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 두 얼굴의 남자 (20/95)


20. 두 얼굴의 남자
2022.06.06.


태오는 심기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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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얼른 나으셔야죠. 소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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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래. 바쁜데 와 줘서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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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와야죠.”

재현이 태오 앞에서 보란 듯이 희훈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멀찍이 떨어진 태오와, 옆에 딱 붙어 사근사근하게 말을 건네는 재현 중 누가 더 사위 같냐고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재현일 테다.

진짜 사위는 태오인데 말이다.

재밌네.

태오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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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유가 회사 일 배우기로 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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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가르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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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하셨어요.”

재현과 다해의 사이를 모르는 희훈은 내심 재현이 자신의 딸과 잘되길 바랐다.

어릴 때부터 잘 알아 온 사이였고, 재현이라면 소유에게 평생 잘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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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 텐데, 네가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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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재현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희훈이 문득 병풍처럼 서 있는 태오에게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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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일 퇴원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와도 돼요. 계속 온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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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내일 시간 맞춰서 오겠습니다. 제가 집까지 잘 모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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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필요 없어요. 이미 재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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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가 아버님 사위니까요.”

태오는 몹시 공손한 어조였다.

하지만 그의 말엔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건 아마 그가 강화 그룹의 장남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본능 비스름한 것일 테다.

평범한 사람은 배운다고 한들 절대 흉내 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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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해야 할 도리 정도는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재현이 고개를 돌렸다.

태오는 애초부터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듯 바로 눈이 마주쳤다.

순간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태오는 그런 재현의 동요를 알아챈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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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시간이 늦었군요, 석재현 씨.”

희훈이 눈치채기 전 태오는 능숙하게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화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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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가셔야 아버님도 쉬실 것 같은데.”

그러자 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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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만 가 봐. 내일 출근도 해야지.”

재현이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태오가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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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배웅하겠습니다.”

그는 어느새 분위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건 즉, 아까 전의 그는 재현에게 밀린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현의 재롱을 관전하기 위해.

역시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것 같다.

재현은 은근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문으로 걸어갔다.

태오가 문을 열어 주고서 재현을 따라나섰다.

병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재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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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진짜로 배웅이라도 해 주실 생각은 아니시죠?”

재현도 나름대로 태오에게 앙심이 있었다.

소유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제 것이라 여겨 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가 모조리 빼앗아 가고 만 것이다.

그것도 몹시 간단하게.

처음 느껴보는 열등감에 재현은 몸까지 떨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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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렇게 친근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태오는 뒷짐을 지고서 여유롭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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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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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쩔 수 없이 두 남자는 나란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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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뭐죠?”

재현은 태오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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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전공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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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현 씨 집안은 대대로 의사 집안이라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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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죠?”

태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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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죠, 관련.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의사 양반께서 무슨 수로 소유를 돕겠다는 건지 궁금해서.”

정곡이 찔린 재현이 얼어붙었다.

재현의 집안은 유서 깊은 의사 집안이었다.

같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추앙받는 권위자를 많이 배출했다.

말 그대로 엘리트였고, 막대한 부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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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공부 말고 또 뭘 할 줄 아시나?”

재현의 집안은 태오의 말대로 경영이나 장사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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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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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서 네가 소유 옆에 있는 걸 도저히 못 보겠는데.”

어느새 태오는 예의 따위는 개나 줘 버린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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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언제나 말뿐인 데다, 틀린 선택만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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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뭘 안다고 그렇게 지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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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를 위해서 마지못해 정다해의 마음을 받아 줬다고?”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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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유아 물산이 탐이 났던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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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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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정다해를 죽여 버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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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미소를 짓는 태오는 그저 겁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심 같았다.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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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없애 버려야지. 오히려 달래기 위해 마음을 받아 줬다고? 뭐 그런 엿 같은 소리가 다 있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태오가 턱짓을 했다.

재현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태오의 기다란 손가락이 닫힘 버튼을 누르자 어느새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둘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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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책임감도 없고, 네가 가진 것을 다 버릴 깡도 없지. 그래서 네가 소유랑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고.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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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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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내가 소유랑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은 떨어뜨려 놓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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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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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절대 소유 행복하게 못 해 줘.”

태오의 기에 눌렸던 재현도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에 꿈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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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있으니까 본성을 드러내시네요. 아, 이런 폭력적인 모습을 소유와 아저씨도 봐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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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너랑 정다해가 어떤 사이였는지 알게 되는 건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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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은 하지 마시죠. 아무리 나이가 같아도 지킬 건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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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꼬우면 너도 반말하시든가, 의사 양반.”

태오가 경멸스러운 듯한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소유의 모습이 보였다.

태오가 소유에게 손을 흔들며 재현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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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소유 앞에서 쩔쩔맨다고 만만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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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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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계속 심기 건드려 봐. 내가 무슨 짓을 할지.”

태오의 시선이 문득 재현의 손목에 닿았다.

매일 같이 수술을 하는 재현에겐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였다.

재현이 본능적으로 손목을 뒤로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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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새끼.”

태오가 픽 웃고서 소유에게로 걸어갔다.

