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29화
6장 얼마야? 얼마면 돼? (4)
"엄마 말이 맞네. 앞으로 국물 요리 할 거면 그냥 아빠 라면 사서 버섯만 쏙 빼서 쓰는 게 낫겠다."
"하, 하지만 이건 말린 거잖아?"
"무슨 상관이야. 원래 황비버섯은 말린 거 써도 좋아. 더 각별한 맛이 난다고."
"말린 거 국물에 불려서 끓이면 식감도 달라지지 아마?"
"난 생보다는 말린 거 불려서 쓰는 게 더 맛이 좋은 거 같더라고. 향도 그렇고, 식감도 그렇고."
처와 두 딸이 도란도란 의논하는 걸 들으며, 전성렬은 멘탈 붕괴에 빠졌다.
'에이, 설마 소비자들이 그런 바보 짓을 할 리가?'
라면에서 버섯만 쏙 빼서 다른 요리에 쓴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발상이란 말인가.
전성렬은 한사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처와 두 딸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진실은 가혹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전골,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라면에서 버섯만 쏙 빼다가 넣으면 끝이네. 나중에 라면도 먹고, 몇백 원에 황비버섯도 구해서 넣고. 일거양득인데?"
"아빠,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할 거야? 그냥 버섯값 좀 제대로 받으면 안 돼?"
"솔직히 이런 맛이라면 라면 하나에 몇천 원씩 받아도 될 거 같지 않아?"
"그건 아니지. 아무리 맛있어도 봉지라면 하나에 천 원 넘어가면 누가 그걸 사먹어."
"언니, 난 사먹을 거 같은데?"
"꼭 너 같은 애들이 자기는 사먹을 거라고 다른 사람들도 다 자기처럼 그럴 줄 알더라. 인스턴트 라면이 몇천 원씩 하면 그건 이미 라면이 아냐. 라면 겉모습만 흉내 낸 다른 식품일 뿐이지."
"딸, 그건 언니 말이 맞아. 아예 고급 라면 브랜드로 밀어붙일 거라면 몰라도, 일반 라면으로 팔 거면 다른 라면하고 가격 수준은 얼추 비슷해야지."
전성렬의 고민은 더욱 가혹해져만 갔다.
* * *
이원재는 요즘 부쩍 초조했다.
성렬유통에서 일하는 친구 박기수의 말만 믿고, 하수영과 전성렬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계책을 썼다.
이제 하수영이 '전성렬 사장 못 믿겠다, 앞으로 송이 유통은 당신들 서해식품하고 직접 하겠다. 국내든 국외든'이라는 연락만 해오면 그만이다.
한데 하수영은 아무 말이 없고, 전 성렬도 연락이 없다.
대체 둘 사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기수야, 어떻게 돼가고 있어? 나 요즘 부장님 눈치 보느라고 아주 죽겠다."
-그게,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아.
"진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우리 사장님 요새 저기압이야. 하수영 사장하고 무슨 갈등이 있나 봐.
"그러면 다행이고."
전화를 끊은 박기수는 폰을 내려다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 대답도 뭔가 시원치 않고 말이야."
날이 갈수록 불안한 예감은 점점 구체화돼 가고 있었다.
이원재는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지금 이 상황이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수 이놈이 설마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치지는 않겠지?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주지 않고 덮어두는 것도 뒤통수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러 사무실을 나섰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불현듯 다른 부서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을 100톤씩이나?"
"그렇다던데."
"그 비싼 버섯을 그렇게나 많이 사서 어디에 쓰려고?"
"요즘 황비버섯이 한창 뜨고 있잖아. 먹방이다 쿡방이다, 지상파고 유튜브에서 다양하게 쓰던데."
"그럼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유통하는 거래?"
"그것도 있고, 요식업체에서도 황비버섯이 한창 유행 타고 있다나 봐."
"100톤이면 매입가가 30억 정도는 들겠네. 우리 회사에 비하면 큰돈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단일 품목 매입비치고는 조금 센 편인데? 그래도 시기에 용케 물량을 구했네."
