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점 조준 완료
“합!”
타이세이의 기합과 함께 공이 뻗어 갔다.
총으로 쏘듯 앞으로 팡, 날아가는 공.
송석현의 배트가 시동을 걸었다.
됐다!
타이세이는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배터리의 승부수가 타자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순간이 있다.
위기의 순간, 타자를 돌려세우는 삼진.
포크볼러에게 이보다 더 짜릿한 승부는 없다.
부웅!
포수는 세차게 내려오는 배트를 보며 생각했다.
송석현의 배트는 채찍이 아니라 망치 같다고.
아니, 오함마가 아닐까.
‘저런 배트에 맞는다면 공도 쪼개지겠어.’
배트에 시동이 걸린 순간 끝난 게임이다.
타이세이의 포크가 실투로 안 떨어지면 모를까, 코스며 각도가 훌륭했다.
포크를 치지도 못할뿐더러, 바깥쪽이 꽉 찬 코스는 쳐도 범타 처리다.
범타 자체도 안 나오겠지만.
포수의 미트가 떨어질 공을 대비해 밑으로 내려갔다.
‘응?’
포수는 이질감을 느꼈다.
이미 이긴 승부, 타자를 완벽하게 농락했다고 생각했는데 뒷골이 간지러웠다.
허공을 갈라야 할 배트가 포수의 미트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타자가 무릎을 꿇지 않는 이상 닿을 수 없는 거리에 공이 떨어지는데 배트가 공을 따라 스윙하고 있다.
‘잘 떨어졌……!’
타이세이의 포크는 그림처럼 떨어졌다.
직구처럼 가다가 뚝 떨어지는 공.
원래라면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휙 갈라야 하는 공.
송석현의 배트는 포크볼의 궤적 속에 배트를 툭 밀어 넣었다.
탁!
공과 배트가 만나자 맑은 소리가 났다.
투수도 포수도 눈이 커졌다.
이걸 친다고?
송석현은 힘들이지 않고 공을 정확히 맞혔다.
공은 우익 선상으로 날아갔다.
“우익수! 플라이! 플라이!”
“잡아! 중계! 중계 준비!”
“2루! 2루! 자리 잡아!”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운 좋게 배트에 맞혔지만 빠진 공을 갖다 맞힌 데에 불과하다.
플라이를 친 실력은 인정하지만 타자와 투수의 승부는 끝났다. 이제는 아웃 카운트를 올릴 차례다.
타자 원아웃, 주자 투아웃.
주자 아웃이 안 되면 최소한 주루라도 막아야 한다.
“우익수! 바로 송…….”
바람이 불었다.
우익수가 눈을 깜빡일 정도의 바람.
우익수는 공이 꽤 멀리 오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갖다 툭 맞힌 공인데 왜 이렇게 멀리 오지?
바람은 왜 하필 이때 부는 거지?
공은, 공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툭.
우익수는 글러브를 뻗은 채로 몸이 굳었다.
담장을 살짝 넘기는 공.
송석현도 두 눈을 깜박거렸다.
“어? 이게?”
오키나와 벤치도 환호 대신 헛웃음이 터졌다.
“에에에?”
“뭐야, 저거?”
가볍게 툭 밀어 쳤다.
누가 봐도 명백한 플라이 볼.
우익수가 넉넉히 잡아 송구할 거라 예상한 그림이 사라졌다.
모두 원아웃에서 끝나느냐, 여기서 투아웃까지 잡느냐를 고민하는 그때.
하늘을 둥둥 떠다니던 공이 고양이가 담장을 넘듯 툭 하고 넘었다.
“와아아아아아.”
“오오오! 대단한데!”
“쟤 뭐야? 쟤 뭔데? 뭐야?”
“홈런! 홈런! 홈런이야!”
양 팀의 벤치가 폭발했다.
숨죽였던 긴장감이 터졌다.
바닥까지 떨어지던 공을 툭 밀어서 홈런.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오키나와 벤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를 질렀다.
연습 경기지만 명승부 아니었던가.
마운드 위의 타이세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김정률의 응원하에 오키나와 베어 선수들도 따라서 송석현을 외쳤다.
비록 발음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오키나와 베어는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것처럼 환호하고 기뻐했다.
“스바라시!”
가장 먼저 나와 있던 코치가 송석현과 하이 파이브를 했다.
송석현은 자기 머리를 때리는 김정률을 피해 빠르게 벤치로 들어갔다.
