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각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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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각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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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각자의 입장
2022.09.09.
과연 유명한 식당답게 음식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소유는 태오가 잘라 준 스테이크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서도 모른 척해 주던 태오였지만, 점심시간이 끝나가자 더 이상 눈감아 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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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안 맞아?”
오후에도 바쁘게 움직여야 할 소유가 기운 없는 모습으로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심기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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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맞아. 완전 맛있어.”
태오의 애틋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유가 황급히 주방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원 테이블 식당이라 셰프에게 그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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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통 먹질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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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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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안 만들기로 하지 않았나? 내가 모르는 너의 고민이 있는 거, 나는 싫은데.”
태오가 포크로 샐러드를 툭툭 건드리며 대답했다.
눈치 빠른 태오가 제 상태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현재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여 무엇부터 꺼내 놓아야 할지 고를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어쩌면 껄끄러운 질문을 던져 태오와의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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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질문 하나만 해도 돼?”
결국 소유는 가장 뚱딴지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건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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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태오는 아예 포크까지 내려놓았다. 마치 소유에게 모든 감각을 집중하겠다는 듯이. 소유는 태오의 새까만 눈동자에 홀린 것처럼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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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랑 사이는 어땠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던지 태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살짝 찡그린 미간은 그가 당황했다는 것을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소유는 얌전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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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걸 묻네.”
한참 후에 태오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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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모르는 부분도 많잖아. 그래서 궁금해. 내가 없던 어린 시절, 너에게 아버지가 어떤 존재였는지.”
소유는 물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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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장인어른처럼 남에게 자랑할 만한 좋은 사이는 아니야.”
이윽고 태오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타인이 물었다면 망설임 없이 무시하고 말았을 질문이었지만, 소유가 묻는다면 그는 저항 없이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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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기보다는 엄한 스승 같았거든. 나는 아들이 아니라 후계자로 키워졌으니까.”
누군가는 재벌인 태오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으로서 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집안사람들은 가족애보다 사업확장 및 유지에 더 필사적이었고, 태오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밀한 의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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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 순간을 평가받아 왔어. 성적,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식사 예절, 하다못해 혼자 있을 때 표정까지.”
강력한 후계자를 원했던 어른들은 태오를 세뇌시켰을 테다. 기어오르는 사람이 있거든 회유하지 말고,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완벽하게 밟아 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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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부응하려고 미친놈처럼 발악했어.”
모두가 어린 태오만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이 거대한 대기업을 이끌 단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바로 호된 채찍질이 날아왔겠지.
태오는 태어날 때부터 모두에게 추앙받아 왔으나 동시에 태어날 때부터 고독한 존재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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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로는 부족했나 봐. 내가 혹시나 나쁜 일을 겪게 되면 큰일이니까. 나의 다음, 나의 다음의 다음을 찾더라.”
선오는 저와 준오가 태오의 소모품일 뿐이라 했지만, 어쩌면 태오 또한 자신이 어른들에게 하나의 소모품일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힘든 시간을 견뎌 냈을 태오를 생각하니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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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문제는 진 여사가 난임이라는 거였지. 그래서 그 역겨운 인간들이 어떤 짓까지 시킨 줄 알아?”
소유가 가쁜 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진 여사 또한 그 사건의 피해자였다. 동생들을 향한 적대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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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를 애절하게 사랑하는 효자는 아니지만, 그땐 정말 어머니가 가여웠어. 그런데 아버지란 사람은 어머니를 보호해 주지 않았어.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겨운 짓에 동조했지.”
소유가 팔을 뻗어 테이블 위 태오의 손을 꼭 잡았다. 태오의 시선이 천천히 소유의 작은 손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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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은 진짜 죽어도 용서 못 하겠더라. 그래서 아직도 강 회장을 보면 욕이 턱 끝까지 차올라.”
태오를 잔혹하게 만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태오를 끔찍이 아끼는 척했던 집안 어른들이었다.
어린 태오는 그저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굳어 어른이 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저의 자리를 위협하는 두 동생을 경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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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야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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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미안해. 그만하자.”
소유는 안쓰러움과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그저 살아야만 했던 아이가 잘못일까.
아니. 적어도 소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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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생했네, 우리 태오.”
태오가 보기 드문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감정이 없는 차가운 로봇 같던 그가 소유의 앞에서만 보여 주는 인간적인 표정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타인과 똑같이 숨을 쉬고, 감정이 있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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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 커피도 누나가 살게.”
소유가 서글퍼지려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 밝게 말했다.
그래도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롯이 태오만의 잘못이라고 보기엔 확실히 어폐가 있었다.
그리고 태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과 관계들이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 반려자인 제 몫임을 깨달았다.
사방이 적에게 둘러싸인 채 살지 않아도, 조금은 긴장을 풀고 살아도 큰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태오가 변할 수 있으리라 소유는 굳게 믿었다.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현재의 그를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는 아주 더딜지언정 바뀔 수 있었다.
그 쉽지 않은 과정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바른 방향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하리라 다짐했다.
단순히 태오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나쁜 것이 거슬려서만은 아니다. 태오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소심했던 내가 지금의 나로 바뀌었듯이.
