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067화
15장 거짓말은 안 했어요(4)
-아무튼 화이팅입니다.
하수영은 야속하게도 끝까지 어떤 조언이나 의견도 꺼내지 않았다.
전성렬은 정말 자신과 정서희의 힘만으로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기라고 생각하는 게 자신 혼자라는 게 조금 억울했지만.
"앞으로 수도 없이 엮이실 거예요. 저희 아버지도 그렇게 사업을 키우셨거든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정치인들하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유지하고 계시죠. 이제는 이런 조잡한 수작을 부리는 정치인들도 없고요. 다들 아쉬운 태도 부탁을 한다면 모를까요."
뒷배경 없는 신생업체가 급성장을 하면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전성렬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럼 부사장 생각은 어때요?"
"저라면 일단 용수시에 공장을 짓겠어요. 어차피 안양시장이 우리한테 당장 해코지할 만한 힘은 없으니까요.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요."
어떻게 보면 간단하고 속 편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가장 좋은 정공법처럼 보였다.
"물론 최종 결정은 사장님이 하셔야죠."
"이미 결재까지 했는데……."
"내부 의사 결정이야 다시 뒤집으면 그만이고요."
"하아."
전성렬은 한숨을 쉬며 투정하듯 말했다.
"매출 1, 2조 원 찍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안 되는군요."
"그 정도 규모가 되면 서울시장이나 대선주자들이 달라붙을 수도 있겠네요. 정치 자금 좀 지원해 달라고요."
"그냥 마음 편히 장사만 하고 살면 안 됩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 아마 하 사장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전성렬은 둘이 은근히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전성렬은 용수시에 제2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대신 대전에 짓기로 한, 지방 물량을 생산할 제3공장은 안양시에 짓기로 했다.
물론 내부적인 결정이었기에, 안양시는 도지사가 중간에 새치기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제3공장이 예정했던 것보다 규모가 커져 버렸네요."
대전에 짓기로 한 제3공장은 본래 500억 원 이하의 돈이 투자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양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800억 원으로 규모를 늘렸다. 안양시 입장에서 갑자기 공장 규모가 줄어들면 불만을 품을 것이고, 자칫 이수문 도지사의 개입을 눈치챌 수도 있었다.
"안양시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전혀요. 우리가 원래 대전에도 공장을 지으려 했다는 건 누출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정욱은 안양시에 짓는 공장을 유치하지 못해 내심 불만을 품었지만, 용수시에도 원래 공장을 지으려고 극비리에 계획 중이었다는 설명에는 납득했다.
-우리 원래부터 용수하고 안양에 공장 지으려고 했었어.
-안양 공장은 지방에 내려보낼 물량 때문에 입지를 바꾸기가 곤란해.
상대가 이렇게 나오는데 더 압박을 하기에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냥 3공장은 원래 그대로 대전에 지으셔도 됐을 것 같은데요."
대전이 아니라 안양에 지을 경우, 지방에 풀 물량을 운송하는 비용이 소폭 증가하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이것으로 적어도 양쪽한테 찍히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칩시다. 지방 운송비 증가는 그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일단 계단 하나는 잘 넘었네요."
"다 정 부사장 덕분이에요. 여러모로 조언을 많이 해줘서 내가 판단을 할 수 있었어요."
* * *
하수영은 송이버섯밭을 서락산으로 완전히 옮겼다.
밭 이전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송이를 재배할 지역을 고른 뒤, 잡목을 제거하고 작업용 컨테이너를 갖다 놓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이건 재배부터 채취까지 전부 내가 직접 해야 한단 말이야.
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현재 황금비단우산버섯은 하수영이 재배하지만, 채취 작업은 사람을 써서 한다.
양식이 불가능한 종이 아니기에 버섯밭이 노출되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빽빽하게 자라나게 할 수 있는 거지?'라는 시선은 조금 받지만, 그 외에 큰 의심을 사지는 않는다.
하지만 송이는 이야기가 다르다.
양식이 불가능한 종이기 때문이다.
성렬유통 직원들은 아직까지도 하수영이 송이가 나는 산을 따로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또 자기들이 모르는 사람들을 써서 송이를 채취해서 가져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종묘용 포자 뿌리는 거야 황비버섯처럼 드론을 써서 자동화하면 되지만, 채취가 조금 문제네."
지금까지 송이버섯은 그리 많이 생산하지 않았다.
하수영이 혼자서 정원에서 키워서 채취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물량의 한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대량화를 하려면 채취 작업까지 자동화를 해야 하는데. 사람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아들아, 무엇을 그리 고민하느냐. 신어에 통달하면 그깟 버섯 채취 작업쯤이야 말 한 마디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을.
"그거야 지금 아버지 잔소리 수신용 안테나 기능 밖에는 못 쓰니까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잔소리 수신용 안테나라니! 어찌 그리 말을 서운하게 하느냐!
"잠시만 계셔 보세요. 생각 중이에요. 자, 생각해 보자. 에릭, 너는 반드시 방법을 찾을 것이야. 늘 그랬듯이…"
-에릭은 또 누구냐?
"전데요. 제가 이브 온라인에서 쓰는 이름이에요. 물론 다른 의미도 있지만……."
-이브 온라인?
"그런 게임 있어요. 우주선 타고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니는 대규모 온라인 게임이요."
하수영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네."
* * *
차원준은 한국대학교 공학 교수였다.
전문 분야는 바로 로봇 공학.
그는 한국대학교에서 학사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원에 국비로 유학을 갔다.
석사와 박사를 마친 뒤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한국대학교 은사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한국대학교로 돌아왔다.
