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34화 (34/201)

질투는 남의 일

질투.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

경쟁이 일상화된 프로야구에선 질투는 흠결도 약점도 아니다. 받아들여야 할 일상이다.

송석현이 김정률의 전담 포수로 2군에 들어가고자 했을 땐 시기와 질투를 각오했다.

낙하산을 좋아할 이는 아무도 없다. 하물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신고 포수라면 더더욱.

통상적으로는 일견 맞는 얘기지만, 쇼 케이스 이후 시기와 질투의 싹이 뿌리 뽑혔다.

밀어 쳐서 담장을 넘기는 거포, 직구로 155km/h를 찍는 강견.

차원이 다르면 질투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진고라고? 아아, 들어 봤다. 우진고. 우진고 송석현. 너 구성중 출신이지? 구성중 송석현.”

“네, 맞습니다.”

“내 동생도 야구 해서 네 이름 많이 들었어. 구성중 송석현, 유명했지. 당장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거 아니냐고. 그땐 160km/h도 빵빵 던졌다며?”

“그 정도는 좀……. 한 150km/h 이상은 나왔던 거 같습니다.”

“맞네. 와, 내 동생 졸업할 때쯤에 네 이름 하도 들어서 외울 정도였는데. 아니, 그런데 네가 왜 포수가 됐어? 투수를 왜 그만둔 거야?”

“그게 말이죠…….”

송석현은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호구조사를 당했다.

송석현의 실력 행사에 마음이 누그러졌던 선수들은 송석현이 우진고의 송석현인 걸 알고는 마음을 다 풀었다.

“그러면 투수는 못하는 거야?”

“이게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자꾸 왔다 갔다 해서요. 어떤 날은 전력으로 백 개를 던져도 괜찮은데 어떤 날은 마흔 개만 던져도 아프고. 일단 통증이 한 번 오면 또 오래가요. 그래서 투수는 어렵겠구나 해서 포수로 포변 했습니다.”

“이야, 포수가 투수가 되는 경우는 봤어도 투수가 포수로 포변 하는 건 처음 같네. 그래서 네가 드래프트가 안 됐구나. 나 같으면 포변 안 했다. 공 안 던지고 네 이름만 걸어도 너 드래프트는 됐을 텐데. 안 그래?”

송석현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는 건 포수 정지환이었다.

2군 주전 포수이자 1군에도 종종 콜업 되는 선수로 김정률을 제외하곤 2군 최고참이었다.

“그건 너무 도박 같아서…….”

“하긴, 그래 봐야 계약금이 얼마 나오지도 않을 텐데 시간만 붕 뜨고 애매하긴 하네.”

이때 다른 남자가 스윽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앞으로 얘가 형 밀어내고 포수 자리에 앉겠는데요?”

“너는 포수 아니냐? 남 얘기 하듯 하네.”

“저야 뭐 내년에는 군대 가잖아요.”

“합격할 자신은 있나 보지? 성적이 있어야 상무도 합격하는 거야.”

“에이, 포수는 항상 모자라서 웬만하면 프리 패스인 거, 저도 알고 형도 아는데요. 왜 그러세요, 하하.”

“너는 긴장감이 없어, 긴장감이. 이럴 땐 좀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정지환과 농담을 주고받는 건 포수 장병준이었다.

대졸 포수로 입단해 올해 2년 차.

뚜렷한 성과가 없어 내년에 군 입대가 예정된 선수였다.

“저도 포변 예정이라 여기서 긴장할 건 형밖에 없는 거 같은데요?”

정지환을 놀리듯 웃는 사람은 포수 박장현이었다.

2군에서도 힘이 좋기로 소문난 선수지만 포수로서의 재능은 보잘것없었다.

구단에선 다른 포지션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민 중이었다.

“이것들이. 새파랗게 어린 막내가 이렇게 잘하면 긴장부터 해야지, 다 풀어져 가지곤.”

“에이, 왜 그래요? 형도 이런 든든한 막내가 들어오면 좋잖아요. 언제는 우리한테 포수 맡기면 답답해 죽겠다고 하신 분이.”

“그걸 아는 놈들이 그래? 더 열심히 할 생각을 해야지.”

“저는 군대 갈 놈, 얘는 포변 할 놈. 저는 군대에 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병준과 박장현이 뭐가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정지환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것들이 빠져 가지곤.”

