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 맹수의 신부 (43/95)


43. 맹수의 신부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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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집 안 전체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음이 울려 퍼졌다.

잠들어 있던 소유가 번쩍 눈을 떴다.

익숙한 침실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재현이 물이라고 내민 보드카를 마시고 그대로 쓰러졌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끔찍하게도 그 후의 기억은 잘라 낸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스탠드 조명을 바라보다 소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그 소리는 뭐였지.

강도라도 든 걸까.

다른 것보다 태오가 걱정이 되어서 깊은 생각도 하지 않고 뛰쳐나갔다.

강도와 제가 마주치는 최악의 상황은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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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야!”

문을 벌컥 열고 나가자 걱정과 달리 태오가 무사한 상태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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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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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깼어?”

태오는 평소와 다름없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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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큰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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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악!”

그 순간 아래층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놀란 소유가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1층 계단 바로 아래에 뜻밖의 인물이 널브러져 있었다.

꺾인 왼쪽 손목을 움켜쥐고서 괴로워하는 재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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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떨어져.”

태오는 아래의 재현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태평하게 소유의 몸을 안전하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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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이, 왜 저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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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거겠지. 널 데려다주러 왔다가 굴러떨어졌나 봐.”

태오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딱히 별일 아니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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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보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더라고.”

소유가 그런 태오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오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구태여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소유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다가 우선 119에 신고했다.

더 이상 지체하기엔 재현의 비명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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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왼손이 다쳤다는 것일까.

재현은 오른손잡이였다.

물론 수술을 하다 보면 양손을 쓰는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오른손을 다친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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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가 떨어졌습니까?

소유가 태오의 눈을 피하고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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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서 떨어진 모양이에요.”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유가 기묘하게 비틀린 재현의 손목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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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왜인지 진이 빠져 소유는 힘없이 팔을 툭 떨어뜨렸다.

태오는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내고 대신 자신의 손을 꽉 잡았다.

소유는 태오에게 기대어 겨우 계단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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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프실 거예요, 환자분.”

재현은 들것에 실리는 내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골절 가능성이 크므로 깁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구급대원은 말했다.

구급대원의 말을 들으며 소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재현이 소유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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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X끼가 그런 거야.”

멈칫한 소유의 속눈썹이 약하게 떨렸다.

주변의 소란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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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편이 나 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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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속으로 생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음성이 되어 나아갔다.

그렇게 현실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소유는 동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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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오가 나 이렇게 만들었다고.”

소유의 동요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재현이 집요하게 그 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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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가 그럴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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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지 마. 사실 너도 알고 있잖아. 저 무시무시한 놈의 실체를.”

그간 태오를 둘러싼 여러 인물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말한다. 태오는 평범하지 않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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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저 새끼가 너한테 나쁜 물을 들일 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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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환자분 이동할게요.”

그 순간 다급한 구급대원의 말을 시작으로 아득했던 소음이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나 소유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재현은 마지막 순간까지 소유를 보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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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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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오가 소유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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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그러자 소유가 필요 이상으로 놀라며 흠칫했다. 동공이 확장된 채 태오를 바라보는 그 눈은, 분명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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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석재현이 너한테 무슨 말을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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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야.”

소유가 태오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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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태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단조롭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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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하고 싶은 말이 수십 마디였다.

그중엔 다소 껄끄럽고, 꺼림칙한 내용의 것도 있었다.

그들의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지언정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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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괜찮아.”

그런데 어쩐지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턱 끝까지 차오른 것들이 서서히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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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말해도 돼.”

태오는 너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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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현이한테 알려 준 거 아니야.”

그러나 소유가 떨리는 목소리로 꺼내 놓은 말은 겨우 그것이었다.

그 수십 마디 중 가장 중요하지 않고, 가벼운 내용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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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비밀번호 말이야.”

태오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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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너 설마 내가 의심이라도 할 줄 알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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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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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알지. 네가 뭐 하러 저놈한테 알려 줬겠어?”

태오는 애초에 소유를 의심한 적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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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다녀간 미친개 중 한 마리의 짓이겠지.”

태오가 소유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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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러다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진 소유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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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물어볼 말은 없고?”

진실을 확인할 마지막 기회였다.

태오는 친절히 그 기회를 물어다 주었고, 분명 거짓 없는 대답을 내어줄 것이다.

하지만 소유는 선뜻 받아먹을 수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태오가 재현이를 밀어서 떨어뜨린 게 맞다면?

그럼 어쩔 건데?

태오를 덜 사랑할 거야?

태오 대신 스스로에게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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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결국 소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또 오늘은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게다가 소란에 놀라 잠시 또렷해졌던 정신이 다시 알코올에 저며들 듯이 어질어질해졌다.

