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59화
13장 농사지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3)
정서희는 하수영이 골치 아픈 경영문제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은 이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수영이 적극적으로 비전을 제시해 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애초에 황비버섯라면을 구상한 것도 하수영이라고 했으니. 전성렬도 같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전 사장님은 솔직히 대기업 CEO 스타일은 아니야.'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다.
그리고 당사자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경영가로서의 역량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회사채 발행이라……."
"전 은행 대출보다는 그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되네요. 아니면 은행에 대출을 알아보시되, 상환 시기가 4년 이상 뒤로 되는지 한 번 물어보세요."
하수영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분명히 2년 이내 상품으로만 유도 할 걸요? 대신 금리는 파격적으로 낮춰서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두 달도 안 돼서, 라면 1억 개를 팔았어요. 라면 시장 매출이 2조 1, 474억인데, 내년에는 우리가 가볍게 과반을 차지할 게 뻔하고요. 이미 눈독 들이고 있는 대기업들이 꽤 있을 겁니다. 꼭 식품 쪽이 아니라도요."
"음, 일리 있는 말이야. 알았네, 그럼 그 부분은 내가 그렇게 알고 진행하지."
"두 번이나 돌아갈 필요는 없으니 나중에 해외에 팔 물량까지 고려해서 공장 아주 크게 지으세요. 차후 확장도 꼭 염두에 두시고요."
"그렇게 하지."
"진짜 더 이상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됩니다. 전 어떻게 버섯 재배 방법을 개량할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지금 터질 것 같거든요."
"그나저나 버섯 농사에 비행기를 쓴다는 건 어떻게 됐나?"
정서희는 그 말에 놀라서 하수영을 바라봤다.
"농사에 비행기를 쓰신다고요?"
"네."
"그 작은 서락산에서 비행기를 어디에 쓰시게요? 1초만 날아도 그냥 산을 아예 통과할 것 같은데요?"
"에이, 비행기는 현대 농사법에 있어 필수적입니다. 요즘 누가 바퀴 달린 농기계로 농약 살포합니까? 다 비행기 써서 하죠."
"그건 미국이죠. 적어도 우리나라는 안 그래요."
"정 부사장, 사실 나도 하 사장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두 경영진이 의문을 표시하자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두 분, 한번 직접 보실래요?"
* * *
하수영은 둘을 데리고 서락산으로 돌아왔다.
정문 옆에 난 사람용 출입문을 열고 산에 들어서서 비탈길을 올랐다.
정서희는 산기슭 저택에서 편한 운동화라 갈아 신고 따라나섰다.
"부사장님은 처음 와보죠?"
"네, 할머니가 매각한 이후로는 처음 와 봐요. 철조망을 이렇게 넓게 치셨군요."
"도둑 방지용입니다."
"비용이 제법 들었겠어요."
"그래도 돈값은 제대로 하니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셋은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 지어진 버섯 농장을 보고 정서희는 작게 감탄했다.
채취를 마쳤기에 밭은 텅 비어 있었지만, 가로세로 200미터 면적이 주는 고양감은 제법 상당했다.
"근데 여기서 무슨 재주로 비행기를 띄운다는 건가? 비행기 같은 건 전혀 안 보이는데?"
"기다려 보세요."
하수영은 단단히 잠긴 컨테이너 문을 열고 안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꺼냈다.
그것은 두 기의 검은색 드론이었다.
"그건 드론 아닌가?"
"비행기라는 게 드론을 말하는 거였어요?"
"네, 맞습니다."
하수영은 씩 웃으며 드론을 들고 둘에게 보여주었다.
드론의 몸집은 상당히 컸다. 거의 웬만한 데스크톱 본체만 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몸집이 크다 보니 날개 크기도 상당했다. 아무리 봐도 취미용 드론은 아니었다.
"엄청 크군. 이건 어디서 난 건가? 아무리 봐도 평범한 드론은 아닌데?"
