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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1화 (41/1,270)

프랜차이즈 갓 041화

8장 라면 가게 한다면서요? (4)

"응, 성렬유통인가 그랬을…… 근데 네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알아?"

"알 거 없잖아. 확실해? 성렬유통에서 구공장 사간 거?"

"맞을걸? 어디 보자……."

정서진은 태블릿으로 전자결재보고서 목록을 훑어본 뒤 확인해주었다.

"맞네. 성렬유통."

"거기 농산물 유통하는 곳 아니야?"

"맞아. 작년 연매출이 90억 정도인 회사인데 어디서 돈이 나서 구공장을 산 건지 의문이긴 했어."

정서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이 보였다.

아마도 성렬유통이 정확히 뭐 하는 업체인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리라.

연매출 90억 정도의 농산물유통회사면, JM식품 입장에서는 보잘것없는 영세업체였으니까.

하지만 송이버섯과 황금비단우산버섯 이야기를 알고 있는 정서희의 눈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라면 가게를 할 거라고?'

호텔에서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그런데 JM식품 구 라면공장을 샀다니?

식자재를 취급하는 농산물 유통회사가 대체 왜?

'농산물 유통업으로 그칠 생각이 없는 거야. 본격적으로 라면 시장에 뛰어들려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40억씩 주고 라면공장을 살 리가 없을 테니.

정서희는 주먹을 쥔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아저씨가 1년치 송이값으로 102억원인가 전부 다 지불했다고 하셨지.'

아마 그 돈으로 구공장을 매입한 것이리라.

'공장 매입 자금은 40억 원, 부대비용까지 넉넉히 잡으면 60억 원, 일단 적어도 42억 원의 여유 자금이 있겠네.'

여기에 서해식품에 납품한 황금비단우산버섯 100톤까지 생각하면…

'142억 원 이상이야. 150억 가까운 여유 자금.'

이 정도면 이미 영세업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충분히 식품 시장에 뛰어들 만한, 최소한의 기본기는 갖췄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런데 진짜 라면 제조업을 하려고?'

정서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큰돈이 생겨도 그렇지, 농산물 유통회사가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인가.

라면 제조업이라는 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자적인 레시피도 있어야 하고, 라면 생산을 위한 연구기술진도 갖춰야 한다.

공장 하나 샀다고 농산물 유통회사가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라면회사로 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태양심'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형성된 빅3 라면 시장 카르텔도 뚫어야 한다.

'차라리 그 돈으로 식자재 유통업이나 더 크게 키우는 게 훨씬 나았을 텐데.'

정서희는 전성렬과 하수영, 그 둘이 대관절 무슨 생각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40억에 팔았다고 했지? 직원들은 어떻게 했어?"

"120명인가만 남기고 우리가 데려왔어."

"용케 120명이나 그쪽에 떠넘겼네?"

"떠넘긴 게 아니라 그쪽에서 전부 고용 승계하겠다고 한 거야. 연봉도 15%나 올려준다고 해서 120명이 남았지."

"그래?"

정서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라면 제조업에 기초 인프라가 전혀 없는 건 확실해.'

그렇지 않고서야 공장을 인수하면서 직원들까지 넘겨받으려고 할 리가 없을 테니.

"그 회사, 정말 라면 제조업에 뛰어들려는 걸까?"

"그러니까 그렇게 작정하고 달려들지 않았을까? 허공에 돈 버리려고 공장 인수하고 직원 고용 승계하고, 그러지는 않을 거 아니야."

"반대로 생각하면 라면 제조에 대한 기반이 전혀 없다는 뜻 아니야?"

"어, 그럴 수도 있겠군.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애물단지였던 구공장 사겠다는 구매자가 나타난 것만 신경 썼지."

정서진의 표정도 비로소 조금 달라졌다.

"그럼 그 사람들, 몇십억을 투자하면서까지 이 레드 오션 시장에 뛰어 들려고 했던 거야? 쩐주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무모한데?"

"오빠가 투자자라면 어떻게 할 거야?"

"이런 투자기획은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을 거다. 이 시장이 얼마나 레드오션인데, 수십억을 쏟아 부어."

정서진은 상상만으로도 질린다는 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정서희는 마케미야가 자리를 만들기 전에 미리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배우 장효주하고 미팅이라는거 보니, 그 친구들이 뭔가 사업을 크게 확장하려는 모양이야.

장효주의 몸값을 생각하면, 정말 작정하고 달려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여전히 빠져 있다.

정서희는 그게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넉넉한 투자 자금, 배우 장효주모델 선정, 라면시장에 대한 자신감, 그러면서 라면제조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으니, 뭘까?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걸까?'

"뭐 확실한 아이템이라도 있나 보지. 그렇지 않고서야 투자자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기획을 믿어줬을 리가 없을 테니."

"자기들 돈으로 하는 걸 수도 있잖아. 따로 투자자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럼 망하려고 작정한 거네. 아니면 라면 시장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거나."

정서전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 바닥이 얼마나 지옥인지 알고 뛰어들려고."

"레드오션이 아니라 블루오션일 수도 있지. 적어도 그 사람들 눈에는 말이야."

"그럼 눈에 필터를 잘못 낀 거네. 필터 교체하던가, 망하던가, 둘 중에 하나겠지."

정서희는 곧바로 방으로 돌아와서 마케미야한테 연락을 했다.

"성렬유통에서 우리 JM식품 구공장을 인수했어요. 직원들도 대부분 고용 승계했대요."

-뭐야, 라면시장에 뛰어든다는 게 사실이었어?

"그분이 그런 말을 했었어요?"

