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36화
7장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5)
"저도 모릅니다. 전 그냥 문지기라 서요."
"누가 보면 산에 금덩이라도 묻어 놓은 줄 알겠구만."
"에이, 땅주인이 뭐 할 일이 없다고 이 먼 산까지 와서 금덩이를 묻어놓겠어요. 요즘에는 그런 거 다 은행 금고에 보관합니다. 아니면 자택 지하실에 보관하던가요."
"서락산에 뭐가 있다고 저리 군사기지처럼 철통같은 철조망을 치는지, 원. 저래서야 동네 애들이 어디 밤송이나 주우러 올라갈 수 있겠어? 이런 건 우리 읍 정서가 아닌디……."
"서락산에 밤나무가 있던가요? 별로 못 본 거 같은데요."
"말이 그렇단 거지. 밤송이가 아니라 도토리나 우릅, 산딸기 같은 것도 있잖은가. 산가재를 잡으러 갈수도 있는 거고."
이장 박충원은 연신 못마땅한 듯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내가 산주인이랑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어. 자네, 서울 할멈연락처 좀 알고 있지?"
"저야 모르죠."
"자네가 관리인인데 주인 연락처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에이, 그분이 얼마나 큰 부자이신데요. 신입사원이 회사 사장하고 직통 연락되는 거 보셨어요?"
잔뜩 불퉁한 표정을 보니, 산 아래에 펜스를 치는 게 어지간히 불만인 모양이었다.
이 마을에 산이 서락산 하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경계를 긋는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그럼 자네가 자네 윗사람 통해서 든 뭐든, 서울 할멈에게 이 말은 꼭 전해주게."
"경청하겠습니다."
"저 산이 그 할멈 산인 건 알아. 하지만 저 산은 그 할멈 산이기 이전에 우리 마을 공동의 산이여. 어디 저 산뿐인가? 저기 보이는 이럭산도, 여기 보이는 팔당산도 다 주인이 있다네. 하지만 누가 철조망을 치는 걸 봤나?"
"못 봤죠."
"그게 다 자기 산이면서도 마을 전체의 산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말이여."
"그렇군요."
하수영이 순진하게 반응하자 박충원은 답답했는지 자기 가슴을 쳤다.
"아무튼 이건 이 마을 정서가 아니다, 이 말이여."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연히 마을의 규범을 어겼으니 그에 대한 배상을 해야지."
"마을 규범? 그런 게 있어요?"
"마을 회관에 오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네. 지금 가서 확인해 볼 텐가?"
"네,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럼 따라오게."
박충원은 하수영을 마을 회관으로 안내했다.
마을 회관 금고에는 정말로 책자로 정리된 마을 규범이 정리돼 있었다.
거기에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철조망세 2,000만 원이라… 이걸 마을 발전기금으로 보태야 한다고요?"
"암, 그렇고말고. 그게 이 마을의 법이여."
"음, 한 달에 80만 원 박봉 받고 일하는 제 입장에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네요."
"누가 자네더러 내라고 했나? 당연히 산주인이 내야지."
"이걸 그대로 산주인께 전하면 된다는 거죠?"
"그렇지. 그게 바로 자네가 할 일이고."
"……또 추가로 말씀해 주실 건 없나요? 하는 김에 한 번에 싹 하는 게 좋지요."
그 말에 이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땅이 꺼질 듯한 표정은 정말로 큰 근심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마을에 못된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그놈들은 나도 제어가 안 돼."
"못된 친구들이요?"
"사실 심성은 착한데, 마을 규범을 어기는 것은 못 보는 야들이지. 갸들이 지금 서락산에 철조망 치는 거 보고 부글부글 끓고 있다네."
"그렇군요."
"근데 발전기금까지 안 내고 버티고 있다가는 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러. 밤중에 몰래 철조망을 뜯어버릴 수도 있어. 솔직히 누가 했는지 어떻게 잡는가? 안 그런가?"
