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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소유욕 (66/95)


66. 소유욕
2022.11.14.



 
소유를 회사까지 데려다주고 바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덕분에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하고,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태오의 기분은 좋았다.

소유의 얼굴을 더 오래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유는 꼭 보상을 해 줬기 때문이다.


‘내 새끼, 수고했어. 늘 고마운 거 알지?’

그 말과 함께 볼 뽀뽀를 해 줬다.

그것만으로도 만성피로는 휙 날아갔다.

그리고 소유를 다시 만나기 위해 저녁까지 기쁘게 일할 수 있게 된다.


“거, 아침부터 좋은 일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태오의 기분을 단숨에 깨 버릴 목소리가 훅 끼어들었다.

미간을 찌푸린 태오가 선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봐도 하룻밤 숙박을 하고 나온 듯한 선오의 옆에는 요즘 대세 아이돌이라는 연예인이 서 있었다.

태오가 한숨을 쉬었다.


“넌 아는 호텔이 여기뿐이냐?”

선오는 삼 형제 중 가장 난봉꾼이었다.

태오 못지않은 수려한 외모에, 스마트폰 시장의 성공으로 막대한 부까지 축적한 그는 이성들에게 인기가 몹시 많았다.


“아니면 돈이 아까운 거야, 뭐야?”

그래서였을까.

그는 매일 다른 여자를 끼고 나타났다.

가수, 배우, 인플루언서, 모델 할 것 없이.


“오빠. 난 이만 가 볼게. 나중에 또 연락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여자 아이돌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고서 사라졌다.

선오는 그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태오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이잖아. 이만한 시설이 어디 있어? 거기다가 형님 기분 상하는 것까지 보면 일석이조고.”

태오는 대꾸 없이 프런트 직원에게 말했다.


“앞으로 저 X끼 와도 돈 꼬박꼬박 받아요.”

재벌 고래 사이에 등 터지게 생긴 직원 새우가 어색하게 미소만 지었다.

어차피 형제 사이의 문제는 숙박료가 아니라는 걸, 강화 계열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았다.

선오가 숙박료 정도에 쩔쩔맬 정도로 어려운 사정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그들의 악연은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즘 형수께서 우리 준오랑 꽤 친하게 지내시더라?”

목소리를 가라앉힌 선오가 본론을 꺼내놓았다.

프런트에 몸을 기댄 태오가 특유의 나른한 표정으로 선오를 훑었다.

생각보다 저와 비슷한 모습이 많이 보여 새삼 놀랐다.


“무슨 속셈이야?”

선오의 도발에도 태오는 가만히 혀를 튕길 뿐이었다.

겨우 그것뿐이었는데, 몸을 사리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직원들은 괜히 불똥이 튀기 전에 조금씩 형제들에게서 멀어졌다.


“우리 준오한테 상처 주면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매사에 시큰둥하고, 관심 없어 보여도 동생인 준오만큼은 끔찍하게 챙기는 선오였다.

태오와 같은 순혈 사이에서, 강화 가(家)의 반쪽 피를 물려받은 유일한 형제였기 때문이다.

선택지 없이 입적되어 이방인으로 취급받던 어린 시절, 선오가 의지할 곳이라곤 준오밖에 없었다.

물론 준오 또한 그랬을 테고.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내내 듣고만 있던 태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빼앗긴 건 난데, 왜 피해의식은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본래 모두 태오의 것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형제의 존재에 태오는 모든 걸 삼 등분 해야 했다.

재산도, 명예도, 아버지의 관심도.


“뭐?”

선오가 예상치 못한 태오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되물었다.


“그런 건,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닌가?”

“…….”

“좀 어이가 없어서.”

굳이 유치하게 따져 보자면 이 야단에 가장 억울해야 할 건 굴러온 돌이 아니라 박혀 있던 돌이었다.


“웃기지 마. 네가 뭘 빼앗겨. 언제나 손가락질당하는 건 우리였고…….”

