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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달콤한 허니문 (9/95)


9. 달콤한 허니문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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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도착하자 소유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뛰어다녔다.

그녀는 마치 10대 소녀로 회귀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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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고 싶었던 곳은 없어? 미국에 추억이 많다며.”

태오의 질문에 소유가 잠시 망설이다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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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지겨울 거예요. 신혼여행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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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라도 좋아. 오히려 흔한 관광지보다 낫지.”

분명 그리운 곳으로 돌아왔는데, 소유는 눈가가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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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대해 알고 싶기도 하고.”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니면,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태오는 미리 렌트해 둔 스포츠카 문을 열었다.

언제 이런 걸 또 다 준비해 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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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미국인들만큼이나 키가 크고, 이국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태오를, 모두가 돌아보았다.

잘생긴 남자는 어느 나라에서나 잘생겼구나.

새삼 이 매력적인 남자가 제 남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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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겨워도 뭐라고 하기 없어요.”

소유는 코를 찡긋하며 차에 올라탔다.

태오는 문을 닫아 주고서, 운전석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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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데.”

소유는 태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들의 차는 어느 명문 고등학교 앞에 멈췄다.

운이 좋게도 기념일이라 학교 안엔 학생들이 없었다.

학교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두 사람은 텅 빈 교내로 들어섰다.

소유가 숨을 들이쉬었다.

거의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 빛나는 시절이 낡은 비디오처럼 재현되었다.

친구들과 샌드위치를 나눠 먹던 계단.

서로의 패션과 연애담을 공유하던 교실.

그리고, 노아에게 초대장을 받았던 바로 그 캐비닛.

소유가 아련한 손길로 철제 캐비닛을 어루만졌다.

문을 열자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텅 빈 내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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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zel.”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깜짝 놀란 소유가 캐비닛 문 뒤의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태오가 하이틴 영화 남자주인공처럼 눈을 찡긋하며 능글맞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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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wanna come to my party?”

가벼운 분위기였다.

아마 지난번에 이야기해 준 ‘가면무도회’가 떠올라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 모양이다.

분명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고였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성인이 된 노아도 태오처럼 아주 멋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그렇게 성장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시절에만 하더라도 소유는 여러 가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는 포부도 있었고,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리라는 꿈도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상상만큼 황홀하지 않았다.

이렇게 변해 버린 저를 노아가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하니 처량하게 눈물이 났다.

그러다 그 시절만큼 찬란하지 않은 저를 빤히 보는 여전히 찬란한 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소유가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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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Yes. Of course.”

태오가 손을 내밀었을 때, 소유는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꿀처럼 달콤한 달’이라는 특수한 이벤트에 취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그였지만, 그와의 인연이 필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우리의 뜻밖의 결혼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싶어졌다.

이런 나를 알게 되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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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그 남자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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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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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자가 너무 당당한데?”

태오와 나란히 거니는 복도에선 그리운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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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 씨야말로 아직 첫사랑을 못 잊었잖아요. 나는 그 애의 진짜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에요. 찔려야 할 사람은 오히려 당신이에요.”

태오가 짧게 웃었다.

그러나 소유는 그를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굳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꿈 같은 과거가 빛나는 만큼 어두운 현실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이곳에 온 게 잘한 일이었을까.

왜 더 괴로운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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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넌 인기가 많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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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그렇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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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남자애도, 널 좋아했을걸?”

태오가 확신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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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너에게 초대장을 보낸 게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생각해?”

노아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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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걸?”

 

* * *

밤은 금방 찾아왔다.

먼저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던 소유는 문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우린 지금 단순히 관광을 온 게 아니라 신혼여행을 온 거잖아?

아무리 순수한 소유라도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밤에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공연히 식은땀이 났다.

욕실에서 나는 물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소유는 안절부절못하며 창가를 서성였다.

연애 결혼은 아니었지만, 만약 그가 부부의 의무에 대해 운운한다면 거부할 자격이 없었다.

법적으로는 누가 뭐래도 부부였으니까.

아니, 애초에 거부할 생각도 없었나.

난 지금 저 사람과 더 깊은 관계가 되길 바라고 있나.

소유가 스스로의 마음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즈음, 태오는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러다 벌을 서듯 창가 앞에 우두커니 선 소유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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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서서 뭐 해? 와인이라도 마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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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유가 하얗게 질려 뒤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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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놀래.”

태오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소유는 아니었다.

이렇게 가운 하나 달랑 거치고 있으니까 진짜 제법 부부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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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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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요! 좋아요.”

소유의 목소리 톤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높아진 상태였다.

태오가 영문도 모른 채 와인을 잔에 따랐다.

소유는 그에게서 잔을 빼앗듯이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술기운이라도 있어야 이 낯부끄러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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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태오는 술이 약한 소유를 타박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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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하지만 소유는 결국 와인잔을 모두 비워내고 나서야 잔을 내려놓았다.

예상대로 곧바로 취기가 올라왔고, 소유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마주 보고 앉아 진득하게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던 태오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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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준비됐어요.”

소유가 결연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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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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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첫날밤이잖아요.”

그제야 태오는 소유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허니문 속 신부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것이다.

