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오렌티 비혼주의 금지법안-3화 (3/8)

3화: 한밤의 무뢰한

강주하는 멍하니 선 유주가 따라오든지 말든지, 벤틀리를 입구까지 대령한 발렛 직원에게 팁을 주고 매니저와 담소를 나누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매니저가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공손히 인사해 보였다.

그는 운전석 옆 차 문을 열고 유주를 올려다보았다. 안 타? 눈으로 묻는다기보다 빨리 타, 명령하는 눈빛에 가까웠다.

“여친 얘기 무슨 소리야.”

“일단 타. 가서 얘기하게.”

유주는 뜸 들이다 뒤에서 지켜보는 매니저와 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해 차에 올랐다. 하지만 차문을 닫으며 확실히 말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슨 얘기든 아파트 밖에서 해. 무조건.”

강주하는 그녀의 요구에 대답하지 않았다. 유주가 발끈해서 대답을 독촉했다. 그의 침묵에도 부아가 치밀었지만 숨 막히는 정적을 더 견디기 어려웠다.

“강주하.”

“뭐.”

“아파트 밖에서 하라고. 너랑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기 싫어.”

그가 덮쳐 오기라도 할까 봐? 여자친구가 없다는 걸 알고 갑자기 경계심이 든 탓일까? 정확히는 그녀 자신의 내면적인 철벽에 경계심이 밀려온 탓이었다. 그가 덮친다면 거부하지 못할 것 같았다.

방금만 해도 여자친구 같은 거 없다는 말에 기뻐하고 있었잖아, 너. 지금 와서 아닌 척 억눌러봐야 소용없어, 서유주.

“거기 내 집인데.”

유주가 스스로를 향해 꾸짖는 동안, 그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며 여상하게 말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담담해서 더 오한이 들었다.

“그래. 그것도 꼭 짚고 넘어가려고 했어! 네 명의로 되어 있는데 왜 친척 어르신 소유라고 거짓말했어? 그뿐이 아냐, 인테리어나 피아노, 가구들도 새로……”

“집까지 5분도 안 남았어. 차 세우고 얘기하자. 싫으면 사고 나서 같이 죽든가.”

“뭐… 뭐?”

이런 미친놈을 봤나. 유주는 어이가 없어서 운전석의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 강주하는 냉담한 얼굴로 차분하게 핸들만 놀리고 있었다. 정말로 삶에의 미련이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다.

다행히 차는 곧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아파트가 그렇듯, 몇 안 되는 차들이 부지 가장자리 화단 옆에 조용히 주차되어 있었다. 유주는 그가 차를 세우기 무섭게 문을 열고 먼저 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가구들로 불빛이 드문드문 비쳐드는 동 건물의 화단과 구식 놀이터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말해 봐.”

유주는 제일 구석진 가로등까지 걸어가서야 강주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조명등 아래 서서 그녀를 덤덤하게 내려다보았다. 두 손을 슈트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가로등에 기댄 모습은 또 얼마나 화보 같은지. 달빛에 반사된 얼굴은 재수 없게 흠잡을 데 없는 판타지 같아서 현실감이 일지 않았다.

유주는 용기를 내서 말문을 열었다. 판타지는 허구를 관전할 때나 즐거울 뿐, 현실과 얽혀 버리면 최대한 빨리 헤어 나와야 한다. 그게 착각으로 구성된 판타지면 더더욱.

“강주하. 나를 이 멀쩡한 집에 들여보낸 이유가 뭐야? 애당초 이건 몸테크가 아닌 환경이야. 녹물도 안 나오고 욕실은 재시공에 벽지도 말끔히 새로 발라져 있어서 불편한 게 하나도 없거든. 몸테크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네가 아직 일주일밖에 안 있어봐서 그렇지, 툭하면 물탱크 정화조 체크한다 뭐다 하면서 단수될 때 많아.”

“네가 진짜 소유주인 건 왜 속였어?”

“누가 집주인이든 무슨 상관이야. 보증금 떼일 걱정도 없고 법적으로 얽힌 게 전혀 없는데.”

어쩌라고. 별 쓸데없는 걸 문제 삼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강주하의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기묘하게 빛났다. 불확실한 위험에의 경고등이 머리 어딘가에서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여친도 왜 있는 척하고…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날 무월세 세입자로 들여놓은 이유가 대체 뭐야.”

“집 상태나 한 번 보고 가야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와.”

강주하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뒤돌아섰다. 어슬렁어슬렁 발을 떼려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유주는 대뜸 일갈했다.

“혹시 아직도 남아 있어?”

그가 다시 돌아섰다. 아무리 술이 약해도 과음하지 않았는데, 와인 탓인지 혀가 제멋대로 풀려갔다.

“나한테 감정 남아 있냐고.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선의를 베풀 리가 없잖아.”

돌발 질문에 그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하지만 불쾌해 보이는 기색은 없었다. 유주는 다시 도발하듯 물었다. 와인 때문에 혀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뭐.

“7년 전 너 내가 좋다고… 좋으니까 사귀자고 했었잖아. 스폰해 주는 식으로. 물론 대놓고 스폰이라 하진 않았지만.”

유주는 대답도 듣지 않고 연달아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의 부고로 다음 날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금방 돌아왔다면 정말로 사귀었을지도 모르잖아.”

강주하는 그녀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이 어느 때보다 더 명료히도 보이고, 최면에 걸린 것도 같았다. 어디선가 매미들이 8월 끝 무렵의 선율을 이어가길 한참, 그가 드디어 입술을 뗐다.

“그랬겠지.”

사귀었겠지. 예의 굵고 나직한 바리톤 음성이 평소보다 조금 더 올라가 있었다. 아니, 올라가 있다고 그녀가 멋대로 착각한 것일지도. 얼굴은 여전히 가면을 쓴 것처럼 속이 읽히지 않았다.

강주하가 갑자기 팔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았다. 유주가 흠칫 놀라 손목을 빼려고 했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자기가 무슨 소릴 했는지 이제야 자각하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에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집 상태 봐야 된다니까. 가자고.”

그는 유주의 부러질 듯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자, 잠깐만! 좀 기다려봐! 네가 아무리 집주인이라도… 이럴 권리는 없… 야! 강주하!”

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다. 유주가 잡힌 손목을 거칠게 빼내고 씩씩거렸다.

“너 방금 야라고 불렀어? 말단 인턴이 본부장에게?”

유주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공사 철저히 구별하게 회사 밖에선 경어 쓰지 말라고 정색할 땐 언제고. 강주하는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내려오고 있는지 위를 흘깃 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집 빼든가. 뭐가 그렇게 거슬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거슬린다면.”

“뭐라고…?”

이게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제 입으로 실컷 유도해놓고 이제 와서 수틀리면 일주일 만에 방, 아니 집을 빼라니. 갈 데 없는 거, 자금 사정 절박한 거 뻔히 알 텐데. 정 안되면 고시원이 있으니 길거리에 나앉을 신세까진 아니지만 사람을 이렇게 갖고 노는 법이 어딨어.

“너한테 임차인 권리 이딴 거 없는 거 알지? 계약서 자체가 없으니까.”

“뭐… 뭐?”

“강제 퇴거시키면 그만이야. 동창이라 사정이 딱해서 잠깐 있으라고 해줬더니 아예 눌러앉으려고 억지 부린다 신고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는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는 유주의 손목을 다시 잡아끌고 안에 올랐다.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집주인이 집 상태 본다는데 무슨 말이 많아.”

강주하가 15층을 누르는 순간, 유주의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혹시 정혜 언니일지 몰라 휴대폰을 보니 혜리다. 혜리는 연락이 될 때까지 집요하게 전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유주는 강주하를 힐끗 노려보며 뒤돌아섰다. 사적인 대화가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안이라 더 멀리 갈 수가 없었다.

“어, 혜리야. 아까는 못 가서 미안해. 영재 선배한테 들었겠지만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내가 이따가 다시 전……”

“유주야, 나 영재야.”

“네? 아, 선배님.”

폰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오자 강주하의 눈매가 매섭게 가늘어졌다.

“미안. 내 번호로 전화하니까 계속 연결이 안 돼서. 모르는 번호라 안 받는 것 같아서 혜리 폰 좀 빌렸어.”

“아… 네. 무슨 급한 일 있으세요?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리면…”

“아, 그럼 내 번호로 문자 보낼게. 내일 지방에 큰 집 가게 되어 오늘 안에 꼭 말하고 싶어서. 사실 오늘 다 같이 밥 먹고 따로 말할 계획이었는데… 늦어도 좋으니까 꼭 연락 줘.”

“네, 그러세…”

갑자기 등 뒤에서 손이 뻗어와 휴대폰을 낚아채 갔다. 유주가 기겁해서 뒤돌아봤을 때 강주하는 이미 폰을 제 것인 양 귀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연락하지 마시죠. 서유주, 만나는 남자 있습니다.”

유주가 경악해서 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그녀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가볍게 그러쥐고 재빨리 말했다.

“나요? 내가 그 남자입니다. 유주 애인.”

“뭐라고? 강주하! 폰 이리 내놔! 이리……”

“지금은 유주랑 단둘이 집에 있고, 내일까지 집 밖으로 한 발도 안 나갈 예정이고요. 이젠 확실히 이해가 됐습니까? 알았으면 다신 연락하지 않을 거라 믿겠습니다.”