냉혹한 네가 무던한 너로 바뀌길.
* * *
어느 여유로운 오후, 소유는 강화 백화점 코스메틱 코너에서 립스틱을 구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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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
소유의 방문 소식을 들은 준오가 단숨에 1층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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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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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이나 좀 살까 해서요.”
소유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란 건 준오도 알고 있었다. 준오도 강화 전자 주주총회에서 발생한 태오와 선오의 의견충돌에 대해 들었다.
제가 있었으면 중재를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날 준오는 지방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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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 저한테 어울릴까요?”
어색한 침묵이라도 깰 겸 소유가 립스틱 하나를 들고 물었다. 평소 소유가 바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진한 컬러였다.
준오가 고민도 하지 않고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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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한테 안 어울리는 색이 있겠어요?”
그러곤 팔을 들어 올려 직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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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결제해 주세요.”
그와 동시에 준오의 비서가 카드를 직원에게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소유가 그를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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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제가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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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와 주셨는데 이 정도는 선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가족끼리 5만 원짜리 립스틱 정도는 괜찮잖아요.”
그리 비싼 금액도 아닌 데다 준오가 진심으로 부탁하기에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몇 분 후, 소유의 팔엔 작은 종이가방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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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잘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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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중요한 미팅 있을 때 꼭 사용해 주세요. 아, 잠시 제 사무실 가서 얘기나 할까요?”
준오가 자연스럽게 권유했다. 사적인 자리에선 여린 막내 같더니, 일터에서 보니 그도 어엿한 경영자처럼 보였다. 그 격차가 신기해 소유는 왠지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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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 시간만 괜찮으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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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분 정도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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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다.”
소유는 준오를 따라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태오의 집무실만큼이나 넓고 호화스러웠다. 소유가 내부를 구경하는 사이 준오의 비서가 커피 두 잔을 놓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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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사 강준오’, 멋있는데요?”
소유가 책상 위의 명패를 보며 감탄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준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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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분한 자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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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왜 그런 말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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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에요. 사실 전부 태오 형 건데, 우리가 조금씩 뺏은 거니까. 그래서 선오 형이 자꾸 더 욕심을 내는 게 두려워요.”
소유가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해 천천히 시선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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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은 태오 형의 심기를 건드리는 선오 형이 눈엣가시겠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선오 형도 가여워요.”
이 삼 형제는 어째 막내가 제일 어른스러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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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태오 형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던 게 선오 형이거든요. 나야 뭐, 약아서 얌전히 있는 게 제일 편하다는 걸 알았지만 선오 형은 끝까지 어머니와 형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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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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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오 형은 늘 나를 걱정하지만, 사실 선오 형이 나보다 훨씬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거든요. 더 간절했기 때문에, 더 삐뚤어진 거예요.”
준오는 대놓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형을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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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릴 낳아 준 친어머니 얼굴은 본 적도 없어요. 갓난아기 때부터 유모 손에 길러졌거든요. 고아치곤 부유하게 자랐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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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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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가 다섯 살, 선오 형이 여섯 살이던 해에 그 집에서 정식으로 살게 된 거예요. 반겨 주는 이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죠.”
소유가 정말 괴로웠던 건 삼 형제 중 누구 하나 가엾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태오도, 선오도, 준오도 모두 우위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서글픈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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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어머니와 태오 형의 입장이 전혀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그렇게 모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도, 그냥 형수님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서. 선오 형에게도 속사정이 있다는 걸.”
소유에게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준오는 보채지 않고 소유가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약속했던 30분을 5분 정도 남겼을 즈음, 소유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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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지금 태오를 헤아리기만으로도 바빠요. 태오가 잔혹한 행동을 하는 이유, 남들과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준오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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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도련님이 삐뚤어진 배경, 도련님들이 자라난 차가운 배경 같은 건, 제겐 다음 순위라는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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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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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에도 갑작스럽게 동생이 생겨 버린 어린 태오에 대한 걱정뿐이에요.”
냉정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소유가 사랑하고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태오였다.
아직 그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외 부수적인 인물들까지 이해해 달라는 건 무리한 처사다.
서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준오는 늘 그렇듯 이런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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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이 좋은 대답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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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당사자에게 들은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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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행이네요.”
준오가 씁쓸하게 웃고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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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이 됐네요. 이제 일어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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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순간, 말이 끝난 줄 알았던 소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준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유를 바라보았다. 소유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우수에 젖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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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첫째 도련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든가, 그런 건 아니에요.”
준오가 얼어붙은 채로 소유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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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지금은 여유가 없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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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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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이 고뇌가 끝나면 언젠가 도련님들을 위로할 시간이 생기겠죠.”
준오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물론 소유도 강화 가(家)에선 아직 이방인으로 분류되지만, 어쨌든 그 집안에 속한 사람 중 처음으로 선오와 준오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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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때 다시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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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은, 저희가 밉지 않으세요?”
가방을 챙겨 일어나던 소유가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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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울 리가 없잖아요.”
준오는 다시금 깨달았다.
제 안목은 틀리지 않았음을.
제 형수님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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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립스틱 잘 쓸게요.”
소유 같은 사람이 이 집에 들어와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차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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