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
과묵한 김인환과 김형석.
까마득한 막내 송석현.
김정률이 빠진 훈련 시간 동안 오가는 말이라곤 한 시간에 한두 마디가 전부였다.
김정률이 초빙한 개인 트레이너마저 없었다면 송석현의 유니폼은 다른 의미로 땀으로 젖었을 터다.
탕!
탕!
배팅 훈련이 시작됐다.
김형석 대신 트레이너가 공을 던졌는데 경험이 많은 덕인지 배팅볼의 높이나 구속이 좋았다.
“와…….”
송석현은 김인환의 타구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인환은 힘을 빼고 툭툭 치는 거로 보였는데 워닝트랙까지 쭉쭉 뻗었다.
송석현도 힘이라면 여태 누구에게 지지 않았지만 김인환은 차원이 달랐다.
KPBL 역사상 힘은 역대 최고일 거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대단하시네요.”
송석현의 감탄에 김형석도 맞장구쳤다.
“너도 투수였다고 했지?”
“예, 고 1 때까지요.”
“네가 투수라면 쟤한테 승부할 수 있겠어?”
“쉽지 않겠는데요.”
“스쳐도 홈런이라는 말은 쟤한테 딱이지. 그래서 문제야, 그래서.”
“네?”
김형석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송석현은 혼자 김형석의 말을 되뇌었다.
너무 힘이 세서 문제라는 말일까?
김인환의 차례가 끝난 후 송석현이 타석에 들어섰다.
김인환은 땀을 닦으면서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후우.”
송석현은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렸다.
이를 본 김인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트레이너가 공을 던지자 송석현의 배트가 가로로 길게 찢어져 나왔다.
탕!
송석현이 맞힌 공은 직선으로 쭉 날아가더니 좌측 담장을 넘겼다.
이를 본 김형석과 김인환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멍청이.”
송석현은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툭툭 두들긴 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도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공을 기다렸다.
송석현의 배트가 이번엔 늦게 움직였다.
타자의 컨택트 존은 통상 타자의 발보다 앞에서 맞히는 걸 최선으로 여긴다.
송석현은 포수의 미트가 있다면 공이 다 들어갔다고 생각할 타이밍에 공을 배트에 맞혔다.
타이밍으로 치면 완벽히 밀리는 시점이었다.
“……!”
“……?”
김형석과 김인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늦게 맞힌 공은 우익수 방향 라인 워닝트랙 안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 눈을 마주쳤다.
송석현은 이후 타격은 모두 바깥쪽 공 밀어 치기 일변도였다.
“감사합니다!”
배팅 훈련이 끝나자 송석현이 트레이너에게 인사했다.
트레이너는 팔을 빙빙 돌렸다.
“공 잘 치네?”
“공 잘 던져 주신 덕분이죠.”
“자세가 특이하긴 한데 어떻게 잘 쳐 낸다. 공도 쭉쭉 뻗어 가는 거 같고.”
“저도 얼른 코칭을 받아야 하는데. 제 폼이 별론가요?”
“그런 거까진 내가 말할 수 없지. 나는 어디까지나 컨디셔닝 코친데. 그래도 힘 빼고 공 툭툭 치는 거 보니까 기본이 됐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송석현이 자리로 돌아왔다.
배트를 놓고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김인환은 물 한 병을 송석현에게 내밀었다.
“자.”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 마셔.”
송석현이 물을 마시는 동안 김인환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송석현은 물병을 놓고 공을 주우러 가려 했다.
“잠깐만.”
김인환이 송석현이 팔을 잡았다.
“네?”
“잠깐만. 잠깐 얘기 좀 할까?”
김인환은 벤치로 송석현을 데리고 가 앉혔다.
송석현은 영문을 몰라 허리를 세웠다.
혹시 후배 길들이긴가?
김정률이 없으니 이 틈에 서열 정리?
내가 밉보인 게 있으려나?
송석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석현아.”
“네, 선배님.”
“너 학교 어디 나왔지?”
“우진고 나왔습니다.”
“우진고……. 거기가 어디야?”
“아,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고등학굡니다. 서울에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거기서 너한테 타격 알려 준 코치님은 누구야?”
“타격요?”
송석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타격 폼 때문에 그러세요? 너무 이상한가요?”
