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회: 8권-10화 격전(激戰) -->
악전고투 끝에 보르자에 도착한 러시아군 중 기병대는 처음폭격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것에 비해 남진할 때는 오히려 피해를 훨씬 덜 입었다.
그것은 말을 타고 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이 비록 진창이기는 하지만 웅비비행선이 나타나기만 하면 즉각 사방으로 병력을 분산시켜버릴 수 있었던 기동력덕분이었다.
물론 창공호의 무지막지한 기총세례까지는 피할 수 없어서 남하하는 동안 많은 사상사와 함께 귀중한 군마도 수없이 잃어야 했지만 보병에 비하면 그 피해는 조족지혈이라고 할 정도였다.
러시아원정군은 보르자까지 내려오는 동안 너무도 많은 병력손실을 입었다. 거기다 시베리아횡단철도가 거의 폐선이 될 정도로 폭격을 받자 늘 그래왔듯 보급이 당장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상자로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보급도 문제가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러시아군으로서는 전황을 단숨에 뒤엎을 전기가 필요했다. 그러자 폴리바노프 총사령관은 이미 계획한바와 같이 일부 기병병력을 제외한 기병대의 모든 병력인 7만 명의 병력을 일시에 동원하여 대한제국군을 기습할 대규모 기병작전을 지시한다.
본래 기병대의 이러한 우회기습작전은 치타에서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대한제국의 초기폭격에 기병대가 너무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그 수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기가 늦춰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실패한 작전이었다. 러시아군기병대가 본대에서 병력을 이탈하자마자 주야간 감시와 폭격을 병행하고 있던 웅비비행선의 감시망에 바로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 후 이들이 남하하는 내내 한 척의 비행선이 아예 전담하며 동행하고 있었다.
기병집단군사령관 케렌스키 대장은 행군도중 날이 저물자 하루를 머물기 위해 마련된 군막에서 기병집단군소속 사단장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적에게 우리의 기습작전이 노출되었는데 정말 이대로 계속 돌격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구나.”
그러자 그의 가장 측근인 기병집단군참모장 야코프 질린스키 소장이 나섰다.
“무조건 진군하라는 총사령관각하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진격해야 합니다.”
“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무모하게 진군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러시아기병대도 척후병의 정찰을 통해 대한제국기계화사단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을 통과하기만 하면 바로 한국군배후입니다. 기병의 장점을 잘 살린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자 사단장 중 한 명이 참모장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맞습니다. 상황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기병대의 장점인 기동력만 잘 살린다면 충분히 돌파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사단장도 동조했다.
“어차피 명령이 떨어졌으니 무조건 돌파해야 하니 굳게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령관님께서 흔들리시면 기병대의 사기와 바로 직결됩니다.”
여러 사단장들이 거듭해서 의욕을 북돋아주는 말을 해도 케렌스키 대장은 쉽게 마음을 굳히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마음을 다 잡았는지 안색을 바꾸고는 참모장을 불렀다.
“참모장.”
“예, 각하.”
한국군이 처음 보는 신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던가?”
“척후병의 보고로는 철로 만든 차위에 기관총이 거치되어 있는 형태의 신무기라고 했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발상이로군. 어떻게 자동차를 쇠로 덮을 생각을 했는지 말이야.”
“그것도 그것이지만 한국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단장 중 이바노프 소장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이 반드시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으니 참모장께서는 예단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쓸데없이 한국의 기술력이 높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가뜩이나 떨어져 있는 사기가 더욱 저하될까 우려됩니다.”
참모장 질린스키 소장이 바로 사과했다.
“본관이 너무 앞서 생각했습니다. 방금 전의 말 취소하겠습니다.”
하지만 케렌스키 대장이 손을 저었다.
“이미 우리에게 없는 비행선과 비행기로 한국의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모든 장병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야. 더구나 한 달 가까이 폭격을 받아 떨어질 대로 떨어져있는 사기인데 뭐가 더 떨어질게 남아있겠나. 차라리 현실을 정확히 직시해서 이 난국을 돌파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네.”
“그러시다면 정면으로 적진돌파를 감행하실 것이십니까?”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 다른 것은 둘째 치고라도 지금 우리 군의 사기로 봐서는 정면 돌파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네.”
참모장이 질린시키 소장이 거들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차피 지금 우리의 처지로는 정면 돌파가 최선의 방안입니다.”
케렌스키 대장이 참모장의 말을 듣고 사단장들을 돌아보자 그들의 얼굴은 모두 결의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케렌스키 대장이 이를 악물었다.
“모두의 하나로 의견이 모아진 것 같으니 지금부터 내일 있을 전투에 대해 논의합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참모장 질린스키 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 극동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기관총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전투에서는 병력을 분산해서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케렌스키 대장도 그 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공감을 표시했다.
“어느 정도로 병력을 분산해서 공격하는 것이 좋겠는가?”
“제 생각에는 아군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질린스키는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들은 사단장 이바노프 소장이 이번에는 찬성하고 나섰다.
“좋은 의견이십니다. 어차피 우리는 내일 마주칠 방어부대가 목표가 아니라 만저우리에 있는 한국군본진입니다. 내일 있을 전투는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면서 돌파해야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바노프 사단장이 적극적으로 동의하자 다른 사단장들도 모두 참모장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들도 내일의 전투보다 그 다음의 전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들이 모여지자 작전회의는 아주 진지해 졌으며 이후 상당시간 동안 회의를 한 사단장들은 모두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신들 사단으로 돌아갔다.
사단장들이 돌아가고 난 뒤 케렌스키 대장은 독한 보드카를 큰 잔에 따라 벌컥대고 마셨다.
“커~~”
마치 목이 타듯 단 숨에 큰 잔에 든 보드카를 들이키는 모습을 보고 참모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각하, 많이 힘드신 가 봅니다.”
“후~ 임관을 하고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러봤지만 이번같이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인 것 같네.”
“마음을 굳게 잡으십시오. 각하를 바라보고 있는 7만 명의 장병들이 있습니다.”
참모장의 위로를 들은 케렌스키 대장은 일어나서 군막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지상에는 사방으로 끝없이 군막이 펼쳐져 있었고 하늘에는 흔들면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온 하늘 가득 별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던 케렌스키 대장이 참모장에게 뚱딴지같이 한소리 했다.
“내일 잘 해낼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어느 정도 인명피해는 예상되지만 충분히 적의 방어선을 돌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강을 넘어갔다오면 어떻겠나?”
참모장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케룰렌 강을 도하했다 다시 도하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걸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군량으로는 버티지를 못합니다.”
케렌스키 대장도 그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답답한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강이 없었으면 남쪽으로 완전히 내려갔다 올라오면 되었을 것을 참으로 아쉽구나.”
이렇게 말을 하며 그는 다시 또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밤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밝히며 지상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