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21화
5장 순순히 버섯을 내놓으면 입금을 드리겠습니다(1)
"죄송하지만, 귀사는 투자 회사 아닙니까? 아까 이름이 마케미야투자 어쩌고……."
-투자 회사 맞습니다. 부동산투자를 주영업으로 하는 일본 회사입니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고요.
"아니, 부동산투자회사가 왜 송이 버섯을 400kg이나 산다는 겁니까?"
-저희 회사 오너께서 송이버섯을 원체 좋아하셔서요.
그러니까 더욱 신뢰가 안 간다.
아니, 아무리 회사 오너라지만 송이버섯을 무슨 400kg이나 산다는 거야?
-그리고 400kg이 끝이 아닙니다.
듣기로 매달 400kg씩 일본에 수출하실 생각이시라고요. 그 물량도 앞으로 저희 회사가 전부 사겠습니다.
"아무리 부동산투자 회사라지만 너무 심한 돈 낭비 아닙니까? 특상품송이버섯이 일본에서 ㎏당 얼마에 팔리는지는 아시나요? 경매로 말입니다."
-최고 낙찰가가 한국 돈으로 211만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역시 그 가격으로 사겠습니다.
이것들 미친 거 아니야? 아니면 돈이 그렇게 썩어나?
전성렬은 순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부동산투자회사에서 왜 그렇게 무리해 가면서 송이를 사들이려는 겁니까? 아무리 회사 오너가 좋아한다지만 킬로 당 211만 원이면 매달 판매대금이 8억 4,400만 원이에요."
순간 전파 너머로 살짝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전성렬은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물론 이어진 말을 듣기 전까지만이었다.
-저희 회사가 보유한 순자산이 5,000억 엔입니다.
"오, 오천억 엔이라고요?"
-비상장 회사인 데다가 회사 지분은 100% 마케미야 사장님 소유지요. 월 9억 원 조금 안 되는 돈은, 죄송하지만 그분에게는 동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분이 혼자 다 드시는 건 아닙니다. 여기저기 선물도 하실 테고, 소유하신 식당이나 호텔에도 공급하기도 할 거고, 다용도로 사용할 겁니다.
"그, 그런데 어떻게 우리 송이를 아시고……."
-서해호텔에 납품하셨었지요? 그분이 서해호텔 한식 레스토랑 VIP였습니다.
"아!"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전성렬은 낮게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제 서해호텔에는 송이가 들어가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요즘에는 백두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수출이라는 거, 사실 은근히 까다 롭습니다. 보험도 들어야 하고 송장도 파야 하고, 또 운송도 알아봐야 합니다. 일본 유통망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르시죠? 직접 진출하시려면 경매 수수료 왕창 물고 바가지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일괄 판매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일본에 진출하려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다보고 하는 일입니다. 귀사 오너의 취향만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일단 일 년치 송이를 우리가 선점하겠습니다. 대금도 선불로 드리죠.
"하겠습니다! 당장 계약서 씁시다."
이런 딜은 일단 받고 보는 거다!
나머지 이야기를 마무리한 전성렬은 희희낙락해서 전화를 끊었다.
"kg당 211만 원, 4,800kg이면 대체 얼마야? 101억이 조금 넘나?"
성렬유통의 연 매출이 약 90억 원이다.
물론 매출일 뿐, 그중 순수익은 10억이 밑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40억이 넘는 순수익이 생겨 버렸다. (절반은 하수영 몫이므로)
"이럴 때가 아니지."
전성렬은 부리나케 외출 준비를 했다. 상대와 지금 바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아무래도 100억 원이 넘는 큰 거래이다 보니, 구두 약속만 믿고 있자니 불안했다.
전성렬은 상대가 도착할 때까지 약속장소에서 스마트폰으로 '마케미야 투자'에 관련된 자료만 검색했다.
"정말 부자는 부자군."
상대의 설명대로 일본에서 알아주는 부동산투자회사였다.
"참 돈 많게 생겼네."
마케미야 사장의 사진도 열심히 훑어봤다. 20분 남짓한 시간은 그가 마케미야투자란 회사의 전문가가 되기에 충분했다.
"전성렬 사장님이십니까?"
"아, 네. 제가 전성렬입니다."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고, 그중 한 명이 밝게 미소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에 전성렬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탄성을냈다.
"호, 혹시 마케미야 대표님이십니까?"
"이런,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인터넷 기사에서 많이 뵈었습니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부를 쌓으셨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듣고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어 대대손손 가문이 영광입니다."
