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65화 (165/201)

웬만하면 우리를 막을 수 없다 (2)

화요일, 부산 사직 경기장.

폭스와 고트 팬들이 줄지어 경기장으로 입성했다.

저지를 입은 고트 팬 중 열에 서너 명은 송석현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오늘도 이기겠지?”

“석현이가 왔는데 그냥 이기지.”

“폭스 꿀 달달하다, 달달해. 이번 경기 이기면 우리 단독 1위 가는 건가?”

“아직 2경기 차니까…… 가능성은 있지.”

“오늘 또 석현이가 홈런 한 방 까 줘야 하는데.”

“복귀전이니까 홈런은 안 바란다. 그냥 안타 좀 치면서 적당히 감만 잡아도 땡큐지.”

“안타 치는 걸 별거 아닌 거처럼 얘기하네. 푸하하하.”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경기장의 관중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해설자와 캐스터도 그라운드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사직 구장은 조금 빈 곳이 보이네요.”

“아무래도 주말 3연전 폭스의 3연패의 후유증으로 보입니다.”

“3루 관중석에는 고트 팬들로 벌써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입니다.”

“올 시즌 고트의 성적은 드라마틱합니다. 중위권에서 시작해서 하위권으로 처지고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갔다가 또 하위권. 그러다가 치고 올라오더니 어느새 단독 2위입니다. 1위 페가수스와도 이제 몇 경기 차이 나지 않아요.”

“올 시즌은 순위 싸움이 참 치열한 거 같습니다.”

“작년에는 피닉스가 주인공이었다면 올 시즌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고트가 주인공이죠. 주전 타자 셋이 이탈되면서 단순히 올 시즌 농사를 망치는 걸 넘어 암흑기로 가는 거 아니냐, 걱정이 많았잖습니까? 그런데 전혀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인물이 툭 튀어나왔단 말이죠.”

“송석현, 김인환 선수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여기에 현재 철벽 불펜으로 변신한 김정률 선수와 트레이트로 데려온 이지성, 유선호 선수까지 말 그대로 퍼즐처럼 딱 들어맞았습니다.”

“고트는 김정률 선수 이후로 제대로 키워 낸 스타가 없다는 소리를 쭉 들어왔는데 송석현, 김인환 선수가 소위 포텐이 터지면서 그런 소리를 쑥 들어가게 됐습니다.”

“최근 송석현 선수가 부상으로 타선을 비우면서 다시 고트가 하락세를 겪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최근 성적이 훌륭해요.”

“고트가 그만큼 내실을 잘 다졌다는 얘기에요.”

“위원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오늘 경기, 키포인트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역시 송석현 선수죠. 부상으로 이탈하다 다시 돌아온 송석현 선수가 감을 찾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 겁니다.”

* * *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유선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했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송석현은 유선호에게 다가갔다.

“뭐 하세요?”

“보면 모르나? 집중하고 있다.”

“선배님, 긴장하세요?”

“긴장은 무슨. 원래 이렇게 하는 기야.”

유선호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벤치 뒤로 몸을 피했다.

김정률은 유선호를 보며 키득거렸다.

“우리 선호 형이 많이 쫄린다, 쫄려.”

이지성이 말했다.

“선호 선배가 외야 수비는 좋아하는데…….”

“솔직히 평균 이하지, 평균 이하. 흐흐. 저 정도 운동신경이면 수비도 평타는 쳐야 하는데 말이야. 참 신기해. 그치?”

“오늘 좌익수한테 공이 덜 가길 바라야죠, 뭐.”

김정률이 송석현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이게 다 너 때문 아니냐.”

“제가 왜요?”

“네가 지타를 가 버리니까 선호 형이 외야로 밀린 거 아냐.”

“저라고 지타 가고 싶어 가나요…….”

“그러니까 아프지 말아야지.”

“제가 아프고 싶어 아픕니까? 아픈 사람 서럽게끔.”

포수 장비를 챙기던 서일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석현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 석현이도 좀 쉬어야지 나도 나갈 거 아냐.”

“아, 그것도 그런가?”

“나도 FA 좀 해 보자. 어?”

송석현이 코를 찡긋했다.

김정률은 송석현의 머리를 헝클었다.

“눈치 보기는. 컨디션 괜찮지?”

“네. 아까 연습하는 거 봤잖아요.”