그가 폰을 귀에서 떼는 순간, 유주가 까치발을 하고 강주하의 뺨을 힘껏 올려붙였다. 짝, 좁디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 때리는 소리가 찰지게 울렸다. 유주의 귀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씩씩대는 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폰을 되찾으려고 허우적대던 유주의 손이 미끄러지고 휴대폰이 바닥을 굴렀다. 그녀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15층에서 열렸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고 있었다.

갑자기 등이 거울과 부딪치는 충격에 유주가 앗,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그가 밀어붙이며 눌러오는 통에 기함한 표정이었다.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고 기껏 사수한 휴대폰도 가방 위로 내려앉았다.

“가, 강… 강주…… 흐읍!”

뜨거운 혀가 입술 사이를 사정없이 밀고 들어왔다. 유주의 놀란 혀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달아날 곳이 없었다. 막 불붙기 시작한 혓바닥에 욕망 가득 담은 혀가 격렬하게 마찰을 일으켜 댔다. 작은 혀를 휘감아 빨아올리고 쥐어짜며 꿈틀거리는 혀의 힘이 엄청났다. 사람의 혀가 아닌 것 같았다.

딥 키스가 처음이진 않았다. 대학 때 동기 누군가 취중에 느닷없이 고백하며 기습 키스를 해 온 적은 있지만, 감정이 없어서 그런지 역한 체취와 술 냄새가 섞인 악취만이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강주하에게서도 짙은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강렬함이다. 남성용 향수 같은 인공 향이 떠도는 체취에, 쓰디쓴 커피의 아로마와 달큼한 타액이 뒤섞인 내음이 아찔하도록 관능적이었다. 이렇게 강렬하고 매혹적인 냄새를 도대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수컷의 향? 페로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가 각도를 바꿔가며 혀를 마구 옭아매고, 계속해서 분출되는 타액을 제 것처럼 빨아갔다. 키스가 이런 거였나? 이렇게 미치도록, 사람의 정신을 기절 직전까지 마구 몰아가는 거였나?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다시 내려가는 진동이 느껴졌다. 그가 아쉬운 듯 천천히 입을 뗐다. 정신이 들고 보니 그의 옷깃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강주하의 옷깃을 꽉 붙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유주는 깜짝 놀라 손을 후다닥 떼어 냈다. 어찌나 필사적으로 잡았던지 주름 하나 없었던 흰 옷깃이 종잇장처럼 마구 구겨져 있다.

“어, 엘… 엘베가 다시 내려가 버리……”

갑자기 입가로 침이 흘러내렸다. 유주는 기겁해서 뒤돌아서 손등으로 침을 닦아냈다. 얼굴이 정말로 타오를 것처럼 뜨거웠다. 느닷없이 기습 키스에 침이나 뚝뚝 흘리는 꼴이라니.

“그러게.”

주하가 낮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제 쪽으로 돌려세웠다. 색기 가득, 흐릿한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열정과 욕망이 넘실대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가 침을 흘린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유주의 손바닥이 치고 간 왼쪽 뺨은 피멍이 든 것처럼 붉었다.

“문 열렸는지도 몰랐는데.”

그가 다시 15층의 버튼을 누르고 돌아섰다. 다른 손으로는 목을 죄던 타이를 거칠게 당겨 내리고 있었다. 유주는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이성을 되찾으려 애쓰면서도 방금까지 혼이 빠져나갈 것 같던 감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럼 10초만 다시 할까.”

강주하가 그녀를 다시 거울 위로 밀어붙였다.

“아, 아니 잠! 잠깐만… 읍! 흐읏……!”

혹시나 머리를 찧게 할까 봐, 뒷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턱을 받쳐 올렸다. 그 다정한 배려와는 달리, 혀는 무자비하게 입술 안으로 들어가 점막과 치열, 혀, 잇몸까지 마구 파헤치고 거세게 흡착하듯 빨아당기고 있었다.

“으… 흣…… 으응……!”

두 손이 다시 강주하의 멱살을 잡았다. 넥타이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바짝 붙은 두 상체 사이에서 대롱거렸다. 머리가 하얗게 바래어갔다. 아찔함에 숨이 턱턱 막혀오고 있었다.

무자비하기로는 하체도 지지 않았다. 정장 바지에 감싸인 허벅지가 그녀의 다리 사이, 오목한 곳을 마구 쑤시고 짓눌러대어 아플 지경이었다. 다리 역시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무섭도록 단단했다. 그리고 허벅지 근육보다 더 뜨겁고 농밀한 다른 것이 복부 위를 쿡쿡 쑤셔오고 있었다. 그는 엄청나게 발기해 있었다.

이번에는 15층에 도달했다는 띵,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강주하의 혀는 여전히 그녀의 것을 붙잡고 두 허벅지로 하체를 아프도록 압박하고 있었다. 유주가 바윗덩이 같은 그의 양어깨를 잡고 밀어내려 애쓰다 여의치 않자 주먹으로 힘껏 쳤다.

강주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후에 입술을 떼어 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불투명한 타액의 실이 이어져 있었다.

“에, 엘리베이터… 다시 내려가려고…… 흐읏!”

그가 다시 입을 겹쳐서 타액을 빨아낸 뒤 팔을 뻗어 열림 버튼을 눌렀다. 막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내리려는데 다리에 쥐가 난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하가 그녀를 병자처럼 부축해서 간신히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유주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자마자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 다시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무슨 짓을 당할지 겁이 났다.

“이, 이게 무슨… 무슨 파렴치한 짓이야? 너 미쳤어? 어떻게……”

“네가 먼저 때렸잖아.”

유주는 이 악물고 항변했다. 뻔뻔스러운 낯짝에 가방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간신히 주먹 쥐고 참았다.

“네가 가만히 있는데 때렸어? 도대체 왜 그따위 개념 없는 헛소리를!”

“이쪽 라인 아직 거주 세대 있지 않나. 민폐니까 조용히 해.”

“그래, 민폐니까 제발 가줘! 집 상태는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일주일밖에 안 살았고 이젠 창피해서라도 못 살아. 엘리베이터 CCTV 다 찍혔을 텐데.”

유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엘리베이터 옆, 현관문에 기대섰다. 분노보다 수치심이 더 크게 밀려와 숨이 가빴다. 아까의 강렬했던 체취가 다시 바짝 다가왔다. 그가 문에 한 손을 기대고 속삭였다.

“찍혔으면 어때. 신고받기 전에는 일일이 확인도 안 해. 넌 신고 안 할 거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울림 깊은 음색이 일으키는 반향은 메아리 같았다. 구축 아파트 특유의 계단식 복도는 1층까지 이어져 있다. 유주는 갑작스러운 삑삑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을 짚고 있던 강주하의 손이 옆으로 뻗어가 키패드를 열고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누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본의 아니게 실토해 버린 생일 날짜, 0327이 눌린 번호판은 경쾌한 울림을 토했다.

“지, 집 보려는 거 아니지? 안 돼, 못 들어가! 절대 너랑 단둘이……”

그의 완력을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강주하는 유주가 소리를 지르기 직전, 재빨리 그녀를 집 안에 밀어 넣고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유주는 박제된 매미처럼 강주하의 거구와 문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 나 아직도 감정 많아. 7년 전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많이.”

강주하가 대롱대롱 떨어질 듯 목에 매달려 있는 타이를 완전히 풀어냈다. 그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달큰한 체취, 숨결, 옷으로도 숨겨지지 않는 단단한 가슴 근육에 압사당해 버릴 것 같았다.

“나, 서유주 너 아직도 좋아해. 7년 전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

“뭐… 뭐,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그때랑 상황도 같은데. 이미 일주일 전 금전적인 지원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여기 있는 거잖아.”

“뭐? 그건 순전히 몸테크하라고……”

“그래, 몸테크. 재테크, 주테크, 핀테크, 앱테크, 그런 건 재산 증식 테크고, 몸테크는 몸으로 하는 거지.”

유주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강주하가 말한 몸테크는 임차인의 몸테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뜻의 몸테크를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었던 거다.

“너,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강주하.”

그의 손가락이 유주의 달싹이는 아랫입술 선을 덧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매섭게 쳐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뢰한처럼 굴지 말고 당장 나가. 무슨 얘기를 할 거면 해 떠 있을 때 밖에서……”

“내일 해 중천에 뜰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야.”

“뭐…?”

“아까 네 그 선밴지 뭔지 흑심 부리는 새끼한테도 말했잖아, 분명히. 내일 날 밝을 때까지 집 밖으로 한 발도 안 나갈 거라고.”

강주하의 의미심장한 두 눈은 아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유주에게 좀 더 몸을 밀착시켜왔다.

“내가 나 혼자만 이러면 진짜 파렴치한, 무뢰한 미친놈이겠지만… 그건 아니잖아. 너도 나한테 감정 있잖아.”

“아, 제발 그… 더 가까이 오지 마!”

