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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새벽의 단상 (81/95)


81. 새벽의 단상
2023.01.06.


선오는 준오를 집까지 부축했다. 하지만 딱 그뿐, 현관문 너머로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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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그래도 돌아서려던 선오의 옷자락을 준오가 냅다 잡았다. 선오의 구두가 우뚝 멈춰 서고, 그가 고개를 숙여 준오의 손을 바라보았다.

지금보다 한참 더 작았던 어린 준오의 손과 겹쳐 보였다. 거대한 강화란 지붕 아래 유일한 체온이었던, 선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지켜 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 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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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안 가면 안 돼?”

선오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동생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 더 아이처럼 보였다고 할까. 엄마 옆에서 있어서일까. 어릴 때의 한을 지금 마음껏 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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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도 다쳐서 내일 나 데리러 오기 힘든데, 형이 출근 좀 시켜 주라.”

처음이었던가. 성인이 된 이후로.

준오가 제게 무언가를 부탁했던 게.

더 이상 형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처럼 굴던 동생에게, 저는 어쩌면 서운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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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새로운 브랜드 입점 관련해서 미팅 있어. 아버지가 배려해 주신 만큼, 나도 아버지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택시 타고 출근해.

모질게 말하고자 하면,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아프고, 서러웠던 어린 준오의 손을 내치는 법을, 선오는 알지 못했다.

형의 마음이 약해진 것을 안 준오가 힘을 줘 선오를 끌어당겼다. 선오는 저항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지수의 마음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제가 끼어들면 일을 그르칠 것만 같아 꾹꾹 눌러 냈다.

선오와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려고 했는데, 오늘 선오의 차를 탔고, 선오가 집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간다니. 지수는 내일 당장 생이 끝나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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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룸에 이불 가져다 놓을게.”

들뜬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고 지수가 그렇게 말하자 준오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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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형은 저랑 자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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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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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릴 땐 자주 그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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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렴.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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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엄마도 얼른 주무세요. 늦은 시간에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제법 엄마와의 대화가 익숙한 동생을 보는 형은 쓸쓸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이 꾹 닫힌 진 여사에게 애정을 갈구하던 동생이 언제나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이젠 받아 주는 상대가 있으니 덜 서러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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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랑 이렇게 자는 거 오랜만이다.”

잠시 후 나란히 누운 형제가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빛을 함께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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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랑 일, 태오 형한테 들었어. 항상 날 위해서 화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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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부사장 진짜 왜 그러냐? 결혼하더니 입도 가벼워지고, 성격도 물렁물렁해지고. 아주 머리가 꽃밭이에요.”

부끄러운지 선오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준오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선오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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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한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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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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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하게 되면, 태오 형처럼 세워 둔 가시를 거두고 솔직해질까.”

이번엔 선오가 준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닮았지만 분위기가 다른 형제가 밤의 푸른 빛에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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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강준오. 너 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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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 말이 많아졌지? 엄마랑 있다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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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이야. 난 네가 강태오보다 차갑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어.”

태오는 겉과 속이 모두 매정한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준오는 겉은 따뜻했지만 속은 매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선오는 준오의 진심을 간파하기가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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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느껴졌어. 내가 가시를 세우듯 너도 너만의 방법으로 방어를 하려는 거였겠지. 근데 때론 그게 참 서운하게 느껴지더라.”

준오의 방어기제가 선오의 앞에서도 발동됐으므로. 선오는 자신이 준오에게 ‘타인’이 된 것처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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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형도 형이 책임질 회사가 생기면서 더 이상 기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특히 형은 나와 다르게 사명감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형에게 짐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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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나한테 1순위는 언제나 너였는데. 너라면 그랬겠냐? 내가 짐처럼 느껴졌겠냐?”

아무리 우애 좋은 형제라도 모두 터놓지 못하는 진심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와 말하건대, 준오가 변하게 된 건 제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었다. 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두면 안 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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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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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마는 엄마인 모양이지. 나는 하지 못했던 일을 이렇게 단숨에 해 내는 걸 보니.”

준오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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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나는 있잖아. 요즘 좀 솔직해졌어. 누가 나의 적인지, 누가 나의 뒤통수를 칠지 고민하며 사람들을 대하지 않아도 되거든. 나를 사랑해 주는 엄마와, 나를 지켜 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필요 없는 방어는 하지 않게 됐거든.”

준오는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순수하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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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형도 그랬으면 좋겠어. 더는 외롭고 치열한 삶을 홀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린 뭐든 반으로 나누기로 했잖아. 내가 행복한 만큼, 형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진 여사의 눈을 피해 다락방에 숨었던 어느 날, 형제는 약속했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반으로 나누자고. 그럼 그리 무서울 게 없을 거라고.

준오가 그 낡은 약속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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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걷자. 같이 있자. 같이 살자.”

선오는 뒤늦게 깨달았다. 제 눈에서도 준오와 똑같은 굵은 눈물방울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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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같이 행복해지자.”