“그래, 공 쭉쭉 날아가더라. 그래도 아까 코치님 말 들었지? 몸 사려서 해라. 홈런 친다고 붕붕 휘두르다 또 아프지 말고 살살 하란 말이야.”

“네, 네. 알겠습니다.”

경기 시작 시간에 맞춰 유선호가 다시 벤치로 나왔다.

이를 본 이지성이 혼자 중얼거렸다.

“살살 할 사람 또 있는 거 같은데…….”

* * *

-플레이볼

1회 초.

고트의 1번 타자는 이지성이 아니었다.

“강범재 선수가 올라옵니다.”

“스물두 살. 고트에서 공들여 키우는 유망주죠. 2군에서도 타격은 2할 후반과 3할 초반을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발 하나만큼은 팀 내 최고라고 합니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100m가 11초대라고 하네요.”

“100m 11초요? 엄청 빠른 거 아닌가요?”

“그럼요. 그 정도면 리그에서도 가장 빠른 축에 속할 겁니다. 타격만 어느 정도 받쳐 준다면 고트에서 집중적으로 키워야 할 핵심 유망주라고 생각합니다.”

폭스의 투수는 벤자민 데거.

강범재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 1루를 밟았다.

“벤자민 데거 선수가 방어율은 높아도 볼넷은 적은 편인데 첫 타자부터 볼넷을 내주네요.”

“강범재 선수의 기록을 보면 올 시즌 2군에서 출루율 4할 5푼을 넘겼습니다. 2군 리그 톱 3의 출루율이에요.”

“눈이 상당히 좋은 선수네요.”

데거는 설진일에서 안타를 내주면서 무사 1, 3루. 김인환에게 볼넷을 내주며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안 좋습니다. 흐름이 안 좋아요. 송석현 선수 앞에 밥상을 너무 거하게 차렸어요.”

“데거 선수의 장점은 제구력인데 그마저도 오늘은 빛은 보지 못하네요.”

송석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고트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앰프도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만 내는 소리.

“만! 루! 홈! 런! 송! 석! 현!”

“만! 루! 홈! 런! 송! 석! 현!”

“만! 루! 홈! 런! 송! 석! 현!”

사직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후우.”

송석현이 배트를 가볍게 쥐었다.

투수 벤자민 데거는 스리 쿼터에 가까운 투수.

횡으로 꺾이는 변화구가 좋다.

데거의 결정구도 슬라이더.

간간이 체인지업도 섞지만 낙차와 구속 모두 특별할 게 없다.

노려야 할 공은 하나, 직구.

바깥쪽 슬라이더에 속냐, 안 속냐의 차이다.

팡!

-볼. 아웃사이드.

“송석현 선수가 초구를 골라 냅니다.”

“슬라이더가 많이 빠졌어요. 아무래도 데거 선수도 긴장한 거 같습니다.”

송석현이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만루 상황에서는 타자도 투수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살살 해, 살살. 무섭다, 야.”

폭스의 포수 박진환이 말을 걸어왔다.

“저도 먹고살아야죠.”

“데거 내년에 재계약해야지. 쟤가 애가 셋이야, 셋.”

데거의 다음 공은 바깥쪽 빠른 공.

-스트라이크.

“지금 공은 아주 잘 들어갔어요. 외곽에 정확하게 들어가네요.”

“데거 선수의 정교한 제구가 여기서 빛을 발하네요.”

제3구는 슬라이더, 볼.

제4구는 파울.

“2-2. 데거 선수가 카운트를 잘 끌고 왔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예요. 송석현 선수가 삼진을 웬만하면 잘 안 당하거든요. 중요한 건 여기서 몸 쪽 공을 던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될 겁니다.”

“몸 쪽이요?”

“네. 송석현 선수가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잖습니까? 몸 쪽 붙는 공에는 부담이 있을 겁니다. 프로라면 상대의 약점을 노릴 줄 알아야 합니다.”

포수 박진환이 사인을 냈다.

‘몸 쪽 빠른 공.’

데거가 고개를 저었다.

‘바깥쪽 슬라이더?’

데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진환이 미간을 좁혔다.

데거가 공을 던지는 순간 송석현도 시동을 걸었다.

탕.

“우중간! 우중간을 꿰뚫는 안타! 3루 주자 홈으로, 2루 주자까지 홈으로. 1루 주자는 3루에서, 타자 주자는 2루에서 멈춥니다. 송석현 선수의 적시 2루타.”

