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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6화 (16/1,270)

프랜차이즈 갓 016화

4장 수출도 갑질이 되나요? (1) 홀 매니저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원하시는 대로 메뉴를 조정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드릴까요?"

"네, 부탁합니다."

"예, 그럼 애피타이저부터 모든 코스에 송이가 포함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것은 있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홀 매니저가 물러갔고, 마케미야는 스마트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했다.

잠시 후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젊은 여자가 테이블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크고 늘씬한 몸매에 하얗고 반듯한 이목구비가 또렷한,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십대 초반의 미인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홀 직원이 의자를 뒤로 빼주자 여자는 자연스럽게 앉으며 그를 돌아봤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아버지 친구분이세요. 원래는 제시아버지가 될 뻔하셨죠. 안타깝게도 아들을 너무 늦게 얻으셔서 태중 혼약은 물 건너갔대요."

"……?"

느닷없는 설명에 홀 직원은 순간 당황했고, 마케미야는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직원분들이 이상한 사이로 생각해서 잡담거리 될까 봐 미리 선수 치는 거예요. 홀 뒤에서 그런 이야깃거리 되는 게 싫어서. 제가 원래 좀 그래요."

"그, 그러십니까. 전혀 이상한 오해는 하지 않았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 얼마 안되는 낙 중 하나잖아요. 저 손님들은 무슨 사이일까 상상의 나래 펴는거. 전 그런 즐거움을 뺏는 게 재밌더라고요."

홀 직원은 당황했지만 끝까지 예절을 잃지 않은 채 물러갔다.

여자, 정서희는 한껏 새침한 눈빛으로 마케미야를 응시했다.

"성격은 여전하구나."

"뒤에서 수군덕거리는 거 싫잖아요."

"생각보다 사람은 타인한테 관심이 없어."

"생각보다 사람은 타인한테 관심이 많더라고요. 제가 좀 생겼잖아요. 아저씨도 좀 생기셨고요."

"나도 이제는 늙어서 예전 비주얼이 안 나온다. 그래도 빈말이라도 듣기 좋구나."

"돈 많게 생기셨다는 뜻인데요. 물론 저는 비주얼이고요."

"밥이나 먹자. 네 것도 시켰다."

정서희는 마케미야의 오랜 한국 친구의 딸이었다.

태중 혼약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케미야의 아들이 너무 어려서 물 건너간 것도 사실이다.

"웬일로 서해호텔이 아니고 백두호텔로 오셨어요?"

"보면 안다."

정서희는 의아했으나, 곧 애피타이 저를 보고 가벼운 탄성을 흘리며 납득했다.

"우리 송이사랑 아저씨, 이거 때문에 여기 오셨구나? 근데 지금 송이 시즌이 아니지 않아요?"

"나도 그게 신기하더구나. 누가 생산하는지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야."

둘은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주로 정서희가 수다를 떨고, 마케미야는 들어주는 쪽이었다.

"아저씨. 제가 부탁이 있는데요."

가벼운 애교가 섞인 목소리에 마케미야는 곧바로 표정을 근엄하게 다듬었다.

"안 된다."

"아이, 들어보시지도 않고요."

"들어보지 않아도 알아. 안 된다."

"제발요, 네?"

"어허, 재민이가 회사를 어떻게 하는지는 그 녀석 고유 권한이야. 내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냐."

"오랜 친구시잖아요."

"오랜 친구니까 더 안 되지."

정재민.

정서희의 친부이자 마케미야의 오랜 친구였다.

"그럼 저는 이대로 오빠한테 전부 다 뺏기고 상속 경쟁에서 탈락한 비운의 재벌가 딸로 평생 빈곤 속에서 살아가야 하나요?"

"야, 재민이가 무슨 재벌이야. 꼴랑 밥집 몇 개 갖고 있는 게 다인데.

재민이가 재벌이면 대한민국 사람 절반은 재벌일 거다."

"너무하시네. 아빠가 들으시면 섭섭해하시겠어요."

"억울하면 이제라도 내 며느리 할래? 진석이 바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마."

"아저씨! 진석이는 고등학생이잖아요!"

"키는 너보다 훨씬 커. 얼굴도 너보다 훨씬 늙었고."

"안 돼요. 그래도 징그러워요."

"아직도 너 많이 좋아하고, 너랑 결혼시켜달라고 요즘도 노래를 부른다, 불러."

"제가 연하는 절대로 싫다고…… 아니지, 지금 이런 이야기하려던 게 아녔는데. 아저씨, 진짜 우리 아빠 설득 좀 시켜주시면 안 돼요? 저도 잘할 수 있는데."

"안 돼. 내가 나설 일이 아니야."