그가 내뱉는 달큰한 숨결, 잠식되어 버릴 듯한 체취에 유주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강주하의 손가락이 턱을 잡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나 그렇게 미국 가고 미치는 줄 알았어. 연락했는데 계속 씹지, 한국에 올 상황은 안 되지……”

유주의 눈이 더 커졌다. 비틀거리는 동공이 흐릿한 현관등 불빛 아래서도 확연히 보였다. 턱을 받치던 손가락이 아래로 떨어져 목으로, 얇은 셔츠 라운드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악, 그 차갑고 짜릿한 감각에 유주가 그를 힘껏 밀어내려 애썼다. 강주하는 보란 듯이 몸을 더 바짝 기대서 왔다.

“나 미국 가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했어.”

“…….?”

“섹스 안 했다고.”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너만 생각하면서 모든 유혹과 수작들 물리치며 7년 동안 섹스리스로 살았어. 그것도 지구상에서 좆질 제일 프리한 미국에서. 신체 건강한 20대 남자에게 그게 얼마나 엄청난 자제력을 요하는 고문인 줄 알아? 하고 싶은 유일한 여자를 만지지도 못하고 안지도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동정도 아니면서 그런 것처럼 말하지 마. 10대 때 했잖아.”

“딱 한 번 했어. 사실 내 의지로 한 것도 아니고. 학교 옥상에서 자고 있는데 세인트 마리안지 나발리안인지 기숙사 여학교에서 담 넘어와 내 바지 지퍼 열고 멋대로 꺼내서 제 안에다 박았다고. 난 잠결에 그냥 흔들었고.”

“내가 너 7년 동안 섹스리스로 살라고 하지도 않았어……”

“그래? 그럼 나 그냥 갈까?”

갈라지고 살짝 쉬어 있는 음성이 유주의 전신에 전율을 일으켰다.

“벌써부터 터져나갈 것 같지만……”

강주하가 제 바지 앞섶을 그녀의 다리 사이에 더 바짝 눌러왔다. 그 노골적인 감촉에 깜짝 놀란 유주가 꺄악, 질겁하는 신음을 흘렸다.

“7년간 독수공방 수절한 내 좆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려 고자 될 것 같지만. 그리고 넌 어떠냐 하면.”

“아악! 뭐, 뭐하는 거… 아흣! 안… 아!”

강주하의 손이 발목 위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사정없이 걷어붙이고 다리 사이, 속옷 한가운데를 넓게 잡고 꾹 눌렀다. 유주의 허리가 크게 튕겼다.

“씨발. 너도 이렇게 젖었잖아. 이 팬티는 아예 버려야 할 것 같은데.”

“아윽! 그, 그만…!”

“어차피 싸구려일 테니까 그냥 버려.”

“너… 안 닥칠래. 흐읍… 아, 제발 손 좀 치……”

“괜찮아. 내용물은 돈으로도 못 사는 명품이니까.”

음부를 감싼 중심부를 우악스럽게 누르고 비비던 손이 뚝 멈췄다. 그가 숨통이 막힐 만큼 상 하체를 꼭 부딪혀오며 유주의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어떡해? 나 그냥 갈까…?”

유주는 얼굴만 뜨겁게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쌕쌕거리고 쌔근거리는 숨소리 사이에 간헐적인 신음만 뱉어낼 따름이었다.

“너도 날 원하잖아. 꽁꽁 싸매고 수녀처럼 살아왔으니 처녀일 건 뻔하고……”

강주하의 이 끝이 귓불을 살짝 물었다. 유주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네가 무슨 상관이… 흣!”

“역시 처녀구나.”

혹시나 해서 떠봤는데, 강주하가 기쁜 듯 뻔뻔스럽게 덧붙였다.

“나도 동정이나 다름없어. 너 만나기 전에 그 미친 블론드한테 당한 건 그냥 개좆질이라고. 지금까지 미치도록 참았지만, 지금부터 너랑 할 건 사랑이고.”

그의 이 끝이 귀를 벗어나 목 아래 민감한 곳을 콕 물었다. 그리고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어떡해…? 어느 쪽 문 열까. 네가 결정해….”

그가 힘없는 척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가 기대고 있는 현관문, 집 안으로 이어지는 반대쪽 중문 중 어디로 갈까. 유주는 다시 몸서리를 쳤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쭉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그가 정말로 가 버리면 못 견딜 것 같았다. 얌전히 자고 있던 수녀에게 음란마귀가 씐 것이든, 저녁때 몇 모금 홀짝인 와인 때문이든 뭐든 좋았다. 강주하가 그녀의 본능에 붙인 작은 불꽃은 이미 너무 커져 있었다.

“가라면 갈 거야? 가지도 못할 거면서……”

“아니, 갈 거야. 진짜로.”

그의 손이 다시 유주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번엔 속옷 겉만이 아니라 레이스 가장자리 안쪽까지 들어가, 촉촉하게 젖은 음부 입구에 제 손가락을 느른하게 비벼댔다.

“여기만 좀 만지고 갈 거야….”

“아! 으흑! 그, 그만… 손 떼…… 아흣!”

손가락이 질 안으로 쑥 들어가는 순간 유주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어깻죽지를 꼭 움켜쥔 손톱이 아파 왔다.

“드, 들어가서… 여, 여기서 이러지 말… 고…… 흣!”

“그래.”

그가 손가락을 천천히 빼냈다. 어디선가 날 것의 원초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들어가자.”

강주하가 쉰 목소리로 명령했다.

“문 열어.”

그가 몸을 떼면서 현관 앞 중문을 턱짓해 보였다.

“네 손으로 직접.”

* * *

미닫이형 중문을 여는 다섯 손가락이 달달 떨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몸이 번쩍 위로 들리는 감각에 유주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강주하가 그녀를 한쪽 어깨에 들쳐 안고 거실을 가로질러 걸었다. 제집처럼, 물론 서류상 제집이긴 했지만, 집안 구조를 훤히 알고 있는 몸짓이었다.

침실 문 앞에서 넥타이가 허물 벗은 뱀처럼 떨어져 내렸다. 정장 슈트, 그녀가 종잇장처럼 옷깃을 구겨버린 순백색 드레스 셔츠가 그 뒤를 이었다. 강주하가 그녀를 캐노피가 커튼처럼 늘어진 침대 가장자리에 내려주고는 불뚝 솟아오른 앞섶의 벨트를 풀었다.

“뭐해.”

정적을 깨는 저음이 오싹한 전율을 일으켰다.

“안 벗고.”

버클이 철컹, 소리 내며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혹시 벗겨주는 게 취향이면……”

그가 벨트만 풀고 바지는 입은 채로 유주에게 곧장 다가왔다. 그녀가 히익,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강주하가 좀 더 빨랐다. 꽃무늬 슬립 드레스 어깨끈이 순식간에 풀리고 안에 받쳐 입은 면 티셔츠도 머리 위로 훌렁 벗겨졌다. 가슴골 사이의 브래지어 훅을 풀자 숨겨졌던 젖가슴이 출렁, 위용을 드러냈다.

주하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풍만한 가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유주는 그 손길에 아앙, 작게 신음을 죽이고 그의 팔꿈치 언저리를 잡았다. 까치발을 하고 뒤꿈치를 세운 발가락이 귀엽게 꼬물거렸다.

그는 부드럽게 가슴을 감싸 쥐고 힘을 주었다가 빼길 반복하며, 유주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헐떡이는 반응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둥글게 솟아오른 가슴과 벌써부터 빳빳하게 서 버린 유두까지, 커다란 손바닥 안에 착 달라붙고 폭 감겨오는 느낌이 미치도록 짜릿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바짝 서서 펄떡거리는 제 것이 더 요동을 쳐대고 있었다.

“너는 회사에서 늘 헐렁하게… 특히 상의는 달라붙지 않게 입어서 그거 하난 기특했어.”

“으응…! 읏! 하음. 음……”

“이렇게 크고 봉긋한 선이 잘 안 보이니까……”

그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듯 중얼대며 부드러운 젖가슴을 좀 더 세게 쥐었다. 흐읏, 유주가 허리를 크게 튕겼다. 음부를 감싼 팬티 중심은 질질 새다 못해 주르륵 흘러버린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특히 알바할 때 남자들이 자꾸 가슴을 보곤 해서 일부러 헐렁하게 입는 습관이 이어져 왔다. 젖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손에 힘이 확 들어갔다. 유주가 악, 소리를 높이자 그가 악력의 힘을 풀었다.

“씨발… 7년 만이야, 7년 만. 가기 전에 확 덮쳐 버려야 했는데……”

주하는 욕설을 중얼거리곤 다시 유주의 가슴에 집중했다. 예쁘고 통통하게 솟은 가슴과 단단해진 유두를 사랑스럽다는 듯 손바닥과 손등으로 애무하길 한참,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짓누르듯 비벼대다 빙글빙글 돌렸다. 유주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아앗! 응! 아, 아파…!”

“아프기만 해…?”

손가락 끝이 좀 더 힘을 가했다. 유두를 잡고 좀 더 위로 잡아당기자 유주가 허리를 튕기며 아아앙, 우는 신음을 뱉었다. 짜릿한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등줄기를 타고 찌릿찌릿 전율이 흘렀다.

“좋지는 않고?”