"성렬유통인가? 거기에 물량이 있다던데. 280톤인가 재고 있다고."
"처음 들어보는데. 그런 회사가 있었어?"
"연 매출 100억도 안 되는 작은 유통업체야. 못 들어본 게 당연하지."
이원재는 하마터면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 *
황금비단우산버섯 재배 단가를 대폭 낮추는 데는 성공했다.
국물 요리의 최강자인 황금비단우산버섯을 듬뿍 넣은 라면을 유통하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갈 것이다.
라면 시장을 석권하면 그것을 발판 삼아 차근차근 다른 식품 시장도 점령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소비자도 바보가 아니라는 거지. 우리가 황비버섯 가격을 이원화하면, 소비자도 그에 맞춰서 행동할 거야. 라면에 넣은 버섯을 빼서 일반 요리에 쓸 걸세. 따로 시중에서 파는 황비버섯은 안 사겠지."
일반 시중에 공급하는 생버섯은 원래 가격을 유지하고, 라면에 넣는 버섯은 가격을 대폭 낮춘다.
그럼으로써 라면 시장을 잡으면서도 일반 시중에서도 이익을 취한다는 판매 전략.
그것에 큰 차질이 생겼다.
'낯빛 하나 안 바뀌는군.'
한데 하수영은 이야기를 듣고도 태연했다.
이미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건 큰 문제도 안 된다는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히려 해결책을 촉구하는 듯이 되묻는다.
전성렬은 불현듯 그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요즘 그에게서 종종 받곤 하는 느낌이 다시금 밀려왔다.
"별수 있나. 그대로 밀어붙여야지."
"흐음."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라면 시장석권이 아닌가."
"그렇죠. 황비버섯 시장 독점 따위야 뭐가 중요하겠어요. 라면 시장을 독점하는 게 중요하죠."
"별별 생각을 다 해봤는데, 가격차이가 현저히 나는 이상 라면에 넣은 버섯을 빼서 다른 요리에 쓰는 건 결코 막을 수가 없어. 라면 섭취약관 위반이라고 소비자를 고소할게 아닌 한은 말이야."
"그렇게 하면 전국 맘카페에서 단숨에 인지도를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요."
"일반 가정집에서 요리에 쓰려고 우리 라면 버섯을 빼 쓴다고 손해볼 것도 없어. 오히려 그만큼 우리라면 제품이 많이 팔릴 테니까 점유율 올리기에는 좋겠지."
"요식업체에서 사다가 쓰는 건요?"
"그럼 더 땡큐지. 요식업체에서 작정하고 쓴다면 하루에도 몇 박스씩 쓸 거 아냐? 라면 시장 점유율 1위탈환하는 것은 시간문제겠어."
전성렬은 차라리 버섯을 소량만 넣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값비싼 황비버섯을 가득 넣은 특별 라면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초기 전략에 위배되기에 포기했다.
"버릴 건 버리고 가야지. 모두 다가질 순 없잖은가. 생버섯 유통시장은 당분간 없다고 생각하고 가야겠어."
"의외로 생버섯 시장에 타격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라면 박스째로 사다가 버섯만 빼서 요리에 넣는다는 거, 생각보다 번거로울 거 같은데요."
"소비자들의 부지런함을 너무 무시하지 말게."
"소비자들의 조심성도 너무 무시하지 마시죠. 소비자 입장에서 말린 버섯에 라면 스프를 미리 첨가했을지 안 했을지 어떻게 장담합니까?"
그 말에 전성렬도 음 하고 낮은 소리를 냈다.
"된장찌개 맛 좀 살리려고 버섯을 넣었는데 라면 분말 스프 맛이 섞이 기라도 하면 요리를 버리는 거잖아요."
"잠깐, 그 생각을 못 했군. 버섯과 분말 스프를 미리 섞는다는 발상 말이야!"
전성렬은 살짝 들떠서 말을 이었다.
"미리 버섯에 분말 스프를 섞어두면 버섯을 빼서 다른 요리에 쓰는 걸 원천봉쇄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 마세요."