"그렇죠. 원래 열 경찰이 도둑 하나 못 잡는 법이죠."
"갸들이 심성이 못돼서가 아니고 정의감이 투철해서 그러는 거여. 나도 갸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네. 이 늙은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수영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언제는 못된 친구들이라고 해놓고, 이번에는 심성이 못 돼서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빨리 산주인한테 고하는 게 좋을 거여."
"네, 감사합니다."
마을 회관을 나선 하수영은 산 저택으로 향하다가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깨끗한 신식으로 지어진 마을 회관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장 아저씨는 많이 친절하시네. 미리 경고도 해주시고 말이야."
하수영은 산으로 돌아왔다.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저 펜스를 넓게 치는 단순한 작업이라 애초에 공사 기간이 길지 않았다.
저택에 들어선 하수영은 금고를 열어 엘릭서와 황금비단우산버섯을 꺼냈다.
산을 오른 하수영은 밭을 찾았다.
이미 한 차례 수확을 마친 터라, 4만 제곱미터의 밭은 흙이 엎어진 채 방치돼 있었다.
"으차."
밭 옆에 마련된 작업대에 들어선 하수영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엘릭서에 적신 후 잘게 쪼개는 일을 시작했다.
"다 됐다."
포자 뿌리기 사전 작업을 마친 하수영은 밭을 거닐며 잘게 찢은 황금비단우산버섯을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전성렬 사장에게 톡을 넣었다.
[내일 아침에 버섯 수확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네, 바로 사람을 보내지.]
다음 날 아침.
전성렬이 보낸 인부들이 화물차를 여럿 이끌고 서락산을 찾았다. 이미 한 차례 왔었던 타지 지역 인부들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는 철조망이 없었는데, 언제 생겼대?"
"비싼 버섯 키우는 산이니까 당연히 쳤겠지. 전에 우리가 캔 버섯이 돈으로 치면 300억 원이라대."
"헉, 그 정도야?"
"자네 황금비단우산버섯 비싼 거 몰랐나?"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많은지는 몰랐어."
"시중가가 톤당 1억 원이니까 300톤이면 300억 원이 맞지."
"몰랐는데 저 젊은 사장이 아주 큰 부자 농부로구만."
인부들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버섯을 캐서 포장을 한 뒤 화물차에 신는 작업을 반복했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은 땅에 빽빽하게 자라 있어, 그저 손으로 긁어 담아서 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되었다.
"근데 황비버섯이 원래 이렇게 맨땅에서 빽빽하게 자라던가?"
"몰라, 알게 뭔가. 버섯이나 부지런히 캐세. 빨리빨리 작업 끝내야지."
"소나무나 잣나무에 기생해서 크는 놈이라 보통 여기저기 흩어져서 크는 걸로 아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 밭은 나무 한 그루도 없잖나?"
"다른 방식으로 재배하나 보지."
"신기하군, 신기해."
하수영은 태블릿으로 청담동 빌딩매물을 확인하면서 버섯 채취 작업을 감독했다.
채취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즈음이었다.
"아, 잠깐만요. 거기 있는 애들은 남겨두세요."
하수영은 가로세로 3미터 정도 되는 구석 면적에 자라난 버섯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거기 애들은 나중에 따로 쓸 데가 있으니까 그냥 거기에 남겨두세요."
"알았어요. 남겨 놓죠."
인부장이 땀을 닦으며 끄덕였다.
그렇게 채취 및 포장 작업이 대충 끝났고, 대기 중인 화물차에 부지런히 신기 시작했다.
이번에 생산한 버섯은 100톤이었다.
서해식품에서 온 주문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딱 100톤만 생산한 것이다.
적재를 마친 화물차들은 다시 산을 빠져나가 서울을 향해 달렸다.
전성렬이 물었다.
"남은 버섯은 어디에 쓰려고 그러나?"