그가 키스할 듯 말 듯, 유주의 입술 바로 위에 제 입술을 대고 나긋나긋 속삭였다. 유주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못하고 눈만 꼭 감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등줄기를 후려치는 전율이 쾌감인 것을 차마 인정하지 못해서였다.

“아프다고! 너무 세게 그렇게 잡아당기면……”

“아아, 미안…… 잔뜩 부었네, 정말.”

어딘가 서늘한 사과의 말에 이어 이번엔 입술이 다가왔다. 달래주듯, 뜨겁게 젖은 혀가 양쪽 젖꼭지를 번갈아 가며 부드럽게 핥았다. 유주는 다시 눈을 꾹 감고 그의 팔뚝을 잡은 제 손에 힘을 주었다. 혀끝이 부어오른 돌기 위를 빙글빙글 돌리며 달래듯이 희롱하자, 몸 중심을 장악하던 열락이 더 짙게 퍼져나갔다.

“아아. 으응……”

“기분 좋아…?”

“아, 안 좋아… 안 좋…… 하읏! 악!”

나른하던 신음이 갑자기 비명으로 변했다. 아련하게 핥고 빨던 혀가 물러나고 짐승의 송곳니 같은 것이 유륜을 확 깨물어 왔다. 그녀가 몸을 비틀며 힘들어하자 치아 끝이 물러나고 입술이 다시 돌기를 덮었다.

입술과 혀만으로 머리끝이 곤두서는 짜릿한 전율은 더해갔다. 입술이 유두를 한껏 머금고 혀로 꾹꾹 누르다가 양쪽 입술에 세차게 힘을 주었다. 엄청난 힘이 젖꼭지를 흡착기처럼 빨아들였다.

“아아! 아흑! 아아앙! 으응……! 아아… 앗!”

유주가 이번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는지 강주하의 머리를 밀어내고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그는 물론 밀려나지 않고 되려 유주의 허리에 두 팔을 꼭 둘렀다. 아랫도리에 피가 확 몰리며 그의 것이 바지를 뚫고 나올 듯 팽팽하게 요동쳤다.

강주하는 마지막으로 젖꼭지를 쪽, 세게 빨아대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처음인 만큼 좀 더 전희를 오래오래 끌어서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가 더 버텨낼 수 없었다. 그가 유주의 양어깨를 부드럽게 밀쳐서 시트 위로 쓰러뜨리고 속옷을 벗겼다.

“앗……!”

유주가 기겁해서 다리를 꼭 오므리자 가차 없이 양 무릎을 잡고 확 벌렸다. 강주하의 손길에 여유라곤 없었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는 그녀의 종아리 사이에 자리 잡고 바지를 벗어 내렸다.

속옷째 바지를 확 내리자 탱탱하게 발기한 페니스 끝이 팬티에 걸려서 덜렁거렸다. 그 광경을 보던 유주의 눈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입술도 경악한 듯 살짝 벌어져 있었다.

체격으로 보아 작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커도 너무 컸다. 포르노에서 본 서양인 남자들의 것보다 1.5배는 더 커 보였다. 길고 굵직한 음경이 귀두를 음란하게 흔들며 바짝 융기해 있다.

유주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경험 많은 여자라면 기대에 부푼 경탄이겠지만, 지금 그녀의 한숨은 제 질의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과연 저런 게 들어갈 수 있을까. 게다가 처음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와인을 좀 더 많이 마셔둘걸.

강주하는 곧장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와 한쪽 뺨을 다정하게 쓸었다. 빨갛게 피가 몰려 있다 급격히 창백해진 낯빛과 그 이유를 눈치챈 것 같았다.

“처음이라 긴장돼? 괜찮으니까 몸에 힘 빼.”

유주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대답 대신 목까지 홍조가 벌겋게 퍼져갔다. 우뚝 선 페니스 끝, 갈라진 틈에 맺혀 있던 액이 음경을 타고 빗방울처럼 뚝 흘러내렸다. 수컷의 날 것 같은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더럽거나 지저분하긴커녕, 그 음란함이 더 섹시하게 느껴져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최대한 많이 풀어줄게, 속삭이며 그가 혀로 유주의 입술을 핥았다. 가운데 손가락이 거침없이 음부로 들어가 촉촉하게 젖은 내벽을 힘껏 누르고 찔렀다. 유주는 아까 가슴을 애무 당할 때보다 훨씬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앗! 핫! 아, 안 돼…! 그렇게 세게…… 하윽! 응!”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과는 달리, 그의 손가락이 들어간 틈새에선 애액이 주룩주룩, 아까보다 훨씬 더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음부 맨 안쪽이 무한정 솟아나는 꿀샘을 품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철벅거리는 음란한 마찰음이 귓전을 때렸다.

집요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내벽의 주름 어딘가를 훅 찔러왔다. 아악, 유주가 누운 채로 허리를 한껏 들어 올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허리를 앞뒤로, 옆으로 뒤척이고 흔드는 통에 커다란 젖가슴이 탐스럽게 출렁거렸다.

강주하는 손가락을 질 안에 쑤셔 넣은 채, 그대로 허리를 굽혀 유두를 하나씩 빨았다. 그러자 바짝 조여드는 내벽의 점막이 거세게 수축하며 손가락을 더 꽉 물었다. 이 끝을 세워서 잘근 씹어보자 아예 손가락이 절단날 것 같았다. 꼭 물고 조여대는 힘은 강해졌지만 가로막힌 주름 때문에 더는 전진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후퇴시켰다. 꾸물거리는 내벽이 동굴을 벗어나는 제 손가락 위에 흠뻑 애액을 뿌렸다. 음순을 마지막으로 건드려주니 이번에도 주륵, 흥분액이 외음부를 질펀하게 적셔왔다.

부푼 기대와 설렘의 한숨이 낮게 흩어졌다. 강주하는 한 손으로 발기한 페니스를 잡고는, 애액에 젖은 손가락을 그 위에 펴 바르고 비볐다. 애액이 한 방울 유주의 배꼽 위에 떨어지자 귀두가 그 위를 집요하게 문질러댔다.

“아아…… 흐읏…! 으…응……”

기묘한 쾌감에 유주가 몸서리를 쳐댔다. 다리 사이 음부는 마를 줄을 모르고 어김없이 애액을 한 움큼 쏟아냈다. 페니스 선단이 배꼽의 움푹 들어간 곳을 쿡쿡 쑤시다 나른하게 원을 그리자 묘한 쾌락이 저릿하게 감겨 와서 자제할 수가 없었다.

“우리 유주… 성감대가 너무 많은데? 갖다 대기만 하면 잔뜩 느껴서 질질 흘리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양손이 유주의 종아리 아래를 세우며 엉덩이 안쪽으로 미끄러져 올라왔다. 엉덩이를 감싸 쥐고 위로 살짝 들리기 무섭게, 그가 헐떡임 속에서 나직하게 선언했다.

“넣는다…… 힘 빼.”

귀두가 갈라진 틈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유주는 두려움에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울음소리를 키웠다. 처음인 걸 감안해 단번에 훅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엄청난 압박이 밀려왔다.

“아아… 읏. 아, 천천히. 제발……”

꼭 감긴 눈꺼풀 위로 그의 입술이 다가왔다. 눈을 뜨자 입술이 눈두덩을 부드럽게 눌러왔다. 귀두가 조금씩 더 들어오려는 감각에 유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애원을 띄엄띄엄 읊어댔다.

“나, 는 처음… 지만 넌… 어쨌든 경험이…… 조심… 않고… 막… 살살……”

난 처음이지만 넌 어쨌든 경험이 있으니 조심하지 않고 막 하면 엄청나게 아플 테니까 살살 해야 돼! 다행히 그는 행간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허리가 조금 뒤로 빠지며, 귀두 끝의 뜨거움이 자취를 감췄다.

“최대한 안 힘들게 할게. 이놈이 말을 들을진 모르겠지만.”

제일 긴 손가락 두 개가 유주의 음부를 한껏 벌렸다. 뒤로 밀렸던 허리가 다시 치고 나왔다. 유주의 불안을 그런 방식으로 바로 잡으려는 것처럼, 그의 것이 다시 본격적으로 진입을 시도해왔다. 귀두가 쑥 들어가고 두꺼운 음경 기둥이 그 뒤를 이었다.

반의반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촉촉하게 꾸물거리는 속살의 진동이 생생했다. 좁디좁은 내벽이 음경을 뜨겁게 휘감고 꿰뚫리는 아픔을 토했다. 그의 허리가 조금씩 더 앞으로 움직이며, 질벽을 파고든 성기도 속살을 점점 더 위로 밀어 젖혀갔다.

“흐읏! 아… 으으……. 아흑! 아, 안 돼… 아…파. 그만……!”

그가 허리를 밀어붙일수록 유주의 비명도 더 커졌다. 반대로 강주하의 입에서는 쾌감에 젖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쉽게 길을 터주지 않는 와중에도 내벽의 점막이 제 것을 끊어져라 물고 바짝 조여 왔다. 손 탄 적 없는 질 안쪽은 좁디좁은 통로를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었다.