일본 선수들은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으면서 송석현을 따라가 헬멧을 때렸다.
“야, 이 미친놈아! 크크크크, 뭔 짓을 한 거야?”
김정률은 넋이 나간 송석현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송석현은 아픔도 모르고 그저 헤헤, 웃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갖다 댔는데 넘어갔어요.”
“그게 말이 돼? 야, 너 혼자 배트에 무슨 마법을 부린 거 아냐?”
“저는 그냥 주는 배트 쓴 건데.”
“인환아, 저 배트 가져와. 저 배트가 보물이다.”
김인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배트를 챙겼다.
김정률이 헤드록을 풀자 송석현의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야, 뭐야. 이건 대체 뭔데? 어떻게 하면 공이 저렇게 날아가는 거야? 대충 걷어 낸 거 아니었어?”
송석현이 머리를 부르르 떨었다.
헬멧 위로 하도 맞았더니 눈이 핑핑 돈다.
“그러게요. 그냥 맞히기만 하자, 생각하고 갖다 댄 건데.”
“근데 저게 넘어간다고?”
“저도 넘어갈 줄은 몰랐다니까요.”
송석현의 배트를 챙긴 김인환이 배트를 휙휙 휘두른다.
“이거 좀 이상한데? 왜 이렇게 무거워?”
“아무래도 연습용 배트 같아요. 더 무겁고, 길고.”
“그러네. 이거 연습용 배트네. 우와, 이거 무거운데? 1,000g은 나가겠어.”
김정률이 말했다.
“너는 저 배트로 공을 친 거야? 포크볼을?”
“배트를 바꾸기도 뭐해서. 괜히 바꿨다가 삼진당하면 개쪽이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와. 저 무거운 걸 쓴다고?”
“그래서 홈런이 나왔나 봐요. 배트가 무거워서 맞히기만 해도 장타가 나왔나.”
“대박이네. 연습용 배트로 저 포크볼을. 와나. 이거 물건이네, 진짜.”
송석현의 홈런은 쐐기였다.
타이세이는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누구도 타이세이의 눈을 보지 못했다.
타이세이는 말없이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양 팀은 서로 마주 보며 악수를 나눴다.
선수들은 송석현의 기운을 받고자 송석현을 둘러쌌다.
럭키 보이, 홈런의 왕자,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순식간에 나왔다.
송석현은 오키나와 베어는 물론 히어로 매직 선수들 하나하나 모두와 악수를 나눠야 했다.
“오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히로토 코치가 세 사람에게 돌아왔다.
“코치님 덕에 재밌는 경기 했습니다.”
김정률이 인사하자 히로토 코치가 웃었다.
“하하, 진짜 재밌는 경기는 제가 잘 봤죠.”
“아까 그 투수는 어때요? 괜찮나요?”
“아마 많은 공부가 됐을 겁니다. 안 그래도 자책을 많이 하더라고요, 포수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타이세이가 에고가 센 친구라 포수랑 호흡이 잘 안 맞거든요.”
히로토 코치가 송석현을 가리켰다.
“포수 사인을 무시한 대가로 포수한테 홈런 두 방을 맞았으니 정신이 번쩍 났을 겁니다. 타이세이가 정신을 차리면 은인이 되는 셈이죠.”
송석현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쩌다 운이 좋아 홈런이 나온 건데 은인은요.”
“한 번은 우연이겠지만 두 번도 우연이라고 하면 그건 결례야. 겸손이 지나치다고.”
“아, 그게 또……. 죄송합니다.”
히로토 코치가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넨 정말 좋은 타자야. 홈런을 쳐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항상 자기 공을 치잖아. 어떻게 그렇게 자세가 안 흐트러지는 거야?”
“저는 오히려 자세가 흐트러지면 영 이상해서요. 차라리 안 치면 안 치지 제 공이 아니면 보냅니다.”
“허허, 평생을 야구 해도 그게 안 돼서 은퇴하는 선수들이 태반인데 마인드까지. 아니, 자네 최고의 장점은 그 마인드야, 마인드. 웬만한 프로보다 프로 의식이 더 낫다니까. 하하하.”
히로토 코치는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잦아들자 히로토 코치가 헛기침했다.
“원래는 끝나고 같이 밥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어렵게 됐어요. 타이세이 기분도 염두에 두고 그래서 식사는 따로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제자들이랑 만나서 식사는 그쪽이랑 할 거예요.”