“방금은 공이 제대로 꺾이질 않았어요. 저런 애매한 공은 송석현 선수한테 안 통합니다. 빼려면 확실히 빼고 넣으려면 확실히 넣어야죠.”

“오늘도 고트가 먼저 앞서가면서 2-0, 2-0을 만듭니다.”

데거는 유선호에게도 안타를 맞으면서 4-0으로 1회를 마쳤다.

벤치로 돌아온 박진환이 통역을 대동해 데거에게 말했다.

“바깥쪽 공이 먹히려면 몸 쪽 공도 한두 개는 찔러야 상대도 의식하지. 그렇게 주구장창 바깥쪽에다만 던지면 상대가 노리기 너무 쉽잖아. 오늘 체인지업도 안 던지고 슬라이더도 잘 안 꺾이는데 몸 쪽 공을 더 활용해야지.”

“오케이, 오케이.”

“알아들은 거야?”

데거는 고개를 끄덕이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박진환은 데거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내 말을 듣기나 하는 건지, 원.”

1회 말 마운드에 올라온 고트의 선발은 사이드암 투수 정천운.

송석현은 벤치에 앉아 정천운과 서일혁의 배터리 호흡을 지켜봤다.

1번 타자 박찬희는 초구 체인지업을 건드려 아웃.

2번 타자 김형남은 제3구 슬라이더를 건드려 아웃.

3번 타자 김경심은 안타,

일련의 과정이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일혁 선배님 리드가 좋네요…….”

송석현이 입맛을 다시자 김정률이 송석현의 볼을 꼬집었다.

“아!”

“뭘 그렇게 아쉬워하냐? 샘나?”

“아뇨. 그런 거 아닌데요.”

“그럼 편히 봐라, 편히. 우리 같은 팀이야. 쟤가 네 자리 안 뺏어가. 뭘 그렇게 초조해하냐?”

송석현이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초조해했어요?”

“그래, 인마.”

송석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편 수비할 때 벤치에만 있는 것도 고역이네요. 뭔가 죄짓는 거 같고.”

정천운이 4번 타자 최재국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나이스!”

“좋아!”

고트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송석현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요새는 천운 선배 경기가 더 보기 편하다니까요.”

“쟤는 참 소리 없이 잘한단 말이야.”

“볼넷을 안 주니까 경기가 빨라요.”

양 팀의 격차는 초반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데거는 3회 초 김인환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곤 마운드를 내려갔다.

정천운도 스리런을 맞으면서 위기를 겪었으나 5회까지 3점을 내준 게 다였다.

5회 말, 점수는 11-3.

클리닝 타임이 다가오자 폭스 팬들은 일찍 짐을 싸서 나갔다.

6회, 7회, 8회, 9회.

고트는 단 한 이닝도 쉬지 않고 점수를 내면서 17-5 대승이었다.

“오늘 고트가 또 폭스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렇게 되면 폭스는 연패의 수렁에 깊게 빠지게 되는데요.”

“고트는 오늘 경기에서 얻어 간 게 참 많습니다. 송석현 선수가 홈런을 못 때렸지만 3안타를 신고하면서 컨디션 쾌조를 알렸고, 정천운 선수가 99구 완투승을 거두면서 리그 최고의 5선발이라는 수식이 그저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요새 같은 시기에 완투, 완봉은 정말 보기 드물거든요.”

“폭스 팬들은 시름이 깊어지네요. 언제 부진을 털고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트가 오늘 경기를 이겼지만 페가수스도 경기에 이기면서 아직도 경기 차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위와는 2경기 차.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수칩니다.”

“이런 추세라면 페가수스도 부담스럽겠어요. 고트의 맹추격, 무섭습니다.”

“하지만 고트도 내일이 고비가 될 겁니다. 내일 선발은 정진오 선수가 내정돼 있습니다. 최근 잘 던지고 있긴 하지만 이닝 소화 능력이나 1군 경험이 부족한 선수거든요. 타격이 좋은 폭스의 타선을 견뎌 내지 못한다면 고트와 페가수스의 차이는 더 벌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내일이 중요한 고비군요.”

“네. 내일까지 이긴다면 다음 선발은 에이스 피시. 고트는 날개를 단 호랑이가 되는 겁니다.”

숙소로 돌아온 송석현은 잠이 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뒤척였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깨어난 김인환이 송석현을 보곤 말을 걸었다.

“왜? 잠이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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