“내 걸 안 빼앗았으면 네가 무슨 수로 그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겠어?”

태오의 조곤조곤한 말이 선오의 귓구멍을 세게 때렸다.


“그리고 무슨 속셈인지는 네 동생한테 가서 물어봐. 소유가 먼저 집적댄 게 아니고, 강준오가 먼저 집적댄 거니까.”

“강준오는 등신같이 착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너와 달리 역지사지가 잘되는 편이든지.”

“야, 강태오.”

태오는 그대로 선오를 지나쳐 걸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소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해묵은 어른들 잘못이지. 도련님들 잘못이 아니야.’

분하게도 자꾸만 선오와 준오를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그 착한 말이.

짜증스럽게 걸음을 멈춘 태오가 뒤로 돌았다.


“하나만 선택해. 미움을 받고 싶은 건지, 아니면 강준오처럼 잘 지내고 싶은 건지.”

“…….”

“그래야 장단에 맞춰 줄 거 아니야.”

어른들의 부정행위에 당한 같은 피해자로서.


“그리고, 너. 한 번만 더 버릇없게 내 이름 막 부르면 죽여 버린다.”

처음 보는 태오의 반응이었기에, 선오는 평소처럼 막무가내로 굴 수 없었다.

계속 미워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잘 지낼 의향이 있다는 건지 의도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버릇없는 X끼야. 내가 네 친구냐?”

 

* * *



“정소유.”

“…….”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태오는 소유를 불렀다.


“내 새끼.”

“…….”

그런데 어쩐지 소유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또 잠이 들었나.

태오는 별생각 없이 2층 침실로 걸어갔다.

예상과 달리 침실엔 불이 켜져 있었다.


“소유야. 왜 대답이…….”

“큰일이라니까. 진짜 없어.”

소유는 정확히 침실이 아니라 침실에 딸린 드레스룸에 있었다.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워 둔 채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어찌나 집중했는지 태오가 퇴근한 것도 몰랐다.

……뭐 하는 거지?


“태오가 분명 화낼 거야.”

소유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태오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얼어붙어 있었다.


“태오한테는 절대 말 못 해. 나 어떡하지?”

그저 의문뿐이던 태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인데, 제게는 감춰야만 한단다.

부부 사이에 숨겨야 할 일이 뭘까.

고민하는 사이 소유가 전화를 끊고 가방들을 다 꺼내 놓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태오가 노크하듯 드레스룸 문을 두드렸다.


“뭐 해?”

“어, 태오야.”

누가 봐도 못된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소유가 움찔했다.


“이, 일찍 왔네.”

“아니. 평소보다 30분은 늦게 왔어.”

“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소유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어. 그런데 드레스룸엔 웬일이야?”

“웬일이냐니. 옷 갈아입으러 왔지.”

태오가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곳이 바로 드레스룸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저녁 루틴이었다.

그래서 새삼스러운 저 물음이 더 수상했다.


“아, 그렇구나. 참. 옷 갈아입어야지. 미안. 나갈게. 편히 갈아입어.”

그렇게 말하기엔 소유도 아직 출근 차림 그대로였다.


“넌 안 갈아입어? 불편해 보이는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나도 아직 안 갈아입었네.”

그러게.

내내 드레스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옷도 안 갈아입고 뭐 했을까.


“무슨 일 있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반드시 같이 이겨 내자고 약속했기에 태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내가? 내가아? 아니. 하하. 아무 일도 없어.”

태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까 누구랑 통화하던데.”

“통화 안 했어.”

왜 자꾸 거짓말을 하지.

소질도 없으면서.


“왜…… 왜, 그렇게 봐?”

“네가 수상하니까.”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태오를 약하게 툭 친 소유가 허둥지둥 가방들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내외하듯 등을 돌린 채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것도 이상하단 말이지.

평소엔 안 하던 행동이잖아.