참나.

태오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사이 소유는 과감하게 태오의 가운 매듭을 쥐었다.

하지만 술기운으로도 그 이상은 무리인지 그 상태로 끙끙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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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으면 제대로 해.”

태오는 여유롭게 말했지만, 소유의 가여운 손은 작게 떨리기까지 했다.

반칙이잖아.

먼저 자극한 주제에 그렇게 겁먹은 모습을 보이면.

태오는 쥐고 있던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소유를 단숨에 안아 올려 침대 위로 함께 쓰러졌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소유는 작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동아줄처럼 태오의 가운을 꽉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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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왜 감아. 원하는 대로 해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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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그러니까…….”

태오는 사랑스러운 모습의 소유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정말로 곤란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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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와이프, 보기보다 화끈하네.”

이제 소유는 발끝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자그마한 과일 같은 그녀를 보다가 태오는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너무나 체온이 높았던 나머지 태오도 덩달아 데일 것 같았다.

역시나, 오늘은 무리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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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이제 끝.”

눈을 질끈 감고 개구쟁이처럼 콧잔등을 찡긋한 태오는 소유를 꽉 끌어안았다.

야한 느낌의 포옹이 아닌 포근한 느낌의 포옹이었다.

태오의 아래에 깔린 소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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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넌 최선을 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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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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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정 하고 싶거든, 네가 준비되는 날 해. 기다려 줄 수 있으니까.”

소유에게 고마운지 태오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태오의 가운에서 손을 뗀 소유가 곰돌이 인형을 안듯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따뜻한 그의 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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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나 조금 웃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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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당황스러웠지. 상의도 없이 와인을 다 마셔 버리면 어떡해? 금방 잠들어 버릴 거면서.”

그의 말이 맞았다.

소유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신혼여행 첫날인데, 허무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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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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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잊었나 본데, 우리 오늘 첫날밤 아니야. 첫날밤은 진작 치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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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날.”

태오의 농담에 장단을 맞춰 주며 소유가 푸스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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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은 우리 그냥 이러고 있자.”

태오가 소유의 손을 풀어내고 깍지를 껴 맞잡았다.

차가운 결혼반지들이 마주쳤다.

아직은 반지 자리가 어색하지만, 점점 더 익숙해지겠지.

태오가 속박하듯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너무 크게 뛰었다.

그에게 들릴까 두려울 정도였다.

뱀처럼 파고드는 그의 손에 맹독이 있어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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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이 없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죽은 사람 이야기 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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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 주위엔 없는데.”

태오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소유가 그에게 사로잡히지 않은 반대편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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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쭈. 나 계속 자극하면 너한테 좋을 거 없어.”

태오가 경고를 해도 이번엔 반대편 볼에 입을 맞췄다.

그렇게나 경계하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가벼운 뽀뽀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었을까.

단순히 술기운이라고 하기엔 과한 면이 있었다.

이러다 그와의 스킨십을 더 바라게 되면 어떡하지.

그의 첫사랑이 이루어지면 꼼짝없이 비켜야 할 처지일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땐, 너무 슬프잖아.

그에게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은 자꾸 그 사실을 거역했다.

그에게 다가가고, 그를 가지고 싶어졌다.

혹시 이러다 보면 그가 첫사랑을 밀어내고 자신에게 빠져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를 품으며.

당신을 유혹하고 싶어졌어.

감히, 분수도 모르고.

평소와 다른 뭉근한 소유의 눈빛이 태오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다른 극의 자석처럼 태오는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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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네.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소유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태오가 소유에게 강하게 입을 맞췄다.

다소 급한 호흡으로 소유를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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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그의 머릿속이 자신으로 가득 차길 바랐다.

첫 키스 때보다 더욱 난폭하게 파고들었던 태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또 본능에 잡아먹힐 뻔했다.

필사적으로 소유에게서 멀어지자 소유는 살짝 부은 입술로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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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왠지 평소랑 달라.”

그렇다고 그런 그녀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미칠 듯이 매혹적이라 난처할 정도였다.

더 야수처럼 굴기 전에 태오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옆에 털썩 누웠다.

소유는 한참 동안 그 상태로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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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취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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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 것 같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태오도 덩달아 몽롱해졌다.

태오는 참을성이 동나기 전에 이 열기가 얼른 식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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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참다못한 태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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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깥 소파에서 잘게.”

이런 사태를 대비해 스위트룸을 예약해 두길 잘했다.

태오는 얼른 소유의 향기와 숨소리가 가득한 침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소유는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나른하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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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당시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꽤나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걸 왜 모르고 넘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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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 씨.”

소유가 다급하게 태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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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나 안 보내주면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몰라.”

태오는 거칠어진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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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 사물함에서 분명 그는,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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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 영어 이름이 ‘Hazel’인 건 어떻게 알았죠?”

그 순간, 넓은 객실이 고요해졌다.

가장 큰 소음이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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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나를 Hazel이라고 불렀잖아요.”

모호한 눈으로 소유를 바라보는 태오의 얼굴에 달빛이 쏟아졌다.

그것이 더욱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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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에게 알려 준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당신은 ‘헤이즐’ 시절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친근하게 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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