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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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치타를 한국군이 포위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군의 힘을 결집한다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르실로프 사령관께서는 적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다시 남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의 병력으로는 그것은 곤란하고 전면전을 벌여 퇴로를 확보 한 후 이르쿠츠크까지 후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르쿠츠크까지는 1,000km나 되는 거리인데 그 거리를 한국군과 교전을 하면서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있다가는 식량도 없이 겨울을 맞이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브루실로프 대장의 계속된 주장에도 쿠로파트킨 대장은 계속해서 부정적인 주장을 펼쳤다.

“서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산맥을 걸어서 넘어야 하고 또 중간에 자리한 베르흐네우딘스크가 적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그 지역을 피해서 십만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이르쿠츠크까지 갈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바이칼을 돌아갈 수는 더더욱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내 생각에는 기왕 후퇴를 하려면 바이칼을 우회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쿠로파트킨 대장의 주장에 브루실로프 대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예? 바이칼을 우회한다고요? 그 넓은 바이칼을 돌다 잘 못하다가는 노상에서 겨울을 맞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큰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전을 벌이며 적의 수중에 들어간 지역으로 후퇴하는 것보다는 힘이 들더라도 바이칼을 우회해서 아군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었지만 폴리바노프 총사령관은 갑자기 자신들의 처지가 한심스러워 졌다.

“우리가 어쩌다 공격도 아니고 후퇴를 놓고서 이렇게 갑론을박을 벌이게 되었는지 우리 처지가 참으로 한심스럽게 되었소.”

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토록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던 두 사령관들의 입이 바로 붙어버렸다. 

잠시 후 이번에는 에베르트 대장이 나섰다.

“두 분 사령관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지금 우리군의 처지로는 공격이든 후퇴든 빨리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한 동안 묵묵부답이던 폴리바노프 총사령관이 참모장을 찾았다.

“알렉세이에프 대장.”

“예, 각하.”

“귀관도 남진은 어렵다는 생각이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이상하다니?”

“한국군이 베르흐네우딘스크를 점령하고 열흘이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공격을 해오지 않고 있잖습니까? 보통이라면 이미 배후를 점령한 저들이 계속 도발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 폴리바노프 총사령관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하군. 본래라면 대대적인 공격을 해오면서 아군의 힘을 차츰 빼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지?”

에베르트 대장이 다시 나섰다.

“본관이 생각하기에는 한국군이 지금 시간끌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끌기를 한다고 했소?”

“그렇습니다. 지금 아군의 처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구태여 자신들 병력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참모장 알렉세이에프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2군 사령관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한국군은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입단속을 시켜도 시간이 지나면 병사들이 베르흐네우딘스크가 함락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군량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군스스로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폴리바노프 대장은 그제야 한국군이 공세를 취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렇군. 한국군이 지금 우리가 스스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이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폴리바노프는 곧바로 작전지도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 작전지도에 나와 있는 한국군의 병력배치가 이해되었다.

“이들의 병력배치를 보니 우리가 북쪽으로 퇴각하도록 퇴로를 열어주고 기다리고 있었군.”

이렇게 말을 한 이유는 한국군이 치타를 포위하고 있는 것이 소쿠리 같은 형태로 바이칼을 우회할 수 있도록 북쪽방향은 병력을 배치해 놓지 않고 있었다.

“참모장.”

“예, 각하.”

“적의 병력배치가 서쪽과 남쪽에 집중되어 있겠지?”

“그렇습니다.”

폴리바노프의 고개가 심하게 끄덕여졌다.

“그랬었어. 한국군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

참모장 알렉세이에프도 동의했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런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잖아. 그동안 군량수송은 크게 어렵지 않았었잖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기차수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우마차로 군량을 실어 날랐었고 그렇게 수송하는 물량이 한계가 있어서 지금 아군의 비축한 군량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폴리바노프 대장은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얼굴을 했다.

“알겠어. 이제 확실하게 알겠어. 한국군이 지난 한 달간 우리의 숨구멍만을 틔워놓고 우리의 눈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야.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들은 그동안 한국군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고 말이야.”

이렇게 말을 한 폴리바노프 대장은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그동안 한국군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폴리바노프는 곰곰이 생각하다 1군 사령관 쿠로파트킨에게 질문했다.

“1군 사령관.”

“예, 각하.”

“사령관께서는 바이칼을 돌아 퇴각을 하자고 했는데 그곳에 아군이 진군할 길도 없는데 행군이 과연 가능하겠소?” 

“길을 내며 전진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그 지역은 침엽수림이 우거져 있어서 적의 공습을 대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수림을 헤치고 길을 내면서 전진해야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인데 시베리아의 혹한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10월말까지는 이르쿠츠크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소?”

“지금이 8월 하순이라 우리만으로는 돌파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르쿠츠크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폴리바노프 대장이 의아해했다.

“이르쿠츠크에서 어떻게 도와준다는 말이오?”

“우리의 상황을 먼저 무선으로 알려 이르쿠츠크에서도 바이칼을 따라 길을 내면서 북상하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쓸데없는 장비는 모두 버리고 행군을 한다면 10월 말까지는 충분히 이르쿠츠크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양쪽에서 길을 만들자는 설명을 듣자 폴리바노프 대장이 결심을 굳혔다.

“그렇다면 한번 해 볼만 하겠어.”

치타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직선거리로는 600km가 조금 넘는다. 하지만 바이칼 호수를 돌아야하고 지형이 험해서 철도도로 1,000km가 넘는 거리다. 

그것도 먼 거리인데 지금 1,200~300km가 넘는 거리를 돌아가자고 하는 폴리바노프 총사령관의 결정에 러시아군사령관들 중 누구도 거리가 멀다고 반대하지 않았다. 

‘400km는 먼 거리가 아니고 40도의 술은 독한 것이 아니며 영하 40도는 추운날씨가 아니다.’라고 하는 러시아속담이 있을 정도로 시베리아는 상상이상으로 넓다. 이런 탓인지는 몰라도 러시아군 장성들은 몇 백km를 더 돌아가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고 폴리바노프의 결정을 오히려 지지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이 바이칼의 우회를 결정한 것은 대한제국군이 울란우데를 점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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