“이상한 게 아니라……. 흠, 독특하긴 하지. 스탠스도 좁고 스트라이드도 안 하잖아. 히팅 포지션도 어깨높이고. 그런데 첫 타구에 홈런 때렸지? 다음에는 계속 밀어 쳤고.”
“……예. 그런데요.”
“밀어 치는 공도 거의 공이 다 지나간 후에 쳤는데도 쭉쭉 뻗어 나갔단 말이야.”
“네.”
“…….”
김인환이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솔직히 말할게.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누구한테 배운 거야, 네 타격 폼? 이론적으로 보면 절대 장타가 나올 수 없고, 컨택존도 앞에다 둬야 하는데 뒤에서 나오잖아. 그런데 어떻게 장타가 나오는 거냐?”
송석현이 눈알을 굴렸다.
무슨 상황이지?
자신을 혼내는 건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말 없던 김인환이 흥분할 정도면 이유가 있을 텐데 프리배팅을 봤다고 열을 낼 이유가 뭔지 떠올리기 어려웠다.
“인환아. 일단 좀 앉아라. 뭐 그리 급하냐?”
어느새 곁에 다가온 김형석이 두 사람 옆에 앉았다.
김인환은 선배의 말에 두말 않고 자리에 앉았다.
“석현아.”
“네, 선배님.”
“인환이가 마음이 급해서 그래. 이해해라. 쟤가 바깥쪽 떨어지는 공에는 쥐약이거든. 그런데 아까 네가 타격할 때 보니까 바깥쪽 공을 늦게 쳐도 안 밀리니까 신기한 거야.”
“그거야 배팅볼이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요? 프로 투수가 던지는 공이면 밀리겠죠……?”
“밀리더라도 애초에 너처럼 그렇게 컨택존을 뒤에다 두면 좋은 공이 안 나오는데 너는 계속 안타를 쳤잖아.”
“예……. 하지만 그게 특별할 거까지야…….”
“스탠스도 좁게 잡아, 히팅 포인트도 낮게 잡아, 스트라이드도 안 하고, 토탭으로 공을 툭툭 미는데 쭉쭉 나가잖아. 이론적으로 말이 안 돼. 너도 힘깨나 쓰는 놈이지만 인환이만 하겠냐?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냥 네가 막 치는 건데 넘어가는 건지, 어디서 배워서 치는 건지. 우진고라고 했지? 우진고 타격 코치가 누군데 너한테 그런 걸 가르친 거야?”
스탠스는 타자가 타격 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는 걸 말했다.
히팅 포인트는 타자가 공을 치기 전에 배트를 뒤로 쭉 빼는 걸 말했다.
스트라이드는 앞다리를 뻗으면서 체중을 싣는 자세였고, 토탭은 앞다리를 뻗지 않고 스탠스 자세에서 바로 공을 치는 걸 말했다.
통상적으로 스탠스가 넓을수록, 히팅 포인트는 높을수록, 스트라이드를 뻗을수록 더 강한 공을 칠 수 있었다.
반대로 스탠스가 좁고 히팅 포인트는 낮으며, 스트라이드를 좁게 가져가거나 안 가져가면 정확도는 높아지지만 파워는 약해졌다.
정확도를 높일 것이냐 파워를 높일 것이냐.
모두를 가지면 좋겠지만 타자는 둘 중 하나의 성향을 기본 베이스로 택하기 마련이었다.
송석현은 자세만 보면 교타자인데 공은 쭉쭉 뻗어 나간다.
타고난 장사인 김인환도 송석현처럼 쳐서 홈런을 때려 낼 자신이 없었다.
“그게…….”
송석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인환이 불타는 눈동자로 송석현을 바라봤다.
“제가 고 2부턴 거의 전력 외라 따로 훈련을 했거든요. 투수만 해 와서 타격도 별로였구요. 그래서 혼자 훈련할 때 친구들이랑 책 보고 영상도 보고 이러면서 만든 폼이라 따로 가르쳐 준 코치님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송석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기대 가득한 김인환을 잔뜩 실망시킨 셈이었다.
“그러니까 너 혼자서 뚝딱뚝딱 만든 폼이라는 거야?”
김형석의 물음에 송석현이 진땀을 뺐다.