국내 최고의 로봇공학자라는 사실 덕분에 그는 정부와 대기업에서 추진하는 주요 로봇 프로젝트에 한발씩 걸치고 있었다.
정부와 대기업에서 들어오는 연구지원금과 학과운영비도 압도적인 규모였다.
즉 그는 한국 로봇공학산업의 미래를 떠받치고, 견인하는 거장이었다.
그는 오늘 학외 기업 행사가 있었다. 바로 서해전자에서 주관하는 행사였다.
행사 장소는 바로 일산 킨텍스였다.
본래는 접근의 편의성을 고려해 강남에서 추진하려 했으나, 행사 규모가 너무 커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산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서해전자가 TV, PC, 가전, 반도체 등 회사가 내놓은 신제품 전체를 공개하는 행사이다 보니, 서울 내에서 추진하기에는 적당한 장소를 섭외하는 게 불가능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정말 많군요. 주차장이 전부 차 있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저희 그룹에서 이번 행사에 돈을 좀 많이 썼습니다. 부회장님께서 하는 김에 제대로 보여주고 과시하라고 당부하셨거든요."
"그래 보입니다. 작정하고 준비한 게 눈에 보여요."
차원준은 이번 행사에 로봇 부서 고문 자격으로 특별 참석했다.
로봇 청소기, 차세대 경비용 로봇,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로봇 등 서해 전자에서 준비하는 거의 대부분의 로봇 기술을 일반 대중에 보일 참이었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예, 즉석에서 바로 구입해서 가져가거나 혹은 따로 주문 배송을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산업용도 가능합니까?"
"가능이야 합니다. 대신 구매하려면 지갑이 아주 빵빵해야겠지요."
행사책임자의 말에 차원준은 피식 웃었다.
산업용 로봇을 선보이는 것은 '우리가 이런 로봇도 만드는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퍼포먼스다.
기술 유출 우려야 문제가 없으니 판매를 해도 상관없지만, 수억에서 수십억이 넘어가는 산업용 로봇들을 그 자리에서 살 만한 관람객이 어디 있을까.
"그,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산업용 로봇이 팔렸다고요, 팔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문한 관람객이 있었습니다!"
차원준 교수는 놀라서 얼른 일어나 해당 부스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과연 해당 부스에는 상당히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서 구경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감탄에 찬 탄성이 터져 나온다.
"우와, 지금 저걸 다 산 거야?"
"아빠, 그럼 저게 다 얼마인 거야?"
"모르겠구나. 일단 우리 집은 몇 채를 살 수도 있는 돈이란 걸 알아둬라, 아들."
"우와, 저 형 진짜 짱이다!"
차원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체 누구야?'
산업용 로봇이라고 해도, 이런 공개적인 관람 행사에 나오는 제품들은 정교한 기술적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 판매를 해도 기술적으로 크게 민감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도 엄연히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거나 투입될 예정이니만큼, 일반 가정용 로봇 청소기하고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가격을 자랑할 텐데.
"음, 그리고 저거도 주세요. 혹시 지금 바로 가져갈 수 있을까요? 제가 급해서 그러는데."
"바로 드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반 승용차에 실을 수 있는 부피가 아닙니다. 여기에 파손 방지를 위한 포장도 해야 합니다."
"괜찮아요. 그럴 줄 알고 제가 트레일러를 가져왔습니다."
"……."
부스 담당자들은 반쯤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차원준은 왜 그런가 하고 살폈다가 납득했다.
'KP-3 로봇 팔 6개에, ADS-1 동체구동장치에, PAS31 중앙제어장치에, 그리고…….'
젊은 남자 관람객이 고른 로봇들을 훑어보니, 다 합치면 50억은 족히 넘어갈 제품들이었다.
과연 관람객들이 몰려들어서 구경할 법했다.
호기심이 생긴 차원준은 부스 뒤편으로 안내받은 관람객을 따로 찾아갔다. 담당자가 그를 알아봤다.
"아, 교수님."
"교수님?"
구매를 원한 관람객이 돌아봤다.
알이 짙고 큰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얼굴이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눈에 봐도 무척 젊어 보였다.
"저희 로봇 행사 특별 고문이십니다. 이 로봇들을 제조하는 데 이 분의 영향력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 제 전자 노예들을 창조하신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하수영이라고 합니다."
하수영은 거리낌 없이 자신을 소개했다.
어차피 구매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신상 정보를 제공하게 되니, 굳이 이름을 감출 필요도 없었다.
"전자 노예라고요?"
"아, 제 말버릇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실례지만 결코 적은 가격이 아닌데, 이 로봇들을 구매해서 어디에 쓰실 예정이신지……?"
"제가 로봇을 좋아해서요. 이것저것 개조도 해보고 개량도 해보고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로봇을 좋아하시니 나중에 로봇 공학 쪽으로 진로를 잡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아뇨, 로봇은 그냥 취미로만 만지 려고요. 진지하게 접근하기에는 겁이 납니다."
"어째서요? 로봇을 엄청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차원준은 이 관람객에게 흥미가 생겼다.
로봇 구매에 수십억이나 되는 돈을 선뜻 쓰는 걸 보면 상당한 재력을 갖춘 로봇 매니아다.
이런 젊은이들이 로봇 공학에 뛰어들어야 이 나라 로봇 산업의 미래가 밝지 않겠는가.
"실수로 스카이넷이나 알파고 같은 거라도 만들어버릴까 봐서요. 인간 로봇대전이라도 벌어지면 큰일이잖아요."
"네?"