송석현은 신기하다는 듯 세 사람을 쳐다봤다.

고트의 2군에 대해 익히 들어 온 내용과는 달랐다.

무기력하고 신경질적인 분위기.

포지션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런지 송석현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앞으로 잘해 보자.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아, 그럴 일도 없겠네. 코치님이 또 너 일대일 케어 들어갈 테니까.”

장병준은 코치 얘기가 나오자 몸을 떨었다.

“으으으으, 그 지옥의 훈련을 해야 한다니. 벌써 막내가 불쌍하네요.”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너 그나마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 준 게 누군데.”

“저 죽는 줄 알았어요. 와, 아직도 손이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리네.”

“얘가 포수로 사람 구실만 하면 볼만하겠네. 일혁이랑 장일이도 긴장 좀 타야겠어.”

“그래도 1군 가려면 여기서 좀 묵혀야죠. 일혁 선배는 FA로 나가실 게 확실하고 장일이 형이야 얘랑 나이 차이도 있고 해서 긴장될 일이 있겠어요?”

“아무튼 재밌는 막내가 들어왔어. 오랜만이네, 우리 2군에 이만한 대형 핵폭탄이 들어온 거.”

“이번 1라운더 대성이도 있잖아요. 걔도 거물 오브 거물이죠.”

“뭐, 걔도 잘하긴 한다만 우리 막내도 장난 아니야. 앞으로 꽤 재밌어질걸.”

* * *

2군 훈련을 마치자 포수들이 송석현에게 환영회를 한다며 저녁을 사 줬다.

송석현은 고깃집에서 배를 꽉 채우고 돌아왔다.

숙소 앞 벤치엔 김정률이 앉아 있었다.

“여어, 잘 놀고 왔어?”

“어? 혹시 기다리신 거예요?”

“겸사겸사. 인환이 감기 걸린 거 봐주고 오는 길이야.”

“인환 선배는 괜찮으세요?”

“뭐, 스트레스도 있고 요즘 같은 환절기가 딱 감기 걸리기 좋은 날씨 아니냐.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 쉬면 나을 거 같더라.”

“아, 다행이네요.”

“이리 와서 앉아 봐. 저녁 맛있는 거 먹었어?”

“네, 고기 얻어먹었어요. 생각보다 선배님들이 저한테 잘해 주시더라고요. 듣기론 2군 분위기가 영 아니랬는데.”

김정률이 키득거렸다.

“반은 맞고, 또 반은 틀리지. 쓸 만한 애들은 FA 보상 선수로 나가고, 감독은 쓸놈쓸이라 투수 말곤 콜업도 잘 안 하니까 분위기가 안 좋긴 해. 그런데 포수는 좀 다르지. 지환이 정도만 고정이고 병준이랑 장현이는 내년에는 2군에 없는 애들이라 그냥 막내가 오면 좋구나, 하는 거지. 네가 내야나 외야로 갔어 봐라. 거긴 분위기 살벌했을걸.”

“아아, 다행이네요.”

“포수라는 포지션이 힘드니까. 애초에 지원하는 애들도 없고, 그나마 있는 애들 중에 기본기를 제대로 갖춘 애들도 드물고. 그래서 포수는 포수들끼리 끈끈한 게 좀 있지. 애초에 이기적인 애들은 포수로 버티기도 힘들고.”

송석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솔직히 오늘 많이 긴장했는데 스무스하게 잘 넘어간 거 같아요.”

“스무스가 아니지. 임팩트가 빡! 오늘 임팩트는 최고였어. 다들 깜짝 놀랐을 거다. 아까 우식이 형, 그러니까 우리 2군 투수코치가 그러는데 다들 너 데려가겠다고 난리 났다고 하더라. 너한테 물어보래, 혹시 투수 할 생각 없냐고. 정밀 검사 받고 투수 하자고 하더라.”

“정밀 검사는 예전에도 받았는데요. 물리적으로는 이상 소견이 없대요. 신경 쪽 문제라면 자기들도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고.”

“아쉬운 거지. 네 어깨 말이야.”

송석현이 제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포수 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와서 투수 할 마음은 없어요. 일단 아프기 시작하면 이게 은근히 오래가거든요. 선배님도 아실 거 아니에요.”

