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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좋아해 (15/95)


15. 좋아해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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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자주 가던 중국집 주인 아저씨, 아픈 거 다 나으셨대. 그래서 다시 식당 열어.”

간병인은 식사를 하러 나가고, 병실 안엔 소유와 아버지 둘뿐이었다.

소유는 침대 바로 옆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침부터 느껴진 미열이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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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얼른 나아서 나랑 같이 자장면 먹으러 가.”

볕이 참 좋은 날인데, 아버지는 이렇게 병실에만 누워 있어야 한다니 안타까웠다.

처음엔 살아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욕심이 생겨난다.

눈을 뜨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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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빠한테 못 한 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소유는 부쩍 아버지를 재촉했다.

만약 돌아오는 길을 잃은 거라면 제 목소리를 듣고 올바른 방향을 찾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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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억울해. 사실 아빠가 재혼하고부터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어. 아빠 눈치 보느라 행복한 척했는데 외로웠어. 난 언니한테 맨날 괴롭힘만 당했어. 이제는 안 감출래. 아빠한테 다 이를래.”

소유가 아버지의 팔에 기대어 눈물을 뚝뚝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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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만 일어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들어 줘요. 어리광 받아 줘요.”

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태오에 대한 마음 좀 들어 줘요.

소유는 차오르는 서러움을 굳이 참지 않고 모두 표출했다.

이제 참는 것은, 지쳤다.

이미 너무나 많이 참아왔다.

이기적으로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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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내년이면 서른이야. 돌아가신 엄마보다…….”

그때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소유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식물처럼 미동도 없던 아버지의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인 것이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소유는 똑똑히 보았다.

소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병실 문을 열고 나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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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어찌나 초조했던지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복도를 거닐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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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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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훈 님한테 무슨 일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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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아빠가 움직이셨어요!”

그 말에 간호사는 바로 달려왔고, 전공의는 담당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담당 교수가 병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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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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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분명히 봤어요. 왼쪽 손가락을 움직이셨어요.”

담당 교수가 아버지의 눈을 억지로 벌리고 불빛을 비춰 보았다.

그러나 동공의 변화는 없었다.

이번엔 팔을 세게 꼬집어 보았으나 역시 반응은 없었다.

담당 교수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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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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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제가 분명히 봤어요! 진짜예요. 다시 한번만 봐 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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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분. 가끔 다른 요인에 의한 움직임을 착각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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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아니에요. 아빠가 스스로 움직이셨어요.”

돌아올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이는 환자의 보호자를 볼 때의 의사 마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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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겨우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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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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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으로 봤단 말이에요.”

늘 얌전하던 소유의 격렬한 반응에, 간호사가 그녀의 팔을 한쪽씩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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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분. 일단 진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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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매일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소유가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담당 교수는 고개를 숙이고 걸어 나갔다.

소유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때마침 창밖의 하늘에서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 화창했던 날씨는 꿈이었다는 듯.

예고에 없던 폭우에 사람들이 모두 실내로 숨어들었다.

소유의 아버지도 다시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유의 미열은 고열로 변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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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이벤트로 내년 상반기 매출 상승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시각, 태오는 경영팀, 마케팅팀과 함께 중요한 회의 중이었다.

그러다 뒤에 서 있던 비서가 심각한 얼굴로 다가와 태오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따분한 표정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있던 태오가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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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0대 젊은 고객들을 타깃으로 SNS 홍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태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사장의 돌발행동에 마케팅팀 팀장이 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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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

팀장이 넋이 나간 듯한 태오를 불렀다.

그러나 태오는 그대로 뒤로 돌아 회의장을 뛰쳐나갔다.

아마 처음일 것이다.

태오가 본격적으로 강화 호텔의 경영을 맡은 이후, 이토록 무책임하게 회의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은.

언제든 공과 사가 확실하고, 냉정한 성격이었기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그였다.

열의 넘치던 회의실에 적막이 내려앉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오는 곧바로 주차장으로 달려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아슬아슬한 속도를 내며 소유의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거센 빗줄기에 교통 상황은 서서히 혼란스러워졌다.

점점 더뎌지는 속도에 답답해진 태오가 세게 핸들을 내리쳤다.

그러던 중 우산도 없이 비틀비틀 걷는 한 인영이 보였다.

태오는 걸음걸이만 보고도 그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였으니까.

태오는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을 뚫고서 단숨에 소유의 앞으로 달려갔다.

재킷을 옆으로 펼친 태오는 그대로 소유를 끌어안았다.

소유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기력하게 태오에게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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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잖아.”

그렇게 말하는 태오도 흠뻑 젖어 얼굴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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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왜 안 써.”

태오는 최선을 다해 소유에게로 떨어지는 비를 막았다.

태오의 품속에서 얼굴을 묻고 있던 소유는 팔을 들어 올려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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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분명히 봤어.”