“당연히 저도 배운 게 있어서 처음에는 남들처럼 쳤는데, 포수로 포변하다 보니까 시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타격 훈련할 시간은 많지 않아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최고의 타자를 찾아서 따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최고의 타자? 누구? 경수인? 아, 그러고 보니 경수인이랑 비슷하긴 하네. 노 스트라이드에 컨택트 존도 엄청 뒤에 두고.”
“아니요. 제가 경수인 선배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누구? 누군데?”
“베이브 루스요.”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야구의 제왕 베이브 루스는 홈런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대단한 타자긴 하지만 수십 년도 전의 인물이었다.
“베이브 루스의 타격 영상이 있긴 하냐?”
“예, 인터넷엔 많더라고요. 제가 포수고 하니까 교타자처럼 칠 필요는 없고 장타를 치면 되지 않을까 해서 베이브 루스의 타격 영상을 참고했는데 지금 타격 폼이랑 완전히 달랐습니다. 요새는 히팅 포인트를 최소한 어깨, 어떤 타자는 그보다도 높게 두지 않습니까? 어퍼 스윙요. 저는 당연히 베이브 루스도 어퍼 스윙을 할 줄 알았는데 영상으로 보니까 극단적인 레벨 스윙으로 보였습니다.”
“베이브 루스가?”
“네, 영상이 옛날 거라서 자세히 볼 순 없었어도 도저히 지금의 어퍼 스윙이라 보긴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보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송석현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검색을 해 보니까 베이브 루스가 CSR을 높이기 위해 그랬다는 걸 읽었습니다. CSR이 뭔지 몰라서 검색하니까 장타를 치기 위한 조건이 레그 킥이나 히팅 포인트를 높이는 게 아니라 톱 핸드 각도랑 배트 각도가 더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김인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대체 뭐야?”
김인환은 어느덧 프로 3년 차였다.
역대 최고의 거포 유망주 입단에 수많은 타격 코치들이 김인환을 붙들고 가르쳤다.
김인환은 거포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깥쪽 변화구.
바깥쪽 변화구를 치기 위해서 배트도 가벼운 거로 바꾸고 타석도 포수와 가깝게 섰다. 조금이라도 공을 오래 보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무용지물이었다.
배트가 가벼워지고 공을 더 오래 본다고 해서 변화구 약점이 개선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아예 스탠스를 좁히고 극단적인 클로즈드스탠스로 서고 싶었지만 김인환은 거포 유망주였다.
삼진을 당하더라도 홈런을 쳐야 한다.
자신 있게 스윙하라는 주문은 홈런이 아니라 삼진을 적립했다.
삼진이 많아지자 기회는 줄었다.
김인환은 프로 생활 3년간 외줄을 타는 심정이었다.
정확도를 높이자니 거포로서의 정체성이 걱정이었고, 타격 폼을 고수하자니 삼진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한데 송석현은 뜬금없는 자세로 자신의 고민 해결의 단초를 제시했다.
근거가 인터넷이라는 게 어이가 없어 화가 날 지경이었지만, 김정률을 떠올렸다. 김정률도 입스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았나.
프로 선수가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방법을 찾는 경우는 여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프로라는 자부심, 출처 모를 정보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CSR이라는 게 쉽게 말해서 톱 핸드 각도는 줄이고 배트와 팔의 각도는 늘리라는 얘깁니다. 더 쉽게 말하면 투수가 타자 몸 쪽 하이 코스에 느린 공을 던질 때 공을 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톱 핸드를 펼 수 없으니 톱 핸드 팔꿈치가 갈비뼈에 완전히 붙을 거고, 몸 쪽 공이다 보니 배트가 일찍 돌아가서 칠 테니 배트와 팔의 각도가 최소 90도 이상, 한 120도 이상 되잖아요? 어떤 타자도 몸 쪽 하이 코스 배팅볼은 타이밍만 맞으면 홈런이죠.”
송석현의 설명에도 김인환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모든 타격을 몸 쪽 하이 코스 공을 칠 때처럼 치는 게 CSR입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나가서 해 보니까 오히려 이게 더 쉬웠습니다. 톱 핸드를 애초에 접어서 칠 생각을 하니까 저절로 배트가 레벨 스윙처럼 나가더라고요. 배트 발사각이 작으니까 임팩트 영역이 넓어져서 타격도 쉽고요.”
송석현이 두 사람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여태 송석현의 말을 듣기만 하던 김형석이 입을 열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