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20화 (120/201)

K.I.S.S-Keep It Simple, Stupid!

유선호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조진희는 세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내며 제 위력을 뽐냈다.

“조진희 선수,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1실점으로 막아 냅니다.”

“커브가 아쉽겠어요. 잘 떨어진 공이었는데 그걸 노려서 칠 줄은 몰랐을 겁니다.”

벤치로 들어간 조진희가 정용욱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됐어, 인마.”

“다시는 객기 안 부르겠습니다.”

“퍽이나.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가까워진 거라더라. 네가 고집 꺾을 놈이냐? 하던 대로 해.”

“…….”

“대신 했던 실수는 또 하지 마라. 천적은 그렇게 생기는 거야. 알았어?”

“알겠습니다.”

3회 초, 정천운은 볼넷을 두 개나 내줬지만 병살과 땅볼로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페가수스 감독은 뒷짐을 진 채 벤치를 나가 버렸다.

3회 말부턴 조진희의 페이스였다.

-아웃!

-아웃!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조진희 선수! 안타 하나 이후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냅니다. 홈런을 맞은 이후로 제대로 칼을 간 거 같습니다.”

“지금 최고 구속이 155km/h까지 나오고 있거든요? 초반부터 피치를 올리지 않는 선순데 이러면 거의 본인의 최고 구속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위기감이야말로 최고의 성장 동력인 거 같습니다. 홈런 하나가 조진희 선수의 K 본능을 깨웠습니다.”

4회 초엔 정천운이 볼넷 하나와 안타를 내줬지만 병살과 삼진으로 이닝을 막아 냈다.

4회 말.

고트의 선두 타자는 송석현이었다.

“또 송석현 선수가 선두 타자로 나옵니다.”

“아까 맞은 홈런을 어떻게 갚을지 궁금하네요. 제대로 칼을 간 조진희 선수는 정말 무섭죠. 정말 무서운 투숩니다.”

조진희가 발로 마운드를 두드렸다.

관중의 응원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당한 건 갚아야 한다.

정용욱이 사인을 냈다.

‘패스트볼, 인사이드.’

조진희는 있는 힘껏 초구를 던졌다.

팡!

송석현은 몸을 살짝 웅크렸다.

몸 쪽으로 살짝 깊은 공.

공의 높이도 높았다.

구속은 154km/h

좌완 투수가 우타자의 몸에 크로스로 꽂아 넣는 강속구였다.

“방금은…… 볼이 됐지만 굉장한 공이 들어갔습니다.”

“역시 조진희 선숩니다. 저건 사실 위협구나 다름없습니다. 홈런을 쳤다고 타석에 쉽게 붙지 말란 경고죠.”

“안 그래도 오늘이 첫 복귀잖습니까? 송석현 선수가 빈볼은 맞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꽤 신경이 날카로울 텐데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네요.”

볼을 던졌지만 조진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원하는 코스에 원하는 공이 들어갔다.

제2구도 패스트볼, 아웃사이드였다.

팡!

-스트라이크!

“바깥쪽 먼 곳에 공이 들어옵니다.”

“저런 공은 어쩔 수 없죠.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는 절대 치면 안 되는 공입니다.”

“1-1. 카운트도 재밌네요.”

송석현이 배트를 가볍게 쥐었다.

공 2개를 봤다.

공 2개를 보면서 조진희의 발의 위치와 손의 높이를 확인했다.

저 정도.

수치로 말할 수 없지만 딱 저 정도.

조진희의 디폴트값을 잊을세라 머릿속에 꾹꾹 눌러 입력했다.

‘슬라이더, 로우.’

빠른 공 두 개 이후 떨어지는 슬라이더 하나.

조진희는 손가락에 힘을 준 후 공을 뿌렸다.

팡!

타자의 무릎 높이로 가다가 떨어지는 슬라이더.

송석현은 이번에도 지켜봤다.

“송석현 선수가 변화구를 참아 냅니다.”

“저 슬라이더를 골라내는 것도 참 신기하네요. 코스도 좋아서 무조건 배트가 따라 나올 수밖에 없었거든요.”

“카운트는 2-1. 타자가 조금 유리해졌습니다.”

조진희는 포수가 던진 공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구분했지?

빠른 공을 노리고 있던 거 아닌가?

자신의 슬라이더는 패스트볼과 구분이 어렵다.