김정률이 말했다.
“그럼 여기서 흩어지는 겁니까?”
“네, 아쉽지만 식사 자리는 다음에 하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오늘 경기 잡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코치님.”
“저야말로 아주 재밌는 경기를 봤어요. 고마워, 석현.”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히로토 코치가 자리를 떴다.
저 멀리 히로토 코치를 기다리는 일본 선수들이 보였다.
“뭔가 제가 잘못한 느낌도 드네요.”
송석현의 말이 김정률이 꿀밤을 때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연습 경기라도 진지하게 해야지. 네가 봐주고 자시고 할 상황이냐?”
“그……런가요?”
“야, 오늘 기분인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소바 먹고 2차는 고기 어때? 삐루 한잔도 하고. 이런 날은 하이볼도 하고 해야 할 거 아냐.”
김인환이 헤헤 웃었다.
“오늘은 괜찮겠죠?”
“오늘 같은 날 먹어야지, 언제 먹냐? 석현이 너는? 너도 콜?”
“저도 이제 술 먹어도 돼요.”
“수우우울? 술 먹고 싶어쪄, 우리 애기? 우쭈쭈.”
김정률이 송석현의 턱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그래, 가자! 오늘은 재밌게 놀자! 한일전 대승이다!”
* * *
호기로운 장담과 달리 김정률과 김인환은 술 몇 잔에 몸이 축 처졌다.
짧은 기간의 전지훈련을 위해 연신 강행군을 달렸다. 휴식일에도 쉬지 않는 날이 많았다.
강행군, 일본 프로와의 승부, 대승.
쌓인 피로, 긴장감, 나른함이 찾아오자 두 사람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함, 인환이 오늘 너 좋더라.”
“형도 좋던데요. 싱커, 그거 좋았어요.”
“아하함, 그러냐? 싱커가 떨어지는 게 신기하긴 하더라. 스핀을 안 주는데도 그렇게 떨어질 수가 있나, 흐흐.”
“형, 진짜 언더로 전향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공이 너무 좋은데.”
“그를까? 어차피 이제 와서 구속 올려 봐야 140km/h 좀 넘을 텐데.”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봐요. 형 공이 아까 너무 좋아서 그래요.”
“흐흐, 이런 케이스가 없어서 모르겠네. 오버가 사이드 던지는 일은 있어도 언더 던지는 일은 없는데 말이야. 아니, 있나? 있냐, 석현아?”
“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구 척척박사 송석현 군이 모르면 없는 거지. 안 그러냐, 인환아?”
“예, 그럼요. 석현이가 아니라면 아닌 거죠.”
“두 분 저 놀리시는 거죠?”
김정률이 낄낄 웃었다.
“놀리긴. 진담이지, 진담. 여기서 너보다 야구 상식이 많은 애가 또 있냐? 야구 수능이 있었으면 얘는 서울댄데. 그치?”
“지금 실력으로도 서울대 갈 수 있을걸요. 얘 오늘 성적 봐요. 대박이잖아요. 2홈런.”
“그러게 말이야. 우리 석현이 서울에 가면 금의환향하겠네. 우리가 네 실력을 딱~! 알려 주면 코치들도 눈이 벌~게져서 널 박고 키울걸. 안 그러냐, 인환아?”
김정률의 물음에 김인환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봐야죠, 우리 구단이 어떤 구단인데.”
김정률도 픽 웃었다.
“하긴, 그걸 깜박했네. 우리 구단이 어떤 구단인데. 하하, 하하하하.”
“석현이면 금방 기회를 받긴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하, 험난하네, 험난해. 기회를 받아도 그때부터 시작이야. 그치?”
“……그쵸.”
송석현은 술을 홀짝거렸다.
이제는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신인에게 좀체 기회를 주지 않는 팀.
‘키워 써’는 옛날 옛적에 가져다 버린 팀.
키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포수는 더더욱 기회를 받기 어려울 거다.
알고는 있었지만 입맛이 더 씁쓸했다.
“자, 자, 오늘은 일단 마시고 가서 푹 자자. 이제 곧 백 투 더 코리아! 한국 가면 당분간 우리 못 보잖아. 열심히 놀아 두자. 지금이 아니면 언제 노냐고오오~.”
세 사람이 술잔을 기울였다.
창밖의 달이 술잔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