주하는 허리를 다시 뒤로 뺐다가 앞으로 전진시키길 수차례 반복했다. 성기가 저만의 의지를 지닌 것처럼 거세게 맥박을 쳐댔다. 불끈거리는 페니스가 꿋꿋하게 좁은 내벽을 끝까지 밀고 들어갔다. 녹아들 듯 뜨겁게 감싸오는 속살이 미치도록 좋았다. 가슴을 흔들며 시트를 꽉 움켜쥐는 몸은 도자기처럼 하얗고 예뻤다.

“응, 으읏! 하… 흑! 아, 그만… 그만 들…… 그…”

그만 들어와, 소리치기 직전 목이 꽉 잠겨버렸다. 처음 관통되는 아픔에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지 오래였다. 음경 끝은 더 들어올 곳 없이 뿌리까지 끝까지 들어차 있었다. 뒤로 물러날 곳만 있고 더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경부에까지 닿을 것 같았다.

주하는 허리를 손톱만큼 뒤로 물렸다. 이제 막 삽입만 했을 뿐인데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숨을 한 번 내쉬자 기절할 듯 경련하는 유주의 젖가슴 위로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허리를 움직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정말로 숨통이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질 듯 현기증이 일었다.

현실과 가까스로 이어져 있던 자제력의 끈이 끊어졌다. 그는 이성을 내던지고 허리를 뒤로 당겨 페니스를 빼냈다가 질 안으로 다시 밀어붙였다. 아악, 유주의 손톱이 제 가슴을 힘껏 할퀴고 찔러댔지만 오히려 쾌감만 더 증폭시켰다. 짜릿한 감각이 몸 전체에 퍼지며, 내벽에 꽉 조이는 분신처럼 심장도 후끈거렸다.

“악! 아아…읏! 아아…… 흐으윽…!”

쥐어짜는 것 같은 신음이 유주의 목 깊은 곳에서 쉬지 않고 울려 나왔다. 귀두가 질 안쪽, 가장 깊고 오목한 곳을 사정없이 찔러왔다. 날 것의 냄새, 질척거리는 음란한 마찰음과 제 교성이 뒤섞여 유주의 머릿속이 완전히 혼탁해졌다.

뜨거워, 아아… 너무 뜨거워. 아파. 아파서 죽을 것 같아. 하지만……

꿰뚫린 고통, 쓰라린 아픔 뒤에는 녹아들 것만 같은 전율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의 것이 한 번 맹렬히 부딪치며 박혀들 때마다 눈물이 찔끔 흘렀다.

아픈데 너무 좋아. 미칠 것 같아.

어느새 유주는 엉엉 울면서도 그의 목에 두 팔을 두르고 매달리듯 끌어안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허벅지 사이에 힘을 주고 조이니 강주하의 씨근대는 숨결이 좀 더 커졌다. 거칠 것 없이 움직이던 페니스는 그 반응에 더 탄력을 받았는지, 더 빠르고 거세게 내벽을 밀어붙였다.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본 영상들 중 이 순간에 버금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좋아서 이대로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모를 것 같아, 하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역시 상대가 강주하기 때문인 걸까. 사실은 첫사랑이었던 남자이기 때문에, 살을 섞고 한 몸으로 녹아드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럽고 원초적인 짓거리에서 의미 있는 행위로 승화되는 것일 터였다.

귀두가 가열 차게 내벽 안쪽을 두드리듯 힘껏 찌르고, 음경 표면이 속살의 주름을 흡착하듯 뒤로 잡아당겨 빠졌다가 다시 속살을 짓뭉개며 올라가고, 귀두가 재차 질 끝을 박아대는 단순한 반복일 뿐인데. 이 일련의 행위가 왜 이렇게나 황홀한 걸까.

온몸이 저릿했다. 강주하는 분명, 처음으로 그녀를 설레게 했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뒤틀린 가치관 때문에 연락을 씹어버렸다. 그리고 7년 만에 재회한 그는 7년 전보다 더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를 다시 휘둘렀고 앞으로도 휘두르려 하고 있었다.

유주는 그의 머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짙은 체취가 흐르는 살갗에 입술을 깊이 파묻었다. 그런 위험한 남자와 단둘이, 아주 음란하고 달콤한 열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위기감마저 그 쾌락의 일부인 것 같았다.

목이 깨물리는 충격에 주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유주가 제 머리를 꼭 안고 매달리다 갑자기 이 끝으로 목 어딘가를 앙 물고 있었다. 피가 날 듯한 따끔함이 오히려 흥분을 더 배가시켰다.

그는 목 안쪽을 파고드는 단단한 치아 날을 느끼며 허리를 더 거칠게 흔들었다. 유주는 저도 모르는 새, 제 탄탄한 목 안쪽 연약한 속살을 뜯고 씹다가 엉엉 울다가 응! 응! 으응! 밭은 교성을 흘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벽이 품은 모든 애액을 퍼내려는 것처럼 페니스가 격렬하게 안쪽을 왕복해댔다.

주하의 입에서도 앓는 듯한 신음이 연신 흘렀다. 황홀감에 온몸이 저릿했다. 십 대 시절 미국에서 얼떨결에 한 번 섹스란 걸 해본 이후로는 이쪽에 영 흥미가 없었다.

달려들어 붙잡고 늘어지는 여자들이 별로 꼴리지도 않았고, 뭣보다 좆 껍질도 안 보여줬는데 하버드 동창녀가 제 자식을 임신했다 속이고 온갖 쇼를 벌였던 이후로는 넌덜머리가 나서 원나잇 스탠드고 뭐고 아예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때 얼마나 학을 뗐는지, 뒤끝 없을 소위 전문 섹스워커들도 가까이 한 적 없었다. 운동에만 줄곧 에너지를 쏟아서 그런지 딱히 욕정에 시달린 적도 없다. 서유주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흐읏… 응! 응! 응! 아앙!”

그가 미친 듯이 박차를 가했다. 어느새 목 위로 올라가 귓불을 물고 있던 유주의 신음이 높아졌다. 음경이 내벽 끝을 힘껏 박아대는 속도가 빨라졌다. 고환을 감싼 음낭이 접합부 아래를 쿵, 쿵 짓찧으며 치댔다.

주하의 허리가 격렬하게 박차를 가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사정감이 밀려와 버텨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밤은 길었다.

괜찮아. 몇 번이고 할 수 있어.

“흐윽! 주… 하! 주…. 아앙! 앙! 으응!”

마지막으로 속살을 세차게 찔러 올린 성기가 잔뜩 수축한 내벽 안을 크게 휘젓고 귀두에 힘을 주었다. 뜨거운 사정액이 질 안쪽을 가득 메웠다. 유주가 허리를 격하게 휘면서 어느 때보다 더 크게 교성을 질렀다.

“응, 응, 응, 으으읏! 아아아앗!”

오 년 이상 품고 있던 정액이 한꺼번에 해방을 맞이한 듯, 그의 것은 길고 진득하게 사정을 이어갔다. 주하는 정액이 자궁에 한 방울이라도 더 쏟아지도록, 저도 모르게 유주의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는 사정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유주를 더 안고 있었다.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웬만한 근력 운동에도 지칠 줄 몰랐는데 몇 년 만의 격렬한 정사에 너무 흥분했는지 기분 좋은 나른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유주는 아예 정신을 놓고 쌕쌕 잠들어 있었다. 주하는 제 타액과 땀으로 얼룩진 그녀의 젖가슴 위에 머리를 기댔다.

둘은 서로의 헐떡이는 숨소리, 체액이 끈적하게 뒤엉킨 냄새 속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 * *

휴대폰 알림 소리에 눈이 떠졌다. 8월 중순, 여름 장마의 호우주의보를 알리는 문자가 와 있었다. 열 시를 넘긴 시간,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일요일이라 출근할 필요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평일이었다면 꼼짝없이 병가라도 내야 할 판이었다.

커다란 침대 위에 그녀 혼자 누워 있었다. 유주는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보송보송한 시트 안에 감싸인 알몸에 끈적임은 없었다.

간밤의 기억이 살아나 얼굴이 또 귓불까지 달아올랐다. 강주하가 두 번째 사정하고 난 다음, 저를 욕실로 번쩍 안아 들고 들어가 함께 욕조에서 씻는 둥 마는 둥 또 한바탕 물난리를 쳤던 기억이다.

그리고는 반쯤 혼절한 제 몸을 타월에 감싸 어깨에 들쳐 안고는 옷장을 뒤적거려 새 시트를 찾아내고, 그걸 침대에 깔고, 그 위에 그녀를 눕혔다. 감기 걸리면 안 된다고, 새로 꺼낸 베개에 머리 가장자리만 얹어놓곤 헤어드라이어를 돌리기도 했었다.

침대에 내려와 발을 딛는 즉시, 억 소리가 새어 나왔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하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 사이가 쓰라리고 뻐근해 간밤의 격렬함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대강 세수와 양치를 하고 최소한의 화장이라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갔다. 어차피 민낯은 밤새 봤을 거고, 언니들이 화장 좀 제대로 해봐라, 하나 안 하나 별 차이 없다는 둥 평소 잔소리를 들어왔다.

유주는 위아래가 붙은 실내복을 걸쳐 입고 방문을 열었다. 복도에 발을 딛기도 전에 미역국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설마 직접 끓인 건 아니겠지?

“일어났어?”