변화구를 노린 건가?

슬라이더? 커브?

홈런을 맞은 커브를 던질 거라 예상할 리는 없고, 그럼 슬라이더?

조진희가 인상을 썼다.

정용욱은 조진희에게 사인을 보냈다.

‘포심, 아웃사이드.’

투수가 생각이 많아지면 공은 조잡해진다.

생각이 길어지기 전에 끊어야 한다.

“후우우.”

송석현이 얕은 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모든 구종을 지켜봤다.

조진희, 좋은 투수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차이가 없다.

두 구질의 차이가 없기에 커브가 더 도드라진다.

국내는 물론 국제 대회에서도 수준급 활약을 한 이유가 있다.

좌완 투수의 강속구와 고속 종 슬라이더는 보고 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 하나를 보고 들어가야 한다.

포심이냐 슬라이더냐.

송석현은 오로지 하나, 포심으로 마음을 굳혔다.

던지는 공의 반절 이상이 포심인데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조진희, 와인드업!”

조진희가 다시 한번 외곽을 향해 공을 던졌다.

송석현의 배트도 돌았다.

탕!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1루 라인 선상을 타고 날아갔다.

“우익수! 우익수 방향! 아! 파울! 파울입니다.”

“방금은 타이밍이 정말 잘 맞았죠? 조금만 더 히팅 포인트가 앞에서 형성됐다면 2루타 코스였습니다.”

“파울이지만 조진희 선수의 간담이 서늘해질 파울이었습니다.”

송석현이 배트를 다시 쥐곤 입맛을 다셨다.

역시 조진희.

생각보다 공이 더 빠르고 강하다.

자신이 생각한 히팅 포인트보다 공이 더 빨랐다.

조진희의 역동적인 투구 폼이 정확한 타이밍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살살 하자, 살살 해.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정용욱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아…… 예.”

정용욱의 눈이 송석현의 배트에 향했다.

남보다 1인치 더 긴 배트가 문제다.

타석에 떨어져 섰는데도 웬만한 공은 사정거리 안이다.

‘포심, 인사이드.’

이번에는 다시 한번 몸 쪽을 노려본다.

조진희는 체중을 실어 전력으로 공을 던졌다.

탕!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아! 폴대를 벗어납니다! 파울! 이번에는 큼지막한 파울이 나옵니다.”

“방금은 조금 위험했죠? 공이 살짝 몰렸던 거 같아요.”

“힘과 힘의 맞대결이 대단합니다. 송석현 선수가 잘 친 거 같은데 파울이 나왔어요.”

“조진희 선수의 구위가 좋다는 얘기죠.”

“오늘 경기 정말 재밌네요. 야구 팬 여러분이라면 오늘 이 대결을 꼭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송석현이 타석에서 벗어나 배트를 한 번 휘둘렀다.

좌완 파이어볼러 구인선의 공도 훌륭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톱클래스 좌완 투수지만 조진희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다.

묵직하고 날카롭다는 구인선의 포심도 조진희와 비교하면 한 수 아래다.

더 묵직하고 더 날카롭다.

가벼운 배트를 썼더라면 배트가 부러졌을 거다.

송석현의 손아귀가 웅웅 울렸다.

꿀꺽.

조진희가 마른침을 삼켰다.

연속 파울.

폴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파울이다.

뒷골이 싸늘하다.

‘슬라이더, 로우.’

카운트는 2-2.

변화구 하나면 삼진이다.

조진희는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했다.

탕!

송석현이 타석에서 벗어났다.

“파울. 3루 방향 파울입니다.”

“방금은 정말 힘겹게 걷어 냈네요. 위험했습니다.”

“송석현 선수 끈질기네요. 정말 끈질깁니다.”

조진희가 로진백을 집어 들었다.

회심의 결정구를 파울로 만들었다.

분명 히팅 포인트가 뒤에서 형성됐다.

파울이 아니라 범타가 돼야 하는데 어떻게 파울이 나온 거지?

자신의 공을 이겨 낼 정도로 송석현의 힘이 좋은 건가?

조진희의 머리가 복잡했다.

“무서운 놈이야.”

이지성이 중얼거렸다.

조금 전 송석현의 타격은 하체만 따로 두고 본다면 자신의 자세를 따라 한다고 말할 만큼 비슷했다.