좋은 생각이라고 해서 기껏 말했는데 하수영이 대번에 부정하자 전성렬도 의아해졌다.
"왜 그러나?"
"우리는 후발주자 중의 후발주자입니다. 아무리 황비버섯라면이라는 필살기가 있어도 너무 뒤처져 있단 말이죠. 인지도가 바닥이 아니라 심해예요, 심해."
"인지도를 올릴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거래를 해야 할 판입니다. 황비버섯을 엄청 싸게 넣은 라면이 있다, 그래서 이 라면을 사서 버섯만 빼서 요리에 쓰자, 이런 입소문이라도 나야지 초반에 기세를 불태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거 없어도 황비버섯라면이라면 충분히 시장 1위를 탈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쓸 수 있는 수는 모두 다 털어 넣어봐야지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미리부터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 한두 해 해보신 것도 아니시면서…"
가벼운 힐난 같은 느낌에 전성렬은 문득 부끄러워졌다.
기본 중의 기본을 지적받은 기분이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뻘 되는 동업자한테.
"알았네. 그럼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지. 당분간 생버섯 시장은 신경을 끄겠네."
"네, 그쪽에 물량 돌릴 생각 마시고 일단 라면 시장부터 장악해 봅시다. 생버섯 시장은 어차피 최종적으로는 가격이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제가 이 단가에 재배하는 한 말이죠."
"그렇게 하지. 아참, 서해식품에서 황금비단우산버섯 100톤을 팔기로 했네. 가격은 기준시세 그대로."
"잘하셨습니다. 인수하기로 한 구공장 생산성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신생 업체한테는 과하고, 기성 중 견 업체들한테는 많이 아쉬운 수준? JM식품이 왜 골칫거리로 여겼는지 알 거 같아. 자기들이 돌리기에는 뭔가 모자라고, 매물로 내놓자니 사겠다는 업체는 없고."
"가격은 더 이상 안 깎으셔도 좋으니, 공장 운영 노하우 지원만큼은 확실하게 약속받으세요."
"걱정 말게."
"어차피 장래의 싹을 미리 밟는다고 100% 모든 걸 알려주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눈대중으로 보고 훔칠 건 훔쳐야 해요. 공장 인수하면 저도 당분간은 공장에 드나들어야겠습니다."
"자네가?"
전성렬은 의외라는 듯이 반문했다.
버섯 재배로 바쁜 하수영이 직접 공장 감시까지 하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다.
"힘들지 않겠나? 농장에서 공장까지 거리가 꽤 될 텐데."
"힘들어도 할 건 해야지요. 오너가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면 그 회사는 망합니다."
"대단하구만."
전성렬은 하수영이 보이는 열정 앞에 왠지 부끄러운 기분이 조금 들었다.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원래 나중에 은퇴하면 라면 가게 사장도 소일거리로 해보려고 했었으니까요. 소원 하나 이룬 셈이니 잘됐다 치죠."
"예끼, 무슨 벌써 은퇴 타령이야. 이제 막 첫 궤도 올렸으면서 못 하는 말이 없어."
"하하, 청소년기 은퇴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죠."
"행여나 은퇴할 거면, 그 자네 꿈이 뭐라고 했지? 청담동 건물주?"
"네."
"청담동 건물주가 아니라 단지주, 아니, 청담동을 송두리째 자네 땅으로 만들기 전에는 은퇴할 생각 꿈에도 꾸지 말게."
"아니, 언제 제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셨어요?"
"젊은 친구가 꿈을 가지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둘은 가볍게 키득거리면서 일정에 관한 논의를 마저 했다.
생버섯 시장은 당분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고, 대신 라면 시장 점유율 장악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기로 했다. 라면에 넣는 버섯에 스프를 미리 섞는다는 짓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은 라면 판매를 극단적으로 올리기 위해서.
"근데 사장님, 황비버섯 사겠다고 한 게 혹시 서해식품 수출부 이원재차장인가요?"
"아니, 다른 부서에서 온 제안이었어. 수출부하고는 상관없이 진행하는 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