"두 가지 용도가 있어요. 하나는 저 버섯들을 종자 삼아 다음 버섯을 키우는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는?"
전성렬이 궁금증을 품은 채 얼굴을 바짝 들이대자, 하수영은 피식 웃었다.
"미끼입니다."
"미끼?"
"네, 못됐지만 심성은 착한 놈들을 낚기 위한 밑밥이죠."
"허, 무슨 그런 말이 다 있나. 못됐으면 못된 거지, 심성은 착하다는 말이 어딨어."
"여기 서락읍에는 그런 사람들 많아요."
전성렬은 대충 하수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챘다.
하지만 미끼로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건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 잠시만. 광고 회사에서 전화가 왔군."
"스피커 모드로 받으세요. 저도 같이 듣죠."
"그러세."
전성렬은 스피커 모드를 켠 채 광고회사에서 온 전화 연락을 받았다.
"전성렬입니다."
-기획 초안이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한번 방문하셔서 피드백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건 초안 작업때 분명하게 해야 비용이 절감돼서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방문하지요. 오늘 저녁은 어떻습니까?"
-저희야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아참, 그리고 장효주 배우 에이전시측에 연락을 했는데요. 아무래도 장효주 배우 발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면 CF라고 하니까 썩 내키지 않는 반응이어서요.
하수영이 얼른 끼어들었다.
"최대한 예쁘게 찍어주겠다고 해도안 먹히던가요?"
-다른 것보다 지금 촬영, 화장품 CF, 귀금속 CF 일정이 줄줄이 밀려있는 게 큽니다. 그 와중에 굳이 짬을 내서 라면 CF까지 찍기는 계륵이라고…….
"딱 1편만 촬영하고 1년 개런티로 10억을 준다고 해보세요. 물론 라면 CF 전속 아닙니다."
-네? 그럼 단가가 너무 맞지 않는데요. 아무리 장효주 씨가 톱배우라지만 한 편만 촬영하는데 10억이라니…… 심지어 전속도 아닌데.
전속이 아니라면 장효주가 나중에 다른 라면 회사 CF를 찍어도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성렬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했다.
"자네, 그 정도로 장효주 팬이었나?"
"장효주 정도는 되어야 임팩트가 있죠. 우리는 신생 업체잖아요. 띄울 수 있는 승부수는 모조리 다 띄워야 합니다."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비싸긴 하지만 장효주 배우 정도면 그만한 가치는 하죠. 하지만 겨우 1편 촬영에 비전속이라니…….
"어차피 초반에 광고비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한계가 있어요. 우리로서도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10억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광고회사에도 제작비용을 줘야 하고, 또 그렇게 만든 CF를 TV나 신문 등에 내보내는 데 광고료를 줘야 한다.
전부 다 따지면 20억은 가뿐히 넘지 않을까.
"장효주 급으로 하지 않을 거면 TV 광고를 내보내는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라면 광고는 역시 미녀배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시청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최고죠."
"음…"
전성렬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수영은 보란 듯이 엄지손가락으로 뒤에 위치한 화물차를 가리켰다.
"지금 저거 100톤이에요, 100톤."
"아, 그렇지. 100톤."
-네? 뭐가 100톤이라는 말씀이시죠?
전성렬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맞다, 저 버섯을 서해식품에 납품하면 100억 원이라는 현금이 단숨에 굴러들어온다.
2, 30억 원의 광고 집행 총비용쯤은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큰 거래가 매일 있다는 게 아니지만.'
마케미야의 1년치 송이 구매 계약.
서해식품의 황금비단우산버섯 100톤 계약.
이런 굵직한 거래는 사실 좀처럼 찾아오기 힘들다.
황금비단우산버섯은 소비량이 일정한 편이고, 수백 톤을 한꺼번에 생산해 봤자 팔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하지, 그럼."
"들으셨죠? 방금 말한 대로 에이전 시에 다시 한번 푸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30분 후 광고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장효주 배우 측에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