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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직접 키스 (59/95)


59. 직접 키스
2022.10.21.



 


“네가 어떤 사람이든 너를 사랑해.”

소유가 태오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이고서 바로 입술을 부딪쳤다. 어느새 밤공기의 쌀쌀함도 날아가고, 두 사람 사이의 후끈한 기운만 남았다.

망설이던 태오의 손이 조심스럽게 소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태오의 아랫입술과 소유의 윗입술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서로의 숨을 한껏 들이마시자 갈증이 해소되는 것만 같았다.

한참 후에 태오에게서 떨어진 소유의 눈가엔 그리움이 담긴 눈물이 어려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태오는 생각했다.

너도 나만큼 그리웠구나. 나와 닿고 싶었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닳을까 두려울 만큼 사랑하는 소유를 힘들게 만든 장본인이 다름 아닌 저라는 생각에 태오는 괴로웠다.


‘소유를 너처럼 만들기 싫다면, 네가 소유처럼 되어야지.’

서령의 본질을 관통하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요 며칠 부부가 경험한 일은 이별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감정 소모가 심했다.

그리하여 태오는 평생 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생각을 떠올렸다.


“소유야.”

태오의 손이 소유의 손목을 지나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바뀔게.”

태오의 말에 소유에게서 벅찬 호흡이 새어 나왔다.

평생 바뀌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위치에 있던 태오가 사랑에 의해 변하고자 한다. 기꺼이. 망설임 없이.

사랑이 위대하다고 하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성질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대단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초라한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으레 닮아가기 마련이다.

제 전부를 건다고 해도 아까워하지 않고, 여태까지 살아온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모두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하여 사랑은 위대하다.

태오가 하는 사랑도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고뇌하며,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부끄럽지 않도록 변할게.”

소유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울 듯 찡그려졌다.


“나를 떳떳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바뀔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야윈 얼굴이 그 증거 중 하나였다.

잠시 말이 없던 소유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바보야.”

그러곤 태오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너를 사랑하는 게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않은 적 없었어.”

태오는 소유가 때리는 대로 저항 없이 밀려났다.


“이젠 네가 소시오패스든, 사이코패스든 상관없다고!”

얌전한 편인 소유가 드물게 고함을 칠 때는 새하얀 몸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소유는 안쓰러울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네 사랑만 위대하다고 착각하지 마.”

정말 무서웠던 건 네가 지금보다 더 부도덕하고 잔혹하더라도 제가 태오를 떠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거다.


“네 사랑만 필사적이라고 생각하지 마.”

결론은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우린 똑같은 크기의 사랑을 하고 있잖아.”

결국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이지 않았을까.


“일방적으로 내게 맞추려고 하지 마.”

정소유는 강태오를 떠나지 않는다.

모두가 강태오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정소유는 같은 자리에 머무른다.


“네가 변하면 나도 변할 거야, 태오야. 우리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맞춰 주지 말고, 중간에서 만나자. 그러려고 결혼한 거잖아.”

마주 본 태오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었지만, 소유처럼 물기가 있었다.


“우리 그렇게 맞춰 가자.”

끝내 흐르지 않을 테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태오의 진심을 읽어 내기엔.


“오늘 밤은 그냥 나 좀 보듬어 주고 안아 주라. 요새 정말 힘들고 고단했단 말이야.”

소유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녀의 가슴팍을 따라 태오의 마음도 요동쳤다.


“나 좀 토닥여 주라.”

잠시 눈을 질끈 감던 태오가 팔을 활짝 벌렸다.


“사랑해, 태오야.”

지난번 수술실 앞에서처럼.


“이리 와.”

이번엔 둘 사이를 방해할 존재가 없었다.

소유는 그대로 태오의 품으로 직진했다. 태오는 작은 새처럼 안겨 든 소유를 꽉 끌어안았다.


“미안해, 울려서.”

태오가 서럽게 우는 소유의 등을 토닥였다.


“내 사랑이 더 크다고 자만하지 않을게. 우리 맞춰 가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다는 소유의 말이 그에게 큰 충만함을 안겨 주었다.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할 그런 감정이었다.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게.”

저를 보며 눈을 피하기 급급하고, 몸을 움츠리던 이들과 소유는 다르다.

소유는 특별하다.

소유는 저를 위해 기꺼이 변하겠노라고 선포했다. 서로 조금씩 바뀌어 중간에서 만나자고 말해 주었다.


“나도 너를 사랑해.”

이런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정말 많이 사랑해.”

이런 너를 끌어안지 않을 수가.

* * *

큰일을 연달아 겪었기 때문일까.

잠들지 못할 것 같던 밤은 숙면의 밤이 되었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그저 까만 세상이었다. 그 속에서 소유는 포근한 휴식을 취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눈을 콕콕 찔렀을 때, 그녀는 한층 개운한 상태였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눈을 뜨자, 언제부터 저를 보고 있었는지 모를 깊은 눈과 마주쳤다.

소유가 태오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잘 잤어?”

소유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태오는 지난밤,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엄청 잘 잤어. 우리 밥 먹자. 배고파.”

소유가 정말 괜찮은 건지,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건지 태오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어쨌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태오는 정말 감사했다.

소유가 의자에 걸쳐 둔 카디건을 입고 태오에게 팔을 뻗었다. 태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드레스 말이야. 세탁될까? 핏자국 같은 건 잘 지워지지 않는다던데.”

피로 얼룩진 드레스가 내심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태오에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자, 가장 아끼는 옷이어서 그런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깟 드레스 몇 벌이고 더 사 줄 수 있었지만, 소유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아서 태오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내가 전문업체에 알아볼게.”