"전문가용 장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한 대도 없고, 미국에서 직구로 사온 겁니다. 이거 한 대가 10억 원이 넘어요."
"10억이라고?"
"에이, 보통 농기계들도 다 억 단위에서 놉니다. 겨우 10억 가지고 그리 놀라시면 안 되죠."
"그거야 그건 대형 장비니까 그렇다 치고, 이건 어쨌거나 드론이지 않나? 이 작은 게 10억이나 한다고?"
"아까는 엄청 크다고 하셨으면서."
"그거야 드론치고 엄청 크다는 말이었지."
하수영은 드론을 뒤집어서 아래 장착된 물탱크를 보여주었다. 탱크의 좌우에는 물 분사가 가능한 분수구가 여러 개 있었다.
"여기 탱크에 포자를 담아서 밭에 살포하는 식으로 뿌릴 겁니다."
"이 드론에 그런 기능이 있나? 혹시 농업용 드론인가?"
"그럴 리가요. 제가 개조한 겁니다. 물탱크도 제가 만들어서 달았고요."
정서희가 신기한 듯이 살피면서 질문했다.
"포자를 분사하려면 분사구 개폐라 든가 압력 조절 같은 정밀한 제어 기능이 있어야 할 텐데요?"
"그것도 만들어서 달았어요."
"……네? 진짜요?"
"간만에 코딩 잡느라고 옛날 기억좀 뒤졌네요. 코딩 손에서 놓은 지 하도 오래돼서 다 까먹을 뻔했는데, 하다 보니까 기억이 나더라고요."
"……프로그래밍도 하실 줄 아세요?"
"이런 건 허수우주 진입 과정 자세 제어모듈 짜는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딱 우주정거장 궤도 조절 수준이에요."
정서희는 지금 농담으로 그러는 건지 진담으로 그러는 건지 헷갈렸다.
내용만 따져 보면 농담이 맞는데, 표정을 보면 왠지 농담이 아닌 것 같다고 할까.
'드론 물 분사 조절 기능이 우주정거장 궤도 조절하고 같은 수준이라고?'
"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보실래요?"
하수영은 컨테이너에서 뭔가를 꺼내 뚝딱뚝딱 설치했다.
그것은 일종의 드론을 위한 간이 격납고처럼 보였다.
격납고 옆에는 또 개폐형 저수통을 설치했는데, 저수통 후면에도 전자 부품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저기 위에 태양전지판 보이시죠?"
하수영이 컨테이너 위쪽을 가리키자 둘은 그쪽을 돌아봤다.
과연 그의 말대로 컨테이너 위쪽에는 태양전지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격납고는 드론을 위한 겁니다. 내부에는 전지와 자동 충전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드론이 스스로 자가 충전을 할 수 있어요. 전력은 저 전지판을 통해 공급받아 저장하고요. 아, 이 물탱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뭐가 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언제 이런 걸 다 사서 설치했대?
장비들을 이리저리 살피던 전성렬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건 시중에서 파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당연히 제가 부품 사다가 개조하고 만들고 다 했죠. 분무통 매고 직접 뿌리는 것도 낭만이 있어서 좋았는데, 언제까지 낭만에만 젖어서 살수는 없잖아요? 자동화, 대량화를 추진해야죠."
"……."
전성렬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어디에서 돈 주고 사와서 설치한 게 아니라?
"자, 뒤로 물러나 주세요."
전성렬과 정서희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적당히 거리를 벌린 하수영은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실행시켰다.
"지금 뭐하는 건가?"
"아, 이것들을 관리해 주는 통합 통제 어플이에요."
"설마 그것도?"
"제가 만들었죠."
"……."
"이제 농사도 스마트폰으로 짓는 시대라고요. 시대에 맞춰서 움직여야지요."
둘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산에 왔더니 경비행기가 있더라, 그런 거였다면 이보다는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수영은 어플을 실행해서 드론을 작동시켰다.