이야기를 나누어봤자 그중 반은 공중에 흩어질 것이 분명했다.

소유는 비겁하지만, 진실을 직면하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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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자러 갈까?”

태오가 까딱 고갯짓을 했다. 소유는 그의 손에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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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식은 어땠어?”

태오가 의뭉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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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루했어. 일 이야기나 하고. 너랑 소고기를 먹는 게 백만 배는 더 행복했을 거야.”

소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소유의 부스스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태오가 문득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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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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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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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는 무슨. 맨날 하는 말인데. 왜, 너는 나 안 사랑해?”

태오가 서운하다는 듯 눈썹 사이를 좁혔다. 그 모습을 보니 뭉게구름 같던 고민은 사라지고, 시야에 하나뿐인 남편만 가득 찼다.

소유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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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사랑하지.”

진심이었다. 재현의 말과는 별개로 태오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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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정말 많이 사랑해.”

태오가 소유의 얼굴을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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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도 너를 사랑해.”

그 뒤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태오가 그대로 입을 맞췄기 때문이다. 소유는 스르르 눈을 감고 태오와의 달콤한 입맞춤에 빠져들었다.

키스는 점점 더 격렬해졌고, 부부의 밤도 달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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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더 사랑해.”

잠깐 떨어진 입술 사이로 태오가 소곤댔다.

이번엔 소유가 먼저 그에게로 다가가 입을 맞췄다. 참을 수 없이 그가 사랑스러웠다.

* * *

재현은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며칠 입원을 해야만 했다.

신경이 손상되어 세밀한 양손 수술은 힘들 것이란 이야기와 재현이 다친 진짜 이유에 대한 추문이 돌았지만, 그의 아버지인 석영재 교수의 압력으로 금방 수그러들었다.

석 교수는 아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재현은 큰 충격에 빠진 듯 무력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고요하던 재현의 병실 문이 열렸다.

팔에 깁스를 한 채 가만히 앉아 있던 재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그의 순결했던 첫사랑이 서 있었다.

소유는 깔끔한 정장을 입은, 다소 딱딱한 모습이었다.

멍하던 재현의 시선이 순간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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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좀 어때?”

소유가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작은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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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께서 얼른 나으라고 전해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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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야.”

재현이 없는 힘을 짜내어 소유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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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아.”

그런데 소유는 깔끔하게 재현의 말을 잘라 냈다.

언제나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던 소유였기에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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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처음 만났을 때, 나 정말 좋았어. 너는 착하고, 나는 친구가 필요했고. 또, 너희 부모님은 날 친딸처럼 대해 주셨고, 엄마에 대한 내 결핍을 채워 주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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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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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정말 좋았어. 어린 나는 생각했지. 너와 평생 친구를 하고 싶다고.”

순수하고 착하던 소유가 맹수에게 시집을 가며 완벽한 맹수의 신부가 된 것만 같았다.

맹수의 포악함에도 도망치지 않는 소유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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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평생’이란 단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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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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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까지 할까.”

소유는 재현에게 마지막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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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한 친구 사이도, 미련이 남는 끄나풀들도, 이만 매듭지을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임에도 재현은 팔의 통증을 잊을 만큼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재현은 링거 주사를 세게 뽑았다.

새빨간 피가 양쪽으로 세게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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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유. 너 어제 내가 했던 말 못 들었어?”

재현이 소유에게로 다가가는 발걸음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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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오가 나 이렇게 만들었다고!”

재현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소유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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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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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네가 더 위험한 사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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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야. 정소유! 나 석재현이야. 내가 어떻게 너한테 위험한 사람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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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넌 술이 약한 내게 의도적으로 독한 술을 먹였고, 정신을 잃은 내게 나쁜 짓을 하려고 했잖아. 게다가 비밀번호는 어떻게 안 거야?”

소란을 듣고 몰려온 간호사들의 인기척이 문 너머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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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태오는 내게 그런 짓은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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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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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상대적이지.”

재현이 소유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소유는 냉정하게 그의 손을 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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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난 지금 태오와 별개로 우리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거야. 우린 더 이상 친구가 아니야. 어쩌면 애초에 친구였던 적이 없었을지도.”

재현이 다시 위협적으로 소유를 잡으려던 찰나 간호사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재현을 힘겹게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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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세요, 석 선생님. 진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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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 정소유!”

언제나 젠틀하던 재현의 새로운 모습에 같은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모여들어 수군댔다.

소유는 건조하게 그 광경을 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손에 가습기 통을 든 다해와 눈이 마주쳤다. 다해는 자신의 죄를 미리 고하듯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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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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