 

* * *

사고로 인해 피곤했던 모양인지 준오는 금방 잠이 들었다. 하지만 선오는 날이 밝아올 때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목이 탔다.

선오는 불면으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작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난 밤 어렴풋이 봐 둔 주방을 향해 걸어가려는데, 거실 구석에 작게 켜진 스탠드 조명이 보였다.

그 조명이 비추는 곳에서 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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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필요한 거 있니?”

그녀에게선 선오와 마찬가지로 잠기운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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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밤새 그러고 있었어요?”

선오의 물음에 지수가 머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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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잠이 안 와서. 네가 우리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선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첫째 아들의 눈치를 살피던 지수가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갔다. 선오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는 물이 든 잔을 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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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일어나서 바로 차가운 물은 좋지 않대. 미지근한 물이란다.”

선오는 제게 내밀어진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족끼리 식사를 할 때, 태오 앞에만 놓여 있던 서령의 물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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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느낌은 덜하겠지만…….”

선오는 그 컵을 받아들고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살면서 먹은 물 중 가장 달콤한 물이었다. 아들이 물 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수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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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 갈 거지? 마침 사골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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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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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 울어. 안 울어.”

지수는 소매를 끌어와 눈물을 꼼꼼하게 닦아 냈다. 딱히 소용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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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오가 그러던데, 요즘 무리해서 일하고 있다며. 그럴수록 밥 잘 챙겨 먹어야 해. 사골국에 든든하게 밥 말아 먹고, 출근해.”

지수가 눈물범벅인 얼굴을 감추듯 뒤로 돌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냉동실에 얼려 둔 사골을 꺼내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옆에서는 압력밥솥이 작동을 시작했다.

선오에겐 익숙하지 않은 밥 짓는 냄새가 집 안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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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뭐 먹고 사니? 늘 밖에서 사 먹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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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내 밥에 관심이 많아요? 궁금한 게 그것밖에 없어요?”

파를 송송 썰던 지수가 멈칫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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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한텐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또, 그리고 이 이상은 참견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너도 싫어할 테고.”

선오가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까만 머리카락이 앞으로 다시 쏟아질 때쯤 선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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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준오는 어떻게 알아봤어요? 낳자마자 한 번 본 게 다 잖아.”

지수가 칼을 내려놓고 뒤로 돌았다. 그녀의 눈이 멋진 어른으로 자란 장남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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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았을 때의 그 눈동자가 그대로였어. 아무리 멋진 옷을 걸치고 있어도, 굵어진 목소리로 말해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단다. 한순간도 잊어 본 적 없으니까. 아마 너도 아이를 낳으면 내 말 이해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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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런 미친 짓거리를 한 거예요? 이렇게 후회할 거면서.”

겨우 멈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밥솥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지수는 떨리는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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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집이 부유했던 적 없었어. 언제나 빚쟁이들이 들락날락하고, 엄마와 아빠는 매일 같이 싸웠지. 나는 힘들게 합격한 대학교도 가지 못했고, 강화 백화점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단다.”

그래도 장남은 장남인지라, 준오보다는 선오에게 솔직한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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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즈음, 지나가던 회장님과 사모님을 봤단다. 초라한 나와 달리 두 분은 아주 행복하고 고상해 보였어. 그래서 생각했지. 나의 이 불행은 모두 가난해서다. 저 사람들이 빛이 나는 건 돈이 많아서다.”

진 여사와 강 회장에게도 나름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겉보기에 티가 안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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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게 그 추악한 제안이 왔을 때 선뜻 거절할 수가 없었어. 집의 빚을 갚고,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살 수 있다면 사모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게다가 나는 우리 엄마처럼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러나 막대한 돈을 손에 쥐고도 행복해지지 못했을 때, 지수는 깨달았다. 제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현재 선오보다 어렸던 지수의 지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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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때의 내 선택을 후회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해. 너희들이 태어났으니까. 설령 너희의 삶이 불행으로 점철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빛나는 너희가 이 세상에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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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누구나 거창하게 하지. 당사자들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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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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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위선적인 말에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그렇게 배 아파 낳은 친자식을 팔아넘겼으면 행복하기라도 했어야지. 그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기라도 했어야지. 이게 무슨 삽질이에요?”

몰래 엄마와 형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준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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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당신은 우리를 힘들게 만들잖아. 부적절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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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선오야. 너희가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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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앞으로 행복해져. 울지 말고 웃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짓 그만해.”

분명 모든 것을 꽁꽁 얼릴 정도로 영하의 목소리였는데, 그 내용은 봄의 속성과 닮아 있었다.

지수가 놀란 눈으로 선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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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신을 마음 놓고 원망만 할 수 있도록. 죄 없는 우리가 당신의 비극에 물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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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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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정말 엄청나게 늦었지만, 그게 현재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엄마 노릇이니까.”

행복해지라고 한다.

버림받았던 갓난아이가, 어리석은 자신의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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