전성렬은 마치 슈퍼스타라도 만난 열혈팬처럼 흥분한 태도를 보였다.
"제가 좀 매력이 있나 봅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절 전혀 모르시던 분한테서 이렇게 큰 존경을 받다니요."
전성렬은 잠시 멈칫했으나, 곧 활짝 웃으며 받아쳤다.
"백억이 주는 매력을 저 같은 영세자영업자가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23년 전으로 돌아가서 대표님의 팬이 되겠습니다."
"호오, 왜 하필 23년입니까?"
"바로 마케미야부동산이 창립된 해이니까요."
마케미야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다소 과한 아부, 만약 다른 이였다.
면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성렬은 오히려 마케미야 자신이 아쉬워서 만나게 된 인물, 오히려 저런 과다한 표현이 듣기 좋았다. 다소 민망한 것만 빼면.
"서해호텔에서 귀사가 유통하는 송이를 처음 먹었습니다. 제가 그전까지 먹었던 그 어떤 송이보다도 맛이 있더군요."
"하하, 저희가 유통하는 송이는 감히 최고의 특상품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냉동이다. 아니다 의문이 많았어요. 제철이 아닌데 어떻게 그런 송이를 유통할 수 있는 겁니까?"
"철에 상관없이 송이가 자라는 산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요. 그 친구한테 송이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아, 그럼 양식은 아니군요."
"네, 양식은 아닙니다. 양식 기술을 개발한 거면 그 친구는 벌써 돈방석에 앉았겠죠."
마케미야의 비서실장이 계약서를 준비하는 동안, 마케미야와 전성렬은 가벼운 담소를 나눴다.
"서해호텔에는 더 이상 공급하지 않는가 봅니다?"
"네, 백두호텔에서 워낙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요. 그렇게 됐습니다."
"아쉽군요. 서해호텔 총주방장이 송이 조리하는 솜씨는 끝내주는데 말이죠."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업상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마케미야는 자세한 건 묻지 않았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꿰뚫었다.
"혹시 조건만 맞으면 서해호텔 납품도 고려하실 수 있습니까?"
"조건만 맞다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김 실장."
마케미야가 옆을 돌아보며 부르자비서실장이 얼른 대답했다.
"예, 대표님."
"서해호텔 경영에 간섭할 방법 한번 찾아봐."
"알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시를 내리고, 또 아무렇지 않게 꾸벅하는 모습에 전 성렬은 말을 잇지 못할 감동마저 느꼈다.
자신은 식자재 납품 하나를 가지고도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이 사람은…
"이런 작은 계약을 대표님이 직접 챙기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좋아서 사는 거니까요. 당연히 직접 나오고 싶죠. 안 그렇습니까?"
"아, 이해했습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계약은 체결됐고, 마케미야는 그 자리에서 회사 계좌로 대금을 쏴주었다.
정확히 102억이 통장으로 들어온걸 확인한 전성렬은 다시 한번 감동했다.
원래는 101억 2,800만 원인데 좀 더 얹어준 것이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전성렬은 마케미야가 건넨 명함을 소중한 듯이 받아들었다.
약속 장소를 나오기 무섭게 그는 하수영에게 전화를 했다.
일본 부동산 재벌한테 1년 치 송이를 ㎏당 211만 원에 일괄 판매했고, 1년 치 대금을 선불로 받았다고 자신의 무용담을 과장해서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원래 수익의 절반을 내가 가지기로 했잖은가. 근데 막상 큰돈을 만지니까 그건 너무 염치가 없는 거 같아서 말이야."
-아닙니다. 사장님이 이루신 성과잖아요.
"난 자네랑 길게 가고 싶거든. 자네가 나한테 손해 봤다는 느낌을 남기고 싶지 않아. 그게 나한테 진짜 손해란 말이지."
-무슨 말씀이시죠?
"원래 내가 자네한테 ㎏당 45만 원에 사서 호텔에는 80만 원에 납품했어. kg당 35만 원의 마진을 챙겼지. 물론 이번에는 내가 수고한 것도 있으니 kg당 50만 원의 마진을 챙기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나?
40억 받을 거 24억만 받겠다는 걸세."
1/2으로 나누기로 했을 때, 전성렬의 몫은 40억쯤이다.
전성렬은 지금 24억으로 자기 몫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시 우리 전성렬 사장님, 저는 그런 분이 아닐 거라고 처음부터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응? 무슨 소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