볼 거 다 본 부부 사이에 내외가 웬 말이야.


“우리 얼굴 좀 보자.”

“옷 다 갈아입고. 부끄러워.”

소유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서 편한 홈웨어로 갈아입었다.

고무줄을 풀어 풍성한 머리카락을 아래로 내린 소유가 뒤로 돌았다.

태오는 한 박자 늦게 셔츠 단추를 풀고 있었다.

셔츠 아래에 커플로 맞춘 ‘Hazel’ 목걸이가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을 보고 소유가 마른침을 삼켰다.


“끝까지 말 안 해?”

그런 소유를 보며 태오가 재차 물었다.


“뭐, 뭘.”

“너 지금 무슨 일 있잖아.”

태오가 진심으로 서운해져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비밀 같은 건 만들지 않기로 해 놓고선.

왜 다른 사람한텐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을 제게만 말 안 하는지.

태오 입장에선 충분히 기분이 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았어.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화났어?”

소유가 슬그머니 태오의 눈치를 살폈다.


“화난 건 아닌데 좀 삐졌어.”

그 와중에도 화난 건 아니라고 말해 주는 태오의 다정한 태도로 인해 소유는 더 미안해졌다.


“너 거짓말하면 얼굴에 다 티나.”

“……미안해.”

소유가 순순히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남한테도 말하는 고민을 왜 나한테만 말해 주지 않는 건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저였어도 참 서운했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유였다.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해 보다가 이야기하면 안 될까?”

이걸 어떻게 말해.

다른 사람한텐 다 말해도 너한테만은 못 해.


“내일까지 해결 안 되면 꼭 말할게.”

“그 노력을 나랑 같이 하면 되잖아.”

“그게…… 있잖아.”

“태랑이랑 관련된 일이야?”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러면 너한테 먼저 말했겠지.”

소유가 기겁하며 손을 흔들었다.

태오가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일도 나한테 먼저 말해 줬으면 하는데.”

요즘 들어 곱게 다스리고 있던 소유욕이 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소유의 안 좋은 일도, 소유의 못난 모습도, 소유의 부끄러운 순간도 모두 제가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소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나니까.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내가 미덥지 않아?”

“아닌 거 알면서 왜 그렇게 말해.”

소유가 울상을 지으며 태오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닌 게 맞는지 나도 헷갈려서 그래.”

“…….”

“알겠어. 나중에 마음 내키면 말해.”

그 후로 부부 사이는 냉전 아닌 냉전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오가 기분이 상해 버렸고, 부부 사이에 끊임없이 오가던 대화가 훅 줄었다.

이게 뭐야.

제가 자초한 일이지만 소유는 울고 싶어졌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태오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태오에게도 저녁은 그런 의미였을 텐데.

내가 다 망쳤어.

소유가 한숨을 푹 쉬며 계단에 털썩 앉았다.


“바보 같아, 정소유.”

아니다.

울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울고 있었나 보다.

끌어안은 무릎이 뜨끈해졌다.


“찬 데 앉아 있지 말고 올라와.”

그러다 위에서 들려온 말에 소유는 끙끙 앓던 마음이 폭발해 버렸다.

어린아이처럼 소매로 서러운 눈물을 닦던 소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계단 위의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알았어. 말할게. 대신 화내지 마.”

“알겠으니까…….”

“잠깐 내려오지 마!”

소유가 계단을 내려오려는 태오를 다급하게 저지했다.


“거기서 들어.”

가까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용기가 없었다.

태오의 표정 변화를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정말 상처받을 것 같아.


“일단 거기서 듣고, 화 안 낼 수 있으면 그때 내려와.”

태오는 궁금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일이 생겼길래 저러는 건지.

집문서라도 팔았나.


“있잖아, 나.”

범죄라도 저질렀나.


“나 말이야…….”

그러나 소유는 아직 모르는 듯했다.

외도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상관없는 태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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