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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트문 (14/95)


14. 하트문
2022.05.16.


그날 이후 돌아온 첫 번째 금요일.

서령이 주최하는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날이었다.

미리 들은 바에 의하면 상류층 여자들의 독서 모임이라고 했다.

물론 실상은 독서보다 더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일 테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엄청난 집안의 여자들이었다.

소유는 오전부터 들이닥친 여성 경호원들에게 거의 납치되다시피 숍에 끌려왔다.

순간이동을 하듯 VIP용 프라이빗룸 의자에 털썩 앉았을 때, 옆에는 이미 완벽한 준비를 끝낸 서령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정신을 못 차리는 소유를 보던 서령이 혀를 쯧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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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 모임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 사람이야. 알겠니? 곧 내가 맡고 있는 것들을 모두 물려받아야 하니까.”

서령이 우아하게 향수를 칙칙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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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며느리가 남에게 꿀리는 것 못 참는다.”

순간 태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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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사람한테 흠집 나는 거 못 참는데.’

모자 사이는 모자 사이네.

닮은 구석이 있는 것 보니.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이 서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소유의 턱을 쥐고 그녀의 이목구비를 하나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서령이 손을 들어 대기하고 있던 스텝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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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목선이 드러나는 로우번으로, 메이크업은 색조보단 자연스럽게 장점을 살리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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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서령의 한 마디에 스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정신없는 가운데 서령이 소유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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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지금 네가 갈 곳은 웃으면서 칼을 꽂는 전쟁터란다.”

서령의 포스에 눌려 버린 소유가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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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치를 보느라 다들 너에게 친절한 척하겠지만, 뒤로는 너의 단점을 찾아내려 할 거야. 웃음거리가 되기 싫다면 사소한 흠이라도 보이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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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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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얼굴은 반반해서 다행이지.”

칭찬 아닌 칭찬을 하고서 서령은 사라졌다.

소유가 전문가들의 손길에 재탄생하고 있을 때, 서령은 뒤에서 소유가 착용할 옷과 구두, 액세서리 등을 고르고 있었다.

당연히 강화 그룹의 체면을 위해서겠지만 누군가가 저를 위해 저토록 정성을 쏟는 게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상황들이 익숙했을까.

결혼식 준비를 할 때만큼이나 긴 시간이 흐르고, 소유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머리 스타일과 메이크업.

그녀는 정말 태생부터 상류층이었던 여자 같았다.

감각이 뛰어난 서령이 골라 준 원피스까지 걸치자 준비가 끝났다.

서령은 소유의 가는 목에 손수 목걸이를 채워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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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를 축하한다.”

 

* * *

그날 독서회의 주인공은 단연 새로 들어온 강화 그룹의 맏며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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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듣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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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강 부사장이 안목이 높다니까요.”

평가와 칭찬 사이의 말들을 들으며 소유는 억지로 웃느라 애썼다.

흠을 보이지 말라던 서령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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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네요?”

그리고 그곳에서 달갑지 않은 상대를 만났다.

소유가 심호흡을 하고서 뒤로 돌았다.

세리도 이 모임의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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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꾸며 놓으니까 소유 씨도 우리랑 비슷해 보여요. 깜빡 속겠네.”

겉으로는 태연하게 소유를 조롱하고 있었지만 세리는 꽤 빈정이 상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화 그룹 맏며느리 자리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소유를 깔보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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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아침부터 준비한 보람이 있었네요.”

세리의 말에 맞받아치던 소유도 소유대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세리는 태오의 첫사랑이자 서령이 가장 원했던 며느리였기 때문이다.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는 두 여자 사이, 고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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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텐데 오늘도 와 줬구나, 세리야.”

서령이 나타나자마자 세리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서령에게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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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와야죠, 어머니. 그나저나 오늘 소유 씨 이렇게 꾸며 준 거 어머니시죠? 정말 어머니 감각은 볼 때마다 감탄한다니까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리가 서령의 며느리인 줄 알 테다.

소유의 눈이 건조하게 세리의 팔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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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음 주말에 라운딩 한번 가실래요?”

세리는 보란 듯이 서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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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태오랑 저녁도 같이…….”

그러던 그때,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서령이 무척 단호하게 세리의 팔을 풀어낸 것이다.

소유도, 세리도 당황한 나머지 잠시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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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오늘은 우리 새아가를 소개해 줘야 해서.”

그러곤 소유를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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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니? 앞으로 나오렴.”

서령이 소유의 팔목을 잡고 앞으로 끌고 나갔다.

뭐? 새아가?

헛웃음을 연달아 짓던 세리는 옆에 놓인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단상으로 나가는 사이 서령은 소유의 귀에만 들리게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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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무례하게 구는 인간들에겐 너도 무례해져라. 네가 무시당하는 건 즉 우리 강화 가(家)가 무시당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분명 혼이 나는 상황 같았는데,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늘 참고 고분고분하게 굴라는 이야기만 듣고 자라온 소유에겐 생경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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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을 읽는 대신 제 며느리를 소개해도 괜찮겠지요?”

남들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선 서령은 여유롭게 웃었다.

주목받는 자리에선 고개를 숙인 채 숨죽이고 있는 게 익숙하던 소유였지만, 자신의 편을 들어 준 서령에게 보답하기 위해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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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를 뜯어보는 시선들과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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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서회의 새로운 일원이 될 아이랍니다.”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다.

막상 맞서 보니 해 볼 만도 했다.

소유는 허리를 세워 당당하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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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게 많더라도 어여쁘게 봐주세요. 그래도 우리 집안 사람이니까.”

뼈가 있는 서령의 말에 흠칫 놀란 사람들이 어색하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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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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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주 볼 사이잖아요.”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유일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가 세리였다.