드론이 허공으로 둥실 날아오르더니 격납고 옆에 장착된 커다란 물탱크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물탱크의 개폐구가 열리자 드론에 장착된 탱크에서 주수구가 뻗어 내려왔고, 곧 물탱크에 담긴 액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저 액체는 뭔가요?"
"황금비단우산버섯의 포자를 물과 섞어 둔 겁니다. 즉, 버섯의 종자라고 할 수 있죠."
"황금비단우산버섯을 저런 식으로 재배한다는 것은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정서희도 황금비단우산버섯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다. 또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 양식하는지도.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알고 있던 그 어떤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 지식이었다.
"영업 비밀입니다. 제가 그래서 특허를 안 내는 거예요."
"……."
"물론 누가 저 액체를 훔쳐가서 분석한다 해도 똑같은 걸 만들 수는 없어요. 저 액체를 만드는 과정에 바로 저만의 비법이 있거든요."
그게 엘릭서라는 설명은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액체 주입을 마친 드론이 천천히 떠오르며 밭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정서희가 급히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런데 혹시 나중에 보편적 드론비행 금지 법안이라도 실행되면 어떡하죠? 지금이야 공항이나 도로 같은 곳만 아니면 괜찮지만……."
"괜찮아요. 2미터 이상 비행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 그렇군요."
"굳이 높이 비행을 할 필요도 없죠."
말 그대로 드론은 사람 눈높이만한 높이로 비행하며, 탱크에 담긴 액체를 밭에 뿌리기 시작했다.
"저 드론은 위치 파악 센서와 모듈이 탑재돼 있어서 자기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포자를 살포했는지 기억합니다. 그래서 탱크가 텅 비면……."
어느덧 탱크가 텅 비자 드론은 다시 대형 물탱크로 돌아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탱크의 문이 열렸고, 주수구가 뻗어 나가 액체를 빨아들였고, 드론은 다시 살포가 끊긴 지점까지 날아갔다.
"저렇게 돌아와서 탱크를 채운 뒤 작업이 끊긴 지점부터 다시 살포를 재개합니다."
"……."
"……."
전성렬과 정서희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지금 무슨 마술쇼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드론은 살아 있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대형 탱크에 담긴 액체를 모든 농장에 남김없이 살포했다.
1기의 드론이 200㎡ 면적의 밭에 모두 포자를 살포하는 데에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짜잔, 이렇게 포자 살포가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버섯이 자라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참 쉽죠?"
"하 사장, 대체 언제 이런 걸 구상했…… 아니, 대체 자네는 못 하는 게 뭔가?"
"하 사장님, 혹시 로봇 공학도 배우신 적 있으세요?"
"왕년에 이거저거 많이 배웠습니다. 까먹은 것도 많이 있긴 한데 공부 좀 하다 보면 금방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런 수준의 손재주를 갖추려면 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 건가?"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죠."
정서희는 묘한 감정에 휩싸여서 하수영을 바라봤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툭툭 터는 그 모습이, 어쩐지 강렬한 느낌을 심어주었다.
"웬만하면 낭만을 살려서 농사짓고 싶었는데,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제 꿈을 이룰까 염려돼서 할 수 없이 농업 스타일을 살짝 업그레이드해 봤습니다. 걱정 마세요.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여기서 더 나아질 수도 있어요?"
"하려면 못 할 건 없지요."
하수영은 둘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물론 이건 두 분만 아셔야 하는 비밀입니다. 원래 기업 비밀인데, 그래도 두 분은 공동체이자 같은 주주니까 제가 알려드린 거예요. 아셨죠?"
"걱정 말게."
전성렬은 작업을 모두 마친 드론이 충전을 위해 격납고로 들어가 자리 잡는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꼭 일을 마친 로봇청소기가 자가 충전을 위해 전원 플러그로 복귀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잘 봤네. 요즘 세상에 농사지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구만."
"그렇습니다.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