海拉爾)로 전전배치 시켜놓고 있었다. 도청청사에 임시로 마련된 대한제국합동지휘본부에서 참모본부장 안연태가 육군대신 강명철에게 전황을 보고했다.
“러시아군 지휘부가 드디어 그들의 목적지인 보르자에 입성을 했다는 보고입니다.”
강명철이 질린 표정을 했다.
“정말 질긴 놈들이야. 삼십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입었다면 거의 궤멸이나 다름없는데 끝까지 남진을 감행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