-그때 술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지. 근데 난 먼 미래의 포부를 말하는 건 줄 알았어. 공장까지 인수했다고?

마케미야 입장에서 성렬유통 같은 곳이 라면 시장에 진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저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다.

-가만, 그럼 서해호텔에서 넷이 이야기할 때 이미 공장 인수 계약이 끝난 상태였겠네?

"그렇죠."

-허참, 이런 우연이.

성렬유통이 매입한 공장이 바로 정서희 집안에서 내놓은 매물이라니.

-그러고 보니 네가 JM식품 딸이라는 건 말 안 했었구나.

"그랬죠. 그 이야기했으면 재밌었을 거 같은데, 아쉽네요."

-다음에 만나서 하면 되지. 그나저나 그럼 협력 관계가 아니라 경쟁관계가 되려나?

"그래도 동종업계인데 어떻게 마냥 경쟁만 하나요. 협조하고 도와주고 그러면서 사업 꾸려나가는 거죠."

-넌 아직 공장은커녕 회사 사무실도 없는 거 알지?

"사무실이야 하나 임대해서 차리면 그만이고요. 제조공장부터 확보하는 게 중요해요."

-청담동 건물에 차리지 않고?

"거기 세가 얼만데 회사 사무실을 내요. 그 세 알뜰히 모아서 회사에 투자하는 게 낫죠."

-기특하구나. 그런 생각도 다 할 줄 알고,

"이런 걸로 칭찬 듣는 게 더 민망해요. 자존심도 상하구요."

정서희는 마케미야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렇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구공장을 가져간 곳이 하필 성렬유통이라니.

그녀는 느긋함과 자신감이 공존하던 하수영의 눈빛을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전에 듣자니 라면 가게 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것도 합니다. 아니, 이제 곧 하려고 준비한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라면 가게라고 해서 저는 프랜차이즈 분식집 같은 걸 생각했죠. 제가 너무 과소평가했네요.

-라면이 주력 상품이니까 라면 판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나쁘지 않은 시원스러운 비주얼에 또렷한 눈빛.

나이는 연하이지만 전혀 연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오빠인 정서진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다 그럴까.'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마케미야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성렬유통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떠냐?

"성렬유통과 무슨 이야기를 해요?"

-보아하니 그 친구들이 이 바닥사정도 잘 모르고 라면시장에 뛰어들 모양인데, 라면 제조업이라는 게 어디 하루아침에 뚝딱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니.

"그건 그렇죠."

-너와 손을 잡으면 서로 좋은 시너지가 되어줄 거 같은데.

"……."

정서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긴했다.

"힘들 거 같은데요."

-왜?

"성렬유통, 최소로 잡아도 100억이상 여유 자금 쥐고 사업에 뛰어드는 거잖아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어서 그러는 걸 텐데, 외부에서 숟가락 얹으려고 하면 좋아하겠어요? 제가 JM식품 딸인 거 알면 더 경계할 거라고요."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내가 나서면 이야기가 다르지.

"아저씨가 나서주시게요?"

정서희는 기대감에 차서 반문했다.

JM식품 딸인 자신이 나서는 것과, 마케미야가 나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성렬유통 입장에서 마케미야는 큰 호의를 베풀어준 거래처.

더군다나 마케미야는 몇조 원 이상의 개인 자산을 가진 부동산 재벌이기도 하다.

-내가 적극적으로 투자해 준다고 했잖느냐. 당연히 나서줘야지.

"아저씨가 나서주시면 최고죠. 고마워요."

-내 투자와 네 사업기획안을 보면 그들도 마냥 터부시하지는 않을 거다. 너도 설득할 준비하고 있어. 날 설득했던 것처럼.

"제가 아저씨를 설득했던가요? 그 반대였던 거 같은데……."

-아무튼 준비 잘 해두고 있어. 조만간 미팅 잡으마.

"네, 감사해요."

-나한테 감사한 마음을 부디 우리 마음 여린 진석이한테도 한 조각 나눠다오.

"많이많이 나눠주고 있어요."

* * *

고대 주신의 분신, 은하신목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왜 신어가 발동되지 않는 거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아니 상상하지도 않은 전대미문의 사태는 고대 주신의 분신조차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수영이 그놈이 난 놈은 난놈이구나.'

그리고 은하신목은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과연 나의 뒤를 이어 프랜차이즈갓이 될 후보자다운 자질이로다!'

신어가 발동되지 않은 게 문제이긴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전대미문의 자질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신적 소양만 어느 정도 쌓으면, 나를 넘어서는 차기 프랜차이즈 갓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은하신목은 희망회로에 크게 부풀어 있었다.

* * *

-아들아. 아들아. 아들아…….

서락산을 열심히 오르던 하수영은 별안간 머릿속에 울리는 은하신목의 음성에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환청인가?"

-아들아… 들리느냐, 아들아…….

"아버지? 진짜 아버지예요?"

-후후, 완전한 실패는 아니로구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신어 권능을 주입한 덕분이다.

"그거는 실패한 거 아니었어요? 정신적 소양을 많이 쌓아야 한다면서요?"

여기서 더 쌓을 게 뭐가 있다고, 하고 하수영은 속으로만 덧붙였다.

-어허, 실패라니. 정신적 소양을 쌓기만 하면 제대로 신어를 발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편히 소통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구나.

"진짜 어떻게 된 거예요?"

-신어의 힘을 통해 이렇게 떨어져서도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거란다. 이것이야말로 신어 주입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느니라.

"이제 저는 한국, 아니, 세계 어디를 가도 아버지 잔소리를 피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거군요."

-아니, 이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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