소란스러운 빗소리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웅얼거림이었지만, 태오의 귓가엔 똑똑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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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이 아니란 말이야.”

태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떨어뜨려 놓았다.

빗방울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들이 연달아 소유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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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겠지만, 분명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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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

태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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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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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고.”

의사도, 간호사도 믿어 주지 않았던 말을 태오는 믿는다고 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고맙던지.

홀로 서 있던 들판에 내 편이 생긴 기분이었다.

줄곧 간절하게 염원해 왔던 일들이 모두 신기루로 변해 버린 이 상황에서, 우산을 써야겠다는 생각마저 잊게 만든 충격적인 허탈함 속에서 태오는 소유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확신을 들으니 아까 전의 사건이 그저 착각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의 믿음과 두 사람의 믿음은 그 무게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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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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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믿어.”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지 말지.

나한테 이렇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지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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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탓이야.”

소유는 쿵쿵 뛰는 심장을 억누를 수 없었다.

팔을 뻗어 젖은 태오의 머리를 뒤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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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네 탓이라고.”

그러자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소년 같은 눈망울이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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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 내 탓이야.”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태오는 무조건 다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커다란 손바닥은 소유의 머리 바로 위에 있었다.

덕분에 소유는 우산이라도 쓰고 있는 것처럼 안락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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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차로 가자. 이러다 정말 감기 걸리겠다.”

소유는 차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태오의 손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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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야.”

태오가 뒤로 돌아 소유를 내려다보았다.

태오의 머리카락 끝에 매달려 있던 큰 물방울 하나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건 잔잔하던 소유의 내부로 스며들어 큰 파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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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라는 건 아는데.”

태오의 시선이 붙잡힌 제 손목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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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직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는 것도 아는데.”

태오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붉어진 그의 눈가가 작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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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말 할 염치가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아는데.”

온 세상에 멈춘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주변 소음이 먹먹하게 멀어지더니 소유의 호흡, 목소리, 심장 소리가 태오를 에워쌌다.

그 순간은 소유와 저, 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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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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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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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를 좋아해.”

태오는 익숙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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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아졌어.”

소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독점하고 싶었다.

조금 위험한 생각일지 몰라도, 그녀를 가둬 두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사람을, 저만 탐내는 것이 아닐 것이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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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너한테 내 마음을 받아 달라고 하는 건 아냐.”

소유를 힘껏 끌어당기려던 태오는 뒤이은 말에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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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너와 진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야.”

참으로 이상한 고백이었다.

고백과 동시에 넘어갈 수 없는 선이 생겨났다.

태오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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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고 말해 주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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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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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비가 오길래. 네가 내 앞에 있길래. 아무도 믿지 않는 내 말을 너만은 믿어 준다고 하길래. 비에 젖은 너도 참 지나칠 정도로 멋있길래.”

거기까지 말하고서 소유는 정신을 잃었다.

털썩.

제게로 쓰러지는 소유의 몸을 받아낸 태오가 애달피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불덩어리였다.

태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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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방금 고백받고, 차였네.”

 

* * *

강화 전자의 협력체가 된 이래 유아 물산의 확장세는 공격적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중소기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연옥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다해를 무사히 재현과 결혼시킬 수도 있겠지.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연옥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편이 있는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연옥은 최대한 슬픈 목소리를 짜내며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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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예요. 언제나 수고가 많으시죠?”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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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정말이에요? 우리 소유가 직접 봤대요?”

그녀는 기쁜 듯 울먹였지만, 미간은 보기 흉하게 구겨졌다.

그 괴리감이 과하게 커,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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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우리 그이는 꼭 힘을 내서 깨어날 거예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커피 한번 사 들고 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연옥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겨우 다 이뤘는데.

내 인생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 일보 직전인데.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지.

비록 훔친 거지만 여기까지 키운 건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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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야.”

잠시 후 연옥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내연남이자 공범인 윤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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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계획, 실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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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결정한 거야? 난 또 한참 망설이길래 그 아저씨한테 정이라도 들었나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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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내 말 명심해.”

윤범이 기분 나쁘게 히죽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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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진짜 실패하면 안 돼. 다시는 깨어날 수 없게 숨통을 확 끊어 놔야 한다고.”

간호사의 말대로 그저 소유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 김에 불안한 요소는 제대로 제거해 두는 게 좋다.

자신의 미래와 다해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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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공 사장님. 맡겨만 주십쇼.

정희훈.

참 순진했던 남자였다.

어설픈 불쌍한 척에 단숨에 속아 넘어가던 그런 미련한 남자.

자신이 가여운 딸의 좋은 엄마가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런 한심한 남자.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지.

지금까지 고마웠어.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나를 도와줘.

이만 죽어 주라.

당신은 쓰임을 다 했고, 난 훨씬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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