거실과 분리된 주방문 너머로 강주하가 고개를 내밀었다. 부스스한 그녀와는 달리, 깊이 숙면을 취한 것처럼 활짝 핀 얼굴이었다. 회사에서와 달리 이마를 덮은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어리고 순수해 보였다. 바보. 저 강주하가 순수할 리 없는데.

식탁에는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조리대에 포장지와 종이박스가 널려 있는 걸 보니 배달음식인 모양이다. 하긴 강주하가 주방에서 에이프런 두르고 요리를 한다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요즘은 멋진 외모의 쉐프들도 많지만 그래도 강주하와 요리는 도무지 매치가 안 된다.

“몸은 괜찮아? 많이 힘들었지.”

유주는 다정하게 묻는 그의 시선을 살짝 비껴 나며 식탁 앞에 앉았다. 치질 환자처럼 조심스럽게 앉는 동안 끄응,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꼭 악물었다.

“왜 눈을 피해?”

맞은편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나면서 그가 맞은편에 앉았다.

“많이 부끄러워? 난 별로 안 부끄러운데……”

“메뉴가… 뭔가 통일성이 없네.”

유주는 화제를 급격히 바꿨다. 즉석밥에 미역국, 연어 스테이크와 여러 밑반찬, 단호박 샐러드, 부추 무침은 그렇다 쳐도 카레만 종류별로 네 가지에, 삶은 병아리콩과 수북하게 채 썬 양배추도 있었다.

“카레 엄청 좋아하나 봐. 콩이랑 양배추도.”

“딱히. 자궁에 좋다는 음식들로만 주문한 건데? 당장 배달 가능한 걸로만 해서 원래 메뉴의 반도 못 시킨 거야. 카레는 제일 부담 없을 종류로 시켰고. 디저트로 석류즙도 있어. 석류가 자궁에 그렇게 좋다네?”

“…….”

“많이 먹어. 밤새 하도 깨물어서 배고픈가 싶었는데.”

“깨물어? 누가?”

아닌 게 아니라 배가 너무 고파 미역국을 후루룩 들이켜던 유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다.

“간밤에 뱀파이어처럼 내 목 깨물었던 거… 기억 안 나?”

“뭐? 내가 남의 목을 왜 물어. 안 물었어.”

“하도 배고파서 돼지 목살로 착각했나 했는데 안 물었다니.”

“안 물었다니까? 그러는 너야말로 막 물었잖아. 여기저기 우악스럽게……”

젖가슴 살결, 유두, 목 안쪽과 목덜미, 겨드랑이 안쪽과 허벅지, 엉덩이와 손가락까지, 그러고 보니 물지 않은 데가 없었다. 강주하는 셔츠 목깃을 제치고는 제 목 안쪽을 가리켜 보였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에 짓궂은 웃음이 떠올라 있다.

“이것 봐. 그럼 내가 내 입으로 물었겠어? 아무리 용을 써도 닿지가 않는데.”

유주는 놀란 눈으로 그의 목 안쪽에 난 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희고 단단한 살결 위로 작은 동물의 이빨 자국 같은 것이 여러 개 겹쳐서 조그만 피멍이 들어 있었다.

유주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이고 미역국만 뒤적거렸다. 정수리 위로 그윽한 저음이 다시 울려왔다.

“괜찮아, 물어도 돼. 사실은… 물렸을 때 좋았어.”

미역국을 뒤적이던 수저질이 뚝 멈췄다. 변태인가? 깨무는 거 좋아하는 바이트 피버(bite fever)?

“나 정말 행복해, 유주야.”

갑자기 심장이 벌렁대는 감각에 유주는 눈앞의 카레만 휘휘 저었다. 그가 제 이름을 유주야, 다정하게 부르는 순간 뜬금없이 김춘수의 시가 떠올랐다.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적인 분석은 남녀 간의 애정과는 다른 시사적인 담론으로 배웠지만, 지금만은 그렇게 제멋대로 해석하고 싶었다.

“유주야.”

“나 배고파. 일단 먹을게.”

“그래, 어서 먹어. 많이 먹어.”

그는 유주가 식사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말을 아끼고 제 앞의 접시에만 주의를 돌렸다. 그녀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고 석류즙과 허브차까지 다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강주하 본부장님.”

“내 이름 그거 아닌데.”

차가운 지적에도 유주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집 얘기 할 거니까 선 넘지 않고 최대한 공적으로 얘기를……”

“집이 회사 거야? 내 명의야. 그리고 어제 그렇게 서로 선 넘을 거 다 넘고, 못 볼 거 다 봐버린 마당에 무슨 공적인 얘기야? 지금 여기가 회사야? 씨발, 내가 험한 말 안 쓰려고 해도 꼭 성질을 돋우지, 너는.”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고요. 강주하씨.”

“뭐라는 거야, 지금?”

“미국 간 다음에 들었는데 사실은 한 살 더 많다며. 고2 때까지 한국이랑 미국 왔다 갔다 하느라 중간에 일 년 늦춰졌다고.”

“같은 학번이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해라. 좋게 말할 때.”

유주가 그를 물어뜯을 듯 노려보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역시 난 이 새끼 이겨 먹을 수가 없어.

“강주하.”

응, 아까와는 딴판인 음성이 곧장 대꾸해왔다. 새콤달콤한 석류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응, 어서 말해.”

“집 얘기 전에 먼저 물어볼 거 있어. 7년 전, 내가 왜 일부러 메일 안 봤는지 알아?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락 끊기도록…… 폰 번호는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어쩔 수 없이 변경됐지만.”

“내가 교제 조건으로 내건 개소리 때문이겠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후회돼.”

유주의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 그럼 역시, 스무 살의 객기 어린 가부장적 독불장군에 불건전한 스폰서 만능주의 헛생각이었구나.

“그럼 7년 후인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한다는 거지.”

“그렇지. 생각해보면 의미 없는 조건이었어. 뭐하러 그런 말을 했는지.”

어차피 다 나한테 따르게 되어 있는데, 그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뭐?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강주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얼버무렸다. 분명히 무슨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시치미를 떼는 게 수상했지만 유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주하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연애가 사내연애라고 생각해. 까마득한 직급 차이는 더더욱. 그런 건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에서나 멋지지, 현실에서는 정말 아니라고 믿는 쪽이야.”

“넌 매사에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 우리 회사에도 창립 이래 20년 가까이, 결혼까지 간 사내커플 열 쌍 정도 있어.”

“그럼 넌 우리가 사귀다가 결혼까지 갈 수도 있다는 소리야?”

유주는 일부러 심드렁한 척 물었다. 하지만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어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실제로는 그의 대답에 무척 연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너 결혼에 회의적이지 않았어? 아무리 용 써봐야 집 한 칸 마련하고 아이 하나 키우기도 너무 힘든 대한민국이라고… 옛날에 그러지 않았었나. 조용한 외곽에서 마당 딸린 집에 동물들과 살거나 미국에 이민 가서 목가적인 시골 생활 하고 싶다고.”

“그건 대학생 때였지. 같이 살았던 언니들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

“어떻게? 그래도 결혼은 무조건 하는 걸로?”

“응. 혼자 늙어가기 싫어. 지금도 외로운데… 계속 이렇게 혼자일 거라 생각하니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

멀리 갈 것도 없이, 친자매처럼 함께 살았던 음씨 자매 중 맏이인 정혜 언니를 보며 절실히 느꼈다. 고등학교 때 다시 상경해 종종 만났던 언니는 그녀의 멘토이자 롤모델과 같았다.

언니는 30대 중반에 입지를 확고히 다진 커리어 우먼에,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서 인망은 두터워도 자신에겐 초지일관 근검절약 짠순이라, 노후 대비용으로 땅도 사놓고 수익형 오피스텔 하나, 강북 쪽에 아파트도 한 채 사놓고 세를 주고 있었다. 해외여행도 혼자 훌쩍 떠나고 뭐든 알아서 척척 하는 그녀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나 혼자서도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데 결혼은 왜 해, 대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아. 늙어서 돈 없는 게 문제지, 돈만 적당히 있으면 병원비며 먹고 사는 거 아무 걱정 없어. 여차하면 시설 좋은 실버타운 들어가거나 집 깔고 앉아 주택연금 받아서 용돈 더 늘리고. 지금 내 고민거리는 오직 하나거든? 1인 가구에만 부당하게 더 많이 부과되는 세금이랑 건강 관리. 결혼하면 걱정들이 수십 배로 불어나잖아. 시댁 걱정, 육아 걱정, 수입 걱정, 경력단절 걱정…… 아, 골치 아파!’

그러던 언니의 호언장담은 대학 졸업 후 함께 살게 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꽤 달라져 있었다. 술판이 벌어지면 즐겁게 떠들다가도 마지막은 늘 하소연과 당부로 끝났다.

‘정연이, 유주, 너희도 좋은 사람 있을 때 꼭 결혼해. 정주처럼. 앞자리 바뀌니까 이제 알겠다. 사람이 왜 가정이 있어야 하는지. 아등바등 아끼고 아껴서 땅문서, 집문서, 통장에 적당히 비축해두면 뭐하니. 외로워, 외롭다고! 백 세까지 이러고 혼자라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여행을 가도 이젠 즐겁지가 않아. 아무리 좋은 풍광이라도 다들 쌍쌍이, 가족끼린데 나 혼자 백날 보면 뭐하니. 흑흑…….’