"정말 저는 오빠한테 유산 다 뺏기고 평생을 빈곤하게 사는 길밖에 없는 걸까요?"

"다 뺏기긴 뭘 다 뺏겨. 청담에 빌딩 있는 거 너 준대잖아. 그거나 잘챙겨서 나중에 진석이한테 시집와라."

"저도 아버지 사업체 물려받고 싶다니까요. 오빠보다 더 잘할 자신 있어요."

"그걸 재민이한테 말해야지, 왜 날 붙잡고 말하냐. 네가 아무리 징징거려봤자 아저씨가 해줄 말은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 진석이……."

"정말 너무하세요."

그 뒤에도 정서희는 수차례 졸랐지만, 마케미야는 완강한 태도를 고수했다.

"재민이가 너 준다는 빌딩, 'JM식품'만큼은 못하지만 담보도 없고 깔끔하잖아. 혼수로는 아주 딱이다."

"못한 정도가 아니라 훨씬 못하죠."

정서희는 설득에 실패했지만, 시무룩해하지는 않았다.

"두고 보세요. 나중에 제가 무일푼으로 사업 일궈서 JM식품보다 더 큰 재벌 그룹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무일푼은 무슨 얼어 죽을 무일푼… 청담 빌딩 그거 팔면 오백억은 될 텐데. 그리고 재민이가 어딜 봐서 재벌이냐. 쬐끄만 밥집 몇 개 가지고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놈인데."

"자꾸 밥집이라고 하지 마세요. 엄연히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인데."

"그래, 한국 재계 순위도 아니고, 식품업계에서 만년 2등도 아니고 만년 3등."

식사를 마치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케미야는 계산을 하면서 물었다.

"태워주랴?"

"그럼 감사하죠."

"나도 재민이랑 간만에 술 한잔해야겠어."

"태워주시는 김에 우리 아빠 설득도……."

"보따리는 다른 데 가서 찾아, 인석아."

둘은 호텔 로비를 나섰고, 정문에는 비서가 이미 차량을 대기시켜 놓은 채였다.

"서희 집으로 가자."

"예, 회장님."

백두호텔을 나선 차량은 어느덧 대로로 접어들었다.

정재민의 집에 도착하는 데는 약 30분 정도 걸렸다.

***

오랜 친구, 정재민이 편안한 옷차림으로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

"웬일로 둘이 같이 와?"

"오랜만에 예비 며느리 저녁 좀 사드렸지."

"아, 그럼 빨리 혼수 준비해야겠네."

"진석이랑 결혼 안 한다니까."

"서희야, 진석이랑 결혼하면 몇조원짜리 빌딩이 나중에 다 네 게 되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

"우리 아빠지만 너무 속물이야. 그쵸, 아저씨?"

"그러니 아직까지도 내 친구를 하고 있지."

정재민은 피식거리며 마케미야를 응접실로 안내했고, 정서희는 1층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마케미야는 재킷을 벗어 대충 걸쳐 놓으며 소파에 앉았다.

"서진이는?"

"회사에 있어. 아직 퇴근 안 했거든."

"후계자 수업에 열심이네."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데, 별로 의욕은 없나 봐."

JM식품은 식품제조업체다.

건조식품류, 양념소스류, 유지류, 면제품류, 농수산 가공품류을 만들어서 판다.

국내 식품업계 BIG3에 속하는, 나름 규모 있는 회사다.

좋게 말하면 빅쓰리고, 나쁘게 말하면 만년 삼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미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식품업계가 서진이 취향이 아니긴 하지. 그 녀석 아직도 반도체 노래 불러?"

"못난 놈이 그 나이 먹어서도 주제파악을 못 해. 이 나라에서 무슨 반도체야? 그럴 거면 서해그룹 아들로 태어나든가."

정재민은 맥주를 한 캔 따면서 물었다.

"지병은 요즘 어때?"

"나아졌어."

"웬일이래. 존스홉킨스에서도 못잡은 병이 갑자기? 짚이는 건 없어?"

"있어. 있는데, 내가 생각해도 미친 소리 같아. 재민이 너, 듣고 안 비웃을 수 있나?"

"비웃을 준비 됐으니까 어서 말해."

"요즘 내가 즐겨 찾는 송이버섯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 버섯이 내 지병에 잘 듣는 거 같아."

"송이버섯?"

"어, 아주 특상품 버섯이 있어. 서해호텔에 잠깐 들어왔다가 요즘에는 백두호텔에만 물량이 들어가는 모양인데……."

"잠깐, 백두호텔?"

정재민은 잠시 뭔가가 떠오른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상한 보고를 받았어."

"무슨 보고?"

"우리나라 어떤 유통업체가 송이버섯 1톤을 일본에 수출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까는 지금 제철이 아닌데 무슨 헛소리인가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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