데뷔하자마자 모두의 관심을 받는 소유는 세리의 계획 속에 없었다.

서령이 저토록 자신의 며느리를 싸고돌 줄은 몰랐다.

이러다 진짜 태오를 영영 잃을까 두려웠다.

내가 먼저였는데.

어릴 때부터 강태오의 옆자리는 내 자리라고 생각해왔는데.

세리는 소유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뭐라도 된 듯 꼿꼿하게 선 소유는 세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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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쥐뿔도 없는 게.”

 

* * *

고된 노동을 한 것도 아닌데 온몸에 진이 빠졌다.

감정 소모가 무척 심했던 탓이리라.

심지어 새 구두는 은근슬쩍 여린 발목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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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기나긴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순간만 꿈꿔오던 소유에겐 날벼락이었다.

무어라 대답도 못 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어느 커다란 체온이 뒤에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소유가 작게 비명을 질렀지만, 곧 진정이 되었다.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태오는 꽁꽁 싸매듯 소유의 어깨를 잡았다.

서령의 표정은 굳었고, 다른 사람들에게선 부러운 환호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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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사이 좋은 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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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는 다르다니까.”

민망해진 소유가 그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지만, 태오는 오히려 더 팔에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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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제 와이프 데려가겠습니다.”

태오는 어머니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여자의 모임에 남자가 나타나는 건 암묵적인 룰로 금지되어 있었다.

게다가 저런 팔불출 같은 행태라니.

서령은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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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도 많은데 안 떨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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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끼리 뭐 어때요? 나쁜 짓도 아니고.”

태오는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의뭉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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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손자 보고 싶으시다면서요. 그럼 부부끼리 보낼 시간도 좀 주셔야죠. 애는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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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오!”

결혼 직후 시작된 아들의 아찔한 일탈에 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저런 놈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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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며느리를 아끼시는지 직접 보약까지 지어 줄 정도라니까요.”

아무래도 작정하고 어머니를 골탕 먹이려는 듯했다.

그런데 모자의 전쟁에 말려든 소유는 무슨 죄란 말인가.

애꿎은 등이 터진 소유가 다급하게 남편의 경거망동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남들 눈엔 그것조차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애정행각으로 보였다.

세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차를 타고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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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도 이만 갑시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서령이 독서회 회원들을 통솔했다.

여기서 더 해봤자 집안 망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줄줄이 서 있던 차들이 모두 떠나자 소유가 태오를 홱 째려보았다.

소유에게 입이 막혀 볼살이 위로 밀려 올라간 태오는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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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웬일이야?”

소유는 손을 내리고 따지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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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구해 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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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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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고 얼굴에 다 쓰여 있던데. 너 나 아니었으면 내일 아침까지 못 풀려났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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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이라 할 말은 없는데, 이렇게까지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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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능글맞게 웃으며 태오가 소유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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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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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곤란하게 만드니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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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널 먼저 곤란하게 만들었어.”

소유가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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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고, 끌고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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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신 적 없어.”

태오가 가만히 소유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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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오늘은. 아니, 오히려 날 신경 써 주시고, 챙겨 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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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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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로 나쁜 사람을 알아. 그런데 어머니는 그 정도는 아니야.”

분명 지난 실수는 있었지만, 공 여사처럼 인격을 말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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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름대로 날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있으신 중인지도 몰라.”

태오가 반대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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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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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야.”

이거 혹시 부부싸움이란 걸까.

소유는 문득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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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너무 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웃어 버리면 태오가 진짜 화를 낼까 봐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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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착한 사람일수록 나는 나쁜 사람이 될 거니까.”

태오의 눈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어긋나 있는 구두와 닿은 뒤꿈치가 모두 까져 빨갛게 변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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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괴롭힘당하고, 끌려다니는 거야. 바보야.”

순간 소유가 비틀거렸다.

태오가 순발력을 발휘해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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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싫어하는 짓 한 번만 더 할게.”

태오가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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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뭘 하려고?”

불안해진 소유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태오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집 안에서 해도 부끄러운 짓을 길바닥에서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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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 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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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더 쳐다보잖아.”

발버둥 치는 소유를 아랑곳하지 않고 태오는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소유가 성난 토끼처럼 굴었지만 아픈 발로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유가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으며 조수석 문을 연 태오는 기어이 소유를 앉히고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소유가 씩씩대며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태오는 우두커니 서서 소유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허리를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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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냐.”

지난번 변신은 실패였다.

그러나 이번 변신은 소유 고유의 매력이 더욱 살아나서 사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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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지금 저 눈빛.

마치 키스하기 직전의 그 눈빛 같은데.

태오가 서서히 다가오자 소유가 황급히 자신의 입술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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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뽀뽀할 기분 아니야.”

그러자 태오는 부위는 딱히 상관없다는 듯 그녀의 볼에 쪽 입을 맞췄다.

얼굴이 붉어진 소유를 보고 소년처럼 웃음을 터뜨린 태오는 문을 닫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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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오. 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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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약하기 힘든 레스토랑 예약해 뒀어.”

태오는 소유의 안전벨트를 매 주며 먹을 것으로 그녀를 꾀었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긴 불편해서 하루 종일 음식은 손에 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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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신발부터 사자.”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소유는 운전하는 태오의 옆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미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꼭 데이트하는 것 같아.

차가 당장 땅에서 떠올라 하늘로 날아도 놀라지 않을 만큼 기분이 들떴다.

창문에 설렘에 찬 얼굴이 비쳤다.

나,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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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태오가 핸들을 여유롭게 잡으며 창문 속 소유를 마음껏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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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이 맞아. 사실, 나 정말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어.”

가로등의 불빛, 달의 모양, 뒤차의 전조등까지 하트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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