‘-쯧쯧. 언니, 그렇게 결혼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선보고 소개도 받고 그러면 되지! 내가 주변에 한 번 알아볼…’

‘됐어. 이 나이에 무슨. 이 나이에 애 낳으면 어떻게 키우니? 애 초등학교 들어갈 때 오십 줄이 넘는데. 그리고 이 나이에 늙어서 시집 식구들 부대끼기 싫어.’

‘그럼 자수성가 고아로 알아봐?’

‘시집 식구 없어도 이 나이에 남편 뒤치다꺼리하기 싫어. 이유만 납득가면 돌싱도 좋고 애 딸린 것도 상관없는데…… 늙어서 서로 맞춰가기 싫어. 피곤해.’

‘아, 진짜! 그럼 그딴 푸념 하지 말고 그냥 계속 독수공방하고 살아! 술 처먹고 지랄하지 말고.’

‘야! 이게… 너 언니한테 뭐라 그랬어?’

정연 언니가 보다 못해 혀를 차며 진지하게 응해줘도 결국은 티격태격 말다툼으로 끝났다.

유주가 보기에도 정혜 언니는 오래 구축된 자기애와 금전적인 안정,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때문에 결혼이 안 맞을 것 같았다. 타고난 성향이 독신주의자라 해야 할까. 언니 본인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하소연만으로 끝나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녀의 바닥 모를 외로움은 유주의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누구도 달래줄 수 없는 외로움, 미래에도 끌어안고 가야 할 고독감.

유주는 그렇게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부모님과 친자매,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정혜 언니와는 달리 그녀에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외롭다고?”

강주하의 목소리가 유주를 다시 현실로 되돌렸다.

“외국에선 독신들도 기혼자들 못잖게 충분히 삶을 즐기고 살아. 한국도 점점 그런 추세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거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마인드, 삶의 질과 가치만 잘 확립되면 외로울 틈도 없이 얼마든지 재미있게 살 수 있어.”

들으면 들을수록 그는 결혼에 대해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유주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주하, 너는… 혹시 독신주의야?”

“아니.”

유주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얕은 한숨이 나왔다. 안도감의 표현임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꾸짖었다.

미쳤니, 서유주? 어쩌다 보니 갑자기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뭐, 결혼이라도 기대하고 있는 거야? 쓸데없는 헛물켜지 마. 너는 강주하와는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 정확히 어떤 집안 아들인지는 몰라도 웬만한 직장인 연봉의 열 배 이상 되는 차를 그냥 질러버릴 여유가 있는 부류니까. 혹은 일단 지르고 보는 허영, 허세, 과소비의 화신이거나.

어느 쪽이든 그녀와는 맞지 않았다.

“서유주. 너 혹시… 방금 다행이라 생각했어?”

강주하의 목소리가 다시 정수리 위에서 울렸다.

“내가 독신주의 아니라고 해서.”

속내를 감추려 의미 없이 식탁보 자수만 덧그리던 유주의 손이 멈췄다.

“아니? 그냥… 결혼 안 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걸 자꾸 강조하려는 것 같아서, 그냥 물어본 거야.”

“나 어제 정말 좋았어. 7년 전 너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아니 지금은 더 그렇고. 네가 처음이라 더 좋기도 했고…… 7년 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걸 예상하고 기다렸던 것처럼.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거침없이 이어지는 그의 말에 유주의 고개가 다시 아래로 향했다. 맨정신으로 코앞에서 듣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너도 분명히 좋아했어. 어젯밤도, 나도. 그렇지?”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하지 마. 그보다 이제 집 얘기를 해야겠는데, 나는……”

“내가 먼저 말할게, 유주야.”

강주하가 식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좀 더 당겨 앉았다. 가뜩이나 태평양 같은 어깨가 더 넓어 보이다 못해 위협적으로 보였다. 저런 어깨에 맞으면 최소 기절이겠지.

갑자기 어젯밤이 떠올라 얼굴이 다시 뜨거워졌다. 규칙적으로 느리게 움직이다 나중에는 마구 내달리다 그녀의 쇄골 가장자리로, 팔 언저리로 부딪쳐오던 어깨의 근육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나 지금 말하고 있잖아. 고개 들어.”

“…그냥 말해. 듣고 있으니까.”

그의 요구에도 유주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눈을 보이면 감정을 들킬까 겁이 났다.

“우리 어젯밤부터 시작된 거야. 원래는 7년 전, 5월 19일 밤부터 시작됐어야 하는데.”

유주의 놀란 눈이 그를 보았다. 5월 19일이라니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가? 기억을 되짚어 보니 5월 중순부터 시작했던 봄 축제 기간 동안에 쓰러졌었다. 아르바이트하던 물류창고 휴게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강주하가 머리맡에 있었다. 그리고 그 제안을 했었다.

“이과라 숫자에 강해서 그런가. 기억력 정말 좋구나.”

“기억력 좋은 건 맞지만 그건 기억력하고 무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생각? 우리 사귀는 거에 대해서?”

유주는 다시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레는 것, 침대에서 한 몸이 되는 것, 정식으로 사귀는 것은 모두 별개의 사안이었다. 쌍방이 결혼을 결심하는 것, 식장에 입장하는 것, 실제로 일상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것 역시, 하나로 이어질 뿐 모두가 별개인 것이다.

“집은… 원하면 비울게. 네가 집주인이고 네 말대로 난 하등 권리가 없으니까.”

“미쳤어? 가긴 어딜 가.”

강주하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냥 살아. 사실은 보안 더 확실하고 쾌적한 새 건물로 이사시켜주고 싶었어.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 하지만 그럼 명분이 없으니까.”

“명분?”

아아, 유주는 금세 이해했다. 7년 만에 재회해서 다짜고짜 그럴듯한 집으로 이사해서 살라고 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아파트도 무슨 꿍꿍이일까 수없이 재고 의심했으니.

“아니, 이렇게 된 거 그냥 새 건물로 이사할래? 길 건너 신축 주상복합도 괜찮고 너 출퇴근에 진 빠지는 거 싫어하니까 아예 회사 앞 아파트로……”

“아냐! 그냥 여기 있을게. 전입신고까지 했는데.”

여기서 몸테크하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데 그렇게 하면 정말로 스폰 관계처럼 되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줘. 만약 정규직이 되거나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월세도 분할해서 줄 테니까.”

“아니, 생각할 시간 못 주겠는데.”

월세 분할에 대해서는 아예 못 들은 척, 그는 아까보다 더 쌍심지를 돋운 눈으로 유주를 노려보았다.

“생각할 시간 필요 없어. 무조건 어젯밤부터 우린 사귀기 시작한 거야.”

너무 확신에 차 있는 강경한 말투라 유주는 저도 모르게 수긍할 뻔했다.

“강주하. 너…… 7년 전의 그 조건은 헛소리였다며. 무조건 네 맘대로 하고 상대가 너에게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거. 지금도 그런 거야?”

“다른 건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다 맞출 수 있어. 하지만 이것만은 안 돼. 강요니 협박이니 뭐니, 무슨 욕을 하고 비난해도 좋아. 너는 내 거고 나는 네 거란 거… 이미 기정사실인데 생각할 시간이 뭐가 더 필요해?”

너는 내 거고 나는 네 건데. 그 유치원 아이들 같은 표현에 유주의 심장에 간질간질, 묘한 온기가 퍼져갔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지막 저항을 해 보였다.

“나 연애할 여유가 없어. 마음의 여유도, 금전……”

“핑계 대지 마.”

도대체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 얘는. 강주하가 참을성 없이 씹어뱉듯 말했다.

“금전적인 거야 내가 너 십 원 하나 안 쓰게 할 거고.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씨발, 개뿔… 마음이 저절로 마음 가는 대로 가는 거지. 지나가던 개가 제 불알 회쳐서 초장 찍어 처먹을 소리 따윈 하지 마.”

“너… 너, 자꾸 말 그렇게 할래?”

그의 격렬한 육두문자에 유주가 도끼눈을 치떴다.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나은 점도 많으니까 그런 비유도 하지 말고.”

“응. 안 할게.”

강주하가 선선히 사과하며 어조를 낮췄다. 시무룩해 보이는 얼굴이 방금 전까지 개 불알이 어쩌고, 기세 좋게 내뱉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유주야, 내가 정말 잘할게.”

“…….”

“7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섹스하고 싶은 여자는 너 하나뿐이야.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어.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해서 육대륙 오대양이 갈라져서 너랑 생이별을 하고 이쪽엔 수천, 수만의 여자들이 있다 해도 너 외에는 절대 안 해. 강제로 세운대도 절대 못할 거야. 차라리 네 얼굴 떠올리며 좆딸딸이 치면 쳤지.”

유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괴리감이 상당히 컸다. 회사에서의 강주하 본부장, 지금 눈앞의 조폭 양아치처럼 지껄이는 강주하 간의 간격이 너무 넓었다.

“유주야.”

“안에다 사정하지 마. 어제처럼. 콘돔 꼭 착용하고.”

“그럼 우리 시작된 거지?”