“그 더러운 기분은 알고 있지. 그래서 나도 언더로 던지는 거고. 그래도 너 정밀 검사는 한 번 더 받아 봐. 우식이 형이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엄청 우겼나 봐. 일단 위에서 곧 결정이 난다고 하니까 정밀 검사 받고 와.”

“아…… 이제 막 훈련을 시작했는데 빠지게 되네요.”

“한 일주일 입원이라도 하냐? 오버는.”

송석현은 콧잔등을 긁적였다.

“그래도 처음으로 팀 훈련하는 거라 좋았거든요.”

“앞으로 아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하게 될 거야. 우리 배코가 훈련 빡세게 시키는 거로 유명해. 나중에 살려 달라고 빌 수도 있다, 너.”

“힘든 건 상관없어요. 제대로 할 수만 있으면 괜찮아요.”

김정률이 씨익 웃었다.

“하여간. 너는 실력보다 그 멘탈이 더 좋다니까. 너 같은 놈이 옆에 있으니까 나도 쉴 수가 없네. 오늘 어때? 내 공 좀 잡아 줄 수 있어? 쉬어야 하나?”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가시죠.”

* * *

송석현은 다음 날 바로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

투수코치인 연우식은 그때 잠깐 아프고 이제는 괜찮은 거 아니냐며, 지금이라도 투수를 시작하자고 며칠이고 졸랐다.

그때마다 배터리코치인 김태우가 정색하며 연우식을 밀어냈다.

2군 감독 구창현이 나서서 포수로 밀어주자고 결정이 난 후에야 코치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끝났다.

송석현은 배터리코치 김태우의 일대일 훈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송석현의 훈련이 시작된 날은 리그 개막일이었다.

송석현은 땀으로 젖은 유니폼을 세탁기에 넣고선 1군 경기를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 마이클 피시 선수. 역시 공이 좋네요. 지금 공은 150km/h 넘었죠?

-이번에 고트가 좋은 선수와 계약을 한 거 같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4점대 방어율을 기록했고 작년엔 트리플 에이에서 방어율 3점대를 기록한 선수라고 하네요.

-올해 계약한 선수 중에서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올해 외국인 선수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라고 봅니다.

-현재 밝힌 계약 규모만 100만 달러 수준이라고 합니다. 올해 고트가 이를 바짝 간 게 느껴지네요.

-작년에는 대전 피닉스가 의외의 우승을 해서 전 구단이, 아니 전 국민이 깜짝 놀랐죠? 우승의 주역인 김영훈 선수가 재활로 빠져 있는 상황이라 다시 리그는 혼전에 들어섰습니다. 서울 고트도 충분히 좋은 팀인 만큼 충분히 우승권 경쟁이 가능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임의수 감독은 인터뷰로 구단을 자극해서 세간의 논란이 됐습니다.

-올해에 풀린 FA 선수들을 잡아 주지 못해서 서운한 건 알지만, 임의수 감독 임기 동안 외부 FA로 잡은 선수만 다섯입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에요. 아마 이만큼 감독에게 지원한 역사가 있나 싶어요. 지금도 고트는 충분히 좋은 팀이에요. 좋은 선수들이 많거든요. 오히려 FA 선수보다 백업층이 부실한 게 흠이에요. FA 선수로 좋은 선수들의 유출이 많았습니다.

-올해가 임의수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인데요. 과연 고트가 10년이 넘도록 들지 못한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송석현은 침대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자신이 1군에 올라가면 함께 뛸 동료들이다.

용병 둘은 차치하더라고 1, 2선발 이창훈, 한민석은 리그 A급 선발 요원이다.

물론 FA로 두 사람을 데려왔다.

1, 3루를 보는 최대규와 강문규는 견고한 수비와 높은 출루율로 알토란 같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두 사람도 FA다.

좌익수를 보는 이낙균은 대구 스콜피언 출신의 홈런왕.

잠실에 와서 홈런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OPS는 9할을 치는 괴물이다.

FA로 영입한 스타 선수만 다섯.

성적에 비해 고트의 선수 면면은 화려했다.

문제는 고트 프랜차이즈 선수 중 스타 선수라고 할 만한 선수는 김정률 하나라는 것.

그마저도 현재 2군에 있었다.

“치즈 챔피언 같은 건가…….”

송석현의 우려와 달리 고트의 출발은 좋았다.

일주일간 4승 2패.

1군의 성적이 좋아지자 2군 선수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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