재현이 경악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소유의 머리를 넘겨 주는 태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너무나 무서운 남자였다.

소유는 절대 알 수 없는 두 얼굴을 가진 그런 남자.

* * *

소유는 피곤한 나머지 하품을 찍 했다.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고재상 이사와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 벌써부터 피곤했다.

한 회사를 경영한다는 건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강화 그룹과의 협력으로 갑자기 규모가 커진 유아 물산은 상황이 더 복잡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시무룩하게 고민하는데,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태오의 모습이 보였다.

몇 주째 매일 병원에 오겠다던 약속을 꼬박꼬박 지키고 있는 그였다.

분명 바쁜 거 다 아는데.

그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아는데.

그는 퇴원 바로 전날인 오늘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병원에 찾아왔다.

그런 태오에게 고마우면서도, 도통 마음을 열지 않는 아버지로 인해 미안함이 생겨났다.

아버지에게 노아에 대한 추억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태오의 만류로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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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뭐 하고 왔어?’나 ‘왜 늦었어?’ 등의 물음이 아닌 수고했다는 딱 네 글자가 들려왔다.

그런데 태오의 그 담백한 인사에 놀라울 만큼 피로가 확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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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좀 수고했어, 오늘.”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상대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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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병원에서 자는 건 안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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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그냥 아빠랑 있을 수 있어서 좋아. 밤새 수다 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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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끼고 싶다.”

태오가 정전기가 일어 부스스해진 소유의 머리를 만져 주는 사이 어쩐지 경직된 재현이 인사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왜 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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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재현이…….”

그러자 태오가 양손으로 소유의 볼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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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보지 말고 나만 봐. 우리 오늘 처음 봤잖아.”

또 시작됐다.

대책 없는 집착.

볼이 눌려 붕어 입이 된 소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재현의 기분보다는 태오의 기분이 더 중요했다.

주위 눈치를 보던 태오가 소유의 입에 짧게 뽀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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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소유가 기겁하며 태오를 때렸다.

다행히도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씩 웃은 태오가 소유의 손을 잡고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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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은 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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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일단 아빠 퇴원에만 집중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그런데 너무 어려워.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돼. 아무리 아빠랑 고 이사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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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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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유가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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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호텔에서 일하기 전에 잠시 강화 인터내셔널에서 근무한 적 있어. 상황은 많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같은 무역 일이니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야.”

이 남자, 능력치도 뛰어나다.

불공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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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도면 일타 강사 정도는 되겠지.”

당연하지.

강화 인터내셔널 근무 경력이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나 다름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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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으로 모셔도 될까요?”

소유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태오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태오가 콧잔등을 찡긋하며 웃었다.

소유에게 옮아 온 새로운 그의 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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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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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외비는 얼마나 줘야 하지? 너 정도면 엄청 비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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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비싸지. 그런데 특별히 지인 할인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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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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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씩만 만지게 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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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이던 소유의 눈이 보름달이 되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그에게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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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야. 나 지금 너무 당황스러워.”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야한 농담에 소유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내 상상 속 노아는 서툴고 귀여운 소년인데.

이 능글맞고 노골적인 남자는 누구지요.

잠시 후 태오는 눈을 질끈 감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곤 사랑스러운 소유를 품에 꽉 안았다.

얘 진짜 이렇게 예뻐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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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말이야. 하루에 볼 한 번씩만 만지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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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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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방금 이상한 상상 했지?”

소유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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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에서 누가 이상한 상상을 안 해. 너, 나 놀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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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음흉한 구석이 있네. 이러다 내가 먼저 잡아먹히는 거 아닌가 몰라. 무서워.”

그러면서도 태오는 소유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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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과외는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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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소유는 태오에게 안긴 채 듣기 좋은 그의 목소리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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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너희 집에 갈 핑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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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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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퇴원하면 아버지를 찾아뵐 명분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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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야. 너 정말 똑똑하다.”

소유가 진심으로 감탄하다가 가여운 태오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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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때문에 상처 많이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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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늘은 그래도 내가 사 온 음료수 드셔 주셨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그게 더 가여웠다.

어디 가서 이런 취급 받을 만한 애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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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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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괜찮다는데 왜 자꾸 힘들대.”

소유는 태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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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사람 없는 데서 뽀뽀 다섯 번 해 줄게.”

부부 사이에 뽀뽀가 무슨 이벤트처럼 되어 버린 이 상황이 아이러니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변태 같지만, 도리어 안달이 나서 더 좋기도 했다.

나중에 다시 한집에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격렬하게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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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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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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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계속 자극할 거면 진짜 한 번만 만지게 해 주라.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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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태오가 아이처럼 웃으며 병원 밖으로 나갔다.

소유가 그의 뒤를 졸졸 쫓아 뛰어갔다.

두 동갑내기는 한참 동안 병원 근처에서 술래잡기 아닌 술래잡기를 했다.

잠시 바람을 쐬러 중앙정원으로 나왔던 희훈은 그 광경을 미묘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딸이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저런 웃음, 얼마 만이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이 찡했다.

희훈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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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뭐가 진짜 소유를 위하는 길인지 헷갈려. 이럴 때 당신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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