그의 손이 뻗어와 유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손을 슬쩍 뿌리치고 몸을 뒤로 빼며 말을 이었다.

“아직 말 안 끝났어. 그래, 돈은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은 것 같으니까 그럼 돈 많은 쪽이 돈 써. 하지만… 나 빚진 마음으로 너랑 사귀진 않을 거야. 내가 너랑 만나기로 한 건…… 돈 때문이 아니니까.”

“돈 때문이 아니면 역시 너도 나를 좋아하는…”

“내 말 아직도 안 끝났어. 솔직히 말해, 강주하. 수습 기간 업무평가 미팅… 네가 일부러 내 담당자 맡은 거지?”

그가 대답하지 않고 엷게 웃었다. 다시 그녀의 손을 찾아 쥐는 얼굴에는 교활함보다 더 짙은 마각이 드러나 있었다. 유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는 그런 수작 부리지 마. 그럼 그때처럼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회사에서 절대 아는 척하지 말아줘. 너는 내가 반년 뒤 누락될 게 뻔하다고 했지만… 그렇다 해도 있는 동안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할 거야. 적어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나가면 기회도 더 많겠지.”

“꼭 그렇게 애써야 돼? 너 이력서 보니까 만약 이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다른 진로희망은 어떤 게 있나 작성하는 란에다가, 전공 살려서 도서관에서 일하거나 작은 북 카페 차리고 싶다고 썼던데.”

“그래서? 도서관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고 북 카페 차릴 돈은 없는데.”

“내가 차려줄게. 어차피 너 금융이나 부동산 쪽 일엔 젬병 같으니까 아예……”

유주가 벌떡 일어나 시계를 가리켜 보였다. 의자 끌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거칠었다.

“벌써 한 시 다 돼가. 이제 가봐야 하지 않아?”

“왜? 나 저녁까지 먹고 갈 건데. 아니, 아예 내일 여기서 출근할 거야.”

“뭐? 안 돼. 싫어, 절대 안 돼!”

“그럼 저녁까지 먹고 가는 걸로만 할게.”

“나 몸 안 좋아. 허리랑 다리 모두… 정말로 안 좋다고. 쉬어야 돼.”

“쉬어. 방에서 자고 있어. 나도 업무 볼 거 많아. 너 푹 쉬게 방해 안 하고 저녁때까지 거실에서 일하고 있을게.”

강주하가 빙글빙글 웃었다. 어쩐지, 빨간 모자에게 문 열어 달라 거짓으로 웃는 동화 속 늑대의 웃음 같았다.

* * *

유주가 창가의 암막 커튼을 끝까지 치고 캐노피에 둘러싸인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킹사이즈 침대 한쪽에 살짝 기우뚱, 무게가 실리며 낯선 온기가 와닿았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너무 피로해서 눈꺼풀이 잘 들리지가 않았다.

자, 어서.

누군가 자라고 머리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아늑한 나른함에 유주의 몸이 다시 풀려갔다. 타인의 것이라 낯선데도 제 몸처럼 어딘가 익숙한 체온이 기분 좋았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그 체온이 제 몸 옆에 들러붙어 숨을 쌕쌕 몰아쉬고 있었다.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러자 제 옆구리에 나란히 맞닿은 두 무릎이 보였다. 누군가 무릎 꿇고 제 몸에 딱 붙어 앉아 하체를 들썩대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뜨자, 강주하가 바지를 엉덩이 아래까지 내리고 잔뜩 융기한 제 음경을 꺼내 들고 있었다. 꼿꼿하게 직립한 성기의 밑동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열심히 치대고 있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동작을 멈췄다.

스윽 스윽, 제 것을 위아래로 훑고 있던 손바닥에 끈적끈적 점액 같은 것이 묻어났다.

“아… 유주야. 깼어…? 흐읏……!”

미치겠다, 정말.

그러고 보니 제 헐렁한 잠옷도 앞섶이 잔뜩 흐트러져 젖가슴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유주는 저리 가, 소리를 지르며 그를 밀어냈다. 강주하는 캐노피가 늘어진 기둥을 붙잡고 버티다 그녀를 힘으로 제압했다.

“미안해, 깨우려고 한 게 아니라……”

“짐승! 푹 쉬게 방해 안 한다더니 자고 있는 사람한테 그게… 그게 할 짓이야?”

덜렁대는 귀두에서 쿠퍼액이 뚝, 그녀의 가슴 맨살에 떨어졌다. 진한 날 것의 향, 욕정의 냄새가 전신을 뒤덮어왔다.

“못 참겠어, 유주야…… 한 번만 하자, 저녁 먹기 전에. 응?”

“그만… 그…… 흐읍!”

강주하가 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상체에 몸을 겹치며 입술을 포개왔다. 유주는 마구 몸부림을 치다가 포기하고 몸에서 힘을 빼버렸다. 음부가 공기와 마찰하는 냉기에 이어 속옷이 발목 사이로 빠져나갔다. 서늘한 에어컨 공기를 뚫고, 뜨겁게 고동치는 페니스가 곧장 비부 틈을 파고들어 내벽을 힘껏 찔러 올렸다.

“아…흑! 후읏! 그… 안돼…… 응!”

유주가 바들바들 떨며 주하의 양어깨를 밀쳐내려 허튼 손짓만 되풀이됐다. 유주야, 유주야, 그가 주문처럼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며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다시 전진해왔다.

“아흑! 흑, 응, 앗, 으응…. 아앗!”

단단한 성기가 따뜻한 질 안쪽을 가차 없이 열어젖히며 위로, 더 안으로, 깊숙이 내벽을 박아댔다. 속살을 사정없이 짓뭉개길 한참, 그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는 유주의 흐트러진 잠옷 앞섶을 바깥으로 잡아당겨 반쯤만 드러나 있던 젖가슴을 완전히 꺼냈다.

커다란 양 손바닥이 보드라운 젖가슴을 힘주어 주무르다 유두가 단단해지자 손을 거두고 입술을 들이밀었다. 빨갛게 팽창한 돌기가 붉은 베리의 과육 같았다. 주하는 젖꼭지의 돌기를 혀끝으로 핥고 뭉개고 돌리다가 입술로 뒤덮어 힘껏 빨았다. 내벽이 제 것을 터뜨릴 기세로 꽉 조여 왔다.

“아앗, 주, 주하…… 앗, 그만 빨… 아아, 안 돼, 물…물지 마……!”

유주는 허리를 튕기고 들썩이며 지독한 열병 환자처럼 끙끙 앓았다. 유두가 통째로 떨어져 나갈 듯한 아릿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가 한쪽 젖꼭지를 입 안에 머금은 채 다시 허리 짓을 재개했다.

퍽, 퍽, 고환이 떨어져 나갈 기세로 그의 엉덩이가 신랄하게 요동쳤다. 무자비할 만큼 힘껏 찔러오며 박아대길 한참, 그가 유주의 엉덩이 안쪽을 받치고 허리를 좀 더 높이 들어 올렸다. 페니스가 뜨겁게 무두질한 강철봉처럼 여린 속살 안쪽에 쿵, 쿵 점점 더 속도를 빨리 내며 부딪쳐왔다.

“흐윽. 주, 주하… 나 죽을 것… 제발……”

제발 좀 천천히, 쉬엄쉬엄, 살살 움직여 주면 안 되겠니. 1초에 한 번씩, 1분에 60번씩 찔러오지 말고 제발 한 번 찌르면 다음 1초간은 틈을 좀 두고… 아악! 아아악!

* * *

강주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사정하고 유주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간신히 애원하다시피 해서 배달시킨 죽과 갈비탕 등으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발정 난 수캐, 아니 그 수캐가 열댓 마리 합쳐진 융합체와도 같았다.

“미안. 7년 동안 제대로 활용을 못한 좆이라 나도 제어가 안 되네. 그동안 못 했던 거 한꺼번에 보충하느라 폭주하나 봐.”

유주의 양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나중에 사과랍시고 지껄여대는 주둥이를 후려치고 싶어서 몇 번이나 손을 들었지만 결국 때리진 못했다.

* * *

다음날, 유주는 결국 출근하지 못했다. 강주하는 자기가 본부장 권한으로 사내 인트라에 접속해, 갑자기 일이 생겨 토요일 오전에 월차를 신청한 것으로 해놓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내가 도우미 아주머니 불러놓을 테니까 밥 먹고 약 먹고 잘 쉬고 있어. 알았지? 늦어도 7시 전에는 올게.”

“나가……”

주하가 몸을 굽혀 침대에 널브러진 유주의 머리카락을 애틋하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고개 돌려 외면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주는 그가 더 히죽거리기 전에 이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나가라고.”

“알았어. 갈게, 간다고. 아참,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현관 비밀번호 바꿀 생각은 하지 마. 그러기만 해, 키패드 아예 부숴 버리고 열쇠로만 열리는 고리짝 문으로 바꿀 거니까.”

“이 미친…!”

유주가 벌떡 일어나 베개를 집어 던졌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3초 후 문이 다시 열리고 그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참, 너 우리 연애 비밀로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남친 있다고는 꼭 밝혀야 돼? 언제 어디서든 꼭. 이상한 좆놈들 안 꼬이게. 알았어?”

“나가!”

다른 베개를 집어 드는 순간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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