점프하듯 뒷다리로 땅을 힘껏 박차는 스윙.

이지성이 부족한 상체의 힘을 보완하기 위해 점프하듯 스윙한다면 송석현은 늦은 타이밍에 공을 걷어 내기 위해 하체의 폭발적 힘을 빌렸다.

같은 움직임이지만 다른 활용.

이지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걸 저런 식으로 쓴단 말이지…….”

송석현이 결정구를 걷어 내자 조진희가 공을 손안에서 휙휙 굴렸다.

슬라이더를 걷어 낸 건 우연인가?

정용욱은 바깥쪽 빠른 공을 요구했다.

조진희의 포심은 스트라이크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탕!

“좌중간! 안타! 안탑니다! 송석현 선수는 1루를 밟고 2루로! 2루로~~ 편안하게 들어갑니다.”

“조진희 선수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나요? 방금은 좀 공이 몰렸어요.”

“송석현 선수, 오늘 조진희 선수를 상대로 홈런과 2루타를 하나씩 뽑아냅니다.”

조금 몰린 공이었다.

많이도 아니고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하나 정도 더 들어온 공이었다.

다른 선수라면 구위에 밀려 배트 끝에 맞은 공이 파울이 됐을 거다.

송석현은 기어이 그라운드 안에 집어넣었다.

조진희는 표정 관리에 힘썼다.

2루타를 쳐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호구를 풀어 코치에게 주는 송석현을 보며 성을 내 봐야 자기 얼굴에 먹칠밖에 더 되겠는가?

“다음 타자는 유선호 선숩니다.”

“아까는 볼넷으로 출루했는데 방망이 타이밍이 좀 느렸습니다.”

조진희는 유선호의 몸 쪽에 강속구를 집어넣었다.

좌타자 몸 쪽을 파고드는 좌투수의 빠른 공.

유선호는 꼼작도 못 했다.

-스트라이크!

유선호는 숨을 골랐다.

체감상 160km/h을 훌쩍 넘는 속구.

유선호는 바깥쪽 포심을 노렸다.

팡!

-스트라이크!

“또 몸 쪽 빠른 공입니다. 투 스트라이크.”

“과감합니다. 조진희 선수가 과감하게 가네요.”

유선호는 타석에서 물러나 배트를 한 번 휘둘렀다.

“아이고, 인마. 복귀 기념인데 친구한테 공 하나 안 주나?”

“그래서 줬잖아. 치라고 직구 두 개 줘도 못 치는 놈이 무슨.”

“저 공을 우째 치노?”

“그거야 니 사정이고.”

동갑내기 정용욱과 유선호가 서로 말을 섞었다.

“커브 하나 도. 커브.”

“알았어. 줄게.”

유선호는 바깥쪽 슬라이더를 노렸다.

공 두 개를 연속으로 몸 쪽에 붙였다.

몸 쪽 공 다음에 바깥쪽 공은 공식이다.

바깥쪽 공을 노릴 게 분명하니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노릴 거다.

헛스윙하면 삼진이고 아니어도 볼 하나.

혹시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밀려들어 오면 그대로 스윙한다.

“……?”

날아오는 공을 본 유선호가 헛스윙했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구 삼진입니다!”

“저기서 커브가 들어갈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 같습니다. 거의 정면 한복판 커브였거든요.”

“유선호 선수, 아직은 실전 감각이 더 필요할까요?”

유선호의 삼진 이후 두 타자 연속 범타로 이닝은 끝났다.

유선호는 벤치로 돌아온 송석현을 향해 물었다.

“석현아, 니는 우째 쟤 공을 저리 잘 치는데?”

“제가요?”

“그래. 니 뭐 보이나?”

“선배님 말씀처럼 입 보고, 발 보고, 손 보고 치는 건데요.”

“구종을 노려서 치는 건 아이고?”

“직구 타이밍 놓고 치는 거죠. 던지다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그땐 변화군가 생각하는 거고.”

유선호가 허허 웃었다.

“니 윽수로 단순하게 생각하네.”

“타석에선 단순해야죠. 생각은 여기서 하고 타석에선 붕붕 휘두르기만 하는 게 제 신좁니다.”

송석현은 그새 포수 장비를 차고 그라운드로 향했다.

유선호는 제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아이고. 선호야, 선호야. 니는 뭐가 그리 생각이 많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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