“고마워.”

소유가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넌 앉아 있어. 오늘 아침은 내가 대충 준비할게.”

준비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지만.

소유는 태오를 의자에 앉히고 토스터에 식빵을 넣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버터와 잼을 꺼냈다.

노릇노릇 식빵이 구워지는 냄새가 주방을 향긋하게 채울 때쯤 소유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있잖아. 도진 오빠가 그러더라. 타인의 눈엔 누구나 이상해 보일 수 있는 거라고.”

태오가 고개를 들어 소유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소유는 접시를 꺼내느라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맞는 말이야. 그냥 좀 다른 거잖아. 다른 게 틀린 건 아니잖아.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달라. 전부 같다면, 그게 더 이상한 세상 아닐까?”

이번엔 커피 머신으로 걸어가 빵과 잘 어울리는 블랙커피를 한잔 내렸다.


“다만 넌 네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에 유독 더 필사적일 뿐이래. 그냥 성향이 그런 사람인 거지.”

막 구운 식빵만큼이나 따스한 목소리가 태오를 위로했다.


“내가 보는 넌,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진 않아. 너의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남들을 괴롭히지도 않지. 손 비서님을 포함해서 너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아. 다 너를 존경하잖아.”

태오가 소리 없이 웃었다.


“네가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떤 잘못을 했어. 네가 그어 놓은 선을 무례하게 넘은 사람들이지.”

그 외의 사람들에겐 다정하진 않더라도, 꽤 너그럽게 구는 편이다.

소유가 본 태오는 그랬다.


“넌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편도 아니고, 죄책감이란 게 아예 없는 사람도 아니야. 너의 민감한 부분을 건들지 않는 이상.”

누구나 화가 나는 포인트가 있듯이 태오에게도 그런 포인트가 있을 뿐이다.

다만 남들보다 힘이 세고, 냉정한 성격이라 도드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난 네가, 아저씨가 말한 그런 부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

소유가 토스터에서 툭 튀어나온 식빵을 끄집어내 접시에 정갈하게 놓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태오를 보며 씩 웃었다.


“어제도 말했듯이 어떤 사람이라고 한들 변함없이 널 사랑하겠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넓은 다이닝 룸 대신 주방 내의 작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본 채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너 하나도 안 무서워. 겁도 안 나.”

식지 않은 식빵 위에 올려 둔 버터가 사르르 녹았다.

얼었던 태오의 마음처럼.


“그러니까 계속 그렇게 의기소침해 있으면 나 진짜 화낸다?”

소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하게 말했다.

그제야 태오가 평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화낼 건데?”

“어엄청 무섭게.”

하나도 안 무서울 게 뻔하다.


“너 울지도 몰라.”

귀엽게 인상을 팍 쓴 소유는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 마셨다.

태오는 식빵을 집어 들어 나이프로 잼을 펴 발랐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제 입이 아니라 소유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소유가 바삭한 빵을 베어 물었다.


“음, 맛있어. 내가 해서 그런가? 웬만한 호텔 조식보다 나은데?”

“웃기고 있어.”

“진짜야.”

태오는 소유가 베어먹은 자리 바로 옆부터 식빵을 먹어 가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수면욕과 식욕이 다시 돌아오는 모양이다.

태오를 이토록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소유가 유일했다.

잘 먹네, 내 새끼.

흐뭇하게 웃던 소유도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반은 딸기 잼, 반은 사과 잼을 바른 그녀는 맛을 음미했다.


“딸기 잼보다 사과 잼이 더 맛있네. 여사님이 직접 만드셨대. 우리 먹으라고.”

이번엔 소유가 자신의 빵을 내밀었다.

태오가 사과 잼 부분을 한입 먹었다.

달콤한 맛이 거침없이 입 안으로 쏟아졌다.


“그렇지? 역시 수제는 못 이기나 봐.”

부부는 식빵 하나를 가지고도 알콩달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정말이지 기분 좋은 아침 식사였다.


“그런데 커피는 왜 한 잔만 내린 거야?”

“같이 먹고 싶어서. 간접 키스.”

소유가 장난스럽게 컵에 쪽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이 귀여워 태오는 무장 해제된 듯 연신 크게 웃었다.

다행이야. 네가 다시 웃어서.

소유는 뿌듯한 마음으로 남은 식빵을 해치웠다.


“설거지는 네가 해.”

소유가 뻔뻔하게 말했다.

태오는 군소리 없이 그릇들을 겹쳤다.


“고마워.”

“뭐가?”

그러곤 소유의 입이 닿은 부분으로 커피를 마시며 잔잔하게 말했다.


“내 기분 풀어 주느라 고생했어. 지금 더 힘든 건 너일 텐데.”

아까 전 소유가 해 준 위로에 대한 인사였다.


“고생은 무슨. 진심이라니까.”

“사랑해, 내 새끼.”

태오가 소유를 따라 컵에 입을 맞췄다.

그 광경을 보자 소유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상하게도 그가 하니 무척 야한 광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오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왜 내가 앞에 있는데 간접 키스해?”

잠시 후 소유의 부드러운 입술이 태오에게 길게 닿았다.

태오가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직접 키스를 해야지.”

간접 키스 이야기는 자기가 먼저 꺼내 놓고.

적반하장인 소유마저도 귀여웠다.


 
그래서 이번엔 태오가 먼저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간접 키스라는 말장난을 집어치우자.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있다면 직접 키스를 하자.

백 번의 간접 키스보다는 한 번의 직접 키스가 더 의미 있으니까.

서로의 호흡을 들이마시고, 온기를 만끽하자.

그게 가장 영리한 애정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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